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기 아까워 덮다.
이 가을에 최민석 작가의 에세이집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를 만난 건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나는 섣부른 측면이 있어, 이 책의 1/10도 읽지 않아 "최민석 작가의 팬이 되었노라" 선언했다. 그리고 "최민석 작가님 짱"이라며 마음 속으로 애정 고백을 했다.
하여간, 책을 읽다가 마음이 편안해진 것은 오랜만의 일이다. 지금으로부터 3개월 전, 동화 수업도 재미 없고 글도 잘 써지지 않아 우울했던 적이 있다. 또 회사때문에 심신이 고달파 마음 속에서 파괴 본능이 솟아나던 즈음이었다. 그래서 주변 언니들에게 책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신춘문예를 통해 소설가로 등단을 한 후 동화작가를 준비 중인 한 언니는 나에게 <내려 놓음>이라는 책을 권했다. 그러나 왠지 손길이 가지 않았다. 그때 무슨 책인가를 샀는데, 뭐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보면 그 책이 나를 '힐링' 해주진 못했나보다.
그때 이 책을 만났으면 어땠을까. 음, 그러고보니 그땐 출간되지 않았을 수도 있겠군. 어떻게든 지금에라도 이 책을 알게 된 건 참 기쁜 일이다.
토요일, 변산으로 1박 여행을 떠나기 위해 서울역에 갔는데 너무 일찍 도착한 나머지 서점에서 시간을 떼웠다. 요즘 책을 사느라 가랑이 찢어질 정도로 지출을 한 입장이라 '책 구매'는 자제하려 했다. 그러나 나는 초콜릿에 절로 손이 가고야마는 '초콜릿 중독자'의 마음처럼 나도 모르게 서점으로 향했고, 신간들 속에서 운명처럼 이 책을 손에 거머쥐고 말았다. 좀 오버스럽지만 하여간 그렇다.
오늘도 꼰대 때문에 열이 받아 있는 상황이었다. 집에 오자마자 문을 열고 욕을 마구 뱉었다. "이런 십장생, 말미잘, 띠기리, 삐리리-" 숙녀의 입에서 무슨 욕이냐고 묻는다면, 굉장히 다양하고 아름다운 욕이 나온다고 말해주고 싶다. 하여간 무궁무진한 욕을 내뱉고 났는데도 화가 안 풀려 와인을 찾았다. 생각해보니 어젯밤, 와인병 바닥에 고여있던 와인을 목 안에 털어 넣었던 게 기억났다. 그래서 택한 것이 책 읽기였다. 그러고 나니까 신기하게 힐링이 되었다. 요즘은 '힐링'이 대세라던데, 최민석 작가님을 '힐링전도사'로 추앙하고 싶은 심정이다.
이런 말을 하려고 일기를 쓰는 건 아닌데, 책을 읽다보니 무슨 말이든 내뱉고 싶어졌다. 그런 날이 있다. 마구 말을 쏟아붓고 싶은데 누구랑도 말하기 싫은 날. 그래서 나는 글로 말을 하기로 했다. 아무도 상관하지 않을 나만의 공간에서 내 식대로 말이다.
책을 읽으며 최민석 작가는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진지'와 '유쾌'의 단어를 맞바꿔 보려한다. <유쾌하면서도 진지한 사람>으로 정정. 왠지 '진지'보다는 '유쾌'가 선행되는 사람이니까. 이런 삶은 내가 지향하는 삶이다.
그러나 실제로 나는 어떤가. 동화를 써도 (비록 습작이라 하지만) 신파적인 아름다운 동화만 쓰지 않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 정서가 그렇게 형성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글은 개성 있고 재밌는 글이다. 이쯤되니 내가 뭐라는지 나도 모르겠다.
그렇게 밤이 깊어간다. 어쩐지 힘이 나는 10시 40분이다.
사실 나는 이 책에서 발견한 사소한 것들과 느낌들을 차근차근 적고 싶었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
"커피볶는 곰다방이 문을 닫은 게 경영 때문이었다고요? 이럴 수가. 나 거기 단골이었거든요."
"<봄날은 간다> 참 좋죠. 취향이 나와 같으시네요."
"취향을 나눈다는 것은 은밀하고도 내밀한 고백이라는 말에 동의합니다." 따위의 것들.
으엥? 이건 뭐 작가한테 보내는 팬레터도 아니고. 하여간 혼자서 책을 읽다보니 누구한테라도 말을 걸고 싶었던 것이다. 작가가 말할 사람이 없어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처럼(제가 넘겨 짚었다면 죄송합니다).
아참, 이 말을 빼먹었다.
나는 이 책을 176페이지까지 읽다가 덮었다. 왜냐하면 손으로 넘겨야할 페이지가 줄어드는 게 슬펐기 때문이다. 그만큼 재밌었다는 뜻이다. 오늘처럼 꼰대한테 치여서 열 받을 때 읽어야겠다. 이 책을 이번주의 '힐링북'으로 임명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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