동화작가 김정미의 창작놀이터


나의 그리스식 웨딩

(My Big Fat Greek Wedding, 2002)

 

감독: 조엘즈윅

주연: 니아바르달로스, 존 코베트

제작: 캐나다, 미국
 

 예전부터 꼭 보고싶은 영화 목록에 기록해왔던 이 영화를 이제야 봤다. 내가 알고 있기론(적어도 각종 영화프로그램이나 영화잡지에서 본 것으로는) 노처녀인 뚱뚱한 그리스인 여자가 어렵사리 결혼에 성공하는, 그러니까 이를테면 외모지상주의를 꼬집는 '패니미즘 영화'라 생각했다. 그런데 '패미니즘'류의 영화는 아니라는 결론이다. 가벼운 로맨틱 코미디 정도라고나 할까.


 민족(고향)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고 다른 민족에게 경계심이 강한 그리스인 가문의 딸 '툴라'는 가부장적인 아버지의 태도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부모님이 운영하는 '댄싱 조르바'에서 서빙을 하며(본인은 예약체크담당이라고는 하지만) 일을 돕는 그녀는 두꺼운 뿔테안경에 산발머리를 한 노처녀로 매력이라곤 찾아볼 수 없다. 그런 그녀가 어느날 대학에 가서 공부를 하겠다고 선언한다. 대학공부를 시작하면서 자신을 발견한 그녀는 점차 외모에도 신경을 쓰고 자신의 삶에 긍정적인 생각을 갖는다. 그러다 미국인 남자와 사랑에 빠지고 아버지의 반대에도 무릎쓰고 결혼을 감행한다-는 것이 이 영화의 줄거리다. 

 강압적이지만 인간미넘치고 때론 어머니에게 쩔쩔매는 툴라의 아버지, 순종적인 듯 보이지만 중요한 사안에 있어서는 강한 리더십을 발휘하는 어머니, 망나니 같지만 중요할 때 툴라에게 응원의 말을 건네는 남동생 등등. 이 영화의 캐릭터는 한껏 무거울 수 있는 영화를 가볍게 끌고 가는 데 독톡한 역할을 한다.

 "그리스인은 그리스인과 결혼해야 한다"는 생각의 아버지를 꺽고 미국인과 결혼을 하려는 툴라는 남자친구의 부모님, 즉 미국인의 정서를 이해하는 데도 서툴다. 그것은 남자친구 역시 마찬가지다. '그리스 식'으로 결혼해야 한다는 툴라의 아버지의 의견을 받아드리며 그는 새로운 문화와 마주하고 그것을 진정으로 즐기는 태도를 보인다.  

  서로 다른 문화가 '결혼'이란 과정을 통해 하나되는 과정은 '사랑'이 '전쟁'보다도 더 강한 것이라는 것을 느끼게 한다. 타 민족에게 억업받았던 과거로 타민족에 대한 저항심이 강한 그리스인 가정이 미국인 사위를 받아드리고 전통 미국의 명문가 역시 그리스인 며느리를 받아드린다. 그렇게 하나 될 수 없을 것 같던 두 나라의 문화는 '사랑'과 '결혼'을 통해 비로소 하나가 된다.



미스리틀선샤인

(Little Miss Sunshine, 2006)
 

감독: 조나단데이톤,발레리파리스
주연: 그렉키니어, 토니콜레트 등
제작: 미국

 

  정말 괜찮은 영화다. 한 껏 꾸미고 포장하지 않았는데도 감동적이라고나 할까. 

<루저들의 상처를 싸매주는 붕대같은 영화>라고 이동진 평론가는 별 네개를 주며 평하고 있다. 공감이다. 이 영화는 항상 승자가 되어야 한다고 되뇌이며 살았지만 녹록치 않은 삶을 만나 실패를 거듭하는 루저들을 어루만지는 영화다.


 삶이 그리 쉽던가. 마음 같아서는 계획같아서는 무엇이든 될 것만 같다. 어릴 때는 '어른이 되면' 성공할 것 같았고, 어른이 된 지금은 서른이 되기 전까진 무엇인가를 이룰 것만 같다. 이왕 사는거, 폼나게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난 평범하게 살지 않을거야-라는 꿈이 어느 순간 와르르 무너져 내릴 때, 그 때의 심정은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건 현실이 그렇다는 것이다. 생각하는 대로 잘 풀리고 계획한 것은 죄다 이루는 '승자'의 삶이란 없다는 것이 현실이고 실패를 거듭하는 패자들이 무수히 널려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승자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관념보단 '실패하는 자만이 승리할 수 있다'는 진리가 더욱 정답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영화를 보면서 '가족'의 존재에 대해 다시한번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됐다. 서로를 못 잡아먹을 것 처럼 으르렁 거리는 영화 속 이 가족을 혹자는 '콩가루 집안'이라고 한다. 하지만 '콩가루 집안'이라는 말은 누구의 가정을 기준으로 했을 때 도출된 답인가. 이 가족만큼이나 사연 없고 문제 없는 집안이 있을까. 그런 가정이 있다면 브라보, 박수 짝짝. 참으로 부러울 수밖에.

