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김정미의 창작놀이터

 

 

대학교를 졸업하면서 가슴에 품은 꿈은 네 가지였다.

동화작가, 기자, 영화홍보마케터,  출판 에디터.

 

어릴 적 동화책을 많이 읽은 것도 아닌데 나는 왜 하필 동화작가를 하고 싶었을까.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당시 사귀었던 남자친구가 나의 글을 보고 동화작가가 잘 어울릴 것 같다고 말해서 그런 꿈을 품은 것도 같다.(그도 글을 잘 쓰는 사람이었다. 헤어진지 오래 됐지만, 내가 동화작가가 된다면 누구보다 기뻐해줄 사람이다. 그리 믿는다.) 그리고 과거로 올라가자면, 어릴 적 나는 글 쓰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다. 밝고 명랑했지만 자주 외로운 아이였는데, 그 시절의 나를 생각하면 따뜻하게 안아주고 싶다. 그래서 나랑 비슷한 외로운 아이들을 위로해주고 싶다고 생각했고, 동화작가라면 가능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기자는 고등학교 때부터 품어왔던 꿈이었다. 정확히는 '영화잡지사 기자'가 되고 싶었다. 매학년 진로조사를 할 때마다 그냥 '기자'가 아닌 '영화잡지사 기자'라고 좁은 칸에 눌러쓰곤 했다. 그 시절 <스크린>이라는 월간영화잡지의 구입해 읽곤 했는데, 막연히 그 잡지사에서 일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시네21은 제주도 중에서도 아주 시골인 우리 마을 서점까지는 들어오지 않았다.)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영화' 보다는 '진보 언론' 쪽으로 마음이 쏠렸다. 의식화의 과정을 거치면서 관심이 넓어졌다. 그리고 졸업 무렵, 모 매체의 대학생 인턴기자로 짧게 활동하면서 스스로 기자가 될 깜냥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기자로 살기에 나는 냉철하지 못했고, 우유부단했으니까. 그리고 모질지 못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 다음에 시작한 일이 '영화홍보마케터'였다. 영화를 굉장히 좋아하는 나에게 무척 재밌고 즐거운 일이었다. 그러나 일할수록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화려한 세계라는 것을 깨달았다.  영화판은 굉장히 상업적이고도 자본적인 논리로 돌아고 있었다. 자본을 움켜쥐고 있는 제작사, 그 아래로 수많은 홍보사가 줄을 서고 있었다. 홍보마케터들은 취향에 맞는 영화를 홍보하는 것이 아닌, 주어진 영화를 홍보해야만 했다. 먹고 살기 위해서 그래야했다. 겉으로 보기엔 화려했지만 그 안은 궁핍했다. 만약 내가 허영심이 많은 사람이었다면, 오래오래 일했을 것이다. 허영심을 채워주기엔 충분한 세계였으니까. 그러나 그 즈음, 집안에 큰 일이 생겨 제주도로 내려가며 일을 관뒀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

 

언제부턴가는 책이 좋아 출판 에디터를 하고 싶었다. 출판인을 양성하는 교육프로그램에 지원했다가 필기시험에서 떨어졌다. 누군가는 재도전을 했지만, 나는 그러지 않았다. 어쩌면 책을 좋아하는 것과 출판사에서 일하는 것은 별개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내가 출판사에서 일을 했다면 난 작가들이 몹시 부러워 미쳤을 것이다. '나는 왜 작가가 되지 못하는가'라는 자괴감에 괴로웠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차라리 발을 담그지 않고 오래 오래 책을 좋아하는 독자가 되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사랑하고 향유하고, 가까이 할 수 있는 방법은 여러가지이니까. 나는 '고급 독자'의 길을 택하기로 한 거다.

 

그리고 지금, 내게 남은 하나의 꿈이 바로 <동화작가>다. 꿈을 이루기 위해 서른을 일 년 앞둔 올해 초부터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사실 동화공부를 시작한 곳을, 대학 졸업하면서 찾아갔던 적이 있다. 선생님을 만나 등록절차를 알아보기도 했다. 만약 그때 등록해서 수업을 받았더라면 나는 지금 동화작가가 되어 있었을까? 누군가는 우스갯소리로 "이미 되어 있었을텐데"라고 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치기 어린 그 시절, 어쩌면 동화를 쓰다 쉽게 지쳐버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지금보다 부족한 경험들을 움켜쥐고 어찌할지 몰라 전전긍긍했을지도 모른다. 가보지 않은 길이므로 후회도 없고 가정법도 어울리지 않는다.

