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창동 감독의 <밀양>과 닮은꼴 영화
<오늘> (A Reason of live)
감독: 이정향/ 주연: 송혜교, 남지현, 기태영, 송창의
이정향 감독의 9년 만의 신작
영화 <오늘>은 <미술관 옆 동물원>, <집으로>를 만든 이정향 감독이 9년만에 들고 나온 작품이다. 그동안 뜸해도 너무 뜸했다. 떠들썩한 흥행작을 만들어 온 것은 아니었지만, 그녀가 만들어온 작품은 사람들에게 '여운'을 안겨주며 '따뜻한 영화'로 회자되곤 했다. 앞선 두 작품에는 이정향 감독만이 만들 수 있는 그런 서정의 세계가 있었다. 더군다나 <집으로>를 들고 나온 9년 전만 하더라도 한국 영화계에 여성 감독은 매우 귀할 때였다. 그래서 그녀는 '주목받는 여류 감독'에 늘 이름을 올리곤 했다. 자칭 '영화광'이었던 나는 내심 그녀를 응원했더랬다.
송혜교의 주연작이라는 것만큼이나 이정향 감독이 들고 온 9년만의 신작이라는 점이 영화를 보고 싶게끔 했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을 때는 예매전쟁에서 밀려 보지 못한 터였다. 그래서 더더욱 보고 마리라 벼른 것인지도 모르겠다.
영화를 보기 전, 줄거리와 평론가 평을 참고 했다. '용서'에 관한 영화라는 점이 마음에 와 닿았다. '주제가 제법 묵직하겠구나' 생각했다. 역시 예상대로였다. 이정향 감독 특유의 세밀하고도 섬세한 감정 묘사도 여전했다.
사과 한 번 하지 않는 가해자. 과연 누구를 위한 용서인가?
영화는 교통사고로 생일날 약혼자를 잃게 된 다큐멘터리 PD 다혜(송혜교 분)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다혜의 약혼자 상우(기태영 분)는 술에 취해 전화가 걸려온 친구 지석(송창의 분)을 만나러 갔다가 오토바이에 치여 숨진다. 가해자는 고등학생 소년. 살아 숨쉬는 상우를 두어번 오토바이로 치여 사망에 이르게 한 악의를 품고 있는 소년이다. 다혜는 약혼자를 잃고 힘들어하지만 가해자를 용서하기로 하고 탄원서를 써 준다. 모두가 행복해질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사건이 일어난 지 1년, 다혜는 '용서'를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 살인, 강간 등 다양한 이유로 인해 상처와 피해를 받은 사람들 중, 가해자를 용서했다는 당사자 혹은 가족들을 찾아가 그들의 이야기를 담는 기획물이었다. 다혜의 작업은 깊은 신앙심과 수녀님을 비롯한 주변 사람들의 지지와 응원에 의해 이뤄지고 있었다.
촬영이 진행되면서 다혜는 지석의 여동생인 고등학생 지민(남지현 분)을 통해 끊임없이 '용서'에 대한 다른 의견을 듣게 된다. 피해자들이 과연 가해자들을 진심으로 용서했는가에 대한 물음과 가해자들이 용서받을 자격이 있는가에 대한 의문에 이르기까지, 다혜는 지민을 통해 혼란을 겪는다.
더군다나 가해자를 용서했다던 사람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던 중, '용서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는 사람들을 만나며 다혜는 당황하기 시작한다. 살인으로 남편을 잃고 동네에서 작은 점빵을 운영하며 어렵게 살고 있는 한 아줌마는 심지어 용서를 되물리고 싶다고 말한다.
"처음엔 그를 용서했지요. 그런데 그는 나에게 찾아와 한번도 사과한 적 없어요. 출소 후 잘 살고 있을 가해자를 보며 지금은 용서한 것을 되물리고 싶어요. 용서 취소할래요, 취소"라는 인터뷰이의 말을 듣자 다혜는 그만 카메라의 전원을 꺼버린다.
