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를 바꾸는 교양/ 한겨레 출판
7인 7색 21세기를 바꾸는 교양
(한겨레 출판사)
한겨레의 '21세기' 도서 시리즈 중 하나. 그동안 '한겨레21'이 특집을 맞아 좌담회를 벌인 내용을 하나로 묶어 책으로 펴냈다. 아마, 발간하다 보니 '시리즈'가 됐으리라.
교양, 상상력, 거짓말 등을 주제로 일년에 한번꼴로 행사를 마련했는데 '21세기를 바꾸는 교양' 이 책은 한겨레21 창간 10주년을 맞아 2004년도에 펼쳐진 대담을 정리한 책이다.
박노자(노르웨이오슬로국립대교수), 한홍구(성공회대 교수), 홍세화(한겨레 기획의원), 하종강(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정문태(국제분쟁 전문기자), 오지혜(영화배우), 다우드쿠탑(팔레스타인알쿠드스 교육방송국장)과 하루에 한 회 씩 총 7회의 대담을 담고 있다.
역사, 노동, 전쟁, 연예, 국가분쟁 등 어느하나 중요하지 않을 수없는 소재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은 일상에 쫓겨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잊어버리는 세대들에게 큰 교훈을 준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러시아 출신의 낯선 외모를 한 박노자는 한국의 어떠한 역사학자보다 아주 객관적으로 한국의 역사를 평가한다. 맹목적 오리엔탈리즘에서 벗어나 옥시덴탈리즘을 지향해야 한다고. 그가 대한민국 국민이 아니어서 일까, 역사는 객관적으로 서술된다.
한홍구 교수의 역사관 역시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이 시대의 부조리가 괜한 것임은 아니란 걸, 지난 역사를 통해 시사한다. 급하게 먹은 밥은 체하 듯, 급하게 일으킨 경제성장은 시민들의 의식성장을 간과했고 그 결과 이 곳 저 곳 에서 정체기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리라. 시민들의 '의식화의 중요성'은 진보지식인이라 일컬어지는 홍세화의 강의를 통해 두드러진다. 외국에서의 '보수'가 한국에서는 '진보'가 될 수 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부드럽고 섬세한 그만의 어조로 설명한다. 진보적 성향이란 의식화가 아닌 '탈의식화'의 과정, 즉, 수구세력이 장악해온 교육과정과 대중매체로 인해 형성된 존재를 배반하는 의식화에 대한 탈의식화가 중요한 과제라고 거듭 강조한다.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하종강님의 강연도 인상적이다. '노동'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들이 많은데 우리들 누구나 노동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얘기하며 자그마한 관심이 우리 모두가 잘 살 수 있는 길이라는 내용을 잊지 않는다. 이 세상이 평등한 세상인지 아니면 불평등한 세상인지에 대한 척도는 모든 근로자들이 얼마나 평등한 삶을 누리는지에 달려있는 것이 아닐까. 적어도 '근로자'의 범위가 단순한 일용직 노동자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을 때 우리는 자신도 노동자가 될 수 있음을, 이미 노동자임을 느낄 수 있는 것 아닐까.
'연예인은 무당'이라고 말하며 딴따라의 의식화를 강조하는 영화배우 오지혜의 대담도 재밌다. 그녀는 '와이키키브라더스'로 세간에 얼굴을 알렸지만 연극판에서부터 꾸준히 연기생활을 해오고 있다. 그리고 의식있는 연예인으로서 정당활동, 강연, 글쓰기 등을 병행하고 있는 아주 부지런하고 똑부러진 여배우다.
분쟁전문기자의 정문태의 강연을 정리한 글도 인상깊다. 어떻게 전쟁이 일어나는 사각지대 안에서 냉정함을 유지한 채 취재를 할 수 있을까, 진정한 저널리스트의 모습을 생각하게끔 한다.
마지막 강연의 주인공 다우드쿠탑은 분쟁지역인 팔레스타인에서 라디오방송국을 운영하는 국장이다. 아랍계임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를 묻는 특이한 그는 국가의 분쟁을 누구보다도 가까이 피부로 느끼고 있는 사람이다. 이스라엘의 잇단 무쟁공격과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 아주 어려운 세계사를 배운 느낌이다.
요즘들어 '한겨레'가 "과연 진보신문인가"에 대한 고민을 자주 한다. 그 결과 솔직한 내 느낌은 진보신문이 아니라는 것이다. 원래의 색으로 돌아가기 위해 끊임없는 채찍질과 자기발전을 모색해보지만 자본주의의 사회에서 상업성을 생각하지 않기란 어렵다. 신문도 '자본'을 중심으로 하는 일종의 사업이기에 수익성을 생각치 않을 수도 없는 것이고...이러한 치열한 싸움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 동안 한겨레를 보면서 사실, 실망도 많이 했다.
그렇지만 이 책을 통해서 느꼈듯 가장 중요한 것은 '의식화의 의식화' 즉, '탈의식화'다. 한겨레는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노력을 통해 탈의식화를 하고 있단 생각을 해본다.
그렇기에 한겨레의 미래는 밝다. 한겨레를 보는 나도 즐겁다. 이런 책을 읽을 수 있어서 너무 감격스럽다.