 

동화 공부를 한 지 1년이 채 되지 않았다. 단편이라고 써본 것도 열 편이 되지 않는다. 걸음마를 갓 뗀 수준이지만, 분명한 건 동화를 쓸 때면 행복하다는 것이다. 신나고 재밌다. 두둑두둑두둑 키보드를 두드리며 내 안의 이야기들을 쏟아내는 게 즐겁다. 완성품은 보잘 것 없을지라도(...) 어쩌면 나는 내가 위로받기 위해 동화를 쓰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내 안의 모든 걸 게워낸 후에, 그때야 비로소 아이들을 위로할 수 있는 '진정한 동화'가 나올 거라고 그리 믿는다. 그렇게 믿지 않으면 나는 쉽게 지칠 것 같다. 지금 나는 심심해서 동화를 쓰고 있는 게 아니니까. 그렇기에 나아지고 싶은 거다.

 

서른을 앞두고, 내 인생을 곰곰 반추해본다. 결과는 '흡족'이다. 평탄하거나 유복하거나 화려한 삶은 아니었지만, 온전히 내 힘으로 살아나가고 버텨왔다. 그리고 나 인생을 제법 즐겁게 살 줄 아는 사람인 것 같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이 후회스럽지 않고, 앞으로 걸어갈 길이 두렵지 않다. 행복하다. 그럼 된 거다.

 

 

 

 

 

 

 

지난 화요일(11월 20일), 예스24에서 주최한 <문화 축제>에 다녀왔다. 이날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게스트가 출연했는데, 나는 유독 뮤지션 양방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깊이 매료됐기 때문이다.

양방언은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다. 제주도 출신 아버지와 신의주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랐다. 어린시절부터 이방인으로서의 외로움을 겪었던 그는 뮤지션이 되어 한국에 왔고, 1999년에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다섯 살때부터 피아노를 배우며 음악에 푹 빠졌지만 아버지의 권유에 의사가 됐다. 그러나 결국은 뮤지션의 길을 택해, 달란트를 맘껏 뽐내고 있다.

 

양방언은 2002아시안게임 공식 주제곡 '프런티어', 다큐멘터리 '차마고도'의 배경음악, 영화 '천년학' OST 등을 작곡하는 등 다방면에서 재능을 뽐내왔다.


그에 대해 자세히는 몰랐지만, 하도 유명한 분이라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얼굴을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이날, 양방언은 대담에 앞서 피아노 한 곡을 연주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그 시간 동안, 나는 황홀경에 빠졌다. 그의 옆 얼굴이 브라운관에 가득 담겼는데, 그 모습에 그만 매료되고 말았던 것이다.

양방언은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피아노와 함께 놀고 있었다. 그 공간에 홀로 있는 듯, 여유롭게 피아노를 연주했다. 건반을 두드릴 때마다 마치 춤사위를 하듯 사뿐사뿐 팔과 고개를 움직였다. 나는 넋을 잃고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리고 그의 옆 얼굴이 베토벤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올해 쉰 두살이다. 중년의 남자를 보면서 멋있다는 생각을 이토록 했던 적이 있었나! 그가 연주하는 것을 넋을 잃고 바라보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늙어가는 남자의 옆 모습은 참으로 멋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 나는 한 예술가로부터 강한 영감을 받았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그의 모습은 평화로웠으며 아름다웠다. 반주에 맞춰 고개를 까닥일 때마다 에너지가 사방으로 퍼지는 것 같았다. 그만이 내뿜는 기운. 어떤 색으로 표현해야 좋을지 모를 그 느낌. 그의 연주를 들으며 짧은 순간 일종의 교감을 했다.

 

피아노와 놀고 있는 그의 옆 얼굴, 그 이미지는 음악보다 더욱 강렬했다. 앞으로도 한동안, 아니 어쩌면 평생 '양방언'이라는 뮤지션을 떠올릴 때마다 그 옆 얼굴이 떠오를 것이다.

그의 콘서트에 꼭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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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숨 쉬러 나가다>

 

각색: 극단 신작로

연출: 이영석

출연: 김승언, 이종무

조명: 정태민

 

 

 

연극 <숨 쉬러 나가다>를 보았다.

 

조지 오웰의 동명소설이 원작인 작품이다. 조지 오웰의 작품으로는 <1984> <동물농장>이 유명하다. 국내에 널리 알려지지 않았지만 소설 <숨 쉬러 나가다(Coming Up for Air)>도 그가 쓴 대표작이다. 한국에는 2011년에 처음으로 번역 출판됐다.

