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김정미의 창작놀이터


나는 '책 덕후'다.
이삿짐센터 기피대상 1호.
이사할 때마다 좋은 말 들어본 적 없다.

4년 전, 서울서 대구로 이사올 적에
이삿짐센터 아저씨가
"책 많으면 가난해요!"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사실, 책은 경제성이 없다.
살 때는 제값 줘도, 팔 때는 반값도 못 받는다. 어떤 책은 가져가라 해도 안 가져간다.

누군가에겐 g으로 값을 매기는 폐지, 냄비 받침, 참고서 혹은 교과서.

그렇다면 나에겐 책이 무엇일까?
야밤에 엉뚱 진지한 질문을 하고 있다니! 나 몹시 한가한가? 전혀. 이유식도 안 만들었다고!!!

한때 책은 내게 '지적 허영심'의 통로였다. 그래도 책을 사모으지는 않았는데, 월세방이 조금씩 넓어지며, 경제적 능력도 조금씩 생기며 가장 먼저 책장이 늘어갔다.

그리고 결혼한 지금은?
책들에게 거실을 내준 꼴이다.
다행히, 아직은 책만 봐도 배부르다. <장서의 괴로움>이라는 책에 나온 것처럼 설마 집이 무너지기야 할라고? (이런 사람도 있는데 난 양호하지, 라는 생각마저 든다. 합리화겠지.)

그리하여 책은 계속 차곡 차곡 늘어난다. 첫번째 이유는 사서, 두번째 이유는 사는만큼 내치지 못해서다.

신간이 나오면 몹시 보고 싶어 미치겠다. 도서관에 들어오길 기다릴 수 없다. 좋아하는 작가의 책은 아예 신간이 출간 됐다고 알람이 온다. 그러면 덕후된 도리, 충성심으로 구입한다.

쌓아둔 책은 버리지 않는다. 언젠가 이사 준비하며 헌책방에 보낼 책을 정리했더니 5권 나왔다. 지난번엔 내가 큰맘 먹고 몇십권 추려냈더니 신랑이 말렸다. 일단 두면 나중에 우주라도 보지 않겠냐고라고라. 예상 외의 복병이었다. 아내의 취미를 인정해주는 멋진 자세!(우리 신랑은 물욕이 하나도 없으니 그런 신랑 몫까지 내가 사는 거야-라고 합리화 한다. 아아, 합리화 인생!)

아무튼, 책들을 꾸역꾸역 붙들고 있다. 언젠가는 정리해야겠지. 한 번 마음 먹으면 가차 없으므로 단칼에 정리하겠지.

펀딩해서 받은 책. <괴이, 서울>
서울을 주제로 쓴 공포 앤솔로지다.

아, 벌써부터 무섭다.
신랑 깨어있을 때, 낮에 읽어야지.

이번 책은 안전가옥서 펴낸 <장르의 장르>. 역시 펀딩 후원으로 받은 책이다. 장르문학가들과의 대담을 정리한 책이다. 나에게 영감, 동기부여를 주리라 믿으며.

그러고보니, 내겐 희귀한(?) 책들이 좀 있다. 언젠가는 그런 책들을 모아 블로그에 정리해야겠다. 사라지더라도 기억에는 남도록.

* 내가 받은 상패가 이사하며 몽땅 사라져버렸다. 없어진 거 어쩔순 없는데 단 한가지, 사진으로 남겨두지 않은 게 몹시 후회된다.

** 합리화의 여왕인 나는 상패가 다 없어졌음을 확인한 순간, "아아! 이것은 또 상을 받으라는 신의 계시야!"라고 합리화했다고 한다.(주님, 죄송합니다.)

*** 그런 나를 긍휼히 여겨 진짜로 신께서 상을 하나 더 내려주셨다고 한다. 최근 받은 교보문고 스토리 공모전 수상이 그것이다.


내 일상을 압축한 사진 한장.

엄마가 누워 있으면 엄청난 속도로 기어와서 얼굴 꼬집고 머리를 잡아당긴다.

"에이, 아기가 힘이 세봐야 얼마나 세겠어?"라굽쇼? 세다. 엄-청 세다.
(물론 어른이 그러면 더 아프겠지만, 아기도 못지 않게 세다. 세다는 기준이 고통을 기반으로 한다면 세다, 아주 세다.)

오늘 우주는 생후 9개월을 꽉 채웠다.
우리 부부가 엄마, 아빠가 된지도 9개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