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김정미의 창작놀이터

 

장안의 화제인 영화, <늑대소년>을 드디어 보았다.

 

개봉예정영화 목록에 올랐을 때부터 보고 싶었다. <짐승의 끝> <남매의 집>을 연출한 조성희 감독의 첫 대중영화(굳이 구분 짓자면)였기 때문이다. 조성희 감독은 단편을 만들 때부터 이미 혜성처럼 떠오른 신예감독이다. 

 

그의 전 작품을 본 사람이라면 <늑대소년>의 개봉소식을 들었을때 '이런 느낌의 영화일 것이다'라는 선입견을 가졌을 것이다. 그 선입견을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자면 '크로데스크'가 아닐까. 어떤 이유에서인지는 <짐승의 끝>과 <남매의 집>을 본다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계속 <늑대소년>에 대해 이야기 하자면, 이 영화는 조성희 감독에게 갖는 선입견을 보기 좋게 날려버린다. 웰메이드 상업영화로 아주 깔끔하게 포장돼 나온 것이다. 조성희는 정말 난인물이다. 그의 후속작품이 벌써 기대된다면 지나친 애정일까.

 

 

 

 

<늑대소년>는 여성들의 '판타지'를 제대로 건든 작품이다. 영화의 호불호가 갈리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이 영화가 불편하단다. 아마 러닝타임 내내, 잘생긴 송중기를 보아야 하는 것도 곤혹스러운 일일테고, 남자가 순애보를 지키며 한 여자만을 기다리고 또 여자에게 길들어지는 모습도 불편할 것이다.

 

TV에서 최수종을 보며 피로감을 느끼듯, 이 영화 역시 피로감을 안겨줄 수 있다. 옆에서 넋을 놓고 영화를 보는 여자친구를 보며 마음 속으로 '에이씨'라고 외칠지 모를 일이다.(물론 안 그런 남자들도 있지만.)

 

그러나, 여자들에게는 정말 꿈만 같은 영화다. 아주 잘생긴 송중기 같은 남자가 소년인 채로 나를 언제까지나 기다리고 있다니. 더군다나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늙은 내게 "넌 여전히 예뻐"라고 말하다니! 달콤하지 않은가. 그런 늑대소년이라면 나도 당장 키우고 싶다!!!! 이런 판타지가 작용했기에 전 연령대의 여성들이 영화관을 찾고 있는 것일 게다.

 

나이든 누군가에겐 첫사랑을 떠올리게 하고, 아직 꽃봉우리가 피지 않은 나이의 소녀에겐 사랑을 기대하게 하는. 그래서 이 영화는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은 것이다.

 

 

 

인간의 보살핌 없이 늑대처럼 사육된 소년(송중기 분)은  한 소녀(박보영 분)를 만나 인간으로 길들어진다. 먹고 싶을 땐 먹고, 자고 싶을 땐 자고, 그렇게 본능에 충실한 삶을 살았던 늑대소년은 소녀의 꾸지람도 잘 견뎌내며 인간의 삶을 배운다.

 

음식만 보면 달려가 개걸스럽게 먹어야 직성이 풀리는 소년이었지만 마침내 본능을 억제하고 참는 법을 배우게 된다. 소년을 길들인 것은 다름아닌 소녀의 사랑이었다.

 

 

소년이 본능을 참고 멈추거나 기다리면 소녀는 그에 대한 보상으로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 "잘했어"라는 말과 함께 따뜻하게 웃으며 말이다. 말할 수 없는 짐승에게도 온기는 통하기 마련이다. 소년은 소녀의 체온을 느끼고 자기도 모르는 새에 길들여진다.

 

쓰다듬을 받기 위해 소년은 소녀의 말에 따르게 된다. 그것은 일종의 충성심이다. 조건 없는 사랑.  개가 목숨을 바쳐 주인을 지키듯, 소년은 소녀를 끝까지 지켜낸다. 그것은 야생에서 자란 소년만이 할 수 있는 사랑의 표현이다.

 

소녀의 노력으로 소년은 인간스럽게(?) 변모한다. 식욕도 참을 줄 알게 됐고, 삐뚤빼뚤 글씨도 쓰고, 노래가 아름답다는 것도 느끼게 된다. 그러나 행복은 곧 부서진다. 소녀를 사랑하는 청년이 '악역'을 자처하면서 소년을 공경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소년의 존재가 밝혀지고 소년은 쇠사슬에 묶여 창고에 갇힌다. 그리고 24시간 관찰 대상이 된다. 애초에 소년을 실험대상으로 키웠다는 것을 알고 있는 교수에게 소년은 학문적으로 놓칠 수 없는 희귀한 아이템이다. 그리고 안기부에서 온 듯한 군복을 입은 남자에게 소년은 들통나서는 안 될 처치 대상이다.

