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김정미의 창작놀이터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다. 그런데 왜 당신은 책을 읽지 않는가. 아마 그것은 '좋은(좋아하는) 작가'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나는 당신을 한껏 이해해주고 싶다).

사람들마다 취향이 있기 마련이다. 취향이라는 게 좋아하는 음식, 옷, 이성에만 국한된 건 아니다. 글에도 취향이란 게 존재한다. 어떤 이는 문장이 긴 글을 읽으면 책을 덮고, 어떤 이는 쉽게 술술 읽히는 글을 읽으면 책을 덮는다. 후자의 경우, 어렵게 쓰인 글을 읽어야 책 좀 읽었구나 하고 생각하기 때문이라 추측한다. 하여간 독서의 계절 가을인데도 책을 읽는 걸 멀리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작가를 만나지 못해서 그렇다.(그렇죠?)

지난 주말, 나는 내 스타일의 작가 한명을 만났다. 할렐루야! 그는 바로, '최민석' 소설가다. 최민석 작가로 말할 거 같으면! 음... 쉼표(,) 하나를 찍는 데도 심사숙고하는 분이다. 2010년에 단편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창비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데뷔(?)했고, 장편소설 <능력자>로 '2012년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다. 거기에다 에세이집까지 벌써 출간했으니 능력자긴 능력자다.


그리고 내가 읽은 작품은 바로 에세이집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다. 소설가의 작품 중, 구태여 소설은 읽지 않고 에세이를 읽은 주제에 "팬이올시다"라고 말하는 건 어쩐지 좀 성급하다. 하지만 어차피 작가가 내 블로그를 볼 리는 없기 때문에 나는 당당히 에세이를 읽고 팬이 되었다 밝히려 한다.(만약에 최민석 작가님이 내 블로그를 본다면... 음, 작가님 이제 곧 소설들을 읽을 것입니다. 그러니 제가 팬은 팬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최민석 작가가 동의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가 성석제와 이기호를 잇는 입담꾼이라 말하고 싶다. 나는 한바탕 수다를 떠는 것처럼 유쾌하게 써내려가는 글을 좋아한다.

 

성석제 작가의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팬이 된 것도 특유의 유쾌한 문체 때문이다. 이기호 작가의 경우는 어떠한가. <최순덕 성령충만기>같은 책을 보면 알 수 있듯,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방법이 참 기발하고 재미난 작가다. 문장이 통통 튀고 살아 있는 탓에, 마치 작가가 옆에서 말을 걸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어쩌면 나의 바람일 수도). 하여간 최민석 작가도 그렇다. 그의 글을 읽으며 KTX 안에서 미친 듯 웃었다.

 

최민석 작가는 스스로를 'B급 작가'라 칭한다. 그렇게 B급 같지도 않은데 왜 스스로를 B급이라 칭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기성 작가들과 달리 그가 풍기는 분위기는 제법 신선하고, 남다르긴 하다. 그런 분위기를 'B급'이라고 한다면, 나 역시 철저히 B급 독자가 될 것이다.

 

하여간 나는 주말에 최민석 작가의 에세이집을 읽고, 혼자 가슴에 손을 얹고 그의 팬이 되겠다 선언했다. 여행지에서 스마트폰으로 '최민석' 이름 석자를 검색했으며, 인터넷서점에 접속해 그의 소설책을 장바구니에 담았으며(아직 주문하지는 않았노라), 그의 팬카페에 79번째 식구로 가입하였고, 그의 블로그에 찾아가 댓글을 남겼다(그리고 댓글이 달렸다. 아싸라비야).

그리고 틈틈히 최민석 작가의 기사를 검색해보았다. 이 정도면 가히 '스토커' 수준 아닌가(라고 말하지 마라. 나 바쁜 사람이다). 하여간 기사를 검색해 보았더니 서울신문 기사가 상단에 떴는데, 기자는 이리 말하고 있다.

< 좋은 대학을 나와 높은 연봉을 챙기는 ‘엄친아’나 ‘엄친딸’이라면, 다소 불편할 만한 작가의 화법은 시종일관 책 속에서 싱싱한 활어회처럼 펄떡인다.>

하하하. 그렇구나. 나는 그의 문장이 불편하지 않으니까, 음, 그러니까 나는 엄친딸이 아닌 그냥 평범한 '우리엄마 딸'이었던 거야. 그래 그런 거야, 뭐 새삼스레. 음 맞어 맞어.

