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김정미의 창작놀이터

 

 

 

박원순 시장도 보았다는 연극 <서울사람들>

 

  연극 '서울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앵콜공연이라네요. 친구가 당첨이 됐다며 함께 보러가자고 권했습니다. 제목만 들었을 때에는 별다른 감흥이 없었어요. 그런데 친구가 “연극 서울사람들 참 좋다더라. 박원순 시장도 봤대”라는 말을 듣고 호기심이 일었습니다. 역시 유명인을 동원한 마케팅은 효과가 있는 것 같네요.


  그리고 연극을 보자마자 왜 이 연극이 앵콜공연까지 하는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아프고 따뜻합니다. 웃음이 있습니다. 희망이 있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살아보자”라고 되뇌이게 되는 연극입니다.

 

서울에서 발 딛고 사는 '서울사람들'

 

  연극에서 ‘서울사람들’은 서울에 발을 딛고 사는 사람들을 일컫습니다. 서울에서 태어난 서울토박이들이 아닌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이들의 삶을 ‘고시원’이라는 공간에서 그립니다. 충청도, 강원도, 전라도, 경상도, 제주도에서 올라온 사람들이 고시원 쪽방에 살고 있습니다. 아참, 조선족 처녀도 있습니다. 이들의 연령대는 20대에서 30대까지 다양합니다.

 


  연극은 군데 군데 웃음의 요소가 들어있지만, 때때로 서글프고 날카롭습니다.

  대학생 친구 두 명의 이야기는 굉장히 현실감 있고도 와 닿습니다.

 

  졸업 전 취업을 목표로 학교를 휴학하고 고시원에서 토익을 비롯한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여대생은 굉장히 히스테릭합니다. 작은 소음도 못 견딜 정도로 날이 서있고, 강박증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러다 옆방에 살고 있는 청년이 대학교 동아리 친구라는 것을 알게 된 후, 순수하면서도 무모한 청년을 통해 조금씩 자신을 돌아보게 됩니다.

 

  대학생, 취준생, 조선족 다양한 이들의 이야기

 

  청년의 고향은 제주입니다. 제주사투리를 굉장히 리얼하게 쓰는 모습에서 깜짝 놀랐습니다. 제 고향이 제주거든요.(배우 고향이 제주도라고 80% 확신합니다.) 청년은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 대학을 다닙니다. 그 무시무시한 등록금 때문에 청년은 패스트푸드점 배달 알바를 합니다. 방세는 몇 달 밀려 방문 앞엔 빨간 딱지가 붙었고, 너무 피곤한 나머지 수업을 빠지기 일쑤입니다.

 

 

 

  그런 청년을 옆방 친구가 몰아세웁니다. “차라리 대출을 받고 대학 먼저 졸업해! 지금 우리가 할 게 얼마나 많은 줄 알아? 토익도 해야지, 학점도 받아야지, 스펙을 쌓아야 한다구!”

 

  청년은 친구 말에 호스트바에서 일을 합니다. 단 하루 만에 백만원이라는 돈을 법니다. 배달 알바 한 달을 꼬박 채워야 받을 수 있는 돈을 하루에 벌었지만 청년은 기쁘지 않습니다. 영혼이 빠져나간 듯 마음이 휑합니다.

 

  이런 주인공들의 모습을 보고 어찌 속상하지 않겠어요. 저 역시 어렵고 불안한 대학생 시절을 보냈기 때문에 더더욱 그렇습니다. 대학생들의 삶은 고등학교의 연장입니다. 경쟁하고 또 경쟁하고 또 경쟁합니다. 그렇게 인간성을 없애가면서 높은 스펙을 얻어 대기업에 간 이들이 만들어가는 세상은 어떻겠어요. 연극을 보는 내내 그 사실이 너무 염려되었습니다. 대학생들이 너무 가여웠고요.

 

등장인물들에게 '감정 이입'을 하다

 

  제가 감정이입을 하게 된 인물이 한명 더 있습니다. 바로 마산에서 올라와 백화점에 취업을 한 사회초년생 여성입니다. 시종일관 발랄하고 명랑합니다. 어릴 적, 백화점에 가본 후 그곳에서 일하기만을 손꼽았답니다. 백화점의 모든 것이 자기 것만 같고, 세상에서 가장 멋있는 사람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대요.

  그러나 직장과 사회는 현실입니다. 더 이상 꿈속에 머물 여유를 주지 않지요. 이 친구는 백화점에서 일하는 여자들의 텃새에 시달립니다. 왕따를 시키고요, 사투리를 고치라고 타박하고요, 촌스럽다고 대놓고 흉을 봅니다. 명품 백 하나 없다고 멸시합니다.

 

 

 

  조선족 여성의 경우는 또 어떻고요. 스물의 나이에 한국에 와서 악착같이 살아가는 여성에게 한국은 따스하다가도 곧 등을 돌립니다. 남성들은 달콤한 거래를 제안하고요, 일하러 간 곳에서는 돈을 못 받고 쫓겨나기 일쑤입니다. 제대로 살아보려 마음을 먹지만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불신이 쌓일 수밖에 없지요. 결국 진심마저도 거짓이라 의심하고 맙니다.


  연극을 보는 내내 마음이 아리고 공감되었던 이유는 저도 이들과 같은 ‘서울사람들’ 중 한명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 역시 고향 제주를 떠나 서울에서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거든요. 연극을 보는 내내, 대학생, 사회초년생, 조선족 처녀의 사이를 오갔습니다.

 

 


  연극은 허무한 ‘희망 고문’ 따위를 남발하지 않습니다.  주인공들은 아마 연극이 끝난 후에도 그렇게 평범하게 살아나갈 것입니다. "그래도 세상은 아름답잖아?" 따위의 희망 고문을 남발하는 대신, 힘들 땐 힘들다고 악을 씁니다. 그런 후 마음을 추스르는 것이지요.

 

  연극의 말미, 대학생 남녀가 주고받은 대화가 마음에 듭니다.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것, 내 마음 속에서 원하는 것, 그것에 귀 기울여 보자는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느덧 저도 마음을 먹고 있었습니다. 이왕 살 것, 하고 싶은 일을 해보겠다고요.


  서울에서, 서울사람으로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