다혜는 인터뷰를 통해 처음으로 자신이 용서한 그 소년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증을 갖게 된다.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형사는 다혜에게 소년이 또 한번 살인죄를 저질러 소년원에 들어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 준다. 그리고 약혼자를 죽이기 전 소년이 지엄마를 칼로 찌른 적이 있다는 것을 알알게 된다. 다혜는 소년을 용서한 자신을 참을 수가 없다. 자신의 용서가 또 다른 살인을 저지르게 한 빌미가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죄책감 때문에. 그리고 어렵사리 내어 준 '용서'가 값어치 없이 쓰레기통에 내팽개쳐졌다는 분노에.
혼란을 겪는 다혜에게 수녀는 말한다. "모든 게 하나님의 뜻이다. 죄는 미워해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랬다. 그를 용서하자. 용서해야만 한다"라고. 다혜도 하나님의 뜻을 따랐지만, 그러나 정작 자신의 상처는 제대로 돌보지 않았다는 걸 깨닫는다. 과연 누가 누구를 용서한다는 말인가, 가해자는 사과 한번 제대로 하지 않았는데. 다혜는 갑자기 울분을 참을 수가 없다.
이창동 감독의 <밀양>을 떠올리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창동 감독의 <밀양>을 떠올렸다. 그려내는 방식의 세기만 다를 뿐, 영화는 집요하게 '죄'와 '용서'에 대해 이야기 한다.
영화 <밀양>에서 아들을 잃은 신애(전도연 분)는 교회를 다니며 하나님을 통해 치유받고자 한다. 진심으로 가해자를 용서하기 위해서다. 그렇게 성실한 교인으로 변해가던 주인공은 어느날 가해자를 면회갔다가 혼란을 겪게 된다.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을 거라 생각했던 가해자의 얼굴이 온화하고 평온했기 때문이다. 가해자는 말한다. "하느님께 죄를 용서해달라고 기도를 올렸다. 그리고 하느님은 자비로 자신을 품어 주셨다. 자신을 내려놓고 죄를 빌고 나니 마음이 편하다"
신애는 소리친다. 내가 용서하지 않았는데 하느님이 살인자를 용서할 자격이 있냐고. 나의 고통은 어찌할 것이냐고. 울부짖는 주인공을 보며 그동안 생각했던 '용서'에 대해 다시 의문을 갖고 고민하게 됐다. 그리고 진정한 용서는 누군가가 대신해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는 순간, 종교도 '폭력'이 되어버리고 말겠구나, 하는 깨달음.
이정향 감독의 <오늘>역시 종교를 배경에 두고 '용서'에 관해 이야기 한다. 영화는 진정한 용서는 바로 자기 자신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가해자를 위해서도 아니고, 이 세상을 뜬 피해자의 넋을 기리기 위한 것도 아닌 살아 남은 자들을 위한 것이라고. 그리고 용서에는 시간이 걸린다는 것도 강조한다. 너무 조급해하지도 말고 죄책감을 느끼지도 말고 시간의 흐름에 모든 걸 맡기라고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의 카피 '너무 일찍 용서해서 미안해'라는 카피는 주인공 다혜가 자신을 위로하는 말임에 틀림없다.
'용서를 한 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를 만들던 다혜는 마침내 "가해자들이 보야야 할 다큐를 만들겠다"고 선언한다. 즉, 용서를 하지 못한 이들의 목소리를 담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다혜의 선언은 이정향 감독을 통해 이 영화에서 실현된다. 영화는 가해자들에게 '진정한 사과를 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영원히 용서받지 못할 것'임을 이야기 하며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을 말한다.
