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김정미의 창작놀이터

 

<3> 딸에게 쓰는 편지

2017년 6월 22

 

한달만에 일기를 쓴다.

축복아, 잘 지내고 있지?

지난 주 토요일에 아빠랑 우리 축복이 보러 병원에 다녀왔어.

초음파 검사를 했는데 네가 사람 형태가 되어 있더라구.

그 전에 너는 블랙홀 같은 까만 점에 불과했단다.

 

 

 

병원을 찾았을 때는 10주 경. 

네 크기는 3.38cm였어. 손가락만한 크기야.

꼭 곰젤리 같은 모습이었단다.

그 사이 다리, 팔도 생기고 코도 생겼어. 어찌나 신기하던지.

 

네가 팔다리를 한시도 안 놓고 꼼지락대면서 흔드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기특하고 대견하던지

엄마는 그만 울컥했단다.

 

정말 울뻔했어.

엄마는 말이야, 한 번 울면 눈물이 멈추지 않아.

막 콧물까지 흘리면서 울고, 코도 빨개지고, 눈은 퉁퉁 붓거든.

그래서 엄마는 웬만하면 사람들 앞에서 잘 울지 않아.

 

결혼할 때, 사람들이 엄마더러 왜 이렇게 웃냐고,

고만 좀 웃으라고 하더라.

사실, 엄마 울음을 참으려고 그렇게 웃은 거란다.

한 번 눈물이 터졌다간 주체할 수 없을 것 같았거든.

그래서 앞에 앉아 있는 가족들을 보면서도 그냥 웃었던 거야.

그거 아니? 사람의 뇌는 바보 같은 구석이 있어서

웃으면 기쁜 줄 안대.

그래서 엄마는 결혼식 내내 뇌를 속이며 웃었지.

그랬더니 정말 기분이 좋아지는 거 있지?

 

네가 꼼지락대는 걸 봤을 때도 그랬어.

엄마는 눈물이 나오는 걸 꾹 참고, 그 대신 웃었지.

우리 아가가 참 이뻐서.

 

그랬더니 엄마 뱃살이 출렁출렁하면서 네가 화면에서 가려지는 거야.

그래서 의사 선생님이 엄마더러

"왜 이러세요! 그만 웃으세요." 라고 했단다. 재밌지?

 

축복아!

너에게 일기를 쓰는데 방금 엄마에게 전화가 왔어.

P 출판사야.

엄마가 여기에서 <스키니진 길들이기>라는 청소년단편소설로

새로운 작가상을 받았거든.

 

엄마가 지난주에 그동안 틈틈이 써왔던 단편소설들을 모아 투고했단다.

그런데 일주일 만에 연락이 온 거야.

 

엄마가 보낸 총 6편의 작품들 중, 2편은 동화 같아서 제외하고

한 편은 <스키니진 길들이기>와 결이 비슷해서 제외,

남은 3편은 무척 좋대.

2편을 새로 주면 책으로 펴낸다고 하셨단다.

어찌나 기쁘던지!

 

단편소설 <스키니진 길들이기>는 엄마가 무척 아끼는 작품이야.

그래서 꼭 책으로 엮고 싶었는데,

수상작도 함께 넣어 단편집으로 만들어준다고 하니

엄마에게는 엄청난 기회인 셈이야.

그냥 묵혀 두는 것 보다는 세상에 나오는 게 좋잖아.

정말 잘 된 일이지?

 

아참! 장편동화도

올해 11월경 책으로 나올 것 같아.

아무래도 축복이 네가 복덩이 같구나.

 

엄마는 네가 있어 무척 행복하단다.

항상 긍정적으로 노력하는 엄마가 될게.

축복아, 건강하게 지내다 이 세상에서 만나자.

 

11월 1주의 너에게 엄마가

 

 

 

<2> 딸에게 쓰는 편지

2017년 5월 19

 

축복아, 엄마는 아직 입덧도 없고, 몸도 아프지 않고 편안한 덕에 하루하루 평소처럼 지내고 있단다.

 

엄마가 인터넷을 검색해 봤더니, 지금 네 크기는 0.5cm 정도로 매우 작다고 해. 헉! 글자 하나 크기 정도네. 정말 신기하고 경이롭다.

다음 주 토요일에는 병원에서 네 심장소리를 듣게 된단다. 건강히 엄마 뱃속에서 잘 있다가 만나는 거야. 알았지?

 

어젠 엄마가 아빠랑 이모야들이랑 밥 먹다가 감정적으로 욱해서 다투고 말았어. 정치 이야기를 하다가 의견이 엇갈렸는데 서로 감정이 상한 거야.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왜 그런 걸로 싸웠을까?" 우습게 느껴지고 창피했지. 이렇게 엄마는 서른 네살 어른인데도 아직 너무 어리단다.