 

책은 아직 읽기 전이지만, 워낙 호평을 받는 작품이라 욕심이 났다. 그래서 공연 소식을 듣자마자 꼭 보겠다고 다짐했고, 오늘 관람했다.

 

이 작품은 2인극으로 진행된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무대에서 두 명의 배우(김승언, 이종무)가 주인공 조지 볼링을 연기하며 하나의 캐릭터를 구성해 간다. 처음 연극을 보기 전에는 '2인극'이라는 것이 살짝 마음에 걸리기도 했다. 소품이 세팅된 무대에서 배우들이 연기하는 것만 보아왔기에 어떻게 이야기가 전개될 수 있을지 감이 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의심도 잠시, 이 작품이 2011년 <제 11회 2인극 페스티벌>에서 작품상을 수상했고, 이미 공연되어 호평을 받은 작품이라는 사실에 믿음을 가졌다. 그리고 역시나 후회 없이 연극에 빠져들었다.

 

 

한 시간 남짓한 시간 동안 두 명의 배우는 무대 위를 종횡무진하며 이야기를 펼쳐간다. 주인공의 행동과 감정선에 충분히 몰입이 가능하고, 더 나아가 풍자와 위트로 웃음까지 팡팡 터지게 한다.

 

연극의 주인공은 45세 보험영엽사원인 조지 볼링이다. 그는 15년 동안 좋은 남편과 아빠 노릇을 해왔다. 그런 그에게 아내 모르게 17파운드가 생긴다. 이 돈을 갖고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며 조지 볼링은 내내 행복해 한다.

 

주인공은 고민 끝에 17파운드를 고향에 내려 가 낚시를 하는데 쓰기로 한다. 돈만 밝히는 아내, 징징대는 아이들이 지겨워질 때마다 조지 볼링은 자신이 만들어낸 호수를 떠올리곤 했다. 어린 시절 아빠와 함께 낚시를 갔던 기억, 울창한 숲과 바닥에 깔린 폭신폭신한 낙엽들, 사랑스런 고향. 조지 볼링은 그렇게  '일탈'을 감행한다.

 

고향으로 간 조지는 실망하고 만다. 고향은 어린시절의 모습과 매우 다르다. 공장들과 건물들이 세워져 있고, 낚시하러 갔던 숲에는 정신병원이 서 있던 것. 더군다나 넓고 깊었더 호수는 쓰레기 매립장이 되어 있다.

 

결국 조지 볼링은 집으로 돌아오고 만다. 변하지 않은 것은 지긋지긋한 일상 뿐. 45세의 가장 조지 볼링은 삶의 무게를 내려 놓지 못하고 다시 살아갈 궁리를 한다.  

 

극중에서 주인공은 자기가 살고 있는 시대상을 진심으로 걱정한다. 작품 속 시대는 2차 세계대전을 코앞에 두고 있다. 폭격기가 하늘을 날아다니며 소리를 내는 현실 속에서 전쟁의 불합리함을 알고 있는 주인공은 크게 외친다. 망할 전쟁, 망할 파시즘!

 

그러나 달라질 것은 없다. 전쟁이란 한 중년 남자의 힘으로 어찔할 수 있는 게 아니니까. 주인공의 대사 중 "도대체 왜 나같은 인간이 이런 고민을 해야 하지?"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주인공은 현실의 커다란 문제에 관심을 갖고 싸워보려 하지만 주변에 놓인 삶의 무게에 짓눌리고 만다.

 

이 작품은 1930년대가 배경이지만 21세기인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무섭고도 섬뜩한 현실! 이것이 바로 이 연극의 묘미다. 소설책도 어서 읽어야겠다!

 

 

* Tip

 

 ->> 한겨레출판에서 펴낸 책 <숨 쉬러 나가다>.

연극을 보러 가면 13000원짜리 책을 7000원에 살 수 있다.

나는 사지 않았는데 조금 후회가 된다. 엉엉.

 

->> 연극 티켓 가격은 2만5천원이다.

조금 부담이 된다면 <메세나 티켓>(www.mecenatticket.com)이라는 사이트를 이용하면 할인된 가격에 볼 수 있다.

 

 

 

공연 정보

 

★ 상영 일자

--> 2012년 11월 7일 ~ 11월 25일

 

★ 상영 요일 및 시간

--> 평일 오후8시/토 오후4시,7시/일 오후4시/월 쉼

 

★ 상영 장소

-->  대학로예술극장3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