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살, 27살에 남긴 메모
이금이 작가님의 <동화창작교실>이라는 책을 요즘 틈틈이 보고 있다. 그러다 오늘 가장 뒷장에 내가 남긴 글귀를 발견했다.
바로 요것! 2010년 3월 9일 화요일. 27살의 내가 나에게 남긴 글이다.
"정미! 할 수 있어! 동화 쓸 수 있어! 혼자서라도 일단 해보는 거야. 지금부터라도 시작해 보는 거야. 내 나이 27살이니 10년만 정진해도 38살밖에 안 되잖니. 건투를 빈다. 우리 잘해보자♡"
젊을 적, 나는 꽤 진취적이었다. 늘 에너지가 넘쳐났다. 이 '에너지'가 장점이기도 했고 단점이기도 했다. 지나친 열정이 나를 성장시키기도 했고, 때로는 제풀에 지쳐 나가 떨어지게도 했다. 하지만 그 시절, 에너지마저 없었다면 나는 지금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다.
"치직치직, 이재한 경삽니다" 라는 대사가 유명했던 드라마 <씨그널>을 흉내내어 당시의 나에게 편지를 보내보련다.
"치직치직, 김정미 작가입니다. 당신은 30살에 동화작가가 되었고, 34살에 엄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38살에는 등단 8년차 작가가 됩니다. 오메, 무서운 것!"
이거 실화냐? 갑자기 땀이 송글송글. 난 아직도 부족한데, 시간은 참말 잘 흘러간다. 그래도 걱정이나 자책 보다는 스스르로를 격려해주고 싶다. 저렴한 월셋집을 전전하며 서울 일대를 누볐던 젊은 시절의 나, 비록 가난했을지언정 마음에 꿈을 품고 있어 부유했던 그 시절의 나, 네가 동화를 마음에 품은 덕분에 나는 지금 작가가 되었노라고. 고맙다.
요거는 보너스!
20대 시절, 일기만큼이나 다이어리를 무척 많이 썼는데 어느날 다이어리를 들춰보다 발견한 쪽지다.
25살의 내가 품은 소망이란 이랬다. 내 이웃들의 아픔을 잊지 않으며 살겠다. 사람의 가치를 최선으로 하겠다. 사람을 위한, 사람을 향한, 그들을 위한 글을 쓰겠다. 기자가 되겠다, 인간적인 기자. 40대에 출판하겠다(이땅의 노인들을 찾아서).
참 기특했고, 믿음직스러웠구나. 그때 마음에 품었던 마음들이 나를 여기로 데려와주었구나. 새삼 '마크툽'의 힘을 깨닫는다.
P.s 한때, 전국의 작은 마을들을 돌면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만나 그들의 삶을 글로 엮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바로 스토리텔링이었구나 싶다. 이 꿈은 아직도 유효하다. 동화에만 머물러 있기 보다는 다른 글들도 많이 써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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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207] 현대판 보부상
나는 가끔 내가 '보부상' 같다. 이곳저곳 장을 떠돌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보부상처럼 나도 글로 된 것이면 뭐든 팔고 다니니까.