엔딩 무렵, 다혜와 신부님이 나눈 대사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미사시간, "너의 죄를 사하노라"라고 말하는 신부님께 다혜는 대뜸 질문한다. "하나님은 어째서 저를 용서해주시는 건가요? 이렇게 용서를 받으면 다 되는 것인가요?"라고 묻자 신부님은 "하느님이 이렇게 용서해주셨듯이 자매님도 다른 사람을 용서해주면 된다"라고 말이다. 그러나 다혜가 신부의 말처럼 아무런 대가없이 '용서'를 하게 되기까지는 아무래도 시간이 걸릴 것만 같다.
영화는, 내게 세 가지의 중요한 깨달음을 안겨 줬다. 이것만으로도 120여분의 긴 러닝타임에 대한 보람을 느낄 수 있었다.
1) 피해자의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용서는 용서가 아니라는 것. 상처를 주었으면 미안하다는 사과를 해야 한다는 것. 그래야 용서받을 수 있다는 것.
2) 드넓은 우주에서 지구, 그 중에서도 한국을 바라본다면 작은 점 하나에 불과하다는 것. 그 속에서 아웅다웅 다투는 인간들을 우주인들은 참 귀엽게 보고 있을 거라는 것. 그러니까 부디 작은 것에 연연하지 말고 넓게 넓게 살자는 것.
3) 나의 오늘은 누군가에겐 그토록 살고 싶었던 내일이라는 것. (진부하지만, 진부하지 않게 다가오는 깨달음)
물론 아쉬움도 많다. 일단은 다소 긴장감이 덜한 전개 방식이나 노골적으로 주인공 혹은 감독의 생각을 강요하는 듯한 메시지 전달. 그리고 몇몇 장면의 순서가 뒤죽박죽 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편집. 물론, 이런 모든 걸 파악하기엔 전문성이 없는 관계로 '약간의 아쉬움'이라고 정리하고 싶다. 무엇보다 이정향 감독의 신작을 기다렸던 나에겐 깊은 울림을 주는 영화였으니까.
[p.s] 영화에는 다양한 주제들이 섞여 있다. <소년범의 재범율이 높은 우리나라의 현실> <피해자의 인권> <사형제 폐지> <아동 학대> 등에 대해 생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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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반도체 소녀] 꽃띠 소녀를 무대에서 만나다
백혈병으로 숨진 꽃띠 소녀를 무대에서 만나다
-[연극 반도체 소녀]를 보고 나서
6월 23일, 소셜 놀이터 트위터가 한바탕 소란스러워졌다. 눈이 휘둥그레질 만큼 기쁘고 반가운 소식이 타임라인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바로, 법원이 반도체 공정과 백혈병 발병 사이에 인과관계가 있다는 판결을 내렸다는 소식이었다.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에 근무하다 백혈병으로 숨진 황유미·이숙영씨 유족이 “산업재해를 인정해달라”며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을 내린 것이다.
삼성반도체와 삼성전기에서 일을 하다 백혈병과 혈액암에 걸린 사람은 120여명. 그 중 46명이 세상과 등졌다.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다니, 충격이었다.
몇몇 보도를 통해 억울한 죽음과 삼성의 비윤리적인 처사에 대해 접해왔지만, 그저 단편적인 정보일 뿐이었다. 깊은 정보를 얻으려 해도 쉽지 않았다. 주요 일간지에서는 관련 소식을 제대로 다루지 않았으며, 포털사이트에서는 연예기사에 밀려 ‘팔리지 않는 뉴스’로 처리될 뿐이었다. 한마디로 반도체 소녀들의 이야기는 ‘차갑게 식은 밥’일 뿐이었다.
그런 내가 삼성반도체 사건을 제대로 알게 된 것은 연극 <반도체 소녀>를 통해서였다. 서울 혜화동의 한 소극장. 객석에서 다리를 뻗으면 무대를 침범하는 아주 좁고도 작은 공연장에서 올해 봄 연극을 관람했다.
