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김정미의 창작놀이터

 

비지터

 

토마스 맥카시
주연: 리타드젠킨스, 하즈 슬레이먼 등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홍기자와 이 영화 <비지터>를 봤다. 홍기자가 제안한 영화였다. 홍기자의 안목을 믿기에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함께 봤다.

 

  영화는 매우 잔잔하다. 줄거리만 읽자면 언뜻 '감동 코드'의 음악 영화로 보이지만 후반부로 갈수록 그렇지 않다. 주인공은 아주 천천히 마음을 열고, 음악을 통해 아주 천천히 변화 한다. 만약 영화가 관객들을 대놓고 감동시키려 노력했다면 극적인 반전과 극적인 변화를 보여줬을 것이다.

 

  그러나 영화는 아주 담담히 주인공의 변화와 용기를 따라가고, 미국에서의 불법이민자의 삶에 대해 고민하게 한다. 그리고 엔딩 역시 감동 코드와는 빗나가며 마무리 된다.

 

 주인공인 대학교수 월터의 삶은 단조롭다 못해 심드렁하다. 20년째 같은 과목을 가르치고 있는 월터는 학습계획서에 매년 연도 표기만 달리할 정도로 학자로서의 열정 역시 제로다.

 

 

 

  주인공 월터는 위의 사진처럼 심드렁한 표정을 가장 많이 짓는다. 학생들의 얼굴을 마주치지도 않고 강의를 하고, 무표정으로 혼자 식당서 밥을 먹고, 피아노를 배우면서도 무표정하다. 마치 웃는 방법을 잃어버린 사람처럼 그의 얼굴 근육은 딱딱히 굳어 있다.

 

 월터는 세상을 뜬 피아니스트 부인을 생각하며 피아노를 배운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는지 4번째 선생님과도 작별을 한다. 음악적 재능이 없는 월터에겐 피아노 하나를 배우는 것 마저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 

 

 어느날 월터는 학회에 참석하기 위해 뉴욕으로 가고, 자신의 아파트에서 불법이민자 '타렉' 커플과 마주친다. 타렉 커플은 당장 갈 곳이 없고, 월터는 어떤 마음에서인지 그런 그들을 집에 며칠 더 머물게 한다. 타렉은 감사의 뜻으로 월터에게 젬베를 가르쳐 준다. 

 

 

 

  바로 위 악기가 '젬베'다. 젬베(djembe)는 서아프리카의 전통 악기다. 한 품에 안을 수 있는 원추형으로 된 사발 모양의 드럼으로 공간과 장소의 제약 없이 어디서든 연주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타렉은 시리아에서 온 불법이민자로, 뉴욕의 bar나 거리에서 악기를 연주하며 살아간다. 타렉의 여자친구 자이나브 역시 세네갈에서 온 불법이민자로 핸드메이드 악세서리를 팔며 살아간다.

 

  월터는 타렉이 가르쳐 주는 젬베에 금방 빠져든다. 고지식한 교수답게, 땀이 날 정도로 혼자 열심히 연습을 하고 그렇게 실력은 꾸준히 늘어간다. 커다란 덩치를 동그랗게 말고 북에 몰두한 월터의 모습은 진지하고 귀엽기까지 하다. '둥 두둥 둥' 세 박자의 리듬에 한껏 빠진 월터, 그동안 뜻대로 되지 않은 삶을 떨쳐버리려는 듯 아주 힘차게 북을 두드린다.

 

  이쯤 되면 영화는 잔잔한 '음악 영화'로 흘러가기 쉽다. 그러나 영화는 청년 타렉이 지하철역에서 붙잡혀가면서, 미국에서 살아가는 불법이민자들의 삶에 대해 깊숙히 끼어들기 시작한다. 어떠한 잘못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본국으로 추방당하는 불법이민자들의 삶은 우리에게도 결코 생경하지 않다. 우리나라 역시 불법이민자들에게 관대한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새로운 나라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는 노력 조차도 불법이민자들에겐 주어지지 않은 사치일 뿐이다. 월터는 타렉을 도우려 발벗고 나선다. 어쩌면 월터에게는 생의 첫 친절이자 자발적 의지일지도 모르겠다.

 

  월터는 타렉을 돕는 과정에서 타렉의 엄마를 만나고, 영화는 '로맨스'로 흘러갈 것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둘은 서로에게 호감이 있었고, 어쩌면 사랑까지 했지만 영화는 두 사람을 이어주려 들갑 떨지 않는다. 결말 역시 담담한 이별이다. 그래도 월터는 분명 이전과 달라졌다. 혼자 젬베를 들고, 지하철역에서 둥 두둥 둥 북을 두드릴 지 누가 알았겠는가.

 

 영화는 관객들의 예상대로 펼쳐지지 않는다. 음악 영화일까 싶은데 어느 순간 불법이민자들의 삶을 그린 생각하게 만드는 영화로, 어느 순간 로맨스로 그렇게 예상치 못하게 흘러간다. 마치 우리들의 삶처럼. 관객들을 감동시키려 하나의 코드를 고집하거나 그렇고 그런 틀에 맞춰 이야기를 진행시키지 않은 감독에게 괜시리 고마운 마음이 든다.

 

  큰 용기를 내어, 삶에서 한 발자국 벗어난 월터처럼 이영화를 본 관객들이나 모두는 분명 한 걸음 삶에 대해 관조적인 자세를 취했을 테니까.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다시금 느꼈다. "내가 살아가려는 삶의 방향이 전혀 틀리지 않았"음을.

 

<끝>

 

 이가 보일만큼 환한 웃음은 아니지만, 결국 웃는 것에 성공하는 월터. 남은 여생은 분명 더욱 행복하게 살아갈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