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황제] 정원사가 된 중국의 마지막 황제
[영화리뷰] 시대가 지나도 사랑받는 '스테디셀러'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진부하고도 새삼스런 이러한 사실을 영화 <마지막 황제>를 보며 다시금 깨달았다.
영화 <마지막 황제>는 제60회 아카데미 작품상을 포함해 9개 부문을 모두 휩쓸며 전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다. 청나라 12대 황제로 즉위한 '푸이'가 역사의 회오리 속에 휘말려 식물원의 정원사로 전락하는 자전적 영화다.
엑스트라 1만 9천여명, 유럽인의 눈에 비친 중국은?
감독은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영화사상 처음으로 서유럽인이 중국인의 드라마를 그렸다는 점에서 이슈가 됐다. 엑스트라만 1만 9000여명. 중국 베이징과 자금성에서 촬영됐다.
이 영화가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는 이유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점에 있을 것이다. 한 나라를 휘어잡은 당대의 최고 황제가 식물원의 정원사로 전락하다니. 이보다 더 소설같고 영화같은 스토리가 어딨겠는가.
영화는 주인공의 삶을, 과거-현재를 오가며 중첩적으로 보여준다. 가장 첫번째 장면은 황제의 '오늘'에 대한 모습이다. 한 남자가 화장실에 들어가 동맥을 끊고 자살을 기도하지만 곧 미수에 그치고 만다. 그의 이름은 푸이. 바로 중국의 마지막 황제다.
여기에서 영화는 푸이의 어린시절, '과거'로 넘어간다. 1908년 3살의 푸이는 최고의 권력자인 서태후의 지명으로 광서제의 후계자가 되어 자금성에 들어간다. 푸이가 황제가 된 후,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여인 서태후는 숨을 거둔다. 청나라의 황제가 된 푸이는 6세까지 내시와 궁녀들 사이에서 성장한다. 1912년 '신해혁명'이 일어나고 황제의 존호와 궁전 및 사유재산만 인정받은 채 푸이는 퇴위하게 된다. 그리하여 황제는 자금성 밖을 외출할 수 없게되었는데, 이 즈음 자금성 밖에서는 청나라가 몰락하고 중화민국이 탄생한다. 그리고 푸이는 궁밖에 나섰다가 변화한 시대의 흐름을 보고 놀라게 된다. 그동안 '우물 안 개구리' 아니, '우물 안 황제'였던 것이다.
중국의 마지막 황제가 정원사가 되기까지
꼬마 황제 푸이가 14세 되던 해, 영국인 가정교사 레지널드 존스턴이 자금성 안으로 들어온다.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전거를 들여와 황제에게 주고 안경을 쓰게 하는 등 신식물건을 접할 수 있게끔 도와 준다. 아주 능숙한 영어로 가정교사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푸이를 보고 있노라면, 그가 마음 속에 품은 신식문화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오랜 관습에 반발하면서도 그는 17세의 완용공주를 황후로, 12세의 문연공주를 후실로 맞아들인다. 그의 부인들은 마치 친자매처럼 친하게 지낸다.
1924년 군사혁명이 일어나고 푸이는 추방되는 동시에 반역죄로 감시받는 신세가 된다. 푸이는 두 아내와 함께 톈진으로 도피하고 후실은 문연공주는 푸이의 곁을 떠난다.
푸이는 다시 권력을 잡고 싶어 한다. 황제가 되는 꿈을 포기할 수 없다. 그리하여 일본에게 기대기 시작한다. 완용공주는 그런 황제에게 실망하고 경계할 것을 요구하지만, 이미 공주 역시 아편에 입을 대면서 점점 망가져만 간다. 일본의 획책에 넘어간 푸이는 신생 만주국의 황제가 되지만, 결국 만주국은 멸망하고 푸이는 소련의 전범 수용소로 송치된다.
1950년 소련에서 중국으로 후송된 푸이는 공산정권에 의해 10년간 재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식물원의 정원사가 되어 자유의 몸이 된다.
영화를 좀 더 이해하고 싶다면?
