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똥파리> 당신에게 핏줄은 무엇인가요?
똥파리
양익준 감독/ 양익준, 김꽃비, 이환 등
영화 <똥파리>가 개봉했던 2008년, 삼청동 선재아트센터에서 영화를 봤다. 3년이 지난 지금도 극장의 분위기며, 나를 둘러쌓던 공기며, 모든 것을 잊을 수가 없다. 강렬한 영화는 줄거리 뿐만이 아닌 그 순간을 모두 기억케 하는 힘이 있다. 당시에 영화를 보고 다소 흥분하며 썼던 영화평을 여기 싣는다. 손을 봐야겠지만 손 볼 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흑.
'가족'은 얼마나 폭력적인 존잰가. 살아가는 데 힘을 주고 의지가 되는 소중한 존재이긴 하지만, 그 존재가 힘을 잃고 일그러져버릴 때, 한 핏줄을 나눠가졌다는 이유로 가족은 얼마나 폭력적인 존재가 되어버리는가.
무기력한 가족, 힘이 없는 가족, 삶을 황폐하게 내 던져버린 가족, 그런 가족을 바라보는 일은 얼마나 참을 수 없는 고통인가. 같은 피를 나눠가졌다는 이유로 '가족'임을 행사하고 그 권한을 이용해 모든 고통을 감수하라는 건 정말 폭력적이다.
영화 <똥파리>에서도 그런 가정이 등장한다.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을 보여준다. 극중 상훈(양익준 분)의 아버지는 자신이 집안의 '가장'이라는 이유로 폭력을 행사한다. 물리적 힘을 가진 남편이자 아버지라는 이유로 부인을 때리고 아이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한다. 이러한 폭력이 공공연히 행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그들이 한 핏줄로 구성된 '가족'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 상훈이 사채를 빌린 이들에게 돈을 수거하러 갈 때,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했던 한 가장은 또 다른 이에게 두드려 맞는 무기력한 존재일 뿐이다. 그럼에도 부인에게는 신이자, 엄청난 두려움의 대상이다. 왜 그래야만 할까. '가족'이니까. 살을 한 데 비비고 살아야만 하는.
이런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 역시 어른이 되어 폭력의 가해자가 된다. 징글징글한 가족을 떼어버리고 싶지만 '가족'이라는 존재는 좀처럼 떨어지질 않는다. 가족 구성원의 삶에 짐을 져버리기도 하고,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죄책감' 혹은 '미안함' 혹은 '구질구질한 감정' 등을 동반하기도 한다.
상훈 역시 핏줄이라는 것에 엄청나게 대항한다. 아버지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이새끼 저새끼" 쌍욕을 던지고, 너무나도 거칠게 대한다. 가족이라는 것에 굉장히 쿨해지려 노력하고 '내 피를 쏟아 저 새끼에게 부어버리고 싶'을 만큼 핏줄이라는 것에 굉장한 거부감을 보인다.
그런데 결국 그는 어떠했나. 자살시도한 아버지를 등에 업고 병원으로 냅따 달리지 않았나. 결국은 참고 참았던 눈물을 가족을 위해 흘리지 않았나. 던져버리고만 싶었던 가족의 끈을 다시 움켜잡고 '새 삶'을 꿈꾸지 않았나.
벗어나려 해도 결국은 도도리표처럼 제자리 걸음을 하는 존재, 그것은 바로 '가족'이다. 전형적인, 한국적인 가족의 이야기를 하는 영화. 가족의 폭력성과 또 그 반대에 존재하는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영화.
이 영화가 의미 있는 이유가 바로 그러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이 절로 났는데 그 이유는, 나 역시 끊임없이 가족을 거부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는 상훈을 닮아서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영화,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 같다. 리얼하다. 도대체 왜 우리네 가족들은 그렇게 아파하고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야만 할까. 이 무시무시한 폭력이 존재하는 것은 구조적인 문제가 아닐까.
+ 덧붙이는 말
이 영화를 보고 난 후에 3년이 지나면서 가족에 대한 사고가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가족'이라는 말을 들으면 괜시리 가슴이 아프고 울컥 마음이 흔들리곤 했다. 그러나 핏줄이라는 이유로 행해지는 의무감 등이 굉장히 폭력적이라는 걸 여러차례 깨닫고 나서 더이상 '가족'이라는 존재를 민감하게 받아드리지 말아야 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후에 나는 되레 열심히 살아가게 됐다. 그리고 나를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것만이 가족으로서의 의무라고 믿게 됐다. 가족이기에 양보하고 희생해야 하는 것이 아닌, 가족이기에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의지가 되어주는 사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혼자 독립하여 잘 살아가야 한다. 어차피 핏줄이든 뭐든, 인생은 자신의 몫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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