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김정미의 창작놀이터

 

<7> 딸에게 쓰는 편지

 

오늘은 축복이 네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알려주고 싶어서 편지를 써.

 

오늘 엄마는 돌봄교실 수업에 가서 1, 2학년 언니 오빠들을 만났단다. 우리 축복이도 소리 들었지? 마구 재잘거리고 떠드는 소리들을 말이야. 특히, 오빠들은 엄청 개구쟁이여서 소리를 지르며 쿵쾅쿵쾅 뛰어다니곤 해. 그럴 때마다 엄마는 무척 큰 목소리로 "쉿! 조용히 해!"라고 말한단다.

 

사실, 엄마는 말이야. 마음 같아서는 아이들이 그냥 뛰어놀게 하고 싶어. 우당탕탕 뛰어 노는 게 씩씩하고 귀여워 보이거든. 한참 뛰어놀고 싶은 나이인데, 얼마나 몸이 근질근질 하겠어. 엄마도 어릴 때, 골목을 아주 누비며 다녔으니까. 하지만 교실에서 위험할 수도 있고 다른 친구들에게 방해가 되면 안 되니까 그때마다 조용하라고 하는데 그때 뿐이란다. 엄마는 그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 놀이에 집중하다보면 주변을 잊게 되니까 말이야.

 

오늘 1, 2학년 언니들이 와서는 "선생님, 배가 많이 불렀어요."하면서 관심을 보였어. "아기가 쿵쿵 차요?" 라고 묻고, 자기가 축복이처럼 엄마 뱃속에 있었을 때의 이야기-엄마에게 들은-를 하며 방긋방긋 웃더라. 얼마나 예쁘던지.

 

언니들이 엄마 배에 손을 대고 우리 축복이가 발로 쿵쿵 차는 것을 느끼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몰라. 쑥스러워 하는 친구도 있었고, 너에게 "축복아"라며 말을 거는 친구들도 있었어. 그런 언니들이 얼마나 예뻤는지 몰라. 몇몇 친구는 축복이가 발로 쾅 차는 걸 느꼈어. 엄마 오른쪽 배에서 느껴졌지. 유독 언니 중 한 명은 태동을 못 느껴 속상해 했단다. "왜 나만 못 느끼는 거야~"라면서 말이야.

 

뒤늦게 온 민경이 언니는 "선생님 아기 낳고 왔어요?"라고 물었단다. 하하. 지난주 월요일, 피가 비치는 바람에 돌봄교실 갔다가 잠깐 조퇴해서 병원에 다녀왔거든. 그걸 보고 몇몇 아이들은 내가 아기 낳으러 다녀온 줄 알았나봐. 어찌나 귀엽던지 ㅎㅎ 배가 볼록 나와 있는데도 병원에 다녀왔다고 하면 아이를 낳고 온 줄 안단다. 정말 정말 귀여운 언니, 오빠들이야. 축복이 너도 태어나면 그렇겠지.

 

집에 왔더니 제주에서 언니가 보내준 축복이 옷이 도착해 있네. 제주에 사는 이모 선물이야. 엄마에게 하나밖에 없는 언니란다. 선물을 받고 왜 이렇게 마음이 찡한지 몰라. 용진, 용환 오빠 키우느라 힘들텐데도 이렇게 선물을 사서 보내다니. 요며칠 SNS에 엄마가 받은 축복이 선물들을 정리해서 올렸단다. 그걸 보고 언니가 부담을 느낀 건 아닐까 싶어서 엄마는 마음이 좋지 않아. 축복이가 받은 사랑을 기억하고 싶어서 차근차근 기록해둔 건데 누군가에겐 '나도 선물해야 하는 건 아닐까?'라는 부담으로  느껴질 수도 있잖아. 설마, 그런 건 아니길 바라지만 말이야. 이모가 임신을 했을 땐, 엄마가 아직 미혼에다 결혼이 뭔지, 임신이 뭔지 하나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 같을 때라서 조카들한테 선물을 못 했어. 그런데 이렇게 축복이는 선물을 받는구나.

 

 

엄마는 요즘 주변에서 엄청난 호의와 배려를 받는단다. 축복이를 잉태하고 겪는 변화에 그저 어리둥절하기만 한데, 주변의 사랑에 "아! 내가 임산부였구나", "위대한 일을 하고 있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거야. 생각지도 못했던 호의와 사랑에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주변 사람들을 챙기며 선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돼. 꼭 물질적인 것을 받아서만은 아니야. 지하철에서 길거리에서 호의를 보여준 이름 모를 사람들이 참 많단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었지만.