<먼나라 이웃나라-중국편> 추천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물론, 배경지식이 없더라도 영화에 집중하다보면 곧 스토리를 이해할 수는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중국사에 무지한 사람이라, 영화를 보는 내내 궁금증이 많이 일었다. 그래서 영화를 보자 마자 영화속 배경이 된 사건들과 그 시기의 중국의 상황을 찾아보기에 이르렀다.
도움이 되었던 책이 바로 이원복 교수가 쓰고 그린 <먼나라 이웃나라-중국편>이다. 검색하면 중앙일보에 게재했던 만화를 원본으로 볼 수 있다. 근대편을 읽고 현대편을 읽으면 중국사에 대한 이해가 정립되리라 생각한다. 나 역시 책을 읽고 나서야 비로서 당시 중국의 상황이 이해되면서 중국사에 대한 흥미가 더욱 증폭됐다.
중국의 마지막 황제를 보며 고종을 떠올리다
내가 처음에 이 영화를 봤을 때, 중국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었던 것처럼 다른 관객들도 그럴 수 있다고 판단하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볼까 한다.
중국의 마지막 황제 푸이를 보는 내내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바로 '고종'이다. 누군가는 영친왕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그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아니던가. 그러나 사실 영친왕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고 실제로 왕이 되지는 못했기에 조선의 마지막 왕인 '고종'과 빗대고 싶다.
유럽 열강과의 문호 개방 압력에 시달리던 고종은 갑오개혁을 단행한 후 일본의 힘을 빌려 내정개혁을 하고자 했으나 결국 일본에 의해 제거(?) 당한다. 푸이 역시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일본의 도움을 얻어 황제가 되지만 결국 꼭두각시처럼 이용만 당하고 만다.
시대의 흐름에 동조하지 못하고 열강의 힘을 빌려야만 했던 나약했던 왕. 결국 이용당하고 버려졌던, 백성들에게 까지 미움을 받아야만 했던 왕. 이런 슬픈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고종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푸이는 만주를 떠나 톈진에서 신식문물에 무섭게 파고든다. 그동안 참았던 호기심과 욕망, 욕구들이 분출하고만 것이다. 신식 양복을 차려입고, 음악에 맞춰 서양인들과 댄스를 추고, 술이 빠지지 않는 사교의 장으로 흠뻑 빠져든다. 오로지 자신만의 욕망에 충실했던 것이다. 그 시각, 백성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시대의 흐름은 무엇을 요구하는지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다시 왕위에 오르고 싶었던 푸이는 일본의 도움을 얻어 왕권을 되찾는다. 그러다 꼭두각시 노릇만 하다 결국 공산정권에 의해 왕권을 빼앗기도 만다.
왕에서 평민으로. 어쩌면 후련하지 않았을까?
정신교육을 받는 동안의 푸이의 모습은 정말 안쓰럽다. 이 나약한 사내를 누가 황제라고 믿겠는가! 어릴 적부터 최고의 권력을누리고 있던 그는 혼자서 할 줄 아는 게 많지 않다. 먹는 것, 입는 것, 이동하는 것까지 신하들의 시중이 있었다. 그런 그가 하루아침에 평민이 되기는 힘들 터. 그는 감옥에 있으면서도 한때 신하였던 이의 시중을 받고 생활한다.
그것을 지켜봤던 교도관이 푸이를 단체방으로 쫒아버리고 그 속에서 푸이는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혼자만의 삶을 살아간다. 다함께 어울려야 하고 혼자 옷을 입어야 하고 혼자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굴욕도 설움도 다 참아야만 한다. 명령 하나로 움직이고 복종했던 사람들이 더이상 아니기에.