연극은 문화창작집단 ‘날’의 7번째 공연으로, 입소문을 타며 소소한 반향을 일으켰고 지난 6월 23일에는 재공연에 들어가기도 했다. 나는 이 연극을 총 세 번 보았다. 유명한 희곡가가 쓴 작품도 아니고, 유수의 연극제에서 상을 탄 작품도 아니었지만 이 세상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꼭 봐야할 작품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가슴에 핀 뜨거운 불씨를 함께 나누기 위해 지인들의 손을 잡아끌고 공연장으로 향했다.
연극은 대기업 ‘밤성 반도체’에서 일하다 백혈병에 걸려 호스피스 병동에서 죽음을 기다리는 한 소녀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큰 눈망울에 작은 체구의 소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밤성 반도체에 취직했다. 어려운 집안 형편 때문에 대학진학을 미룬 소녀는 첫 월급으로는 부모님께 내복을 선물하는 착한 딸이었다. 반도체 웨이퍼를 여러 화학약품에 담가 세척하는 일이 소녀의 업무였다. 잔업을 줄이기 위해 소녀는 화장실 갈 시간도 아끼며 열심히 일했다. 그리고 2년 뒤, 백혈병 판정을 받았다.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눈망울로 소녀는 말한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꿈도 많아 이 세상을 떠나기 싫다고. 스무 살 꽃띠 소녀를 병들게 한 것은 회사였다. 산재신청을 했지만 회사는 ‘증거’를 가져 오라며 윽박질렀다. 어떤 날은 보상금을 받기 위한 수작이라고 손가락질했다.
인생의 반도 채 누려보지 못하고 날개를 꺾어야만 했던 소녀의 삶. 영화나 드라마였으면 좋을 법한 이야기는 모두 ‘실화’다. 소녀가 다녔던 대기업 ‘밤성’은 기업 ‘삼성’의 연극판 이름이다. 그리고 소녀는 백혈병과 싸우다 세상을 뜬 故 황유미씨의 또 다른 얼굴이다.
<사진: 아츠뉴스>
연극을 처음 본 그날, 객석에는 故 황유미씨의 아버지가 자리해 있었다. 멀리 속초에서 올라왔다는 아버지는 딸 이야기를 하다 그만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누군가에게 싫은 소리 한 번 못하고 사셨을 법한 순박한 얼굴의 아버지는 딸의 이름을 말할 때마다 울컥 눈물을 쏟았다. 그리곤 작은 체구와 달리 솥뚜껑처럼 큰 두터운 손으로 쓱 눈물을 훔쳤다. 객석에서 하나 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도 그 틈에서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분노, 그보다 앞선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감히 소리 내어 울 수 없었다.
딸 유미의 장례식에 삼성은 직원을 보내 현금 500만원을 건넸다. 스무 살 딸의 목숨 값이었다. 아버지는 피해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얻기 위해 공영방송사인 KBS를 찾아갔다. 하지만 관계자는 “증거를 갖고 오라”며 삼성과 똑같은 답을 했다. 주저 않고 싶었지만 그는 계속해서 여럿 언론사를 찾았고 월간 <말>지와 <수원시민신문>을 통해 비로소 딸의 이야기를 세상에 알리게 됐다. 참으로 길고 지루한 싸움이었다.
그러는 사이 故 황유미씨처럼 억울한 죽음을 맞이하는 ‘반도체 소녀’들은 늘어만 갔다. 삼성은 피해자와 가족들의 비명소리에 사과는 커녕 귀를 막고 시치미를 뗐다. “우리는 잘 못 없어요. 증거를 가져오라니까요”라며 뻔뻔스레.
연극은 이야기 한다. 천박한 자본주의에 찌든 기업의 도덕적 결함이 얼마나 무서운지를. 그리고 덧붙인다. 우리들 역시 또 하나의 반도체 소녀들이라고. 이 연극이 값진 이유는 다양한 등장인물들을 통해 우리사회의 어둡고 쓰라린 단면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쌍용자동차, 유성기업, 재능교육 문제, 비정규직 문제, 88만원 세대 등 마치 ‘고통의 선물세트’처럼 다양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아픔을 피하지 말고 마주하자는 것. 이것이 연극이 주는 메시지다. 불편하고 아프지만 그럼에도 보고, 알고, 느껴야하는 까닭은 우리 모두 야만의 시대를 피할 순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알아야만 하고 서로의 손을 맞잡아야 한다.
