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김정미의 창작놀이터

 

 

'매일 읽고 쓰는 것의 위대함'

김연수 작가의 에세이 <소설가의 일>을 읽다

 

 

 

아주 오랜만에 책을 읽고 느낌을 남겨본다. 사실, 책 없으면 못 살 정도로(어쩌면, 책 안 사면 못 견디는 것일지도, 하하.) 책을 매일 읽는 나지만 독후감 쓰는 건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왠지 작품 하나 더 쓰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기타 등등. 그래서 내 블로그에는 잡담만 넘쳐나고 영화평이나 독서평은 없다. 그렇다고 내가 책을 안 읽고, 영화를 안 본다고 생각하면 아니돼요!

 

김연수 작가의 신작 에세이 소식을 듣고 쾌재를 불렀다. 안 사고는 못 견디겠어서 바로 주문했다. 따끈따끈한 책이 도착했고, 지난 주 토요일 서울가는 무궁화 열차 안에서 책을 읽었다. 뭐랄까, 책을 읽는내내 행복한 기분이 마구 샘솟았다. 김연수 작가의 에세이에는 그런 힘이 있다. 그래서 나는 김연수 작가 에세이를 남에게 권할 정도로 정말 정말 좋아한다(그러나 소설은 거의 읽어보지 않았다. 죄송..합니다.)

 

*변명하자면, 나는 소설을 읽을 때 선호하는 작가의 작품을 구입해 읽는 편이다. 성석제, 이기호, 김애란, 백가흠, 최민석 작가의 작품이라면 묻고 따지지도 않고 바로 지르고 본다. 그런 성향이 있는데, 흠, 김연수 작가님의 소설도 한번 열심히 읽어봐야겠구나. 주절주절.

 

 

 

<소설가의 일>은 김연수 작가가 매일매일 문학동네 카페에 올렸던 것을 책으로 엮은 거라 한다. 정말 부지런한 작가다. 스스로에게 혹독할 정도로 매일 시간을 정해 글을 쓰고 매일 달리며 체력을 키우는 김연수 작가에게 사람들은 '한국의 무라카미하루키'라고 말하기도 한다.(외국의 누군가에 빗대 '한국의-'라고 칭하는 걸 좋아하지 않지만, 김연수 작가가 하루키로부터 영향을 받은 건 사실같아 보인다.)

 

약속이 있어 작업량을 채우지 못하면 그 다음날은 평소보다 몇배는 더 글쓰기에 몰입한다는 김연수 작가. 그는 에세이에서 '재능보다 중요한 건 책상에 앉아 글을 쓰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찌 이리 겸손하실까?' 싶다가도, 이런 다재다능한 작가가 '재능'보다 '성실함'을 강조하니 나같은 아마추어는 힘이 날 수밖에. 예전에 김애란 작가의 글을 읽고 '루저들을 응원하는 따뜻한 응원가' 같다는 생각을 했는데, 김연수 작가의 에세이는 '아마추어 작가들을 응원하는 비타민' 같달까? (뭐라는 겨)

 

 

 

 

 

내가 김연수 작가의 이번 작품을 얼마나 열과 성을 다해 읽었냐 하면, 그 결과가 바로 이렇게 노트에 남겨져 있다. 나는 마음에 와닿거나 좋은 문장을 만나면 다이어리에 적어둔다. 요즘엔 핸드폰 메모장이나 '에버노트' 기능을 이용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손으로 적을 때와 느낌이 많이 다르긴 하다.

 

이번 작품을 읽으며 그가 이전에 썼던 에세이와 약간 틀이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읽는내내 알랭드보통이 생각났다면 오버인가. 아니, 정말 그랬다! 보통의 작품을 보면 이야기만 있는 게 아니라 도형을 비롯한 작가가 고민했던 생각의 흔적들이 이미지로 들어 있다. 김연수 작가가 캐릭터와 플롯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리고 몇몇 장에서 그런 느낌을 발견했다. 새로워서 좋더라.

 

예전에 김연수 작가님의 강연을 직접 본 적이 있다. 성신여대역에 있는 한 시민회관에서 열린 강좌였는데 작가의 말은 하나 하나가 다 주옥같았다. 직접 겪고 체화한 이야기들이어서 그러리라. 정말 천상 작가에다, 부지런하고 겸손하기까지 한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의 내용은 미주알고주알 적지는 않겠다. 다만, 책을 읽는 내내 정말 들떴고 창작욕이 샘솟았다는 것만큼은 말하고 싶다. 어찌나 이렇게 구석구석 속속 위로해주는지, 나중에 공로패(아마추어 작가에게 힘을 준 공로에 대한)를 드리고 싶은 마음!

