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김정미의 창작놀이터

나는 가끔 내가 '보부상' 같다. 이곳저곳 장을 떠돌아다니며 물건을 파는 보부상처럼 나도 글로 된 것이면 뭐든 팔고 다니니까.

그리고 오늘은 내가 '삭바느질 여인' 같다는 생각을 했다. 마을 집집마다 다니며 일감을 받아와서 밤새도록 헤진 옷을 바느질하는 여인네. 코끝에 안경 하나 걸쳐 놓고, 초롱불에 의지해 열심히 바느질 하는 거지.

-

요즘 내가 딱 그렇다. 연말이라 여기저기 기관마다 마감이 급한가 보다. 딱 봐도 급해 보이는 외주가 마구 들어온다. 일을 찾아다니지 않는데도 들어온다. 그런 생각을 하면 무진장 감사하다. 퇴사 후, 1년 간을 그럭저럭 잘 버텼으니까. 분명 11월 말까지만 일하고, 외주를 맡지 않으려고 했는데 또 이렇게 컴퓨터 앞에 앉아 있다. 아, 계획 변경이다. 딱 10일까지만 일하고, 이후에는 날 위한 시간을 보내야겠다. 내가 할 게 얼마나 많은데! 출산가방도 싸야하고, 그 전에 축복이 옷들을 세탁해야하고... 또, 책도 좀 읽고 싶고, 잠도 푹 자고, 싶고. 영화도 봐야겠고. 아 몰라, 몰라! 머리가 엉켰다.

-

엉성하게 마무리 된 장편동화를 수정하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올해의 창작은 이렇게 마무리해야 할 듯 싶다. 내년에는 축복양의 탄생으로 글 쓰는 게 더 힘들어질 듯 한데, 나는 지금 이 시간을 잘 보내고 있는 걸까?

-

작가로서의 균형을 잡는 게 필요할 듯 싶다. 창작과 외주. 두 개의 영역 사이에서 '줄타기'를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작가는 오전에는 '창작', 오후에는 '일'을 한단다. 엄청 멋있다!!! 부럽다!!! 나의 패턴은 오전에는 '팽팽 놀기', 오후에는 '딴짓', 저녁에는 '일' 아니던가. 반성하자, 반성!

-

시험을 앞두고 나면 무진장 딴짓이 하고 싶어지는 것처럼, '데드라인' 걸린 일을 맡고 나면 자꾸만 그림이 그리고 싶어진다. 그래서 또 이렇게 되도 않는 그림을 그려 블로깅을 한다. 내가 폭풍 블로깅을 할 때는 이렇게 생각하면 된다. "아, 긍정미가 지금 미치듯 바쁜 때로구나." 그래도 걱정 마시라. 마감을 어기진 않는다. 책임감 강한 작가라고! 그냥 스스로 고달플 뿐.

-

이왕 보부상으로 사는 것, 좀 더 많은 품목을 개발해서 많은 것을 팔아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면 또 재밌고, 신나고. 맞다, 나는 변태작가다. 고통을 즐기는, 자학과 자뻑을 오가는 슈퍼변태작가!!!!

'꿀잼라이프 > 재잘재잘' 카테고리의 다른 글

[171215] 오늘의 기분 좋음  (4) 2017.12.15
25살, 27살에 남긴 메모  (4) 2017.12.12
[171204] 35주 5일 막달을 향해  (3) 2017.12.05
오랜만에 소식 전하기  (0) 2017.08.11
커피, 그리고 책 세권  (0) 2016.11.17

 

오랜만에 그림을 그려봤다. 이것도 꾸준히 하면 좋겠지만, '꾸준히'는 내 것이 아닌가 보다. 뭐든 거창한 목표를 갖고 시작했다하면 '작심 3일'이다. 그나마 꾸준히 이어온 게 '글쓰기'다. 물론, 하루 정해진 시간에 글을 쓰는 '성실함'은 일찌감치 버렸지만. 노력해도 쉽지 않은 게 있다. 그게 나에겐 시간을 정해 꾸준히 하는 거다. 나는 절대적인 시간의 양보다 '집중력'이 중요한 사람이다. 아무리 시간이 많이 주어져도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으면 소용 없다. 반면, 아무리 시간이 촉박해도 X줄이 타면 뚝딱 해낸다. '데드라인형 인간'인 셈이지. 아, 씁쓸하다. 내가 오늘 이렇게 포스팅을 열심히 하는 것도 실은 마감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벌써 몇 시간째야 이거. 요것만 하고, 빨리 일해야지.

 

[손그림 1]

거울을 볼 때마다 깜짝 놀란다.

'언제 이렇게 배가 불렀지?'