아- 앞으로 최민석 작가님 팬카페에서 정모 진행하면 따라가야겠다. 그리고 최민석 작가님 소설책을 당장 사서 완독해야겠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을 기다리는 기쁨을 성석제, 이기호, 김애란 작가에 이어 맛볼 수 있다니. 얏호! -라고 말하는 나는, 언제쯤 동화를 쓰나? 언제나 끝은 자기반성이다. 나는 엄친딸이 아닌 '우리 엄마 딸'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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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버피닉스'라는 배우를 알게 된 건, 영화 <아이다호>를 통해서였다. <아이다호>는 순전히 카아누리브스가 출연해서 보게 됐다. 고2 무렵, 나는 영화를 몹시도 사랑하는 '영화광'이었는데, 키아누리브스에게 '꽂혀' 있었다. 그래서 그가 출연한 영화라면 죄다 찾아봤다.

 

  키아누리브스가 출연한 영화들을 섭렵하던 중, 마침내 <아이다호>(구스반산트 감독)를 만나게 됐다. 아이다호를 떠올리면 리버피닉스와 아지랑이, 끊없이 펼쳐진 길이 생각난다. 길 위에서 기면증을 호소하던 조각상 같은 얼굴의 리버피닉스. 영화에서 빛나는 건, 키아누리브스가 아닌 그였다.

 

 

  리버피닉스는 23살에 요절했다. 원인은 약물중독이라고 했다. 10대에 <스탠바이미> 영화를 통해 이름을 알렸고, 그 후에 <허공에의 질주> 등의 영화를 찍었다.

 

  리버피닉스는 원래 '뱀파이어와의 인터뷰'에서의 기자역(크리스찬 슬레이터 분)을 맡기로 내정돼 있었다. 그러나 촬영을 앞두고 사망하고 만다.

 

  리버피닉스는 키아누리브스의 절친한 친구였다. 얼굴을 보면 알겠지만, 매우 또렷하고 잘생긴 이목구비 덕에 인기도 많은 배우였다.

 

   내가 리버를 알게 된 건, 그가 세상을 뜬 지도 한참 뒤의 일이다. <아이다호>를 보고 리버에게 반하지 않을 사람들이 있을까. 그렇게 지금도 사람들은 리버피닉스를 추억하고 있다. '이렇게 잘 생긴 배우가 있었다니!' '이렇게 멋진 배우가 요절을 했다니!' 하며, 처음은 호기심에 두번째는 저릿함에, 세번째는 그리움에 그의 이름을 검색할지 모른다.

 

  길게 피어오른 아지랑이, 그 위를 터벅터벅 걸어가는 청년. 발작과 함께 잠에 빠져드는 <아이다호>의 리버피닉스. 이게 내가 기억하는 그의 모습이다.

 

  "난 도로의 감식가야, 평생 길을 맛볼 거야. 난 돈을 받지 않고도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어."

<아이다호> 중.

 

Tip

* 리버피닉스의 동생도 연기자다. '호아킨 피닉스'. 리버와는 얼굴이 전혀 딴판으로 생겼는데, 아마 엄마가 다를 것이다.

* <아이다호>를 연출한 구스반산트 감독은 이후 주옥같은 작품들을 연출했다. <엘리펀트> <파라노이드파크> <투다이포> <굿윌헌팅>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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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릴 적, 글 쓰는 걸 매우 좋아하는 아이였다.

 

형편이 좋지 않아 학창시절 대부분을 조부모님 밑에서 자랐는데, 내가 자란 동네는 시골 바닷가 마을이었다. 지금은 '올레길 코스' 중 하나가 된 곳(내 고향은 제주다).

 

나는 초등학교에 들어가서야 한글을 배웠다. 언니는 나보다 7살이 많았고, 오빠도 5살이나 많았는데 한번도 나에게 한글을 가르쳐주지 않았다. 왜 그랬는지 이유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할머니는 한글을 몰랐지만, 할아버지는 한글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도 내게 배워주지 않았다. 아마 '교육열'이 없는 분들이셔서 그런가보다. 한글이라곤 내 이름 세 자 쓰는 게 전부였던 나는,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한글을 배웠다. 다행히 한글을 금방 익혀, 받아쓰기 시험이 두렵지 않았다. 글씨도 이쁘게 써서 칭찬도 많이 들었다. 물론, 연필잡는 법이 이상하다고 지적은 많이 받았지만, 선생님이 지나가고 나면 나는 항상 내 식대로 연필을 잡았다. 그리고 아직도 희안하게 연필을 잡는다.