 

축복아, 이 세상 어른들이 전부 답을 말하는 건 아니란다. 얼굴과 몸은 어른인데 알고보면 철없고, 감정도 다스리지 못하고, 솔직하지 못한 경우가 많아. 스스로 그걸 깨닫지 못하는 어른들도 많고.

 

그렇다고 모든 어른들이 그렇다는 건 아니야. 끊임없이 깨어 있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반성하고 회개하는 어른들도 많단다. 어른들의 지혜를 받아들이되 옳지 않은 편견과 아집에 가득찬 말은 담지 말고 반면교사로 삼는다면 좋겠구나.

 

하늘처럼 느껴질 엄마와 아빠도 실은 매우 약하고 부족한 사람이란 걸 알았으면 좋겠다. 실망하라는 게 아니라 '인간대 인간'으로 보라는 거야. 그러면 실수투성이 엄마, 아빠의 말과 행동에 너를 지킬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약속할 수 있는 건 엄마 아빠는 너를 위해, 너에게 좋은 것을 주기 위해, 너의 진짜 행복을 위해 고민하고 실천하려 노력할 것이라는 점이야. 왜냐하면 너를 무척 사랑하니까. 엄마, 아빠가 사랑해서 품은 생명이고,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귀한 선물이자 축복이니까. 그 사실을 절대 잊지 마렴.

 

엄마 성격은 좀 다혈질이야. 냉정하고 차분하게 말하고 여유 있게 남을 설득할 수 있는 그런 언변을 갖고 싶지. 하지만 엄마는 감정이 소용돌이치면 숨길 수가 없고, 온몸이 부르르 떨리면서 어수선한 말들이 나오고 공격적인 태도가 나온단다. 아마 네 아빠는 엄마의 변신 신호를 잘 알 거야.

 

엄마는 화를 내면 어김없이 후회한단다. 남에게 싫은 소리, 아픈 소리를 하기 보단 참는 쪽을 택해. 그렇다보니 상처도 잘 받지. 그런데 가족들에겐 한없이 단도직입적이란다. 아무튼 직설적이고, 화도 잘 내지만 사과도 잘하고, 뒷끝도 없는 게 엄마야.

 

엄마는 걱정이야. 너를 키우다가 엄마의 이런 성격 탓에 혹시 네가 상처 받지는 않을지. 아빠랑 엄마는 서로 활활 타오르는 성격이 아니라 서로 알맞게 보완이 된단다. 또, 서로 엄청 사랑해서 더욱 이해해주는 것일지도 몰라. 엄마가 버럭버럭 화낼 때도 있겠지만 분명한 건, 엄마는 뒤돌아서서 분명 후회할 것이라는 거야. 엄마가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꼭 받아줘야해.

 

복덩이 축복아, 엄마가 입덧이 아직 없는 것도 복덩이 네 덕이야. 배가 불고 몸이 무거우면, 그리고 널 낳게 되면 당분간 글을 못쓸테니까 지금 열심히 써두려고 하는데 자꾸 무슨 일이 생기네.

 

그래도 엄마 열심히 쓸게! 어젠 5월 단편동화 <곰삼촌>을 썼단다. 7월 말에는 청소년 단편들을 모아 '대산창작기금'이라는 곳에 신청하려고 하는데 수정하지도 모르고 자꾸 시간이 흐르네. 다음 주에는 P 출판사에서 받은 책 윤문 작업을 마감해야 한단다. 그렇게 하면 5월이 다 지나가.

 

요즘 엄마는 별다른 태교는 하지 않고 책 읽고,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단다. 창작에 몰두해 있을 때 축복이에게도 좋은 기운을 주리라 믿으며. 그리고 네 아빠가 태교음악을 형석 삼촌에게 받아와서 열심히 듣고 있어.

 

하루하루가 엄마에겐 신기하고 기적 같다. 사실 얼떨떨하기만 해. 주변 이야기 들어보면 육아할 때 그렇게 힘들다가도 아이 때문에 굉장한 행복을 느낀다던데 엄마는 벌써부터 그게 궁금하고 설렌단다. 두려움도 있지만 네가 세상에 무사히 나오기만 한다면 무엇이 두렵겠니?

 

우주야, 엄마 뱃속이 따뜻하고 편안했으면 좋겠다. 엄마 더욱 열심히 기도할게. 사랑해. <끝>

 

 

딸에게 쓰는 편지 (1)

2017년 5월 16일(6주차)

 

우주야, 방금 엄마는 점심으로 김밥을 먹었어. 언젠가 네가 태어나면 같이 김밥을 먹게 되겠지? 믿기지 않지만 ^^

 

엄마는 아직 입덧의 '입'도 시작을 안해서 컨디션과 기분이 매우 좋단다. 네가 엄마 뱃속에 있다는 걸 확인했던 2주 전, 그땐 이상하게 몸이 쿡쿡 쑤시고 힘들었어. 뭔가를 먹으면 체한 것처럼 속이 부글거리고 위도 아프고, 두통도 심했어.