 

작가를 꿈꾸고 있거나, 아직 첫 발을 내딛은 작가들이라면 꼭 읽어봤음 좋겠다. 나는 엄연한 '소설가'는 아니지만 동화와 청소년소설(소설이긴 하구나)을 쓰고 있는 사람으로서, 많은 배움과 위안을 얻었다. 그리고 수 많은 작가들을 얻었다. 김연수 작가가 언급한 작품과 작가들, 그들의 책을 또 지르고 말았다(사실, 레이먼드카버의 '대성당'도 김연수 작가님이 번역해서인지 참 좋아한다. 이번에는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라는 여류작가를 알게 됐고, 단편 '검은집'이 실린 책을 찾다가 '리플리' 세트가 도서정가제 시행 전 특판을 하길래... 사고 말았긔.)

 

에세이집에 실린 모든 글들이 다 좋았지만, '마치는 글'은 정말 훌륭했다. 그 감동과 가슴 벅참을 어떻게 설명하면 좋을까. 꾸준히 줄기차게! 실패를 거듭하더라도 포기 않고 한 걸음씩 뚜벅뚜벅 나아가는, 그런 작가이고 싶다. 김연수 작가님 작품을 앞에 두고, 맹세합니다!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다면 상처도 없겠지만 성장도 없다. 하지만 뭔가 하게 되면 나는 어떤 식으로든 성장한다. 심지어 시도했으나 무엇을 제대로 못했을 때조차도 성장한다. 그러니 일단 써보라. 다리가 불탈 때까지 써보자. 그러고 나서 계속 쓸 것인지 말것인지 결정하자. 마찬가지로 어떤 일이 하고 싶다면 일단 해보자. 해보고 나면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 달라져 있을테니까. 결과가 아니라 그 변화에 집중하는 것, 여기에 핵심이 있다.>

 

<이 삶이 멋진 이야기가 되려면 우리는 무기력에 젖은 세상에 맞서 그렇지 않다고 말해야만 한다. 단순히 다른 삶을 꿈꾸는 욕망만으로 부족하다. 어떤 행동을 해야만 한다. 불안을 떠안고 타자를 견디고, 실패를 감수해야만 한다. 그러므로 지금 초고를 쓰기 위해 책상에 앉은 소설가에게 필요한 말은 더 많은 실패를 경험하자는 거다.>

 

 

 

 

Comment +0

 

진실을 향한 기록, <다이빙 벨>

'우리도 어쩌면, 언젠가는'

 

 

다큐멘터리/ 감독: 안해룡, 이상호

 

<다이빙 벨>을 봤다. 2014년 11월 12일, 오후 4시 10분 영화를 봤다.

 

외근을 나갔다가 일찍 끝나서 바로 동성아트홀로 갔다. 대구에 온 지 7개월. 위안이 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극장이다. 저예산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곳, 아마 대구에서는 거의(?) 유일한 곳이 아닐까. 지역에 이렇게 독립영화관이 하나라도 남아 있다는 건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다.

 

한 달 전에 이 곳에서 연상호 감독의<사이비>와 애니메이션 메밀꽃, 운수좋은 날, 그리고 봄봄>을 연달아 두 편 봤다. 이때도 평일이었는데, 사람이 아예 없진 않았다. 많은 편은 아니지만 상당히 고무적이었다고나 할까.

 

말이 길었다. <다이빙 벨>을 보는 동안 몹시 불편했다. 어이가 없어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영화를 보기 전 부채감이 나를 짓눌렀다.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를 이제는 잊자, 하였건만 사실 잊기 위해서는 넋을 떠나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도 잘 알지 않는가. 집안에 누군가 돌아가시면 시신을 잘 닦아 염을 하고, 장례를 치르고 기도를 하며 보내준다는 것을. 그게 원칙이다. 그래야만 산 자도, 망자도 잘 살 수 있는 것이다.