 

이게 다 우리 축복이 덕분이야. 축복이 널 갖지 못했다면 이런 경험은 또 할 수 없었을테니까. 갈수록 축복이 너의 존재감이 커진다. 태동이 쿵쿵 심해지는 걸 느껴. 엄마는 요즘 배가 커지면서 땡땡하게 뭉칠 때가 있어. 순간 순간 걱정되기도 하고, 어떤 상황인지 어리둥절하기도 하단다. 일단 통증은 없어서 괜찮겠지 하며 넘기곤 해. 그리고 정말 아무 일도 없으니, 별 일 아닌 게지. 하지만 매순간 늘 걱정되고 두렵단다. 한 생명을 품는 게 이토록 조심스러운 일인지 몰랐어.  축복아, 무조건 건강히만 지내다 나오렴. 엄마는 늘 이 자리에서 널 기다리고 있단다.

 

앞으로 겪게 될 변화가 두려우면서도 기대가 돼. 얼마나 힘들지 모르지만 내가 품은 생명이 세상에 나와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엄마는 이 생을 살아갈 또 하나의 가치와 희망을 얻게 될듯 해. 우리 딸, 정말 정말 보고 싶구나. 그렇다고 빨리 나오라는 건 아니니까 충분히 놀다가 약속한 날에 만나자. 사랑한다, 우리 딸.

 

29주 5일된 너에게

엄마가

 

 

 

<6> 딸에게 쓰는 편지

 

축복아, 정말 오랜만에 노트를 꺼냈어. 엄마는 정말 게으른가 봐. 그동안 항상 이런 고민을 했단다.  '블로그에 일기를 올릴까? 아니면 여기 노트에 적을까?' 하고 말이야. 뭐, 쓸데 없는 고민들이지.

 

엄마에게는 20대에 쓴 일기장이 10여권 있어. SNS에 올리는 것들은 사라지기 쉽고 휘발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지만 종이 일기장은 그대로 남아 있으니 참 좋더라. 물론, 잃어버릴 수도 있고 변덕 때문에 없애버릴 수도 있지만 다행히 서랍 속에 잘 들어 있단다. 어쩌다 가끔씩 그 일기장들을 들춰 봐. 그 안에는 치열하고, 방황하고, 아팠던 20대 시절의 엄마가 고스란히 들어 있단다. 엄마는 힘든 시간을 잘 견뎌준 과거의 내가 참 대견하고 기특하지만, 때로는 그때의 일들이 떠올라 아플 때가 많아. 엄마는 유독 심한 '성장통'을 겪었는데, 우리 딸은 엄마보다는 덜 아팠으면 좋겠다. 물론, 아픈만큼 성장하긴 하지만 그래도 겪지 않아도 될 일은 그냥 건너 뛰어도 되지 않을까 싶어.

 

아무튼, '종이 일기장'만이 갖고 있는 '아날로그의 힘'을 기억하며 이 일기장을 마련했는데 일기 쓰는 게 '한달에 한번 쓰는 이벤트'가 되어 버렸으니 원. 뭔가를 꾸준히 하는 건 쉽지 않구나. 네가 태어나면 그때는 육아일기를 꾸준히 적고 싶은데 가능할까? 단 다섯 줄을 적더라도 너와 함께 하는 시간을 적어도 100일까지는 매일 기록하고 싶구나.

 

우리 딸, 벌써 29주 3일째다. 엄마는 요 며칠 소화가 잘 되지 않아. 배가 커져서인 듯 해. 트림을 하면 신물이 올라오지. 예정일까지 아직 두 달 넘게 남았는데 그땐 어쩌려고 벌써 이러는지 모르겠다. 외할머니와 통화하면서 속이 불편하다고 했더니 외할머니가 "다 그렇게 하며 애낳는 거야"라고 대답하셨단다. 아, 정말 그렇겠구나. 나는 그동안 같은 여자로서 엄마의 고생을 손꼽만큼도 헤아리지 못했단다. 아니, 상상할 수 없었단다.

 

겪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세상에는 참 많구나. 겪기 전에 상대의 아픔과 고통을 헤아릴 줄 아는 '타인에 대한 감수성'을 늘 지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면 서로 미워하거나 다투는 일은 많이 줄어들텐데 말이야. 엄마는 그동안 남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산다고 생각해왔는데 이번에 겪어보니 그렇지 않더라. 경험만큼이나 직접적으로 새겨지는 건 없지. 임신을 하고 엄마는 제2의 세상을 사는 것 같다.

