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과는 매우 다른 영화 <은교>
소설과는 매우 다른 영화 <은교>
개봉 전부터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던 영화 <은교>를 드디어 보았습니다. 배우 박해일의 열혈 팬임에도 불구하고, 크게 관심 갖지는 않았습니다. 박범신 작가의 소설을 먼저 읽고 나서 봐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영화 안 보신 분들, 무시무시한 스포일러는 없습니다. 안심하셔요.)
소설을 읽고 나서 영화를 보다
원작이 되는 책을 먼저 읽은 후 영화를 보면 실망이 크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텍스트의 감동을 영상이 따라가기란 쉽지 않으니까요. 공지영의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아파트>를 비롯한 강풀 시리즈 등등이 대표적입니다.
반대로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습니다. 공지영의 <도가니>는 영화로도 아주 잘 봤고, 김려령의 <완득이> 역시 신나게 봤으니까요. 이 영화 <은교>를 앞선 두 종류의 영화에 빗대자면, 개인적인 견해로는 ‘전자’입니다. 실망이 좀 더 컸거든요.
박범신 작가의 책을 읽게 된 결정적 계기는 동영상 때문이었습니다. 영화 예고편을 봐도 감흥이 없었는데, 박해일이 원작 소설을 읽어주는 동영상을 보고 그만 문장에 ‘뿅’ 갔습니다. 굵고 차분하고 또렷한 배우의 음성이 문장을 살아 숨 쉬게 했습니다. 소설을 귀로 듣는 다는 것, 상당히 매력적인 일이더라고요.
주말 동안 뚝딱 완독했습니다. 상당히 아름답더군요. 박범신 작가의 책은 처음 읽는 거였어요. 그동안 그의 책을 읽지 않은 게 안타깝게 느껴질 정도였지요. 문장에 푹 빠진 상태에서 한껏 기대해 영화를 보았습니다. 그래서일까요, 영화는 기대 이하였습니다. (소설에 대한 평은 따로 올리겠습니다.)
소설에서 모티브만 따왔을 뿐
영화 <은교>는 소설과 매우 다른 영화.
감히 영화를 평론할 깜냥이 제겐 없습니다. 오죽했으면 ‘영화 평론 과정’ 수업을 돈 내고 수강하다가 중도하차 했겠어요. 영화를 평론하려면 굉장히 똑똑하고 철학적이며, 인문학적 소양이 풍부해야겠더라고요. 제겐 어림없는 일이죠. 그러니 이 점 감안하고 읽어주세요. 이 글은 평론이라기 보단 ‘사적인 느낌’입니다.
영화는 소설의 줄거리와 매우 다릅니다. 소설 <은교>는 일종의 액자식 구성으로 이뤄졌습니다. 시인 이적요가 죽고 나서 일 년 후, 변호사는 “내가 죽은 후 일 년 뒤 공개하라”는 유언에 따라 죽은 시인의 노트를 읽어 내려갑니다. 그 안에 은교와 제자 서지우와의 관계, 시인이 느꼈던 감정의 동요, 놀라울만한 사실들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소설은 변호사의 시점으로 진행됩니다. 그러다 이적요의 노트의 내용을 공개하며 이적요의 시점으로 진행됩니다. 소설은 자유자재로 현재와 과거를 넘나들며 전개됩니다. 스릴러 책이 아닌데도 긴장감이 생기고 뒷이야기가 매우 궁금해지는 까닭은 그러한 구성 때문일 것 같습니다.
그러나 영화는 소설의 전개방식과 다릅니다. 하긴 상상해보건대, 그러한 설정을 따랐다면 굉장히 산만하고 감정 이입이 쉽지 않았을 거예요. ‘변호사가 등장해서 낡은 노트를 꺼낸다.→노트를 읽는다→이적요가 등장한다→이야기가 전개된다→변호사가 다시 등장하며 현재로 넘어간다’. 얼마나 산만하겠습니까.
