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김정미의 창작놀이터

 

누가 나에게 "네 인생의 최고의 영화는 무엇이니?"라고 묻는다면 나는 <가위손>이라고 말할 것이다. 조니뎁이 나에게 연락이 와서 "당신의 블로그가 한국에서 영향력이 높으니, 부디 귀하의 블로그에 최고의 영화를 쓸 적엔 내가 출연한 영화를 써주시오"라고 부탁을 했기 때문...은 당연히 아니고, 그냥 내가 굉장히 좋아하는 영화이기 때문이다.

 

이 영화를 처음 본 것은 초등학생 때다. 연휴를 맞아 TV에서 한국어 더빙판으로 방영해주는 걸 시청했다. 당시 나는 제주도의 어느 시골마을에서 살고 있었던 지라, 문화적으로 접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그래서 TV에서 나오는 <주말의 명화>류의 프로그램을 보는 게 유일한 낙이었다.

 

 

 

<가위손>은 어린 내가 보기에도 어려움 없이 이해할 수 있는 그런 내용이었다. 사람들이 가위손 청년에게 호기심을 가지며 열광했다가 곧 그를 왕따시키는 건 이해되지 않았지만, 순백의 눈이 흩날리는 풍경과 알록달록한 마을, 킴을 향한 짝사랑은 어린 나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 충분했다.

 

가위손은 당시의 내게 조금은 야한(?) 영화이기도 했다. 어린 나에게 야함의 기준은...부끄럽게도 '뽀뽀(키스)'였다. 영화에서 푸들을 안고 다니는 아줌마가 가위손을 유혹(?)하는 장면이 있는데 혼자 민망해 얼굴이 빨개졌던 기억이 난다. 굉장히 노골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손톱의 때만큼 아무것도 아닌 장면이지만, 한동안 내게 가위손의 잔상으로 오래 남아있었다.(아, 그까짓껏에!!! 나는 사춘기였던가.)

 

그 후 정말 사춘기가 됐다. 그 사이, TV에서 방영되는 <가위손>을 수차례 보며 자랐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2학년 시절, 영화잡지 기자가 되겠다며 돌연 선언하고(아무도 관심 갖지 않았지만) <가위손>비디오테이프를 구해 진지한 마음으로 돌려봤다. 한국어로 더빙되지 않은, 주인공들의 천연 그대로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가위손은 또 다른 감흥을 내게 안겨줬다.

 

당시 나는 '조니뎁'의 팬이었다. 가위손 '에드워드'는 조니뎁을 위한 캐릭터 같았다. 지금도 나는 조니뎁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캐릭터를 꼽으라면 가위손의 에드워드를 꼽는다. <캐리비안의 해적>에서의 '잭스패로우'역도 아주 잘 어울리지만, '갑'은 뭐니뭐니해도 에드워드라고 생각한다.

 

에드워드는 괴짜 과학자의 불운한 발명품이다. 창백한 얼굴 곳곳에는 상처들이 가득하다. 살아가는 법도 사랑하는 법도 배우지 못한 채 성에 홀로 남은 가위손은 겨울만 되면 훌륭한 조각가로 변한다. 얼음조각을 가위손으로 손질해 아주 멋진 조각을 만들어내고, 얼음송이들은 함박눈이 되어 마을에 흩날린다.

 

사람들은 가위손 청년의 존재를 알게 된 후 큰 관심을 갖는다. 그에겐 결핍이었던 '가위손' 마저도 평범한 사람들에겐 '유니크함의 상징'이 된다. 가위손은 하나의 트랜드가 되고, 에드워드는 마침내 방송출연까지 한다. 사람들의 정원을 손질해주기도 하고, 미용실을 열어 멋진 머리를 만들어주는 헤어디자이너로 이름을 알리기까지 한다.(이 영화가 개봉된 후 '가위손'이라는 상호의 미용실이 많이 생겨났다.)

 

영화에 사랑이 빠지면 허전하다. 이 영화 역시 '사랑'을 키워드로 넣어 에드워드를 파멸(응?)로 몰아간다. 에드워드는 화장품 외판원 아줌마에 의해 발견이 되고, 마을로 내려가 아줌마네 집에 묵게 된다. 아줌마네 집에서 딸 '킴(위노나라이더)'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리고 그 망할 놈의 '사랑'때문에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고, 마을에서 추방 당하게 된다. 에드워드에게 사랑은 순수한 마음 자체였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에드워드의 '순수함'을 원래의 그 의미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이미 많이 퇴색되어 있기 때문에. 그래서 순수한 에드워드는 결국 사랑 때문에 상처입고 자신의 성에 홀로 들어가 갇히게 된다.

 

영화는 백발의 한 할머니가 손녀에게 "옛날 아주 먼 옛날에"로 시작되는 긴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슬픈 에드워드의 사랑 이야기가 펼쳐지고, 에드워드를 사랑에 빠지게 한 '킴'이라는 처녀가 백발의 할머니라는 사실을 슬쩍 알려준다.