 

오늘은 너의 큰 외삼촌이 2년 간 준비한 '공인중개사' 시험에서 합격한 날이야. 그동안의 노력을 알기에 정말 기뻤단다. 외삼촌이 막 공부를 시작했을 때는 회사가 어려웠을 때고, 퇴근 후 독학으로 공부를 했어. 그렇다보니 시행착오도 많았고, 겨우겨우 감을 잡을 때 즈음 컨디션 난조로 수술도 하고 입원도 하면서 결국 문제 한 개 차이로 시험에서 떨어졌지. 그리고 올해, 학원까지 다니며 다시 도전했어. 정말 열심히 했는데 시험을 보면 성적이 나오지 않아 혼자 자책도 많이 했단다. 주변에서 지켜보던 사람들도 고생했고 말이야. 그런데 마침내 합격했어. 노력은 결국 배신하지 않더라고.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몰라. 난생 처음 진지하게 '공부'라는 걸 해보며 스스로 '돌머리'라고 자책도 많이 했지. 그런데 이번 경험을 통해 '하면 된다'는 걸 깨달은 거야. 오빠가 자신을 더이상 책망하지 않아도 되니, 엄마는 그것만으로 기쁘단다.

 

엄마는 외삼촌이 오빠라서 정말 좋단다. 혼도 많이 나고 다투기도 많이 했지만, 외삼촌은 언제나 든든한 버팀목이었어. 우리집의 가장이자 아빠였지. 엄마보다 딱 5살 많을 뿐인데, 항상 아빠 같은 역할을 했단다. 그에 비하면 엄마는 늘 어리광쟁이였어. 항상 오빠에게 손 벌리고, 도움을 받기만 했지. 외삼촌은 공업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졸업반 때 조선소에 현장실습을 나갔어. 다른 친구들 모두 힘들어서 내려왔는데, 네 외삼촌 혼자 포기하지 않고 살아 남았단다. 외삼촌의 끈기 덕분이기도 했겠지만, 엄마는 그 이유를 알 것 같아. 포기하면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어떻게든 살아 남으려고 했던 거야. 가족을 위해. 꼭, 70~80년대 이야기 같지만, 엄마와 외삼촌, 이모는 어릴 적에 또래가 겪지 못할 어려움을 많이 겪었단다.

 

외삼촌은 설계 기술이 남보다 뛰어났어. 그렇게 조선소에서 배의 도면을 그리고 설계하며 오직 실력으로 살아남았지. 주경야독하며 야간대학도 졸업하고, 그렇게 20년동안 열심히 일했단다. 그 사이 결혼도 하고, 딸도 둘이나 낳고 말이야. 조선업은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던 주요 분야였는데 요 몇년 간, 중국 등과의 경쟁에서 밀려 사양사업이 되어 버렸어. 외삼촌이 다니던 조선소는 지역에서 말만하면 알아주는 회사였는데, 결국 위기를 맞고 만 거야. 외삼촌은 선택해야 했지. 회사를 지켜야 하나, 아니면 다른 길을 모색해야 하나? 하지만 전혀 비전이 없더래. 결국 외삼촌은 희망퇴직을 결정했고, 제2의 인생으로 다른 길을 모색했단다. 그리고 다행히 좋은 결과를 얻어냈어. 앞으로 네 외삼촌이 하고 싶은 일을 맘껏 펼치며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그동안 가족들에게 많이 희생했으니까 말이야. 엄마는 네 외삼촌을 생각하면 열심히 살게 된단다. 우리 축복이도 멋진 외삼촌이 있다는 걸 항상 자랑스러워했으면 좋겠어.

 

엄마는 오늘 '방과후 수업'을 다녀왔단다. '내가 잘할 수 있을까?' 조마조마하며 시작했던 수업이 어느덧 1년이 다 되어가. 작년 10월 회사를 관뒀을 때, 주변에서 방과후 교사 경력이 있는 선생님께서 나에게 이 길을 알려주셨어. 동화작가로서 아이들의 세계도 알 수 있고, 시간 대비 페이도 괜찮은 꽤 좋은 직업이라고 말이야. 그 말에 엄마는 자격증도 경력도 없으면서 '맨땅에 헤딩'을 했단다. 물론, 이 길을 소개해준 선생님의 도움이 컸어. 교재 선택이며, 제안서 작성 방법이며 많은 것을 도움 받았거든. 총 3군데에 지원해서 한 곳은 떨어졌고, 한 곳은 면접까지 봤고, 한 곳은 합격했어. 처음에는 굉장히 망설였지만, 정말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단다. 귀한 아이들을 많이 만났거든. 정말 안 예쁜 아이들이 없단다. 학생들을 통해서 매주 에너지를 얻고, 위안을 얻었어. 그리고 아이들과 만나는 일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도 깨닫게 됐지.