 

학교 다니면서 가장 즐거웠던 건 '일기 쓰기' 였다. 저학년 때 했던 '그림 일기'를 비롯해 고학년이 되어 시작한 '그냥 일기'를 쓰는 것도 모두 즐거웠다. 우리 남동생은 일기쓰는 걸 싫어해서 저녁마다 부모님과 실랑이를 벌였는데, 당시 나는 그런 남동생이 이해되지 않았다. 일기쓰는 게 왜 싫어? 얼마나 재밌는데? 이렇게 생각한 것 같다. 차라리 내가 대신 써줄게! 이런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담임선생님은 종례 시간에 내 일기를 아이들에게 읽어주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사적인 이야기를 감히!' 이러면서 '발끈'할 수도 있는 일이지만 그때 난 참 행복했다. 누군가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 일이었으니까. 나는 그때 애정에 목말라 있었던 것 같다.

 

3학년이 되어서 전학을 갔는데, 그 학교는 1반만 있는 작은 학교였다. 거기에서도 선생님은 종례시간에 내 일기를 모범으로 아이들에게 읊어주곤 했다. 당시 3학년 담임이셨던 박영숙 선생님은 내 글을 참 좋아했다. 방과후에 혼자 학교에 남게 해, 글쓰기 지도를 해주셨다. 내가 쓴 동시가 좋다며 함께 다듬는 작업을 했고, 그 동시가 신문사에서 주최하는 대회에서 대상을 받기도 했다. 나를 예뻐해주는 선생님을 나도 아주 좋아했다.

 

4학년에 올라가면서 담임선생님이 바뀌었다. 그 선생님은 굉장히 쌀쌀맞은 분이셨다. 내 일기를 읽어주는 일도, 다른 누구의 일기를 읽어주는 일도 없었다. 일기지도를 따로 해주는 것도 아니었다. 스승의날에 우리들이 보낸 편지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그런 몰인정한 여자였다. 당번이었던 나는 짝꿍과 소각장에 쓰레기를 버리러 갔다가 선생님 쓰레기통에 우리들 편지가 담겨 있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 아직도 그 선생님의 이름과 얼굴이 잊혀지지 않는다. 여기에 쓰고 싶지도 않다.

 

나의 일기쓰기는 초등학교를 졸업하면서 함께 졸업했다. 질풍노도의 시기에 돌입한 나는, 친구들과 '교환일기장'이라는 걸 썼다. 혼자만의 일기는 다이어리에 조그맣게 기록하곤 했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일기를 썼다면 참 좋았을텐데. 그랬다면 그 시절이 덜 외로웠을텐데. 중학교는 초등학교와 전혀 다른 곳이었다.당시의 나는 자주 상처받았고 외로웠다.

 

언제부턴가 초등학교 때 썼던 일기장이 사라졌다. 가족 중 누군가가 버린 모양인데, 아마 외숙모로 추정된다. 그래서 아주 오랫동안 악한 감정을 갖고 살았다. 동화를 쓰려는 내게, 어린 시절 일기장이 없다는 건 치명적인 일이다. 그 일기장들이 남아있었다면, 큰 재산이 됐을텐데.

 

 

제주도 시골집에 갔다가 위의 상장들을 발견했다. 거의 초등학생 때 받은 상장이다. 나보다 7살이 많은 언니는 나와 싸우면 보복(?)으로 내가 받은 상장을 마구 찢곤 했다. 아마 셈이 나서 그랬을 것이다. 언니의 행동에 나는 더욱 교활하게 복수했다. 바로 언니의 교과서를 마구 찢어버린 것이다. 꽤나 살벌한 전쟁이었던 셈. 지금 생각하면 참 철딱서니 없다. 그래도 그땐 언니를 꼭 이기고 싶었다!!!

 

상장의 팔할은 글짓기 상이다. 선행상도 한 장인가 눈에 띄고, 독후감 상도 있고, 그림그리기 상도 있다. 그래도 가장 많은 건 글짓기 상이다. 나는 어릴 적부터 글쓰는 걸 좋아했다. 맞아, 그런 아이었다. 항상 뭐든 쓰는 아이었다. 한때 시인이 되고 싶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는 기자가, 지금은 동화 작가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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