연극을 보고 난 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의 소셜네크워크에 후기를 쓰고 삼성반도체 피해자들의 모임을 찾아 응원하는 일, 그리고 작은 신념이지만 삼성 제품을 구매하지 않는 것. 그리고 부끄러움으로 데인 마음속의 상처를 잊지 않고 망각하려 할 때마다 들어다 보는 것.
제주에 살고 있는 환경운동연합 회원 분들은 아마 이 연극을 보기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나는 회원분들에게 부탁을 드리고 싶다. 인터넷 신문 프레시안의 연재기사 혹은 한겨레다큐 ‘삼성백혈병의 진실’ 등을 통해 죽음을 맞이한 꽃띠 소녀들의 아픔을 공감해달라고 말이다. 마음속에 부끄러움이 피어났다면 부디 잊지 않고 살아 달라고. 그게 반도체 소녀들과 가족들을 위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야만의 시대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삶의 자세이기 때문이다.
*제주 환경운동연합 소식지 <오름과 바당> 8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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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m Docu 강정] "미안해요 강정"
“미안해요 강정”
-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큐 <Jam Docu 강정>을 보다
해마다 무언가에 홀린 듯 부산을 찾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여하기 위해서입니다. 누가 불러주지도 초대하지도 않는 부산행을 굳이 고집하는 이유는 다양한 영화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3세계 국가들의 영화들을 비롯해 한국의 저예산 독립영화들까지, 국내에 배급되지 않는 영화들을 맛보는 기쁨은 실로 짜릿합니다.
이번 16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제게 ‘짜릿함’ 보다는 ‘부끄러움’을 안겨 주었습니다. 다큐멘터리 <Jam Docu 강정> 덕분입니다. 해군기지 건설로 아픔을 겪고 있는 제주도 강정마을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로, 8인의 감독이 100일 간의 작업을 거쳐 완성한 작품입니다.
제주가 고향인 나는 비겁했습니다
저는 대정 몽생이입니다. 제주도 대정이 고향이지요. 어릴 적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쭉 대정에서 보냈습니다. 행정구역상으로도 서귀포시에 속하는 곳이니 ‘강정’이라는 지명은 제게 굉장히 익숙합니다.
대학시절, 해군기지 건설논란이 갓 불붙었을 때 저는 과 동기들과 한창 찬반 토론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주민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안하무인식으로 진행되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저는 ‘반대’의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로 주민들을 살살 꾀며 돈이면 다 된다는 천박한 자본주의를 들이미는 정부의 방식이 싫었거든요. 그러나 당시의 저는 ‘찬반토론’에 참여한 치기어린 대학생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대학졸업과 동시에 서울에 올라 와 먹고 살기 바빴던 저는 해군기지 논란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주민들이 반대하는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국가에서 사업을 접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고, 정말 그렇게 될 것이라 믿고 있었으니까요.
해군기지 건설 논란은 ‘강정마을’로 이동했고, 제 예상과 빗나가는 일이 연일 일어났습니다. 주민의 반도 되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 주먹구구식으로 유치신청을 결정지은 ‘주민동의’에서부터 강제 공사 진행에 이르기까지.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과연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대한민국이 맞나 하는 의문을 품게 했습니다.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갈등과 아픔, 진행 과정 등은 제주환경운동연합 소식지를 통해 접하셨을테니 굳이 또 한번 언급하진 않겠습니다.
대신 저는 강정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방관자였던 내 자신을 향한 자책어린 ‘자기고백’과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평화의 물결에 동참하고 힘을 합하겠다는 어쭙잖은 ‘약속’은 덤입니다.
