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김정미의 창작놀이터

 

<8> 딸에게 쓰는 편지

 

 

축복아, 엄마는 지금 봉리단길이야. 대봉교역 부근 웨딩거리에 있는 <브라운 슈가>라는 커피숍에 있단다. 서울에 갔을 적에 효창공원역에서 더티커피를 먹었는데 그 맛에 뿅 가서 혹시 대구에도 더티커피 맛있는 카페가 있는지 찾아봤어. 그러다 여기를 발견했지. 맛있는 커피 찾아 삼만리! 임산부가 이래도 되는 건지 몰라.

 

돈도 아껴야하고 해야할 일도 많은데 엄마는 이런 여유를 더 즐기고 싶다. 너무 좋구나. 커피 한잔 마시고 엄마는 작업실에 갈 예정이야. 내일부터 동화창작수업을 진행하기로 했는데 자료도 준비해야하고, 다음주에 예정된 공개수업도 준비해야 하거든. 화요일에는 다음 분기 수업 지도안도 내야하는데 엄마 속도가 너무 더디다. 뭔가 우선순위가 바뀐 것 같네. 엄마가 네 핑계를 좀 대도 될까? ㅎㅎ 우리 딸이랑 더 놀고 싶어 이렇다고 말이야. 물론, 내년에 네가 태어나면 그땐 꼭 붙어 있겠지만.

 

 

 

축복아, 올해가 이제 딱 두 달 남았어. 우리 축복이는 30주에 접어들었고, 엄마 배는 더욱 커지고, 시간은 잘만 흐른단다. 올해 계획 중 이룬 게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많지 않더라. 그런데 인생이란 고평해서 이루지 못한 것 대신 다른 것들을 얻고 겪었더라고. 그 중 하나가 바로 우리 축복이를 만난 일이지. 이렇게 멋진 일이 어딨을까? 이런 생각을 해본단다.

 

그래도 창작에 소홀히 한 건 좀 아쉽고 후회되는구나. 11월에는 마을스토리텔링 원고를 마무리 해야해. 그러고나면 12월에는 시간이 좀 생길듯 해. 그때는 쓰다 만 청소년장편소설을 마무리하면 좋겠는데, 그게 가능할지... 왜 자꾸 스스로 의심이 드나 모르겠다. 최근에 새로 시작한 장편동화는 쓰다 말았단다. '기승전결'에 '기'도 쓰지 않았는데 벌써 200매 가까이 분량이 치달아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호흡을 가다듬기로 했어. 실은 완성하면 장편공모전에 내려고 했거든. 그런데 욕심이었던 거지. 엄마는 왜 이렇게 늘 오버하는지 모르겠어. 어쩔 수 없이 많은 것들을 내년으로 미뤄야겠어. 축복이 너의 탄생과 함께 엄마는 100배 더 부지런해져야 할텐데, 가능할까?

 

갈수록 작품을 쓰는 마음가짐이 무겁네. 하긴, 내가 무슨 대작을 쓰겠다고 말이야. 다만, 즐겁게 쓰는 게 중요하겠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서 즐겁게 시작해보려 해. 그래, 그게 좋겠다. 엄마는 엄마의 페이스가 있으니까, 거기에 맞추면 되겠지. 그리고 엄마가 얼마나 욕심쟁이인데, 아동문학에만 국한되지 않고 폭을 넓혀가고 싶어. 이를 위해서라면 지금부터 내공을 쌓아야 할 것 같아. 아마 육아에 매진하는 동안, 설령 글은 못 쓰더라도 내공을 키우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헛된 시간이란 없을테니까 말이야.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축복이 자라는 거 보는 게 기쁨이겠지.)

 

축복아, 요즘 들어 네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졌어. 평소 태담을 하는 편이 아니거든. 엄마는 내가 수다쟁이인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혼잣말도 되게 잘하는데, 그 사이 혼잣말 하는 버릇이 없어졌나봐. 가만 보니, 거의 하루종일 비교적 조용히 보내고 있더라구. 대신 머리를 쉼없이 굴리지. 작품도 쓰고, 일도 하고.

 

태교에 손을 쓰는 게 좋다는데 엄마가 바느질, 색칠공부 이런 건 못해도 대신 열심히 글 쓰고 지내니까 우리 축복이한테 덜 미안해해도 되지? 하긴 엄마의 엄마, 외할머니는 그 당시에 특별한 태교는 못하셨대. 아, 그런데 태담은 엄청 하셨나 보더라. 그래서 아이들 다 똘똘하게 낳았다고. 우리 축복이도 똘똘했음 좋겠다. 이쁜 내 딸아, 오늘도 엄마 뱃속에서 재밌게 놀고 무럭무럭 자라렴. 사랑한다.

 

30주 1일 된 너에게

엄마가


순산을 위한 운동이 시급하다. 평상시 잘 걸어다니고, 하체가 워낙 튼튼하긴 하지만 꾸준히 운동을 하는 건 아니라서 좀 걱정이다.

더군다가 오늘은 '임신 어플'에서 이런 알람이 뜨기에 더욱 마음이 급해졌다. 자연분만을 하려면 운동을 하라는 뜻인데... 나는 좀 운동량이 부족한 듯도 하다. 그래서 하루에 2시간씩 걷기로 마음 먹었다.


요즘 게으름은 병이 되었고, 느지막히 하루를 시작하며 밥 먹고 산책을 다녀왔다. 우선 목적지 없이 무작정 강변 따라 걷기. 어찌나 추웠던지 강변이 꽁꽁 얼었다.


