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김정미의 창작놀이터


나는 경주를 사랑한다.

떠돌이 기질이 있던 나는,
20대에 이곳저곳 열심히 여행하며
머물고 싶은 도시를 가슴에 품어 뒀다.

그 중 한곳이 경주다.
강릉과 늘 순위를 엎치락뒤치락하며
강릉에 약간 밀렸지만
늘 날 설레게하는 도시.
(지진 나기 전이었으니.)

그런데 정작 사는 곳은 경주가 아닌
한글자 다른 경산이다.
(인생 참 아이러니)

일요일 저녁, 강변 산책도 마치고 차도 한잔 마시고 집에 왔는데 신랑 왈.

"여행 가자!"
이렇게 즉흥적일 데가!

계획없이 움직이는 거 안 좋아하지만
요 며칠 기운도 없고 기분도 꿀꿀하고
둘다 힘이 필요했다.

그래서 투덜투덜 짐을 쌌다.
(끝내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경주로 가는 동안에도
영주를 갈까, 전주를 갈까 고민.
그러나 밤인 걸 감안해서
심적 부담이 덜한 가까운 경주로 결정!

숙소도 구하지 않고 무작정 출발!
우리 참, 둘다 무모하구나. 싶기도 했지만
그래서 더욱 재밌는 여행이 될것 같았다.

콘도 평생회원권이 있는 우리,
전화해보니 만실이란다.
결국 어플 다운 받아 여기저기 알아봤지만 중심가 주변은 죄다 만실.

낼 모레 '한글날'이라 징검다리 휴가내어
놀러온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다.

그러다 한 모텔, vip룸 하나가 나왔는데
마침 검색했을 때 봤던 숙소라 냉큼 예약!
(우주처럼 어린 아기랑 이 곳에서 하루 묵었왔는데 괜찮았단 포스팅을 봤더랬다.)

특이한 게,
하늘을 볼 수 있게 침대 위에
통 유리가 나있었다.

다음 날 아침,
역시나 늦게 눈 뜬 나는
신랑에게 왜 불을 켰냐고 물었고,
알고보니 하늘 창을 통해
해가 들어오는 거였다. 맙소사!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공간.
풀욕조!

우리 가족 모두 함께 온천을 즐겼다.
우주는 낯선지 입을 삐죽삐죽,
겁먹은 눈동자로 울었다.

다음날 아침 일찍,
숙소를 나섰다.

신랑 말이 경주는 아침 산책하기 좋단다.

정말 그랬다.
기운이 남달랐다.
상쾌한 공기, 따뜻한 해, 탁 트인 풍광.
아아, 그 자체로 힐링.

박혁거세가 태어났다는 나정으로 가는 길.
유모차에 탄 우주도 볕을 쬈다.

감나무.  가을이다.

나정 안내판.
신랑의 솜씨가 들어갔다.
(신랑은 문화재 연구원이다.)

저 나무들을 보라! 아아, 그냥 힐링.

예쁜 코스모스도 피고요,
우주는 손에 꽃을 꽈악 쥐고 놓지 않는다.

이어서 포석정에 갔다.
사적 1호. 입장권 천 원.

신라시대, 왕들이 이곳에서 연회를 즐겼다는데 제사를 지냈다는 설도 내려온다.

그 다음엔 황리단길로 갔다.

우주가 100일 되었을 때,
경주에 놀러왔었다.
그때 황리단길에 갔는데 죄다 '노키즈존'.

그래서 가족사진만 찍고
대릉원 산책한 후,
바로 집으로 왔더랬다.

그런데 그 사이 엄청 큰 빵집이 생겼고,
예스 키즈존(이렇게 쓰고도 웃기네)이어서 편하게 빵도 먹고, 차도 마시고요.


그러곤 유모차를 끌고
첨성대까지 걷기로 했다.

우주는 항상 한쪽 다리를 이렇게 밖으로 꺼낸다. 누구 닮았니? 히히.

그림책 책방 <소소밀밀>
작은 공간이 참 아기자기해서 예뻤다.
실내 촬영 금지.

