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김정미의 창작놀이터

 

사실 이사한 지는 꽤 됐다. 올해 2월엔가 이사했으니, 6개월은 지났다.

월세에서 벗어나 전세를 구했다.(도움을 많이 얻었다.)

 

이 집은 우리의 신혼집이 될 것이다.

결혼을 앞두고 남자친구와 나는 아무 것도 사지 않기로 했다.

혼수도, 가구도, 가전제품도 아무 것도 사지 않고, 내가 쓰던 걸 그냥 쓰기로 했다.

서울에서 대구로 이사하며 밥통을 샀다.

침대는 버렸고, 세탁기와 냉장고는 낡은 거긴 하지만 쓸만 하다.

헤어드라이기나 청소기 등등 자잘한 것도 갖췄으니 됐다.

어차피 좋은 걸 산다 한들, 들어놓을 데도 없다.

방 하나, 거실, 주방, 화장실 이렇게 이루어진 작은 집이기 때문이다.

 

내년 여름, 남자친구네가 세 내어준 집의 계약이 끝나면 거기에 들어가기로 했다.

(그땐 남편이 되어 있겠지? 아이고, 생소해라.)

지나가다 슬쩍 집을 봤는데 굉장히 낡은 다세대 주택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남자친구가 어릴 적에 살던 집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방은 다섯 개라고 했다. 큰 방을 두 개로 나누는 식으로 방 갯수를 늘렸단다.

 

지금 그 집에 살고 있는 가족은 대가족이라고 했다.

할머니, 부모, 아이들 이렇게 살고 있는 모양이었다.

20년 넘게 살고 있다고 하던데, 우리 때문에 내년이면 집을 비워야 한다.

그 점이 괜스레 미안하다. 아무튼, 이사가고 나서야 진짜 신혼집이라는 생각이 들 것 같다.

 

어릴 적부터 나는 '내 방'이 갖고 싶었다.

어릴 적엔 방 하나에서 할머니, 언니, 오빠, 나 이렇게 같이 살았다.

그때가 초등학교 때다.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내 방이 갖고 싶었다.

마당 한 켠에 창고로 만든 집이 있었는데, 콘트리트로 만든 제법 튼튼한 집이라 그 곳을 내 방처럼 썼던 적도 있다. 그런데 매우 습했고, 쾌쾌했다. 내 비염의 원인은 그 공간 탓인지도 모르겠다.

 

엄마, 아빠와 살 적에도 방이 두 개밖에 없어 내 방을 가질 수 없었다.

대신 마루를 건너 부엌으로 가는 길에, 찬장 등을 놓는 작은 방이 있었는데 그 곳을 내 방처럼 꾸며 썼다.

책상도 놓고, 아빠가 만들어준 대나무 책꽂이도 놓고 정성껏 내 공간을 마련했다.

물론, 부엌에 가려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곳이라 비밀스러운 맛은 없었지만, 그렇게라도 내 공간이 필요했다. 한창 예민하고 감수성이 풍부한 때여서 그랬으리라. 밤 늦게까지 잠도 안 자고 뭔가를 만들고, 쓰고 그랬으니까. 그때 제대로 잠자지 않아 키가 이 정도밖에 안 컸다.

 

대학생이 되자마자 독립을 했다. 자취집을 전전하면서도 내 공간을 악착같이 품었다.

공간이랄 것도 없이 몸 하나 뉘일만한 쪽방에도 살았다가, 누구의 집 작은 방에 기거도 했다가, 마침내 어엿한 취업을 한 이후 월세집을 전전했다. 그래도 그땐 짐이 많지 않았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여유가 생기자 내 꿈을 들여다보게 됐다. 동화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이 떠올랐고, 책을 하나 둘 사보다 보니, 점점 책이 늘었고, 책장도 늘었다.

 

책을 사모은 죄로, 이사할 때 정말 힘들었다. 그런데도 책은 줄지 않고 있다.

책은 내 지적 허영심의 결과물이다. 아무리 배고파도 책만큼은 팔고 싶지 않았고, 책을 사는 허영심은 줄이지 않으려고 했는데 점점 책에 대한 집착이 줄고 있다.

 

내년 여름 이 집을 떠날 때엔 책을 절반 정도는 줄일 생각이다.

 

 

 

할인하던 큰 탁상을 샀다. 의자 네 개를 놓으니 그럴싸 하다. 여기에서 글도 쓰고, 밥도 먹는다.

 

 

액자는 내가 만들었다. 시상식 날 받은 꽃을 말려 테이프로 붙였다. 엽서는 5년 전 쯤에 파주에 갔다가 산 것이다. 나는 엽서 모으는 걸 좋아해서 사놓고는 웬만해선 버리지 않는다. 에펠탑이 찍힌 포스터는 '텐바이텐'에서 산 것.(난, 텐바이텐 VIP 고객! 음화핫!)

 

 

늦은 밤, 스탠드 켜놓고 글 작업하는 나. 남자친구가  놀러왔다가 찍어줬다.

 

 

노트북. 바탕화면은 내가 좋아하는 영화인 '리틀미스선샤인'으로 깔았다. 

 

 

간혹, 공모전 정보도 프린트해 붙인다. 최근, 장편 동화공모전 응모했다가 떨어졌다. 음화핫!

 

 

캔버스는 내가 직접 그린 그림.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물감이며 캔버스며 사서 작업한 거라 허접하다. 생각보다 제대로 그림이 나오지 않아 당황했더랬다. 그래도 내겐 보물.

이케아 철제 선반, 제일 꼭대기에 올려둔 상패들. 내 보물들!

 

 

냉장고 옆에 마련해 둔 작은 책상. 원래는 미싱 책상으로 마련해 둔 것이었다. (미싱도 사기 전에)

그런데 재봉틀에 대한 로망과 열망이 줄어들어, 지금은 그냥 이것저것 올려두고 있다.

양키 캔들, 그리고 나홀로 유럽여행 할 적에 부다페스트에서 찍은 사진을 앨범에 넣어 올려뒀다.

알리딘에서 사은품으로 받은 무민인형도 보인다. 귀엽다!

 

 

 

가진 거라곤 책밖에 없어서 언젠가 "내 혼수는 책이다"라고 말하고 다닌 적이 있는데, 결과적으론 그렇게 된 셈이다. 이사갈 땐, 절반은 없애고 갈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