 

 

영화 속 최고의 장면을 꼽으라면 아무래도 이 장면을 꼽아야겠다. 금발의 킴(위노나라이더)이 하얀색 원피스를 입고 흩날리는 얼음 아래에서 팔을 벌리고 빙글빙글 돌던 장면. 정말 로맨틱하지 않은가.

 

옆에서 에드워드는 조각상을 만들면서 열심히 가위질을 하고 있고, 킴은 옆에서 춤을 춘다. 지금 생각해보니 킴은 조금 눈치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에드워드가 성질이 못됐다면 "난 일하는데 넌 춤이나 추고 있고 혼날래?"라고 했겠지만, 에드워드는 이미 킴을 사랑하고 있었으니까 뭔들 안 이뻤겠나. 그리고 이 장면이 빠지면 로맨틱함의 절정도 사라져버릴테니(뭐라는 건가 나는).

 

 

이 장면도 나는 잊을 수 없다. 에드워드가 화장품 외판원 아줌마네 집에 처음 가게 된 날, 아줌마가 딸의 방을 안내하며 에드워드에게 하룻밤 자라고 한다. 딸은 남자친구 일행들과 놀러 가, 방엔 아무도 없다. 에드워드는 침대에 누웠다가 물컹물컹한 침대가 낯설어 깜짝 놀라, 팔을 휘휘 휘두른다. 그때 갑자기 침대에서  물이 마구 새어나온다. 침대는 바로 <물침대>였던 것.

 

아줌마 센스하고는. 손이 가위로 된 이에게 어찌 물침대에게 자라고 할 수 있는가. 옥장판 혹은 돌침대면 모를까. 지금 생각해보니 아줌마 참 센스 없네. 하여간, 아줌마의 센스 덕에 영화의 대표적인 장면이라 할 수 있는 '물침대 씬'이 탄생한다. 당황해서 허둥지둥 팔을 휘두르는 에드워드와 마치 성이 난 듯 퐁퐁 솟아오르는 물! 이 장면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영화를 보고난 후에도 나는 좀처럼 빠져나올 수가 없었다. 그건 아마 당시의 내가 연애 경험이 전무한 꿈 많은 여고생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순백의 사랑에 가슴이 콕콕 따갑고, 가위손 에드워드를 안아주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던 나는야 여고생이었으니까.

 

영화 촬영 후, 조니뎁과 위노나라이더는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조니뎁은 '노니포레버'라는 문신을 팔뚝에 새겼는데, 지금은 아마 지웠을 것이다. 하여간 청춘스타의 아이콘이었던 두 사람은 사람들의 질투와 응원 속에서 예쁘게 사랑하다가....헤어졌다.

 

한창 연인이었던 두 사람의 사진은 아직도 인터넷 상에 떠돌아 다니고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내 블로그의 배경사진이다. 조니뎁은 위노나라이더를 사랑스럽게 바라보고 있고, 위노나라이더는 또 사랑스럽게 조니뎁을 응시하고 있다. 이토록 사랑스러운 커플이 왜 깨졌냔 말인가. 당시엔 그것 마저도 가슴이 아팠는데 지금은 십분 이해한다. "두 사람이 영원토록 사랑하였습니다"는 그야말로 영화적인 이야기니까. 그래서 조니뎁과 위노나라이더는 <가위손> 속에서만 영원한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난 후, <가위손 빠>가 된 나머지 에드워드 피규어를 구입했다. 당시로서는 용돈을 탈탈 모아 샀을만큼 귀한 것이었다. 아마 해외구매를 통해 샀을 거다. 피규어는 바로 위의 사진 속 모습을 가장 빼닮았다.

 

방금 검색해서 피규어 사진을 찾았는데, 내가 소장하고 있던 녀석이 바로 요거랑 같은 제품이었다.

 

 

버튼을 누르면 가위가 움직인다. 이런 멋진 녀석을 우리 엄마가 내가 없는 사이, 흉측하다며 버려버렸다. 으악, 그때 내가 얼마나 절망했던지. 엄마는 "집에 두면 재수가 없을 것 같아서"라는 말로 나에게 미안함을 표시했는데, 엄마에게 꼭 말해두고 싶은 게 있다. 엄마! 집안에 재수가 없던 건 에드워드 때문이 아니라구영 엉엉.

 

이 후에도 엄마는 내가 모은 영화잡지며, 비디오테이프며 많은 걸 버렸다. 그래도 피규어를 버렸을 적만큼 슬프진 않았다. 엉엉.

 

하여간, 피규어의 신세가 처량하다. 쓰레기통을 한바탕 뒹굴었을 에드워드를 누군가 꺼내 가서 잘 보살펴주면 좋으련만. 아무래도 생김새가 누구에게 사랑받을 생김은 아니라서 흑흑. 하여간 말이 길었지만, 이러저라한 이유로 내겐 <가위손>이 내 인생의 최고의 영화다. 암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