그림책 <야생동물구조일기>를 샀다.
드로잉 노트와 엽서도.

좋다.

봉긋한 능들.
아, 아름답다.
경주에서 살고 싶다.

예쁘다.
경주가 좋다.

우물.
안에서 검은 머리가 쑤욱!
무서운 상상도 해보고.

무덤을 지키듯 뻗은 나무.

코스모스 밭을 지나,
드디어 첨성대 도착.

별을 관측했다는 첨성대.
새삼스레 작다.
그 사이, 내가 자란걸까.
아니 아니,
쓸데 없이 그동안 높은 것만 보고 살았구나.

경주에 다녀온 후, 우리 가족,
큰 활력을 얻었다.

9개월 아가 우주도
좋았던 모양이다.

콧물감기도 떨어지고
얼굴도 건강하게 그을린듯 하다.

차만 타면(유모차 포함)
잠이 드는 순딩이 딸,
환경이 바뀌어도 잘 자는 예쁜 딸,
이런 이쁜 딸을 두고
뭐가 힘들다 투덜댔는지...

우주야, 엄마가 엄살 피우지 않고
더욱 즐겁게 너랑 놀아줄게.

다시 안올,
우리의 '지금'을
즐겁게, 후회없이 보내보자.

우리 가족, 사랑한다.


부랴부랴, 투썸플레이스 가서 손바닥만한 케이크로 조촐한 기념을.

이런 게 뭐라고, 싶지만 내게는 중요한 뭐인 모양이다.

그저 숫자 따위인데도 휙 넘겨버리면 아쉽다. 난 그런 사람이었다.

올해는 한살배기 우주 본다고, 거기에다 가족 셋 다 감기를 앓고 있어서 컨디션 난조다. 그래도 매년 해왔듯, 케이크 하나 사다놓고 종이에 크레파스로 대충 '축! 결혼 3주년' 이렇게 써서 가족 사진 찍고 싶었는데 이것 조차 못하니 서운했다. 이게 뭣이라고(근데 내겐 뭣이었다. 대인배 되기 틀렸네).

이것도 추억이겠지.
그래서 자정이 지나기 전에 남겨본다.

하서방이 어젯밤 정성껏(?) 만들어놓은 밀크티 🍵 꼭 챙겨먹으라고 신신당부하고 출근하셨다. 제법이다. 요리본능 있는 남자였군. 그런데 왜 생강맛이 나죠?

어제는 반신욕하는데 갓 만든 밀크티를 욕실까지 가져다 주었다. 오리 튜브 컵홀더와 유리컵. 그러고보니 두개 다 알라딘 굿즈다.

뜨끈뜨끈한 물속에서 밀크티 한잔 마시는 순간!  "아, 여기가 천국이자 지상낙원이구나"하는 깨달음.


신랑은 매일 저녁마다 욕조에 물을 받아준다. 매일 아침 출근 전에 우주랑 놀아준다.(나는 새벽에 눈을 못떠 그렇다.)


내 성질머리도 받아준다. 작가의 예민함도 존중해준다. 내 동화를 가장 먼저 읽어준다. 내 자존감을 항상 세워준다. 내가 봐도 혼이 나간듯한 내 몰골을 세상에서 가장 예쁘다 해준다.

이렇게 쓰다보니 감사한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내가 태어나 가장 잘한 건 신랑을 만난 것. 신의 존재를 믿게 된 것도.

얼마 전, 꿈속에서 교통사고가 났는데 차가 전복되는 짧은 순간, 신께 기도했다.

"주님, 우리 남편은 꼭 살려주세요. 저보다 귀한 사람입니다. 주님, 제발..."
깨어나니 다행이도 꿈이었다. 이토록 슬프고도 생생한 꿈이라니.

내 동반자이자 스승, 영원한 짝꿍 남편. 사라지지 말고 오래오래 함께하자. 구박하지 않을게.(흠흠)

어쩌다보니 사랑고백.
곧, 결혼기념일이니까 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