 

올해 4월, 나는 기적을 바랐었다. 여객선인 세월호에 이상이 생겨 기울기 시작했다고 했을 때, 회사에서 일을 하다 <전원 구조>라던 언론의 보도를 믿었다. 그리고 곧바로 배신. 실은 단 한명도 구조되지 않았다 했다. 이어 몇 명이 구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이상의 구조는 없었다. 시신만 건져 올릴 뿐. 찾지 못해 실종된 시신도 여럿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

 

뭔가 이상하고 찝찝했다. 그러나 그 기분이 왜 그런지 설명할 수 없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라곤 '언론' 밖에 없었으니까. 수십가지 언론사가 입을 맞춰 "정부 차원에서 구조 작업이 한창"이라고 말했다. 수색 과정에서 잠수사들이 여럿 목숨을 잃었고, 해류가 너무 세서 구조를 중단해야 함에도 열심히 바다에 뛰어들고 있다 했다. 그리고 그걸 믿었다. 국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거다. 믿는 수밖에 없지 않나.

 

 

 

 

밤낮으로 언론보도에 귀 기울였다. 일을 하면서도 인터넷 속보 창을 띄어놓고 십 분에 한 번씩 '새로고침' 했다. 기적을 바랐다. 희망이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왠일인지 구조작업은 더뎠다. 언론에서 그게 참 힘든 일이라고 하길래 '그렇구나' 했다. 그럼에도 이상했다. 아니 도대체 어째서 한 명도 구해내지 못하는 걸까? 배 안에는 왜 들어가지 못하는 걸까? 그게 그리 힘든 걸까? 그렇구나, 그런 거구나.

 

세월호 수색 작업이 더딘 틈에, 갖가지 '카더라' 통신이 흘러 나왔다. 홍가혜라는 여자가 언론에 인터뷰를 하면서 "자기는 민간잠수부인데, 정부에서 잠수부를 투입하지 않고 있다. 민간잠수부의 협조도 무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영상이 SNS를 타고 떠돌았다. 하지만 곧, 그 여자의 '정체'가 밝혀졌다. 허연증이 심한 '이상한' 여자라는 것. 나도 개인 SNS에 이 여자의 주장을 실었다가 삭제했다. 그 아래 댓글이 달렸기 때문이다. '이 여자 또라이래' '이 여자 정신 나갔대.'

 

그러다 또 동영상 하나를 보게 됐다. 아이를 잃은 엄마가 나와 울부짖는 영상이었다. 나라에서 수색을 대충 한다고, 여기 현장에서 제대로 이뤄지는 게 없다고, 언론이 거짓말을 한다고. 그 영상을 보고 정말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렇게 피 쏟는 절규를 쏟아내는 동영상을 가짜로 만들기는 쉽지 않으니까. 하지만 의심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누군가는 만들어낸 영상일 수도 있다고 아니면 가족을 매수했다고 하지 않겠나? 억측이 아니다. 그렇게 국민들은 진위를 모른 싸움에 휘말려 세월호가 침몰하는 걸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정말 답답한 노릇이었다.

 

그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다. 유민 아빠가 단식투쟁을 하고, 북한의 지령을 받은 행동이라는 괴담이 떠돌고, 유병언이 자살했다는 뉴스가 보도 되고, 그런 보도들 속에 희생자들에 대한 예의는 없었다. 모든 게 정치적으로 얽히고 섥힐 뿐. 진물나게 싫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돌리고 실망한 것은. 많이 피로했을 것이다. 국민들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희망, 단 한 줄기 희망이라도 보였다면 국민들은 이 세상이 아직 살만한 곳이라는 걸 깨닫고 힘을 냈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호는 우리에게 희망의 반대를 보여줬다. 이 세상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곳인지, 결국은 혼자 살아내야 하는 곳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깨닫게 한 사건이었다.

 

나 역시도 잊은 듯 했다. 생각나면 마음이 아프고, 괜히 손가락질 받는 것 같은 그런 부채감에 시달렸다. 당장 급한 일들을 하고 살아가면서 세월호 사건에는 귀를 닫았다. 그러던 중, <다이빙 벨>을 보게 됐고, 복잡다단한 감정을 느꼈다. 피해자들에게 미안한 마음, 이제라도 봐서 다행이라는 안도감, 그리고 언론과 정부에 대한 분노.. 등등.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다이빙 벨>은 철저히 누군가를 위해 편집된 영상이라고. 영상은 애초 촬영 때부터 편집될 운명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나 역시 영화를 보는 내내,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려 애썼다. 그리고 분명한 것 하나는 변치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정부가 세월호를 수색하는데 안일했고 게을렀고, 심지어 왠일인지 하지 않았고 '다이빙벨' 투입을 방해했다는 것. 그것만로도 정부는 국민을 속인 것이다. 그리고 팩트를 취재하지도 않고 소설쓰듯, 창작해 기사를 작성한 언론들. 과연 이들이 저널리스트인지 의문이다. 비난받아 마땅하다.

