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김정미의 창작놀이터

“미안해요 강정”
-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다큐 <Jam Docu 강정>을 보다

해마다 무언가에 홀린 듯 부산을 찾습니다.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여하기 위해서입니다. 누가 불러주지도 초대하지도 않는 부산행을 굳이 고집하는 이유는 다양한 영화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제3세계 국가들의 영화들을 비롯해 한국의 저예산 독립영화들까지, 국내에 배급되지 않는 영화들을 맛보는 기쁨은 실로 짜릿합니다.

이번 16회 부산국제영화제는 제게 ‘짜릿함’ 보다는 ‘부끄러움’을 안겨 주었습니다. 다큐멘터리 <Jam Docu 강정> 덕분입니다. 해군기지 건설로 아픔을 겪고 있는 제주도 강정마을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로, 8인의 감독이 100일 간의 작업을 거쳐 완성한 작품입니다.

제주가 고향인 나는 비겁했습니다

저는 대정 몽생이입니다. 제주도 대정이 고향이지요. 어릴 적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쭉 대정에서 보냈습니다. 행정구역상으로도 서귀포시에 속하는 곳이니 ‘강정’이라는 지명은 제게 굉장히 익숙합니다.
 


대학시절, 해군기지 건설논란이 갓 불붙었을 때 저는 과 동기들과 한창 찬반 토론을 펼치고 있었습니다. 주민들의 동의를 구하지 않고 안하무인식으로 진행되는 방식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저는 ‘반대’의 입장을 고수했습니다. ‘경제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로 주민들을 살살 꾀며 돈이면 다 된다는 천박한 자본주의를 들이미는 정부의 방식이 싫었거든요. 그러나 당시의 저는 ‘찬반토론’에 참여한 치기어린 대학생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대학졸업과 동시에 서울에 올라 와 먹고 살기 바빴던 저는 해군기지 논란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주민들이 반대하는 일이기 때문에 당연히 국가에서 사업을 접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했고, 정말 그렇게 될 것이라 믿고 있었으니까요.

해군기지 건설 논란은 ‘강정마을’로 이동했고, 제 예상과 빗나가는 일이 연일 일어났습니다. 주민의 반도 되지 않는 사람들이 모여 주먹구구식으로 유치신청을 결정지은 ‘주민동의’에서부터 강제 공사 진행에 이르기까지. 이런 일련의 과정들이 과연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대한민국이 맞나 하는 의문을 품게 했습니다. 해군기지 건설을 둘러싼 갈등과 아픔, 진행 과정 등은 제주환경운동연합 소식지를 통해 접하셨을테니 굳이 또 한번 언급하진 않겠습니다.

대신 저는 강정을 주제로 한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해보려 합니다. 방관자였던 내 자신을 향한 자책어린 ‘자기고백’과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평화의 물결에 동참하고 힘을 합하겠다는 어쭙잖은 ‘약속’은 덤입니다.

다큐 <Jam Docu 강정>을 통해 만난 강정마을

제주 강정마을을 주제로 다큐멘터리가 제작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환호했습니다. 영상을 통해서라면 조금 더 유연하게 강정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한다는 정보를 접했을 때 기쁜 마음으로 예매를 했습니다. 부산에 있는 친구와 서울에 있는 친구를 불러 함께 영화를 봤습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얼굴이 홧홧 거렸습니다. 매스컴을 통해 강정마을의 이야기를 접하며 저는 그게 다인 줄 알았습니다. 그런 저의 무지몽매함에, 좀더 적극적으로 강정을 살리기 위해 애쓰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다큐를 보는 내내 마음이 좋지 못했습니다.

고향 제주의 아름다운 해안가가 파괴되고 있을 때, 나는 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제주와 아무런 연고가 없는 사람들도 강정을 살린다고 짐을 싸고 제주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저는 명절 때 제주를 찾았으면서도 강정에는 찾아가보지도 않았습니다. 맞습니다, 저는 비겁한 방관자에 불과했습니다.

<Jam Docu 강정>은 영화는 경순, 권효, 김태일, 양동규, 전승일, 정윤석, 최진성, 최하동하, 홍형숙 등 8명의 감독이 ‘강정’을 주제로 짤막한 영상을 만든 후 하나로 모은 작품입니다. 감독들이 머리를 맞대고 다큐멘터리의 컨셉과 방향을 논의하는 장면부터 시작해 나레이션을 바탕으로 자연스럽게 8개의 작품이 물 흐르듯 이어집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분노했고, 가슴 아팠으며, 화가 났습니다. 해군기지 문제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져주었고, 동참해 주었기에 강정마을을, 구럼비를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던 제가 참 바보스럽게 느껴졌습니다. 아름다운 강정마을의 해안가가 포크레인으로 파헤쳐지고 구럼비가 박살이 난 장면을 보았을 때야 비로소 현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울지마요, 구럼비! 힘내요, 강정”

자신의 방식과 개성대로 영상을 만들어 나갔지만 감독들이 말하는 것은 한결 같았습니다. “파괴된 강정마을 해안가가 더 이상 파괴되지 않게 하기 위해 모두 힘을 모아주세요”라는 것. 거기에서 더 나아가 “무관심하게 방관하는 너희들도 정부 못지않은 가해자다”라는 따끔한 메시지도 읽었습니다. 다큐멘터리는 제게 교과서와도 같았습니다. 미처 몰랐던 것, 알아야 할 것, 앞으로 해야할 일들을 친절히 알려주었거든요.

‘모슬포’라는 지명이 더 익숙한 대정의 해안가 마을에 살았던 저는 보말 잡고 수영 하며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바다가 주민들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삶의 터전 그 이상을 뜻한다는 것을 저는 모르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강정 마을에게, 그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많이 미안합니다. 다큐 속에서 환히 웃으며 강정을 살려야 한다 힘주어 말하던 강동균 마을회장님은 구속되어 아직도 풀려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바로 이런 것이 현실이겠지요.

제주도가 고향인 제의 정체성을 새삼스레 깨닫게 해주고, 지금이라도 부끄러움을 안겨 준 8명의 감독님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그리고 더 늦기 전에 제주를 찾아서 강정마을에 찾아가 보려 합니다. 다큐멘터리보다 더 리얼한 현실을 두 눈으로 보고 저의 작은 힘을 보태주고 싶습니다.

어쭙잖은 자기고백을 하다보니 정작 <Jam Docu 강정>의 이야기는 많이 하지 못했네요. 내용이 궁금하면 다큐멘터리가 상영할 때 놓치지 말고 꼭 보시기 바랍니다. 훌륭하니까요. 만약 기회를 놓쳐 다큐를 보실 수 없다면 강정마을에 직접 찾아가서 구럼비의 비명을 듣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울지마요, 구럼비! 힘내요, 강정”.

*본 글은, 제주환경운동연합 소식지 '오름과 바당' 11월호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