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김정미의 창작놀이터

 

제주 고산농협의 농산물 브랜드 '흙토랑'의 캘리그라피 작업을 했습니다.

이쯤 되면 "별 걸 다하네"라는 생각이 다 드는데요.

알고보면 2015년에 작업한 결과물 입니다. ^^

 

 

요즘 열심히 블로그에 포스팅을 하면서, 그동안 해왔던 작업물들을 전부 올리고 말겠다는 야심찬 목표를 실행하고 있어요. 출산 후에는 더더욱 정신 없어서 아마 소소한 작업물들은 다 잊어버릴 듯 해서요. (1월 출산 예정이거든요.)

 

한때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할 적에 전문기관에서 '캘리그라피' 수업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역시나 '작심삼일형'인 저는 딱 '입문 과정'만 밟고, '작가 과정'은 포기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좀 아쉬워요. 그때 포기한 이유가 스스로의 오지랖에 대한 반성이긴 했지만 실은 그보다 가르쳐주신 선생님께 꽁한 게 있어서 그랬거든요.(유치찬란 했지요) 가끔씩 '그때 끝까지 공부했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을 한답니다.

 

캘리그라피 역시 연습하지 않으면 낡습니다. 결국 저는 그때 실력보다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한 상태인데요. 그래도 소소한 개인적인 작업을 하기에는 무리가 없답니다. 이 잔기술로 셀프 청첩장 문구도 입력하고, 친구 청첩장도 만들어주고 그랬지요.

 

 

 

이 작업은 대학 동기의 부탁으로 작업하게 되었는데요. 이후, 언짢았던 기억이 납니다. 왜냐하면, '무보수' 그야말로 '재능기부' 였거든요. 처음부터 '재능기부'로 알고 시작했던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그때 저는 야물지 못했지요. 어떤 일을 맡을 때, 당당히 페이를 물어보는 걸 어렵게 여겼던 거예요.(맞아요, 호구였어요.)

 

그래서 일단 '선 작업'부터 해서 넘겼는데, 그 후 연락이 없더라고요. 박스에 네이밍이 새겨져 이미 시판된 것을 제가 나중에 발견했습니다.  친구는 연락도 없었습니다. 제가 먼저 연락했더니 "친구 사이에 돈 받는 걸 부담스러워 할까봐 제주에 놀러오면 밥 사주려고 했다"고 말하더군요. 재능의 값이 밥 한끼라니요. 하지만 이후, 제가 결혼을 한다고 알렸는데도 친구는 묵묵부답이었습니다. 밥 역시 얻어먹어보지 못했지요. 물론, 제주에 내려갈 적에 연락하지도 않았고요.

 

우연히 검색해보니 아직도 제 캘리그라피가 상품에 인쇄되어 쓰이고 있습니다. 네, 저는 '저작권'도 지키지 못한 호구입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 이렇게 포스팅을 해둔답니다. 그래도, 캘리그라피를 보면 기분이 좋아요. 내 안에서 나온 작품이니 아무리 못나도 이쁜 것이지요. 나름, '흙'의 거친 느낌과 부드러움을 동시에 주려고 노력해서 작업한 것이기 때문에 저는 만족한답니다.

 

 

작가는 어떤 작업이든 늘 공 들여 하기 마련입니다. 결과야 어찌됐든 '대충' 작업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 작가들의 노력을 인정해주는 상식이 통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직도 세상에는 작가들의 노력을 '열정페이'로 가져가려는 이들이 너무 많은 듯 합니다.

 

페이도 받지 못하고, 이후 진행사항도 듣지 못한 이 경험을 통해서 저는 두 가지를 배웠습니다. 하나, 사람을 보는 눈. 둘, 다시는 열정페이 따윈 없다. 즉, 어떤 작업이든 제 공이 들어가는 일은 적당한 페이를 받기 시작한 것이지요. '재능기부'는 제가 마음 내킬 때 하는 것이라는 걸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제 밥그릇은 제가 지켜야겠지요. 세상은 냉혹하니까요. 이렇게 세상의 냉정함을 맛보며 성장 중입니다. ^^

 

2017년 여름부터 겨울까지 칠곡군 북삼읍 숭오1리 '마을 스토리텔링'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태평 마을'이라 불리는 이곳은 금오산 자락에 위치한 평화롭고 조용한 마을입니다. 옛부터 물이 좋아 벼농사도 잘 되고, 인심 또한 넉넉해서 여러모로 풍요로운 마을이었다고 하네요. '태평 마을'이라는 이름에 딱 알맞은 곳이었습니다.

 

 

요즘 많은 지자체에서 마을을 다시 살리고 관광객들을 유입시키기 위한 '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스토리텔링'을 도입하는 추세인데요. 태평 마을 역시 관련된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최종 목적은 마을의 오래된 곡식 창고를 카페로 만들어서 공연 등의 문화행사도 열고, 타지 사람들에게도 알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곡식 창고를 리모델링한 '마을 카페'는 내년 완성될 예정인데요, 그에 앞서 마을의 자원을 찾아 스토리텔링하는 작업에 저도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마을창고에 이런 낙서가... *.* 귀여워서 찍었지요.

 

제가 담당한 작업은 '빨래터 합창단'의 공연 대본을 쓰는 것과 마을 홍보 등의 자료로 쓰일 '마을의 스토리'를 발굴해서 스토리텔링 하는 것입니다.  마을의 스토리를 발굴하기 위해서는 마을에 어떠한 자원들이 존재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사전조사를 위해 마을을 방문했습니다.