그래서인지 영화는 ‘이적요의 노트 속 이야기’를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여고생 은교를 어떻게 알게 됐고, 각별히 아꼈던 제자 서지우와는 어떻게 갈등을 겪게 되는지 시간 순서대로 진행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일흔 살 노인과 여고생의 사랑’ 정도로 정의 내리려는 것 같습니다. 혹은 ‘여고생을 둘러싼 일흔살 노인과 제자와의 삼각관계’로 말예요. 충분히 자극적이고 대중적이고 재밌기까진 하지만 이렇게만 보기에는 뭔가가 아쉽습니다.
이적요에게 은교는 어떤 존재였을까?
이적요에게 은교는 어떤 존재였을까요? 사랑하는 여인? 아니면 소설에 나와 있듯 나의 처녀? 글쎄요, 무엇으로도 정의내리기 쉽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복잡다단한 감정의 갈래들이 줄기를 뻗어 뒤엉켜 있기 때문이지요.
제가 느낀 바로는 이렇습니다. 이적요는 은교를 성모마리아와 같은 ‘동정녀’로 여겼던 것 같습니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순결무구한 존재로요. 동정녀 성모마리아는 예수를 낳았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동정녀지요. 그런 ‘절대 순결’의 존재로 은교를 여긴 게 아닐까 해요.
그렇기에 은교를 함부로 만질 수도 훼손시킬 수도 없습니다. 그리도 믿었던 서지우에게 비록 훼손당했다 하더라도 은교는 이적요에게 ‘영원한 처녀’입니다. 시에서 훼손할 수 없는 절대성, 정신적 가치처럼 말예요.
하여간 이적요가 은교에게 갖는 감정은 복잡다단합니다. 이적요와 제자 서지우가 멀어지고 갈등하고 의심하게 되는 과정 역시 ‘질투 때문’이라 단정 지으면 상당히 곤란합니다. 책을 읽어보신 분이라면 무슨 말인지 납득하실 겁니다.
하지만 영화에선 이들의 감정과 갈등이 다소 단순하게 그려집니다. 이야기를 끌고 가는 주요 에피소드 역시 소설과 매우 다릅니다. 하긴, 제한된 러닝타임 안에 이야기를 전개시켜야하니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연출을 했겠지요. 그렇게 생각하면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이건 소설이 아닌 영화니까요.
그렇기에 저는 영화 <은교>를 소설에서 인물설정과 제목만 따온 별개의 작품이라 평하고 싶습니다. 그래야만 영화를 마음 편히 감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 <도가니> 같은 경우엔 원작소설과 80% 이상이 내용적으로 일치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은교>는 아닙니다. 정지우 감독의 재능과 판타지를 엮은 아주 다른 하나의 작품이라 생각합니다.
쓰다 보니 아쉬운 부분이 참 많네요. ‘이건 소설과 달라. 영화는 그냥 영화야’라곤 해도 사람 마음이 어디 그런가요? 문장의 웅장함과 힘이 영상으로도 고스란히 재현되길 바라는 ‘팬심’은 어쩔 수 없겠지요.
젊음이 그저 얻어졌듯, 늙음은 죄가 아니다.
소설에 이런 문장이 나옵니다.
<늙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가 아니다, 노인은 기형이 아니다. 노인은, 그냥 자연일 뿐이다. 젊은 너희들이 가진 아름다움이 자연이듯이. 너희의 젊음이 너희의 노력에 의하여 얻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이 문장은 영화에도 나옵니다. 이적요가 서지우의 ‘이상문학상’ 시상식에 가서 축사를 하지요. 그때 그 대사입니다. 책을 읽으면서 저는 이 문구에 밑줄을 그어뒀습니다. 소설을 관통하는 핵심 문장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감독 역시 영화의 주제를 이 문장에서 얻었나 봅니다. 늙음에 관한 편견, 그것이 주는 슬픔. 그리고 늙은 것은 범죄이거나 죄가 아니라는 것, 자연의 결과라는 것. 바로 이 문장에 집중해야만 이적요의 감정선을, 영화의 결말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영화는 이 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습니다. 은교를 향한 남성 판타지를 한껏 끌어올리느라고요. 그래서 아마 몇몇 사람들이 이 영화를 외국 작품 <롤리타>와 연관 짓나 봅니다.