 

다음날, 아침에는 오른쪽 눈이 두꺼비처럼 퉁퉁 붓고 진물이 나와 눈꼽이 가득 꼈지. 물론, 전날 눈을 아주 열심히 비벼서 그렇단다. 그래서 눈이 부었는데 아무리 그래도 너무 심하지 뭐야. 그리고 생리기간인데 생리도 없어서 무심코 임신테스트를 해봤어. 그런데 두 줄이 나왔지 뭐야.

 

"오빠! 나 임신이야!"

화장실에서 아빠에게 이렇게 말했더니, 네 아빠가 막 뛰어와서 엄마를 꼭 안아주었단다. 네 아빠 참 다정하지?

 

엄마는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이지만 네 아빠는 정말 마음이 넓고 훌륭한 사람이야. 그런 의미에서 우주 너는 복 받은 거야. ^^

 

엄마는 지금 대구출판산업지원센터 창작레지던스에 있어. 3월 말에 입주작가로 뽑혀 604호를 배정 받았지. 지금 엄마는 컴퓨터로 태교음악을 들으며 첫 일기이자 편지를 쓰고 있단다.

 

일기는 정말 오랜만에 써. 20대 때는 많이 썼는데, 그땐 엄마가 많이 힘들 때였거든. 마음이 힘들고 답답해서 일기를 썼나 봐. 나중에 엄마의 낡은 일기장을 보고 엄마를 비웃거나 엄마에게 실망하진 마. 원래 젊음이란 그렇게 어리석다가도 패기가 넘치고 대책없이 희망찬 것이니까.

 

엄마는 동화작가야. 인기가 있거나 인지도가 높지는 않아. 갓 동화책 한 권을 펴낸 신인작가지. 이제 곧 네가 자라면서 엄마 배가 산더미하게 불어올텐데, 그땐 아무래도 글쓰기가 버거워질 수도 있을 것 같아. 하지만 사람 나름이겠지. 어떤 이모는 막달 아기 낳기 전까지 원고를 썼다더라. 엄마도 최대한 그러려고 해. 네가 세상에 태어나면 그땐 한동안 육아에 전념하느라 글쓰는 것도 이것저것도 힘들테니 그 전에 열심히 부지런히 해두려고.

 

사실 엄마는 걱정이 많단다. 엄마가 그다지 야무진 편이 아니거든.(야무지게 생겼다는 말은 종종 듣지만.) 손해보는 일도 많이 하고, 사람들에게 싫은 소리도 잘 못해. 물론, 네 아빠에겐 세상에서 가장 나다운 모습을 보이느라 화도 종종 내지만 말이야.

 

작년 10월에 계약종료로 공공기관에서 2년 간 일하고 나왔어. 엄마 있지, 그곳에서 실력 인정 받으며 정말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계약직이라 결국 그만 둘 수밖에 없었어. 일은 일대로, 동화는 동화대로 조금 더 안정된 영역을 만들고 싶었단다. 그러던 사이 자녀계획은 미뤄뒀고, 올해 2월부터 노력했는데 3개월만에 네가 생긴 거야. 너는 우리에게 축복 같은 존재야. 하나님이 보내주신 귀한 선물이지. 

 

엄마, 아빠가 초보 부모라서 많이 서툴겠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약속할게. 세상 그 누구보다도 널 사랑하고 네 편이 되어주겠다는 것. 하나님 닮은 성품으로 건강하게 세상에 나오렴. 사랑한다. <끝>

 

일기장 찰칵!

일기장 찰칵!

 

병원에 가서 확인한 우리 딸, 최초의 모습.

성별도 알 수 없는, 블랙홀처럼 까맣고 아득한 너.

심장소리를 듣는데, 그만 울컥 눈물이 나왔단다.

 

서울, KTX역 화장실에서 한 번 더 시도한 테스트기.

정말 네가 내 배에 있는지 실감나지 않아서 엄마는 또 확인해보고 또 확인해봤단다.

엄마 웃기지?

친구들이 임신하면 엄마는 꼭 이 책을 선물해주었단다.

난다 작가의 <내가 태어날 때까지>라는 만화야.

이 책을 내가 읽게 될 줄 누가 알았겠니? ^^

엄마도 그림을 잘 그린다면,

그림으로 너를 표현하고 싶은데...(ㅜㅜ)

오지랖 피우지 말고, 엄마는 글로 남겨볼게.

미영 이모가 준 선물이야. 감동이지?

롤케이크에 엄마가 그린 '개굴너굴 부부' 그림을 넣었어.

개구리는 엄마, 너구리는 아빠란다.

왜 그런지 태어나서 엄마 아빠를 보면 알 수 있을 거야.

산모수첩을 받았단다.

진짜 엄마가 되었다는 뜻이지.

언제 시간이 흐를까 싶었는데,

포스팅을 하는 지금-

벌써 29주가 되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