벚꽃 나무가 쭉 늘어서 있는 길을 따라가다보면 '마을회관'이 나옵니다. 그곳에는 대부분 70~80대 어르신들이 시간을 보내고 계세요. 우리나라 농촌은 점점 노령화되는 추세입니다. 태평 마을 역시 경제활동이 가능한 40~50대 층은 출근을 하거나 일을 하는 까닭에 마을회관은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이 지키고 계셨지요. 학교 수업을 마친 귀여운 초등학생 손주, 손녀들도 보였고요. 아마 다른 농촌 마을의 풍경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합니다.

 

 

브레인스토밍 등의 작업을 통해 마을의 자원을 조사했습니다. 태평 마을의 대표 자원을 뽑아내니 대략 4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었습니다. 바로 한글교실 할머니들로 구성된 '빨래터 합창단',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마을 빨래터', 마찬가지로 120여년의 역사를 지닌 '숭오 교회', 곡식 삼천 가마니 이상이 보관되었다는 '마을창고' 이지요.

 

모든 자원들이 역사적으로 매우 의미 있었습니다. 작은 마을이었지만 문화와 역사만큼은 매우 탄탄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원 조사와 더불어 각 자원의 의의와 가치에 대해서도 조사해 정리했습니다.

 

 

그 중, '빨래터 합창단'은 이미 지역의 유명인사였습니다. 평균 연령 70세로 된 할머니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요. 실제로 할머님들이 아낙이었던 시절, 동네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며 불렀던 이른바 '노동요'를 합창으로 부르고 계셨습니다.

그냥 노래만 부르는 게 아닌, 스토리를 입혀 '연극' 형식으로 공연도 하고 계셨답니다. 총 지휘자이자 연출자는 한글교실 선생님! 우연히 할머님 한 분이 부르는 노래를 선생님이 귀담아 들었다가, 공부가 힘들거나 지겨울 때마다 합창하는 시간을 가졌고, 그렇게 합창단이 꾸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악보만 있을 뿐, 공연 대본은 전무한 상태여서 스토리텔링의 일환으로 제가 직접 '대본'을 작성하게 됐습니다.

 

 

 

동네에 실제로 이렇게 빨래터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마음 빨래터'라는 팻말 아래 '삶이 힘들고 지칠 때 마음을 씻고 가세요'라는 글귀가 적혀 있네요. 본격적인 마을스토리텔링 사업을 하기도 훨씬 전부터 이미 '스토리'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마을이었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엄지 척!

 

예전에는 흙바닥에 돌덩이가 의자처럼 드문드문 놓여 있었는데, 새마을사업을 통해 지금처럼 시멘트가 발린 모습으로 변했다고 하네요. 예전 정취를 느낄 수 없어 아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마을의 '숭오 교회'는 칠곡 지역 최초의 교회라고 합니다. 작은 마을에서 한 교회가 100년 넘는 전통을 이어가기란 쉽지 않은데, 이곳에는 대다수의 주민이 교인일 정도로 기독교의 가치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독립운동의 기지이자 아이들을 위한 교육의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6,25 전쟁 속에서도 교인들은 기도를 멈추지 않았고, 일제 치하 속에서도 믿음의 등불은 꺼지지 않았다고 하네요. 이런 내용 역시 스토리텔링의 큰 줄기가 될 수 있겠지요. 현재 교회는 새롭게 증축한 건물로, 앞편에 옛날 교회 건물도 남아 있었습니다. 황구 녀석이 교회를 지키고 있네요. 아마 아까 마을회관 낙서에 나온 그 녀석인가 봅니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한창 푸르른 여름에 사전 조사를 마쳤습니다. 이후, 수집한 '마을 자원'을 토대로 마을 스토리를 발굴했고, 그 내용을 원고로 작성했습니다. 초등학생에서부터 어르신들까지 읽을 수 있도록 재밌는 이야기와 쉬운 문장으로 구성하는 게 목표였습니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동화'의 형식을 따르게 됐습니다. 원고는 11월 말에 완성하여 현재 책으로 제작 중입니다.

 

그동안 '스토리텔링' 관련하여 다양한 강연과 작업을 진행했지만, 직접 마을 스토리를 발굴해 동화로 쓰고, 책으로 엮는 작업은 처음 참여했습니다. 사전 조사는 물론이고, 기획회의를 거쳐 구성을 잡고 스토리를 만드는 모든 과정이 보람있었고 즐거웠습니다. 어르신들을 만나 어르신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엿들었을 때는 깊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모든 과정이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이었기에 더더욱 그러했지요.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던 원고가 완성됐을 때는 기뻐서 춤이라도 추고 싶은 마음이었답니다.

 

완성한 스토리는 책으로 발간되어 내년 '마을 카페'에 비치되고, 마을을 홍보하는 귀한 자료로 쓰일 예정입니다. 완성된 이야기가 궁금하시다고요? 책으로 완성되는 즉시, 제 블로그에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

 

마을에 미팅을 갔을 때, 할머니 한 분이 챙겨주신 '복조리'. 직접 만드신 거랍니다. 받고 나서 어찌나 기쁘고 행복하던지요. 복조리는 우리 집 안방에 잘 걸어두었답니다. 복이 절로 들어오는 것 같아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