‘은교 앓이’ 여배우 김고은의 발견
여배우 김고은, 정말 이름처럼 곱더라고요. 남자들이 요새 ‘은교 앓이’ 중이라던데, 십분 이해합니다.
소설 속의 은교는 이목구비가 뚜렷하거나 굉장한 미인상이 아닙니다. 변호사는 은교를 평범하게 생겼다고 말하기까지 합니다. 다만, 눈빛은 깊다나요? 이런 캐릭터를 살리기란 참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은교는 김고은에게 고스란히 투영됐습니다.
살갗이 비칠 것 같은 투명한 피부에 군살 없는 미끈한 몸매, 잘록한 허리, 긴 팔다리 등의 몸매는 물론, 평범한 듯 하면서도 매력 넘치는 외모까지도요. 이목구비가 지나치게 또렷한 요즘의 여배우들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그런 매력이 있습니다. 김고은이 평소 존경한다는 ‘전도연’ 같은 배우로 대성해주길 기대해봅니다.
파격적인 노출까지 감행했지요. 참 쉽지 않은 결정이었을 것 같습니다. 부모님의 반대도 심했다고 하네요. 김고은을 아끼는 은사는 이런 말을 했다지요. “영화를 찍는 순간, 너는 이미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너는 이전과는 매우 다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이 말, 진심으로 공감합니다. 모쪼록 배우 김고은이 좋은 작품을 만나, 오래 오래 연기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김무열은 연기를 참 잘하는 배우로 소문 나 있지요. 그런데 이 영화에서는 좀 부족한 느낌입니다. 박해일과 어깨를 나란히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어요. 그렇지만 김무열 특유의 아우라는 느껴지지 않았지요. 아마 영화에서의 비중이 큰 편이 아니어서 그런가 봅니다. 김무열도 자신에게 딱 맞는, 비중있는 역할을 만난다면 신들린 연기력을 펼치겠지요. 뭐, 아직 젊으니까요.
그리고 박해일. 8시간이 넘는 분장 끝에 노인으로 변신했다고 하지요. 영화 초반에 공개되는 몸은 대역이라고 하네요. 얼굴은 그렇다 치고 몸매까지 분장으로 감출 수는 없었을 거예요. 박해일의 얼굴은 괜찮았는데 목소리가 매우 어색했어요. 마치 어린 아이가 어른 목소리를 흉내 내듯 굵고 거슬리더라고요.
소설에서 이적요는 자기관리에 철저한 노인으로 나옵니다. 180이 넘는 장신에 마르긴 했지만 체격도 다부지게 표현됐지요. 이런 설명대로라면 극중 박해일의 건장한 체격은 전혀 어색하지 않습니다.
아마 소설 속의 이적요가 실제 인물로 부활한다면 눈빛이 형형하고 건장한, 기묘한 분위기를 풍기는 노인이었을 거예요. 하긴 기존의 젊은 배우 중 이적요를 연기할 수 있는 배우는 박해일 밖엔 없을 거란 생각도 해봅니다.
정지우 감독이 그랬다네요. “다음번에 <은교>를 한 번 더 찍는다면 진짜 70대 노인을 출연시키고 싶다”고요. 감독님께 한마디 드리고 싶습니다.
“감독님, 다음이란 없어요.”라고요.
한 마디 더 붙이겠습니다. “감독님 <해피엔드> 같은 작품 다시 만들어 주세요, 네?” 정지우 감독을 계속 지켜보렵니다.
[기타]
영화 <은교> 예고편입니다.
정지우 감독, 김고은, 박범신 작가(박범신 작가 멋지네요 흐엉)
'문화인 > 보고 읽은 모든 것' 카테고리의 다른 글
꼰대 교수의 음악을 통한 일탈!: 영화 <비지터>를 보고 (1) | 2012.11.16 |
---|---|
내 인생의 최고의 영화 <가위손> (8) | 2012.11.13 |
박원순 시장도 보았다는 연극 <서울사람들> (0) | 2012.05.04 |
대단한 형제감독의 영화 <약속: 프로메제>를 보다 (0) | 2012.03.12 |
맛은 사라지고 '쇼'만 남았다. 다큐 <트루맛쇼> (0) | 2012.03.0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