 

'다이빙 벨'이 최선이고, 세월호를 짜잔! 하고 들어올릴 슈퍼맨 망토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분명, 잠수사들의 피로를 줄이고 작업시간을 늘릴 수 있는 '좋은 도구' 임에는 틀림 없다고. 그리고 다큐멘터리는 기록한다. 세 명의 잠수사가 다이빙 벨과 함께 작업했을 때의 시간과 컨디션을. 투입해서 잠수사들의 능률을 올렸다면, 적어도 세월호 선체 안에 진입은 가능하지 않았겠는가.

 

이 다큐멘터리가 우리에게 또 하나 시사하는 바가 있다. 한 개인을 국가가 왕따시키면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는가를. 알파잠수사 대표 이종인 씨와 이상호 기자가 바로 그러하다. 다큐멘터리에는 아주 약간 기록되긴 했지만 나는 이 사람들이 생명의 위협, 같은 것을 여러번 느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작품을 보며 이기호 작가의 <차남들의 세계사>라는 책도 생각났고, 그 옛날 무고한 사람들을 잡아다 빨갱이라 감옥에 쳐넣었던 살아있는 일화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태백산맥>을 집필하는 동안 무수한 협박을 당했던 조정래 작가도 생각났다.

 

개인의 호의와 정의가 어떻게 둔갑 되는가. 거기에 있어 언론은 얼마나 힘이 세고, 그래서 얼마나 폭력적인가. 이러한 것들을 생각했다면 오버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나도, 너도, 우리도 언젠가는 아주 사소한 사건으로 정의를 향한 목소리만으로 '반정부주의자'가 될 수 있는 거다. 정말 무시무시한 세상이다.

 

언론은 국민들에게 알 권리를 대신 전해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 집단인데 정부의 들러리 역할을 한 지 오래고, 정부는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대의를 져버린다. 알쏭달쏭한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 국민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세월호 사건은 비단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타인의 고통이 아니다. 남의 일이 아니다. 남의 집 불난 구경하듯, 바라봤다가 큰 코 다치게 될 지 모른다. 형태는 다르지만 비슷한 폭력들이 무한반복되고 있는 세상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일단, 알아야 한다. 그리고 마음이 불편하다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잘못되었다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 <다이빙 벨>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이거라고 생각한다.

 

 

* 다이빙벨(diving bell) 이란? (백과사전 펌)


잠수부를 바닷속으로 이동시키고, 물속에서 오래 머물며 수중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장비. 종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잠수종'이라고도 한다. 개방식 또는 습식(wet bell)과 폐쇄식(closed bell)으로 나뉘는데, 개방식 또는 습식은 윗부분에만 반구형의 둥근 지붕이 있고 하부는 개방된 형태로, 잠수부의 하반신은 물에 잠긴다. 폐쇄식은 밀폐되어 외부와 차단된다. 어느 것이나 수면 위의 바지선에서 기중기에 매달아 일종의 수중 엘리베이터처럼 바닷속으로 내렸다 올렸다 하는 방식으로 운용되며, 바지선과 연결된 관을 통하여 공기압축기로 다이빙벨 내부에 산소를 공급한다. 이 장비를 사용하면 잠수부들이 직접 수면에서 수중의 목적 지점을 잠수하여 오가면서 소모될 체력과 산소를 비축할 수 있으며, 이곳을 일종의 베이스캠프로 활용하여 잠수부들이 휴식을 취하고 감압(減壓) 장비를 거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또한 수면 위의 바지선에서 잠수부에 부착된 CCTV를 통하여 수중 활동을 모니터링할 수 있고 잠수부와 통신할 수도 있어 해저 작업에 효율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Comment +0

 

<메인드 인 경상도>

 김수박/ 창비 출판

 

"왜 경상도인가?"에 대한 답

 

 

 

 

10월 30일 출간된 따끈따끈한 신작 만화 <메이드 인 경상도>를 읽었다. (얼마 전에 김중혁 작가의 '메이드 인 공장'을 읽었는데, 요즘 신간 제목으로 '메이드 인-'이 대세인가? 중얼중얼.)