"나는 이제 당신의 신하가 아니야!"라고 말하던 남자의 목소리가 잊혀지질 않는다. 그제서야 푸이는 비로소 깨달았을 것이다. 자신이 더이상 황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비로소 굴욕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10년의 시간이 지나 사상교육을 받고 평범한 정원사가 되어 퇴소한 푸이. 아무도 그가 '황제'였단 사실을 알지 못한다. 하루하루 참회하는 마음으로 정원을 가꾸던 그 사이에도 중국은 여러번의 변화를 맞이한다. 모택동이 중국이 정권을 잡고, 마지막 황제도 만주국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이렇게 기구한 삶이 있을까. 선택 받아 황제가 되어, 황제로 살다, 정원사가 된 사내 푸이. 영화를 보는 내내, 평범한 삶은 어째서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됐다. 어린 소년에겐 엄마가 필요했고, 또래 친구들과 마음껏 뛰어 노는 게 중요했고, 넓은 세상이 궁금했다. 그러나 황제라는 이유로 견디고 참고 현명해야 했다.
그 모든 폭력들을 견디지 못해 푸이는 결국 '자폭'하게 된 것이 아닐까. 그리고 어쩌면 푸이의 마지막은 생은 황제가 아닌 평범한 사람이어서 더욱 행복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식물을 돌보며 작은 것들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곤 했을 터이니 말이다. 비록 역사의 한페이지에 '훌륭한 황제'로 장대하게 기록되지 않을지라도.
[몇 가지 더]
1. 이 영화의 바탕이 된 책이 푸이가 직접 쓴 자서전 <나의 전반생>이라는 책이다. 한국어로 번역돼 국내에 출판 되었다고는 하는데, 지금은 구할 수가 없단다. 대신 <마지막 황제>라는 책이 출판되었다고 하니 구입해서 읽고 싶다.
2. 영화 <마지막 황제>의 ost는 굉장히 유명하다. 대표적인 음악이 바로 <레인(Rain)>인데, 실제로 영화에서는 한 장면에서 밖에 사용되지 않는다. 후실인 문연공주가 신식문물에 도취돼 왕을 떠나는 장면이 유일하다. 웅장하면서도 가슴 아린 선율이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문연공주의 모습 위로 울려 퍼진다. 비가 오는데도 아랑곳 않고 마당으로 뛰쳔간 문연공주. 그녀의 모습은 아슬아슬하면서도 행복해 보였다.
3. 배우들은 전부 영어로 대사를 읊는다. 중국에서 만든 영화가 아닌 유럽인의 눈으로 그려지고 제작된 영화여서 그런 것이라 생각된다. 당시에 황제를 비롯한 관료들이 모두 영어를 이렇게 잘했을리는 없다. 단지 영화 배급의 용이성과 관객들의 다양성을 고려해 공용어(?)인 영어를 사용한 것 같다. 배우들 모두 영어를 엄청 잘하던데, 배운 것일까 아니면 원래 잘하는 이들을 배우로 고용한 것일까. 그게 가장 궁금하다.
4. 푸이에 대해 궁금한가.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사진 한 장을 찾았다. 그에 대한 짤막한 연보도 함께. 이렇게 짤막하게 설명하기엔 그의 삶이 얼마나 기구한다. 가슴을 파고드는 청년의 삶. 영화에서 확인하라.
푸이 [溥儀, 1906.2.7~1967.10.17] 중국 청(淸)의 마지막 황제인 선통제(宣統帝). 1908년 3살의 나이로 청(淸)의 12대 황제가 되었지만 1912년 신해혁명으로 퇴위하였다. 1934년 일본에 의해 만주국의 황제가 되었으나 일본의 패전으로 소련에 체포되었다가 중국으로 송환되었다. |
'문화인 > 보고 읽은 모든 것'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들을 죽인 소년을 만나다' 다르덴 형제의 <아들> (2) | 2012.02.27 |
---|---|
<완득이> 저자 김려령이 들고온 신작 <가시고백> (0) | 2012.02.26 |
<돼지의 왕> 감독이 만든 단편애니 '사랑은 단백질' (0) | 2011.11.25 |
[뮤지컬 햄릿] 가죽자켓 입은 햄릿과 친해지다 (0) | 2011.11.19 |
<돼지의 왕> "더 늦기 전에 어서 보시라" (3) | 2011.11.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