 

1년이 아직 안 되었지만, 그 사이에 수강생도 많이 늘었어. 또, 학생들도 이곳저곳에서 글쓰기 상을 받으며 실력을 인정 받았단다. 엄마도 뿌듯하게 즐겁게 일하고 있고 말이야. 12월 셋째주까지는 일할 계획인데 우리 축복이가 예정대로 1월에 태어나 준다면 참 좋겠다. 지금까지 엄마 힘들지 않게 뱃속에서 씩씩하고 건강하게 지내주고 있는데, 지금처럼만 해준다면 엄마는 막달까지 언니 오빠들과 책임감 있게 일을 마무리할 수 있을 거야. 도와줄 거지? 내년에도 아빠의 협조로 1년 간 수업을 더 해볼까 생각 중이야. 벌이는 둘째치고 엄마 적성에 맞고, 아이들도 참 예쁘거든.

 

지난 월요일에는 축복이를 만나러 병원에 다녀왔어. 원래는 토요일인 오늘이 정기검진일인데, 지난주 무리를 했는지 일요일부터 피가 비췄단다. 분홍빛 피였지. 다행히 통증이 없어서 집에서 쉬었는데, 월요일에도 여전했지. 그래서 조퇴한 내 아빠랑 함께 병원에 다녀왔단다. 병원에서 내진, 초음파검사, 태동검사를 받았어. 다행히 우리 축복이, 나 둘다 건강하대.

 

사실 그동안 엄마가 임산부인데도 너무 씩씩기하긴 했지. 소양증 말고는 크게 힘든 게 없어서 너무 자만했던 거야. 일도, 강연도 평소처럼 다 맡아서 했으니까. 불면증이 심할 때는 밤을 꼬박 새기도 했고, 또 걷기도 많이 걷고 말이야. 지난 주 금요일에는 서울에서 '청소년 진로체험' 강사로 일하게 되어 아침 10시부터 5시까지 야외에서 '동화작가 부스'를 운영했단다. 전날 서울에 올라가서 전시회도 보고 세진 이모 만나서 서촌 일대를 엄청 돌아다니고 재밌게 놀았지. <있는 것이 아름답다>라는 전시회도 보고 말이야. 그런데 그날 세진 이모네 집에서 한숨도 제대로 못 잤단다. 자리가 바뀌어서 그랬나 봐. 결국, 다음날 비몽사몽 상태로 야외에서 겨우겨우 버텼어. 또, 다음 날에는 아빠 친구들과 가족 동반 여행으로 청도에서 1박을 보냈지. 그렇게 무리를 했으니 피가 비추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지.

 

강의 신청이 왔을 때, 출산 전 마지막 서울행이라는 생각에 흔쾌히 허락했어. 마음 같아서는 바람 쐬러 여기저기 싸돌아다니고 싶지만 돈도 그렇고 할 일도 있고, 일부러 일을 벌이지 말자 생각하며 자제했었지. 엄마가 겪은 바로는 놀러가기 가장 좋은 기회가 바로 '강연 찬스'란다. 신기하게도 블로그를 통해 강연 신청이 왔고, 강연료에 교통비까지 지원해 주신다길래 "감사합니다"하고 넙죽 기회를 물었지. 이번 서울행도 나들이 하는 기분으로 다녀왔단다.

 

몸은 고됐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어. 그래서일까, 다행히 울 축복이가 건강하다고 해서 엄마는 무척 기쁘단다. 심지어 머리와 배 크기가 주수보다 2주나 크대. 또, 초음파 통해서 울 축복이 얼굴도 봤지. 꼭 창문에 얼굴을 꾹 눌러댄 것 같았어. '아기공룡 둘리' 같은 얼굴이었지. 원래 초음파로 보면 아기들은 못생겼대. '입체 초음파'를 하면 좀 다르다던데, 엄마랑 아빠는 입체는 하지 않을 생각이야. 이건 필수 검사는 아니고, 그냥 아기 얼굴을 보는 게 목표라고 하더라. 이미 25주에 정밀 초음파 통해서 우리 축복이 건강한 걸 확인했으니 그거면 된 거 아닐까 싶어. 입체초음파를 하는 동안 밝은 빛 때문에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을 수도 있다고 하더라.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서 엄마 아빠는 그건 건너뛰기로 했단다.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하지만 엄마 아빠 닮겠지, 누구 닮겠니? 그치?