다큐 <Jam Docu 강정>을 통해 만난 강정마을
제주 강정마을을 주제로 다큐멘터리가 제작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환호했습니다. 영상을 통해서라면 조금 더 유연하게 강정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한다는 정보를 접했을 때 기쁜 마음으로 예매를 했습니다. 부산에 있는 친구와 서울에 있는 친구를 불러 함께 영화를 봤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얼굴이 홧홧 거렸습니다. 매스컴을 통해 강정마을의 이야기를 접하며 저는 그게 다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 저의 무지몽매함에, 좀더 적극적으로 강정을 살리기 위해 애쓰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다큐를 보는 내내 마음이 좋지 못했습니다.
고향 제주의 아름다운 해안가가 파괴되고 있을 때, 나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제주와 아무런 연고가 없는 사람들도 강정을 살린다고 짐을 싸고 제주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저는 명절 때 제주를 찾았으면서도 강정에는 찾아가보지도 않았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비겁한 방관자에 불과했습니다.
<Jam Docu 강정>은 영화는 경순, 권효, 김태일, 양동규, 전승일, 정윤석, 최진성, 최하동하, 홍형숙 등 8명의 감독이 ‘강정’을 주제로 짤막한 영상을 만든 후 하나로 모은 작품입니다. 감독들이 머리를 맞대고 다큐멘터리의 컨셉과 방향을 논의하는 장면부터 시작해 나레이션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8개의 작품이 물 흐르듯 이어집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분노했고, 가슴 아팠으며, 화가 났습니다. 해군기지 문제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었고, 동참해 주었기에 강정마을을, 구럼비를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던 제가 참 바보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아름다운 강정마을의 해안가가 포크레인으로 파헤쳐지고 구럼비가 박살이 난 장면을 보았을 때야 비로소 현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울지마요, 구럼비! 힘내요, 강정”
자신의 방식과 개성대로 영상을 만들어 나갔지만 감독들이 말하는 것은 한결 같았습니다. “파괴된 강정마을 해안가가 더 이상 파괴되지 않게 하기 위해 모두 힘을 모아주세요”라는 것. 거기에서 더 나아가 “무관심하게 방관하는 너희들도 정부 못지않은 가해자다”라는 따끔한 메시지도 읽었습니다. 다큐멘터리는 제게 교과서와도 같았습니다. 미처 몰랐던 것, 알아야 할 것, 앞으로 해야할 일들을 친절히 알려주었거든요.
‘모슬포’라는 지명이 더 익숙한 대정의 해안가 마을에 살았던 저는 보말 잡고 수영 하며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바다가 주민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삶의 터전 그 이상을 뜻한다는 것을 저는 모르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강정 마을에게,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많이 미안합니다. 다큐 속에서 환히 웃으며 강정을 살려야 한다 힘주어 말하던 강동균 마을회장님은 구속되어 아직도 풀려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바로 이런 것이 현실이겠지요.
제주도가 고향인 제의 정체성을 새삼스레 깨닫게 해주고, 지금이라도 부끄러움을 안겨 준 8명의 감독님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제주를 찾아서 강정마을에 찾아가 보려 합니다. 다큐멘터리보다 더 리얼한 현실을 두 눈으로 보고 저의 작은 힘을 보태주고 싶습니다.
어쭙잖은 자기고백을 하다보니 정작 <Jam Docu 강정>의 이야기는 많이 하지 못했네요. 내용이 궁금하면 다큐멘터리가 상영할 때 놓치지 말고 꼭 보시기 바랍니다. 훌륭하니까요. 만약 기회를 놓쳐 다큐를 보실 수 없다면 강정마을에 직접 찾아가서 구럼비의 비명을 듣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울지마요, 구럼비! 힘내요, 강정”.
*본 글은, 제주환경운동연합 소식지 '오름과 바당' 11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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