 

이 작품은『아날로그맨』 『빨간 풍선』 『사람 냄새』 등의 페이소스 진한 작품들로 마니아층의 꾸준한 지지를 받아온 만화가 김수박의 신간으로, ‘지역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2013년 11월부터 2014년 8월까지 창비 문학블로그 ‘창문’에 화제를 모으며 연재된 것을 책으로 엮었다.

 

나에게 지역감정이란?

 

'지.역.감.정'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숱하게 시달려온, 들어온, 가져온 단어일 것이다.

제주도에서 자란 나는 섬을 벗어나기 전까지 '지역 감정'이라는 걸 잘 몰랐다. 지리 과목에 약해서 우리나라 지도를 머리에 그리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달까.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니 아예 그런 경험이 없었던 건 아니라는 게 떠올랐다. 대학교 시절, 광주에 있는 남자와 장거리연애를 했는데 그때 엄마(경남 밀양이 고향이다)가 이렇게 말했다. "전라도 남자는 믿을 수 없어"라고. 나는 이것이 엄마의 개인 연애사에 얽힌 감정인 줄 알았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아니었다.(엄마는 큰 사위가 순천 출신이라는 것도 처음엔 탐탁치 않게 여겼다.)

 

그러다 서울에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직접적으로 느끼게 된다. 회사에는 다양한 지역 사람들이 있기 마련인데, 그 사이에 늘 '지역감정'이라는 게 존재했다. 그래도 그때는 큰 갈등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생각해 보면 20대 초반, 내가 만난 사람들은 '열려 있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스물 일곱 살에 한 회사로 이직을 했다. '협회'라 불리우는 곳이었고, 나는 그곳에서 기자로 일하며 회원들이 읽는 신문을 만들었다. 준공무원 집단인 그 곳에서 3년 간 일하며 다양한 인간군상을 경험했다. 사람들이 얼마나 좁게, 그리고 아등바등 사는지 알 수 있었다. 이간질, 험담, 시기와 질투 등이 그곳에 늘 존재했다. 그 곳은 대한민국에서 엘리트라 자부하는, 그렇지만 자존감이 떨어지는 한 전문직 집단들의 이익을 도모하는 협회였다. 그곳에서 나는 철저한 이방인이었다. 소위 '지잡대' 출신이었으며, 그들처럼 전문직이지도 않았다. 그냥 글쓰는 일을 가장 잘했고, 운 좋게도 편집장의 눈에 띄었기에 기자로 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부서의 편집장은 서울대 출신이었다. 그래서 엘리트 의식이 정말 '쩔었다'. 내가 다니던 협회는 4년에 한번씩 회장이 바뀌었는데 회장이 어느 대학 출신이냐에 따라 줄도, 직원들의 운명도 달라졌다. 보통 수도권에 있는 학벌 좋다는 대학 출신끼리 다툼을 벌였는데 거기에서도 나는 늘 열외였다. 실제로 나보다 경력이 높았던 한 살 위 선배는 E대 출신이었는데, 서울대 출신인 상사에게 정말 미움을 많이 받았다. 출신 대학 때문에!

 

말이 빗나갔는데, 하여간 상사의 주된 레퍼토리 중 하나가 '지역'이었다. 나와 함께 일하던 친구들 중, 누구는 충청도라서 느리고 누구는 전라도라서 얍삽하고 뭐 그런 주의였다. 다행히 지역감정의 틀에서 나는 자유로웠다. 저기 멀리 떨어져 있는 섬, '제주' 출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는 스스로를 꽤나 공정하고 편견 없는 사람이라 여겼다. 그런데 아니었다. 단지, 내 고향의 특수성 때문이었다.(어디에서든 열외 될 수밖에 없는 논의에도 들지 않는 제주도! 평화의 섬이라 그런가? 헤헤) 나는 곧, 나의 생각들이 얼마나 위험하고 자만에 넘치는 것이었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얼마나 편협한 인간인지 스스로 말하고 다닌다.