책의 주요 주제: ‘복제된 오리엔탈리즘과 한국의 근대’(오슬로국립대 교수 박노자), ‘좌절의 역사, 희망의 역사’(성공회대 교수 한홍구), ‘한국 사회에서 진보적으로 산다는 것’(<한겨레> 기획위원 홍세화), ‘너희가 노동 문제를 아느냐’(한울노동문제연구소 하종강), ‘시대의 무당, 딴따라를 말한다’(영화배우 오지혜), ‘전선 취재 17년의 비망록’(분쟁취재전문기자 정문태), ‘살람, 평화로 가는 길’(팔레스타인 알쿠드스 교육방송국장 다우드 쿠탑
2007년에 썼던 감상평을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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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파리> 당신에게 핏줄은 무엇인가요?
똥파리
양익준 감독/ 양익준, 김꽃비, 이환 등
영화 <똥파리>가 개봉했던 2008년, 삼청동 선재아트센터에서 영화를 봤다. 3년이 지난 지금도 극장의 분위기며, 나를 둘러쌓던 공기며, 모든 것을 잊을 수가 없다. 강렬한 영화는 줄거리 뿐만이 아닌 그 순간을 모두 기억케 하는 힘이 있다. 당시에 영화를 보고 다소 흥분하며 썼던 영화평을 여기 싣는다. 손을 봐야겠지만 손 볼 게 한두가지가 아니다. 흑.
'가족'은 얼마나 폭력적인 존잰가. 살아가는 데 힘을 주고 의지가 되는 소중한 존재이긴 하지만, 그 존재가 힘을 잃고 일그러져버릴 때, 한 핏줄을 나눠가졌다는 이유로 가족은 얼마나 폭력적인 존재가 되어버리는가.
무기력한 가족, 힘이 없는 가족, 삶을 황폐하게 내 던져버린 가족, 그런 가족을 바라보는 일은 얼마나 참을 수 없는 고통인가. 같은 피를 나눠가졌다는 이유로 '가족'임을 행사하고 그 권한을 이용해 모든 고통을 감수하라는 건 정말 폭력적이다.
영화 <똥파리>에서도 그런 가정이 등장한다. 그리고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는 폭력을 보여준다. 극중 상훈(양익준 분)의 아버지는 자신이 집안의 '가장'이라는 이유로 폭력을 행사한다. 물리적 힘을 가진 남편이자 아버지라는 이유로 부인을 때리고 아이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한다. 이러한 폭력이 공공연히 행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그들이 한 핏줄로 구성된 '가족'이기 때문이다.
영화 속 상훈이 사채를 빌린 이들에게 돈을 수거하러 갈 때, 아내에게 폭력을 행사했던 한 가장은 또 다른 이에게 두드려 맞는 무기력한 존재일 뿐이다. 그럼에도 부인에게는 신이자, 엄청난 두려움의 대상이다. 왜 그래야만 할까. '가족'이니까. 살을 한 데 비비고 살아야만 하는.
이런 폭력에 노출된 아이들 역시 어른이 되어 폭력의 가해자가 된다. 징글징글한 가족을 떼어버리고 싶지만 '가족'이라는 존재는 좀처럼 떨어지질 않는다. 가족 구성원의 삶에 짐을 져버리기도 하고,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죄책감' 혹은 '미안함' 혹은 '구질구질한 감정' 등을 동반하기도 한다.
상훈 역시 핏줄이라는 것에 엄청나게 대항한다. 아버지에게 폭력을 행사하고 "이새끼 저새끼" 쌍욕을 던지고, 너무나도 거칠게 대한다. 가족이라는 것에 굉장히 쿨해지려 노력하고 '내 피를 쏟아 저 새끼에게 부어버리고 싶'을 만큼 핏줄이라는 것에 굉장한 거부감을 보인다.
그런데 결국 그는 어떠했나. 자살시도한 아버지를 등에 업고 병원으로 냅따 달리지 않았나. 결국은 참고 참았던 눈물을 가족을 위해 흘리지 않았나. 던져버리고만 싶었던 가족의 끈을 다시 움켜잡고 '새 삶'을 꿈꾸지 않았나.
벗어나려 해도 결국은 도도리표처럼 제자리 걸음을 하는 존재, 그것은 바로 '가족'이다. 전형적인, 한국적인 가족의 이야기를 하는 영화. 가족의 폭력성과 또 그 반대에 존재하는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영화.
이 영화가 의미 있는 이유가 바로 그러하다. 영화를 보는 내내 눈물이 절로 났는데 그 이유는, 나 역시 끊임없이 가족을 거부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렇지 못하는 상훈을 닮아서일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영화, 마치 한 편의 다큐멘터리 같다. 리얼하다. 도대체 왜 우리네 가족들은 그렇게 아파하고 서로에게 생채기를 내야만 할까. 이 무시무시한 폭력이 존재하는 것은 구조적인 문제가 아닐까.
+ 덧붙이는 말
이 영화를 보고 난 후에 3년이 지나면서 가족에 대한 사고가 많이 바뀌었다. 예전에는 '가족'이라는 말을 들으면 괜시리 가슴이 아프고 울컥 마음이 흔들리곤 했다. 그러나 핏줄이라는 이유로 행해지는 의무감 등이 굉장히 폭력적이라는 걸 여러차례 깨닫고 나서 더이상 '가족'이라는 존재를 민감하게 받아드리지 말아야 겠다고 다짐했다. 그런 후에 나는 되레 열심히 살아가게 됐다. 그리고 나를 잃지 않고 열심히 살아가는 것만이 가족으로서의 의무라고 믿게 됐다. 가족이기에 양보하고 희생해야 하는 것이 아닌, 가족이기에 서로 힘이 되어 주고 의지가 되어주는 사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혼자 독립하여 잘 살아가야 한다. 어차피 핏줄이든 뭐든, 인생은 자신의 몫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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