 

 

 

소년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를 두고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는 가운데 소녀를 사랑하는 청년은 삐뚤어진 복수를 계획하고 늑대소년은 오해의 오해를 받게 된다. 늑대소년이 말하는 걸 배웠더라면 저렇게 당하고 있지만은 않을텐데! 관객들은 답답해서 가슴을 팡팡 치게 된다.

 

이 순간 가장 답답한 것은 바로 이거다. 장씨아저씨는 왜 사람들이 모두 모인는 자리에서 진실을 말하지 않고 양아치같은 청년을 찾아가서 경고하듯 말한 것일까. 그런 의문 속에 늑대소년은 오해와 의심을 받고 결국 인간세상에서 추방 당하게 된다. 소년이 택한 것은 소녀를 안고 숲속으로 달아나는 것. 그러나 영화 <킹콩>에서 킹콩이 사랑을 이룰 수 없었듯, 늑대소년 역시 소녀와 이별을 하게 된다.

 

그러고서 족히 50년이라는 세월이 지났다. 놀랍게도 소년은 소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소년의 모습인 채로. 기특하게도 말도 배웠다. 그러곤 할머니가 된 소녀에게 머리를 내민다. 쓰다듬어 달라고. 소년은 쓰다듬의 온기를 잊지 못한 것이다. 자기만의 사랑법인 '충성심'을 끝까지 지킨 것이다.

 

사람들이 이 영화에 열광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 '기다림' 때문인 것 같다. 요즘처럼 빨리 빨리 돌아가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기다리는 것을 지루해한다. 어쩌면 영화에서처럼 순애보를 간직하고 한 여자를 기다릴 수 있는 건, 온전한 인간이 아닌 반은 '늑대'인 소년만이 할 수 있는 일일 지도 모르겠다.

 

 

 

인간들은 어려서부터 사랑마저도 학습 한다. 극중 할머니의 얼굴을 한 소녀가 남자친구 사진을 보여주는 손녀딸에게 "돈 많은 남자니?"라고 말하듯, 우리는 사랑에 있어 '조건'을 먼저 봐야한다고 그래야 잘 산다고 학습되어 왔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다.

 

더욱더 '조건'이 중요해진 오늘날, 이 영화는 관객들에게 '대리 만족감'을 안겨주는 것 같다. 순수한 사랑을 하고 싶지만 용기가 없어, 혹은 그런 남자가 없어 못하는 여자들에 대한 대리 만족. '철수 같은 소년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일어나지 않을 상상을 하며.

 

<늑대소년>, 동화처럼 참 예쁜 영화다.

 

 

+ 보태기

 

1. 이 영화가 동화같은 이유 하나 더.

->> 스토리도 스토리지만, 리얼리티가 상당히 떨어진다. 아무리 실험으로 탄생한 소년이라지만 어떻게 저런 존재가 있을 수 있을까? 늑대소년이 탄생 가능한가 하는 현실성에서부터 폐병에 걸린 소녀가 혼자 헛간을 찾아가는 장면에서도 과연 가능한 일일까하는 의문이 든다. 또, 소년은 평소 육식주의자였을텐데 그렇게 굶주렸다면 장씨아저씨네 염소는 진작에 다 잡아먹고 소녀까지 먹고 싶었을텐데 어째서 고구마 같은 것에 열광하는가에 이르기까지. 딴지 걸 것이 많은 영화지만 그냥 넘어가기로 한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가위손'처럼 전설의 성격이 강한 동화같은 영화이기 때문이다.

 

2. ost 좋고나.

->> 극중, 소녀가 늑대소년에게 들려주는 노래, <나의 왕자님> 참 좋다. 가사도 이쁘고. 나도 기타를 배우면 나의 왕자님께 들려줄 것이다. (그렇다, 나도 판타지를 잔뜩 머금은 소녀같은 감성의 여자였던 것!!!! 두둥.)

 

 

나의 왕자님

 

밤새도록 창밖에
햇님이 뜨길 기다려요
아침이오면 그사람을
만날수있으니까요
고마워요 내손 잡아줘서
고마워요 내눈 바라봐서
고마워요 내가 그리던 왕자님
이렇게 내앞에나타나줘서

하루종일 하늘에
달님이뜨길 기다려요
한밤이 오면 그사람과
이야기할수 있으니까요
잊지마요 우리의약속을
잊지마요 우리 비밀들을
잊지마요 내가 당신의 눈빛에
얼마나 가슴이 뛰었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