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김정미의 창작놀이터


* 올해부터 틈틈이 읽는 책들의 서평을 올려보겠다.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게]


내 삶의 모토는 ‘유쾌하면서도 진지하게 살기’다.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블루>를 읽으며 저자는 정말 유쾌하고 진지하게 사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인 브래디미카코와 아들이 주고받는 대화와 사유는 따스하고, 유쾌하고, 진지하고, 아프다. 우리 아이들이 자라면 나 역시 유쾌하고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부모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했다.

무엇보다 이 책이 좋았던 이유는 다문화, 인종차별, 성소수자, 계급 갈등 등의 다양한 주제를 골고루 녹아냈기 때문이다. 저자는 사회의 문제를 거대한 담론에서 접근해 풀어내지 않는다. 아들의 학교생활, 이웃과의 관계 등 삶에 부대끼며 몸에 새긴 경험을 토대로 차근차근 써내려간다. 그렇기에 더욱 마음에 와닿는 것이리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모두 다른 게 당연하고, 인간은 누구나 존엄하다는 것을. 하지만 현미경을 들고 한국사회를 들여다보면 차별은 더 교묘하고 세밀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 아이들을 어떻게 대하고,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할지 성찰하게 된 시간이었다.

나머지 후기는 인상 깊은 문구와 사유로 대신한다.

p.34) 영국의 유아교육 시설에서는 보육의 일부로서 매일 연극적인 지도를 하고 있다. 웃는 얼굴은 기쁘거나 즐거울 때 짓는 표정이며, 화내는 얼굴은 분노를 느꼈을 때 짓는 표정이라고 아이들에게 가르쳐주는 것이다.
- 한국 교육에서도 ‘연극’ 과 ‘토론’ 등의 문화가 자리 잡았으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우리 문화에서는 아이들이 얼굴에 감정을 그대로 표현하면 어른들게 혼이 났는데(특히 부정적 감정) 자신의 감정을 표정으로 드러내는 건 건강하고 당연하다는 것을 사람들이 받아들였으면 좋겠다.

p.43) 사회에 다양성이 더해지면서 인종차별의 양상 또한 늘어나고 복잡해졌다. 이민자라는 한 단어로 뭉뚱그려도 그 속에는 온갖 인종이 있고 출신 국가도 제각각 다르다. 이민자 중에도 인종차별적인 언행을 일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당한 만큼 갚아주는 사람도 있다. 그 공방전을 지켜보는 영국인은 영국인대로 어느 한쪽을 편들며 다른 쪽을 차별하기도 한다.
- 이주민이면서도 인종차별을 일삼는 다니엘의 이야기를 보며 더욱 공감하게 된 문장이다. 인상 깊은 것은 다니엘을 친구로 받아들이는 아들의 태도였다. ‘다니엘이랑 나는 최악의 적 아니면 최고의 친구가 될 것 같아’라고 말하며 기꺼이 다니엘과 관계를 이어가고, 결국 최고의 친구가 되어가는 태도가 존경스러웠다.

p.63) 자신만이 정의라고 집단으로 믿어버리면, 인간은 미쳐버리거든.
- 자신이 정의라고 믿는 집단들이 우리 주변에는 얼마나 많은가. 같은 곳을 목표로 보고 있지만, 각기 다른 집단에 들어서는 순간 ‘목표’ 보다 중요한 것은 ‘위치’가 된다. 우린 과연 어디에 있는가. 과연 나만 옳고 저들은 그를까.

p. 74)“다양성은 좋은 거 아냐? 학교에서는 그렇게 배웠는데?”
“맞아.”
“그럼 왜 다양성 때문에 귀찮은 일이 생기는 거야?”
“원래 다양성이 있으면 매사 번거롭고, 싸움이나 충돌이 끊이지 않는 법이야. 다양성이 없는 게 편하긴 하지.”
“편하지도 않은데 왜 다양성이 좋다고 하는 거야?”
“편하려고만 하면, 무지한 사람이 되니까. (...) 다양성은 지긋지긋할 정도로 어렵고 귀찮지만, 무지를 없애기 떄문에 좋은 거라고 엄마는 생각해.”
- 너무나 훌륭한 엄마와 아들의 대화.