그리고 오늘은 내가 '삭바느질 여인'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을 집집마다 다니며 일감을 받아와서 밤새도록 헤진 옷을 바느질하는 여인네. 코끝에 안경 하나 걸쳐 놓고, 초롱불에 의지해 열심히 바느질 하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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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가 딱 그렇다. 연말이라 여기저기 기관마다 마감이 급한가 보다. 딱 봐도 급해 보이는 외주가 마구 들어온다. 일을 찾아다니지 않는데도 들어온다. 그런 생각을 하면 무진장 감사하다. 퇴사 후, 1년 간을 그럭저럭 잘 버텼으니까. 분명 11월 말까지만 일하고, 외주를 맡지 않으려고 했는데 또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아, 계획 변경이다. 딱 10일까지만 일하고, 이후에는 날 위한 시간을 보내야겠다. 내가 할 게 얼마나 많은데! 출산가방도 싸야하고, 그 전에 축복이 옷들을 세탁해야하고... 또, 책도 좀 읽고 싶고, 잠도 푹 자고, 싶고. 영화도 봐야겠고. 아 몰라, 몰라! 머리가 엉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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엉성하게 마무리 된 장편동화를 수정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올해의 창작은 이렇게 마무리해야 할 듯 싶다. 내년에는 축복양의 탄생으로 글 쓰는 게 더 힘들어질 듯 한데, 나는 지금 이 시간을 잘 보내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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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로서의 균형을 잡는 게 필요할 듯 싶다. 창작과 외주. 두 개의 영역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작가는 오전에는 '창작', 오후에는 '일'을 한단다. 엄청 멋있다!!! 부럽다!!! 나의 패턴은 오전에는 '팽팽 놀기', 오후에는 '딴짓', 저녁에는 '일' 아니던가. 반성하자, 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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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을 앞두고 나면 무진장 딴짓이 하고 싶어지는 것처럼, '데드라인' 걸린 일을 맡고 나면 자꾸만 그림이 그리고 싶어진다. 그래서 또 이렇게 되도 않는 그림을 그려 블로깅을 한다. 내가 폭풍 블로깅을 할 때는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아, 긍정미가 지금 미치듯 바쁜 때로구나." 그래도 걱정 마시라. 마감을 어기진 않는다. 책임감 강한 작가라고! 그냥 스스로 고달플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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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왕 보부상으로 사는 것, 좀 더 많은 품목을 개발해서 많은 것을 팔아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면 또 재밌고, 신나고. 맞다, 나는 변태작가다. 고통을 즐기는, 자학과 자뻑을 오가는 슈퍼변태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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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1204] 35주 5일 막달을 향해
오랜만에 그림을 그려봤다. 이것도 꾸준히 하면 좋겠지만, '꾸준히'는 내 것이 아닌가 보다. 뭐든 거창한 목표를 갖고 시작했다하면 '작심 3일'이다. 그나마 꾸준히 이어온 게 '글쓰기'다. 물론, 하루 정해진 시간에 글을 쓰는 '성실함'은 일찌감치 버렸지만. 노력해도 쉽지 않은 게 있다. 그게 나에겐 시간을 정해 꾸준히 하는 거다. 나는 절대적인 시간의 양보다 '집중력'이 중요한 사람이다. 아무리 시간이 많이 주어져도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으면 소용 없다. 반면, 아무리 시간이 촉박해도 X줄이 타면 뚝딱 해낸다. '데드라인형 인간'인 셈이지. 아, 씁쓸하다. 내가 오늘 이렇게 포스팅을 열심히 하는 것도 실은 마감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벌써 몇 시간째야 이거. 요것만 하고, 빨리 일해야지.
[손그림 1]
거울을 볼 때마다 깜짝 놀란다.
'언제 이렇게 배가 불렀지?'
예전에는 사람들이 나를 임산부로 볼까 궁금했다. 요즘에는 코트로 꽁꽁 가려도 배가 쏙 나왔다. 어딘지 모르게 걷는 자세도 펭귄처럼 뒤뚱뒤뚱해 보이는 듯 하다. 그런데, 정말 웃긴 게 이렇게 배가 나왔는데도 가끔은 "남들이 나를 임산부로 볼까?" 궁금하다는 거다. 그냥 살찐 줄 알까봐 ㅎㅎㅎ 역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객관화하기 가장 힘들다. 그러니 사는 거겠지. 착각 속에서.
매주 월요일은 초등학교 '돌봄교실' 특기적성 수업을 나가는 날. 학교에서 우연히 마주친 잘 모르는 선생님께서 내 배를 보더니 "어머, 이제 얼마 안 남았네요?"라고 하셨다. 아! 나는 이제 누가 봐도 임산부구나. 선생님의 말에 궁금증이 모두 날아가 버렸다. "네, 1월이에요." 했더니 "금방이네!"라고 하셨다. 정말 처음 보는 선생님이셨는데, 괜히 반가웠다. ㅎㅎ
이제는 아이들도 달려와 "선생님 임신했어요?"라고 묻는다. 그 다음에 묻는 것, "선생님 아기 이름이 뭐예요?". 아직 안 지었다고 하면 열심히 지어주신다 ㅎㅎ 어떤 친구는 아가 이름 목록을 내게 써서 주기도 한다. 귀여워, 아주! 너희들처럼 울 축복이도 귀여웠으면 좋겠어. 어떤 녀석들은 내 배에 귀와 손을 대고 아이가 움직이는지 살핀다. 태명이 축복이라는 걸 알게 된 후로는, "축복아, 움직여봐. 내가 너 궁금해서 이렇게 손대고 있잖아. 잠자는 거야? 잠꾸러기."라고 말하는 아이도 있다. 귀엽다, 귀여워, 아우, 귀여워 정말!!!!! 아가 낳으면 토요일 수업 말고 월요일 돌봄교실은 이제 그만둬야 하는데, 참말 참말 아쉽다. 축복이 조금 크고 다시 기회 생기면 꼬옥 한번 더 도전해보고 싶다.