이 길을 걷다보니 문득 신랑이랑 연애할 적이 떠오른다. 장거리 연애를 하던 우리, 처음으로 신랑이 살던 이 동네에 내려왔었다. 그때는 설 연휴였고, 친 오빠가 사는 진해에 들렀다가 신랑 보러 이 동네에 왔더랬다. 강변을 따라가면 롯데시네마가 나오는데 영화를 보러 걸어가며 신랑에게 이렇게 말했다.

"난 여기에서 못 살 거 같아. 너무 휑하고 이상해."
이 동네의 첫인상은 정말이지 별로였다. 쌀쌀 맞고 운치 없달까. 그랬던 나, 이제는 누구보다 이 동네를, 이 강변을 좋아한다. 사계절을 살아보니, 그때 나는 하필 가장 횡량한 겨울의 강변을 봤던 거였다. 첫인상이 딱 별로일 수 밖에.


한 시간 산책하고, 강 반대편으로 건너가 다시 돌아오며 "차한잔 하러 어디갈까?" 고민 했다. 그러다 오랜만에 스타벅스를 찾았다. 금요일인데도 사람들이 어찌나 많던지. 백수들이 많은 걸까, 아니면 여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걸까, 아니면 지나가다 들린 걸까? 아무튼, 아이스 화이트초콜릿모카 마시며 무섭다던 <영선 가루카야 기담집>을 읽았는데 별로 안 무서운 게 함정. (-.-;) 출산 전에 괴담 단편 동화 써야하는데 큰일이로세!  어쨌든 간단히 얼개를 짜고 돌아왔다. 오늘부터 괴담 동화를 써보려한다.

집으로 오는 길에 '오늘의 기분 좋음'이자 '힐링 포인트' 몇가지를 건졌다.

종합병원 앞, 늘 궁금했던 팬시샵에 들러 구경 (*.*) 그러다가 이쁜 펜 발견! 도라에몽이랑 삐약이(이름이 있을텐데 모르겠당) 볼펜 한 자루에 1500원. 득템! 그리고 수업할 때 스티커 대신 사용할 리락쿠마 도장도 샀다. 히힛!


그리고 울 동네 gs 슈퍼에 들러 포장지가 귀여운 <몬스터 초코볼>도 샀다. 이렇게 모아두니 노랑노랑 에너지가 마구 차오르는 느낌!

그러고보면, 나 '키덜트'인가. 예전엔 몰랐는데 경제적 능력이 생긴 후 가만 들여다보니 내가 팬시, 인형 이런 걸 좋아하고 있었다. 놀라운 발견!

행복이 뭐 별거인가. 이런 게 행복이지. 재래시장에 들러 만두 두개(천원어치) 먹었더니 기분이 더 좋아졌다. 오늘의 기분 좋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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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이 작가님의 <동화창작교실>이라는 책을 요즘 틈틈이 보고 있다. 그러다 오늘 가장 뒷장에 내가 남긴 글귀를 발견했다.


바로 요것! 2010년 3월 9일 화요일. 27살의 내가 나에게 남긴 글이다.


"정미! 할 수 있어! 동화 쓸 수 있어! 혼자서라도 일단 해보는 거야. 지금부터라도 시작해 보는 거야. 내 나이 27살이니 10년만 정진해도 38살밖에 안 되잖니. 건투를 빈다. 우리 잘해보자♡"

젊을 적, 나는 꽤 진취적이었다. 늘 에너지가 넘쳐났다. 이 '에너지'가 장점이기도 했고 단점이기도 했다. 지나친 열정이 나를 성장시키기도 했고, 때로는 제풀에 지쳐 나가 떨어지게도 했다. 하지만 그 시절, 에너지마저 없었다면 나는 지금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다.

"치직치직, 이재한 경삽니다" 라는 대사가 유명했던 드라마 <씨그널>을 흉내내어 당시의 나에게 편지를 보내보련다.

"치직치직, 김정미 작가입니다. 당신은 30살에 동화작가가 되었고, 34살에 엄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38살에는 등단 8년차 작가가 됩니다. 오메, 무서운 것!"

이거 실화냐? 갑자기 땀이 송글송글. 난 아직도 부족한데, 시간은 참말 잘 흘러간다. 그래도 걱정이나 자책 보다는 스스르로를 격려해주고 싶다. 저렴한 월셋집을 전전하며 서울 일대를 누볐던 젊은 시절의 나, 비록 가난했을지언정 마음에 꿈을 품고 있어 부유했던 그 시절의 나, 네가 동화를 마음에 품은 덕분에 나는 지금 작가가 되었노라고. 고맙다.


요거는 보너스!

20대 시절, 일기만큼이나 다이어리를 무척 많이 썼는데 어느날 다이어리를 들춰보다 발견한 쪽지다.

25살의 내가 품은 소망이란 이랬다. 내 이웃들의 아픔을 잊지 않으며 살겠다. 사람의 가치를 최선으로 하겠다. 사람을 위한, 사람을 향한, 그들을 위한 글을 쓰겠다. 기자가 되겠다, 인간적인 기자. 40대에 출판하겠다(이땅의 노인들을 찾아서).

참 기특했고, 믿음직스러웠구나. 그때 마음에 품었던 마음들이 나를 여기로 데려와주었구나. 새삼 '마크툽'의 힘을 깨닫는다.

P.s 한때, 전국의 작은 마을들을 돌면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만나 그들의 삶을 글로 엮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바로 스토리텔링이었구나 싶다. 이 꿈은 아직도 유효하다. 동화에만 머물러 있기 보다는 다른 글들도 많이 써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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