p.84) 애초에 법은 올바르다는 전제가 틀렸다고 생각해. 법은 세상이 잘 돌아가기 위해 만들어진 거라서 반드시 올바르지는 않아. 하지만 나중에 또 법을 어기면 힘들어지니까, 그래서 팀한테 더 무거운 벌을 준 거 아닐까?
- 법은 완전하지도 절대적이지도 않다. 뜬금없지만 정인이 사건이 떠오르면서 소수자들에 대한 법을 더욱 강화하는 쪽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p.92) “시험에는 어떤 문제들이 나왔어?”
내 물음에 아들이 알려주었다.
“엄청 간단해. 기말시험의 첫 번째 문제는 ‘엠퍼시 empathy 란 무엇인가?’였어. 그다음은 ‘아동의 권리를 세 가지 적으시오.’였고. 전부 쉬운 문제들이라 누워서 떡 먹기처럼 백점 받았어.”
자신만만해하는 아들 옆에서 배우자가 말했다.
“그게 뭐야. 갑자기 엠퍼시가 뭐냐고 물으면 나는 한마디도 못 할걸. 그거 엄청 심오하다고 할까, 어렵지 않냐? 너는 뭐라고 답을 적었는데?”
“스스로 남의 신발을 신어보는 것.”
‘스스로 남의 신발을 신어보는 것’이란 영어에서 쓰이는 관용적 표현으로 타인의 입장에 서본다는 뜻이다. 엠퍼시는 흔히 ‘공감’, ‘감정이입’, ‘자기이입’ 등으로 번역되는데, 확실히 남의 신발을 신어보는 것은 매우 적확한 표현이다.
- 남의 신발을 신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작은 신발을 신으면 발이 아프고, 큰 신발을 신으면 제대로 걸을 수 없다. 조건이 다른 누군가의 신발을 신어보는 엠퍼시의 경험을 많이 해야겠다.

p.95~96) 결국 심퍼시는 ‘감정’ 또는 ‘행위’ 또는 ‘이해’지만, 엠퍼시는 ‘능력’인 것이다. 전자는 평범하게 동정하거나 공감하는 것을 가리키지만, 아무래도 후자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즉 심퍼시는 가여운 사람이나 문제를 떠안고 있는 사람, 자신과 비슷한 의견을 지닌 사람을 보며 품는 감정이기 때문에 딱히 노력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하지만 엠퍼시는 다르다. 자신과 이념이나 신념이 다른 사람, 또는 그다지 가엾지는 않은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상상해보는 능력인 것이다. 심퍼시가 감정적 상태라면, 엠퍼시는 지적 작업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p.108) 인간이 남의 신발을 신어보려 노력하는 것. 그렇게 한번 분발하게 하는 원동력. 그것이야말로 선의, 아니 선의와 가까운 무언가가 아닐까.
- 내가 생각하는 ‘선’에 대해 돌이켜본다.

p. 124) 공립학교의 아이는 사립학교의 아이에게 좀처럼 이길 수 없는 현실, 공립학교의 선수가 통조림에 든 정어리처럼 좁은 공간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상황. 잭은 그런 것들을 있는 힘껏 웃어넘기려는 것 같았다. 풀 사이드 이쪽의 10대들도 모두 수영장이 떠나가라 힘차게 박수를 보냈다. 서민 계급과 특권 계급. ‘99퍼센트와 1퍼센트’라는 말이 떠올랐다.

p. 237) 아이들에게 있어 양육자란 밖에 있다가도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안정적인 마음의 기지와 같은 존재다. 미국의 심리학자 메리 에인스워스는 그런 존재를 ‘안전기지’secure base
라고 불렀다. 밑바닥 어린이집의 책임자였던 나의 스승 애니는 곧잘 이렇게 말했다.
“안전기지를 갖지 못한 채 성장한 사람은 어떡해야 자신이 안전기지가 될 수 있는지 모르기 때문에 육아를 힘겨워한다.”
-혹시 내가 육아를 힘겨워하는 이유는 안전기지를 갖지 못하고 성장해서일까?

p. 255) “다니엘한테 심한 말을 들은 흑인 아이나 언덕 위 공영단지에 사는 아이들은 다니엘을 괴롭히는 데 끼지 않았어. 괴롭히는 건 전부 아무 말도 듣지 않았고 아무 일도 당하지 않은 관계없는 애들이야. 그게 제일 기분 나빠.”
아들이 말했다.
“…인간이란 패거리로 어울려서 타인을 괴롭히길 좋아하니까.”
"나는 인간이 타인을 괴롭히길 좋아한다고 생각하지 않아. 벌주는 걸 좋아하는 거야.“
-과연 인간에게 타인을 벌 줄 자격이 있는 걸까? 그럼에도 우리 사회에는 자신만이 정의라고 생각하며 벌주기를 멈추지 않는다.

p.328) 정말이지 아이라는 존재는 멈출 줄을 모른다. 쭉쭉 나아가며 끊임없이 변한다. 나는 옐로에 화이트에 약간 그린....... 일단 지금은. 색깔은 틀림없이 앞으로도 계속 변할 것이다.
- 나도 계속 색을 변화하는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