 

나 역시 '지역 감정'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란 걸 깨달은 건, 대구에 살고 있는 남자친구를 만난 후부터다. 때는 바야흐로, 대선을 앞둔 시기. 박근혜만은 안 된다며 소리 높였던 나는, 당시 TV에서 떠들던 '경상도는 왜 그런가?'의 논리에 압도되어 있었다. 한반도 지도 양 옆으로 노란색과 빨간색의 향연. 대구를 비롯한 경상도는 빨간색 천지였다(과거 '빨간색'이 의미하던 것과 달리 지금은 새누리당의 색이 되었다).

 

"도대체 경상도는 왜 그래?"

김수박 만화가, 유년기의 경험 통해 경상도를 끌어안다

 

박근혜가 당선되던 날, 울분에 못 이겨 지금 남자친구와 대화를 하다 공격하고 말았다. 남자친구네 집에서 죄다 새누리당을 찍었다는 거였다. 나보다 한 살 어린 아직 20대인 남동생도 한나라당 젊은 당원이었다. '세상에, 대박!'(이때, 나의 반응.)

"도대체 경상도는 왜 그래?"

그때 남자친구와 처음으로 다퉜고(사실은 일방적으로 내가 공격한 거지만), 그 후에 내가 얼마나 편협한 사고를 갖고 있는지를 깨닫게 됐다. 남자친구는 대구를 옹호하지 않았다. 자기네 집안도 옹호하지 않았다. 다만, 나보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그런데 얼마나 얕은 인간인지, 나는 똑부러지게 답할 수 없었다. 책과 신문에서 주워들은대로 몇몇 정보를 진실인냥, 교양인냥, 내 생각인냥 말했고 그때마다 남친은 내 말문을 막히게 했다.(그래 네 팔뚝 굵다!) 그래도 한 가지 깨달은 건, 내가  하나의 잣대와 기준으로 무리짓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정말 싫어하고 경계했던, 당하면 기분 나빠했던 '무리 짓기'. 그 틀에서 나도 자유롭지 못했던 거다. 

 

박학다식하고, 자기 주장 뚜렷한 남자친구에게 반해서 나는 결국 대구에 내려오게 된다. 그리고 대구에 내려와서 알게 된다. 매스컴이 떠들어댔던 것처럼 대구(경상도)는 그렇게 꽉 막히고, 보수적이고, 답답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그렇지만 늘 궁금했다. 지역감정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라고.

그리고 마침내 김수박 만화가의 신작만화 <메이드 인 경상도>에서 그 답(?)을 찾았다.

 

김수박 작가는 자신이 매우 어렸을 적부터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의 시기 동안의 기억과 경험을 그리며 자신이 느낀 '지역감정'의 실체에 대해 이야기 한다. 작가의 본명은 김효갑. 작가는 대구에서 대학을 나와 서울에 올라가 직장생활을 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이 "경상도는 왜 그래?" "대구는 왜 그래?" 였다는 거다.(이 내용을 읽는 순간, 사실 굉장히 뜨끔했다. 나 역시 남자친구에게 그랬으니까. 이데올로기나 지역적인 편견을 내세워 상처를 주는 일을 굉장히 폭력적이라 생각했는데, 내가 바로 그랬던 거다.)

 

그런 질문들을 듣는 순간, 작가에게 고향땅은 순식간에 낯선 대상이 되었을 거다. 책에 나온 것처럼 경상도를 일컫는 '보수적이고 배타적이고 텃세가 세다. 가부장적이고 남성우월주의가 강하다'는 경상도의 특성은, 그 옛날 지역성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 옛 어른들은 으레 그러했으니까.(제주도도 별반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남성우월주의 보다는 여성성이 강한 곳이라는 점이랄까?)

 

그런데도 작가는 그 물음들과 싸움을 벌인다. 그 끝에 이 이야기가 탄생한 게 아닐까 싶다.

작가는 대구 산동네에서 화장지 가게를 경영하며 험남한 시대를 헤쳐나가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다. 80년대, 시골 마을 곳곳에 남아 있던 향수와 새마을의 바람을 만화를 통해 만날 수 있다. 그리움을 느낄 수 있는 소소하고 재밌는 풍경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개인사로만 치부할 수 없는 아픔들이 곳곳에 드러난다.