34주 5일! 출산일까지 이제 딱 5주 정도 남았다. 앞으로 배가 더욱 더 나오겠지? 다행히 하체가 튼튼해서 지금까지는 잘 버티고 있다. 원래 불면증도 심했는데 막달로 갈수록 잠이 잘 온다. 원래는 막달이 될수록 배가 불편해서 잘 못 잔다는데, 아직까진 바로 누워도 잠도 잘 온다. 다만, 이제 자유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다보니 마음이 급하다. 할 것은 많고, 정리는 안 되어 어수선하고. 엎친 데 덥친격으로 곧 이사까지 앞두고 있다. 어쩌면 출산 전에 이사하는 게 힘들지도 모르겠다. 이제 마음을 놨다. 다 잘 될 것이다. 인생에 있어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나쁠 것은 하나도 없다. 다 순리대로 진행될 테니까.
[손그림 2]
1학년 현정이는 요즘 스트레스가 많단다. 잔뜩 찌푸린 얼굴로 내게 와서 이렇게 말한다. 어찌나 귀엽던지 ㅎㅎ
"선생님! 요즘 저는 스트레스가 많아요. 지진 스트레스! 좀비 스트레스! 화장실 귀신 스트레스! 벽 귀신 스트레스! 칠판 스트레스! 아침 잠 스트레스!"
좀비 스트레스는 영화 <부산행>을 본 후부터 시작됐고, 칠판 스트레스는 칠판이 무너질까 봐 무서워서 그렇단다. 아침 잠 스트레스는 아침에 더 자고 싶은데 일어나야해서 그렇고. 아이라고 생각이 어린 것은 아니다. 다 저마다의 자리에서 어른들과 똑같이 무서워하고 아파하고 힘들어한다.
그나저나 요즘 아이들은 내가 어릴 때와 마찬가지로 '귀신'을 무서워하면서도 열광한다. 학교 옆 문구점에 파는 조악한 괴담집은 여전히 존재하고, 인기가 많다. 아이들에게 빌려서 읽어봤더니 무섭기 보단 웃겼다. 왜냐하면 '맥락'이 없어서. 하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은 무서워한다. 이 아이들을 오싹 떨게 할 작품을 써야하는데, 큰일이로세.
[손그림 3]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단연 인기템인 '액체괴물'!!!!!
웬 콧물처럼 생긴 덩어리를 아이들은 돈을 주며 산다. 손으로 늘어뜨리고 탱탱볼처럼 뭉쳐서 던지고 난리다. 가방 안에 하나씩 넣고 다니다가 눈치 보며 꺼내서 조물락거린다. 최근 뉴스에서 액체괴물 소재가 몸에 좋지 않다고 나왔나 보다. 사실 좀 당연하다. 생긴 것만 딱 봐도 본드가 연상되고, 콧물이 떠오른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가장 친근한 장난감이다.
생각해보면 요즘 아이들은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 듯 하다. 올해 핫했던 아이템 중 하나가 '스피너'였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사랑받았던 장난감. 스피너의 용도는 딱 하나. 손을 놀리는 게 목표다. 가만히 있으면 뭔가 초조하고, 핸드폰이라도 마구 터치해야 할 것 같으니까. 그런 조바심이 만들어낸 장난감이 아닐까.
어쩔 때는 내 동화가 액괴보다 못한 것 같다. 액괴야, 부럽다. 아이들의 마음을 훔친 비결이 뭐니? 내 영혼을 팔게, 나에게 알려주렴, 네 매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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