 

가끔 네가 무척 보고 싶다. 아빠도 그렇대. 축복이를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고 얼른 보고 싶다셔. 아무리 그래도 엄마 뱃속에서 충분히 있다가 약속한 그 날에 만나자. 알았지? 정말 사랑한다, 우리 딸.

 

처음에는 '건강만 하렴' 생각했다가 최근에는 '엄마, 아빠 예쁜 곳만 닮아 태어나렴' 하며 욕심을 갖게 돼. 하지만 말이야, 엄마 아빠가 바라는 건 무조건 건강이야. 우리 축복이가 이 세상에 축복처럼 기적처럼 건강한 아이로 태어났으면 좋겠다. 축복이가 어떻게 생겼든 우릴 닮을 내 딸, 우린 정말 너를 사랑하고 응원할 거야. 사랑한다. 끝까지 널 지켜줄게. 건강히 놀다가 만나자.

 

29주 3일된 딸에게

엄마가

 

아빠 친구들 가족과 함께 떠난, 1박 2일 청도 여행.

'청도 프로방스 빛축제'에서 찍은 아빠와 엄마, 축복이 사진.

 

 

나는 가끔 내가 '보부상' 같다. 이곳저곳 장을 떠돌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보부상처럼 나도 글로 된 것이면 뭐든 팔고 다니니까.

그리고 오늘은 내가 '삭바느질 여인'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을 집집마다 다니며 일감을 받아와서 밤새도록 헤진 옷을 바느질하는 여인네. 코끝에 안경 하나 걸쳐 놓고, 초롱불에 의지해 열심히 바느질 하는 거지.

-

요즘 내가 딱 그렇다. 연말이라 여기저기 기관마다 마감이 급한가 보다. 딱 봐도 급해 보이는 외주가 마구 들어온다. 일을 찾아다니지 않는데도 들어온다. 그런 생각을 하면 무진장 감사하다. 퇴사 후, 1년 간을 그럭저럭 잘 버텼으니까. 분명 11월 말까지만 일하고, 외주를 맡지 않으려고 했는데 또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아, 계획 변경이다. 딱 10일까지만 일하고, 이후에는 날 위한 시간을 보내야겠다. 내가 할 게 얼마나 많은데! 출산가방도 싸야하고, 그 전에 축복이 옷들을 세탁해야하고... 또, 책도 좀 읽고 싶고, 잠도 푹 자고, 싶고. 영화도 봐야겠고. 아 몰라, 몰라! 머리가 엉켰다.

-

엉성하게 마무리 된 장편동화를 수정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올해의 창작은 이렇게 마무리해야 할 듯 싶다. 내년에는 축복양의 탄생으로 글 쓰는 게 더 힘들어질 듯 한데, 나는 지금 이 시간을 잘 보내고 있는 걸까?

-

작가로서의 균형을 잡는 게 필요할 듯 싶다. 창작과 외주. 두 개의 영역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작가는 오전에는 '창작', 오후에는 '일'을 한단다. 엄청 멋있다!!! 부럽다!!! 나의 패턴은 오전에는 '팽팽 놀기', 오후에는 '딴짓', 저녁에는 '일' 아니던가. 반성하자, 반성!

-

시험을 앞두고 나면 무진장 딴짓이 하고 싶어지는 것처럼, '데드라인' 걸린 일을 맡고 나면 자꾸만 그림이 그리고 싶어진다. 그래서 또 이렇게 되도 않는 그림을 그려 블로깅을 한다. 내가 폭풍 블로깅을 할 때는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아, 긍정미가 지금 미치듯 바쁜 때로구나." 그래도 걱정 마시라. 마감을 어기진 않는다. 책임감 강한 작가라고! 그냥 스스로 고달플 뿐.

-

이왕 보부상으로 사는 것, 좀 더 많은 품목을 개발해서 많은 것을 팔아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면 또 재밌고, 신나고. 맞다, 나는 변태작가다. 고통을 즐기는, 자학과 자뻑을 오가는 슈퍼변태작가!!!!

'꿀잼라이프 > 재잘재잘' 카테고리의 다른 글

[171215] 오늘의 기분 좋음  (4) 2017.12.15
25살, 27살에 남긴 메모  (4) 2017.12.12
[171204] 35주 5일 막달을 향해  (3) 2017.12.05
오랜만에 소식 전하기  (0) 2017.08.11
커피, 그리고 책 세권  (0) 2016.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