 

일례로,1980년 5월에 일어난 5.18 광주 사태를 뒤늦게 접한 작가는 훗날이 되어서야 아버지에게 물어본다. 왜 광주를 모른척 했냐고 말이다. 그러자 아버지가 답한다. "묵고사느라 그랬다"고. 주인공은 미안한 마음을 직시해야하고, 경상도 사람이 먼저 입을 떼어야 한다고 말한다. 작가의 말은 오랫동안 가슴을 묵직하게 한다. 그리고 한 줄기의 부끄러움을 남긴다.

 

아직까지도 지역감정은 정치권의 오래된 단골이다. 정치권 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 뿌리내려 있다. 지역감정의 담론은 실체를 압도해버리기도 한다. 지역감정이 무엇인지 실체를 설명하기도 전에 언론과 정치인들은 지역을 정치적인 도구로 이용되어 버렸고, 그 아픔과 갈등을 감당해 내는 것은 오롯 지역민들의 몫이 되어버린 거다.

 

대구에 내려온지 7개월, 뭐가 그리 무서웠을까?

<메이드 인 경상도>를 통해 안개가 걷힌 느낌

 

아직도 그 실체는 모르겠지만, 나는 <메이드 인 경상도>를 통해 안개가 걷힌 내막을 보는 기분이었다. 내가 대구에 내려올 적에 두려운 감정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그리고 그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편견이었는지를 깨달았을 때와 비슷한 감정이랄까.

 

내가 대구에 와서 산다고 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말렸다. 경상도 사람도 말렸고, 전라도 사람도 말렸다. 말리며 하는 이유가 대구 사람들은 갑갑하고 못됐고, 보수적이고 무뚝뚝하며 텃새가 심하댔다. 그래서 정말 겁을 많이 먹었다.

 

대구에 오기 전, 대구에 있는 작은 광고회사 면접을 봤다. 대표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일은 힘들지 않을 거예요. 다만, 대구 사람들 보통이 아니예요. 상처 받을 일이 많을 겁니다. 각오하셔야 할 거예요."라고. 그런데 웬걸, 내가 상처 받은 건 '대구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썩을 회사 시스템 때문이었다. 이제야 알게 됐다. 지역감정은 누군가에게 도구로 이용된다는 것을.

 

대구에 산 지 7개월. 아직 대구에 대해 잘 모르지만 느낀 게 하나 있다. 대구 사람들도 똑같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 그들도 누군가는 친절하고, 누군가는 까칠하고, 누군가는 보수적이며, 누군가는 진보적이라는 것. 인간 개개인 저마다 다르다는 것.

 

김수박은 이런 말을 했다. "지역의 특성이 문제가 아니라 서로를 어떻겠거니 짐작하고 먼저 규정하는 것이 문제였다"고. 백분 공감한다.

 

나이와 직업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 만화책을 읽어봤으면 좋겠다. 만화답게 쑥쑥 읽을 수 있는게 장점이다. 그러나 주제와 내용들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다.(이러한 내용으로 딘행본 책으로 읽었다면 완전 두껍고 머리 꽤나 아팠을다) 자신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들려줄 수 있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달란트를 가진 이들 같다. 무겁지 않게, 그러나 가볍지도 않게, 하지만 재밌게. 이 모든 요소가 다 들어있는 만화란 생각이다. 김수박 작가님, 정말 감사합니다. (구미에 사신다는데 언젠가 만날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 <끝>

 

 

* 책은 <창비 책읽는당 5기>에 선정돼 선물 받았습니다.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몇 권 사서 친구들 선물해주려고요.

 

 

 

 

함박스테이크집에서 찰칵! 인증샷

 

 

"우리는 기억하는대로 기억한다"는 작가의 말이 인상 깊었다

 

 

'지잡대 자부심'을 나도 갖고 있다. 이 대목에서 그만 웃고 말았다. 나랑 너무 비슷해서.

 

'진실을 찾을수록 진실에서 멀어질 수도 있다'니. 정말 심오하다. 그래서 찰칵!

 

 

 

 

 

 

 

 

 

 

 

 

 

Comment +2

  • 좋은 만화인 것 같네요. 만화가 마냥 흥미만을 좆는 것은 아닌듯... 좀 전에 서점에서 보니 경제학에 대한 만화도 있더군요.

    • 우와! 화영님, 정말 정말 정말 반가워요. 블로그 하면서 왕래가 없어 많이 외로웠는데, 이렇게 댓글 남겨주시다니! ^^ 적극 추천 드리는 만화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