 혈연으로 묶였다는 이유만으로 참을 수 없는 고통과 상처를 안겨주는 가족들. 허나, 그 상처와 고통또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치유되니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예측할 수 없는 미지의 숫자처럼 예측할 수 없는 것이 가족관계인 듯 싶다. 그리고 분명한 건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그 흔해빠진 말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한국 영화 <좋지 아니한가>가 생각났던 것도 이 때문인 듯 싶다. 의욕없는 가족들의 멍한 표정. 서로에게 말 하는 것도 귀찮다는 듯, 욕지꺼리를 내뱉고 소리를 지르지만 중요한 순간 가족은 하나가 된다. 역시 '피'는 무시할 수 없는 법인지라 내면의 성향이라던가, 발끈하게 되는 계기역시 비슷해 결정적인 순간 하나가 되는 힘을 발휘한다. 이 얼마나 완벽한 가족인가. 이런 가족을 보고 누가 '콩가루 집안'이라고 혀를 찰 것인가. 사는 게 다 이런 것을, 이렇게 살아가는 게 이 세상의 가족인 것을.

  '삑삑' 경적을 울리는 노란 봉고차를 질질 끌고서 긴 여정을 떠나는 이 가족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밟힌다. 그들은 분명 지금도 서로에게 신경질을 내며, 때론 의욕없는 눈빛으로 멍하니 살아가고 있겠지. 승리하고 싶었지만 인생이란 그렇듯이 실패도 거듭하고, 그럴 때마다 허술하지만 울타리가 되어주는 가족들을 바라보며 힘을 내고 또 그렇게 힘을 내고...

 



미스포터
(Miss Potter,2006) 

영국,미국/ 드라마/ 러닝타임,92분
감독: 크리스 누난
출연: 르네젤위거, 이완맥그리거,바바라플린,로이드오웬

  

<꼬마돼지 베이브>를 만든 '크리스 누난'감독의 두번째 영화다. 개봉당시, 포스터를 보고 왠지 시대물이나 판타지물일 거란 생각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그것도 그럴 것이 포스터 때문인데 위의 포스터는 미국판이고 한국판 포스터에는 토끼그림이 그려져 있지 않다) 

 그런데 주변에서 선배 두 분이 동시에 추천을 해서 보리라 마음먹었다가 드디어 이제야 보게됐다. 어려운 이해를 요하는 영화는 아니어서 보는 내내 마음이 편안했다. 포스터에서 르네젤위거가 하늘색 드레스를 입고 '포터'라는 단어 때문에 그랬는지 '마술'세계를 그린 판타지 영화라는 생각이 강했는데 알고보니 전기영화였다. 


  누구나 한번쯤 토끼그림의 동화를 본 적 있을 것이다. 전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작가 '베아트릭스 포터'의 삶을 그린 이 영화는 따뜻하다. 그녀의 순수함 만큼이나 과도한 포장과 굴곡없이 매끈하게 그려진 영화다. 

 어려서부터 이야기하기를 좋아하고 대자연과 그림그리기를 좋아했던 베아트릭스는 '쓸데없는 몽상'이라는 어머니의 꾸지람에도 불구하고 그림을 계속해서 그린다. 결국 출판사를 통해 책을 출판하게 되고 그녀의 책은 베스트셀러가 된다. 그렇게 돈을 모은 그녀는 어릴 적, 상상력의 근원이 되었던 대자연을 살리기 위해 <내셔널트러스트>운동에 동참하게 된다. 그녀가 내셔널트러스트의 시초격인 인물이었다니! Oh my god! 대단하다. 


 짧은 러닝타임 안에 한 인물의 생을 담아내기엔 얼마나 부족한가! 그래서인지, 이 영화는 베아트리체의 삶을 다 담아내기엔 역부족이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라던지, 또 다른 사람을 만나 사랑에 빠질 때라던지, 혹은 자연을 사랑하는 그녀의 마음이라던지 속속들이 모든 내용을 자세하게 담아내지는 못했다. 하지만 실존했던 인물을, 그것도 아름다운 마음을 지녔던 그녀를 알게 된 것은 큰 선물이라 할 수 있겠다.

  <이야기 첫 줄을 쓸 때는 가슴이 설렌다. 목적지를 정하지 않은 여행처럼>

  극 중 베아트리체가 한 말이다. 그녀는 일생 내내 설렜을 것이다. 그녀의 인생은 뚜렷한 목적지가 정해지지 않은 여행, 늘 한 줄 한 줄 새롭게 써나간 그녀의 동화를 닮았기 때문이다. 

 나도 베아트리체처럼 살고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