예전에는 사람들이 나를 임산부로 볼까 궁금했다. 요즘에는 코트로 꽁꽁 가려도 배가 쏙 나왔다. 어딘지 모르게 걷는 자세도 펭귄처럼 뒤뚱뒤뚱해 보이는 듯 하다. 그런데, 정말 웃긴 게 이렇게 배가 나왔는데도 가끔은 "남들이 나를 임산부로 볼까?" 궁금하다는 거다. 그냥 살찐 줄 알까봐 ㅎㅎㅎ 역시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객관화하기 가장 힘들다. 그러니 사는 거겠지. 착각 속에서.

 

매주 월요일은 초등학교 '돌봄교실' 특기적성 수업을 나가는 날. 학교에서 우연히 마주친 잘 모르는 선생님께서 내 배를 보더니 "어머, 이제 얼마 안 남았네요?"라고 하셨다. 아! 나는 이제 누가 봐도 임산부구나. 선생님의 말에 궁금증이 모두 날아가 버렸다. "네, 1월이에요." 했더니 "금방이네!"라고 하셨다. 정말 처음 보는 선생님이셨는데, 괜히 반가웠다. ㅎㅎ

 

이제는 아이들도 달려와 "선생님 임신했어요?"라고 묻는다. 그 다음에 묻는 것, "선생님 아기 이름이 뭐예요?". 아직 안 지었다고 하면 열심히 지어주신다 ㅎㅎ 어떤 친구는 아가 이름 목록을 내게 써서 주기도 한다. 귀여워, 아주! 너희들처럼 울 축복이도 귀여웠으면 좋겠어. 어떤 녀석들은 내 배에 귀와 손을 대고 아이가 움직이는지 살핀다. 태명이 축복이라는 걸 알게 된 후로는, "축복아, 움직여봐. 내가 너 궁금해서 이렇게 손대고 있잖아. 잠자는 거야? 잠꾸러기."라고 말하는 아이도 있다. 귀엽다, 귀여워, 아우, 귀여워 정말!!!!! 아가 낳으면 토요일 수업 말고 월요일 돌봄교실은 이제 그만둬야 하는데, 참말 참말 아쉽다. 축복이 조금 크고 다시 기회 생기면 꼬옥 한번 더 도전해보고 싶다.

 

34주 5일! 출산일까지 이제 딱 5주 정도 남았다. 앞으로 배가 더욱 더 나오겠지? 다행히 하체가 튼튼해서 지금까지는 잘 버티고 있다. 원래 불면증도 심했는데 막달로 갈수록 잠이 잘 온다. 원래는 막달이 될수록 배가 불편해서 잘 못 잔다는데, 아직까진 바로 누워도 잠도 잘 온다. 다만, 이제 자유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다보니 마음이 급하다. 할 것은 많고, 정리는 안 되어 어수선하고. 엎친 데 덥친격으로 곧 이사까지 앞두고 있다. 어쩌면 출산 전에 이사하는 게 힘들지도 모르겠다. 이제 마음을 놨다. 다 잘 될 것이다. 인생에 있어 이건 아무것도 아니다. 나쁠 것은 하나도 없다. 다 순리대로 진행될 테니까.

 

[손그림 2]

1학년 현정이는 요즘 스트레스가 많단다. 잔뜩 찌푸린 얼굴로 내게 와서 이렇게 말한다. 어찌나 귀엽던지 ㅎㅎ

"선생님! 요즘 저는 스트레스가 많아요. 지진 스트레스! 좀비 스트레스! 화장실 귀신 스트레스! 벽 귀신 스트레스! 칠판 스트레스! 아침 잠 스트레스!"

좀비 스트레스는 영화 <부산행>을 본 후부터 시작됐고, 칠판 스트레스는 칠판이 무너질까 봐 무서워서 그렇단다. 아침 잠 스트레스는 아침에 더 자고 싶은데 일어나야해서 그렇고. 아이라고 생각이 어린 것은 아니다. 다 저마다의 자리에서 어른들과 똑같이 무서워하고 아파하고 힘들어한다.

 

그나저나 요즘 아이들은 내가 어릴 때와 마찬가지로 '귀신'을 무서워하면서도 열광한다. 학교 옆 문구점에 파는 조악한 괴담집은 여전히 존재하고, 인기가 많다. 아이들에게 빌려서 읽어봤더니 무섭기 보단 웃겼다. 왜냐하면 '맥락'이 없어서. 하지만 그럼에도 아이들은 무서워한다. 이 아이들을 오싹 떨게 할 작품을 써야하는데, 큰일이로세.

 

[손그림 3]

초등학생 아이들에게 단연 인기템인 '액체괴물'!!!!!

 

웬 콧물처럼 생긴 덩어리를 아이들은 돈을 주며 산다. 손으로 늘어뜨리고 탱탱볼처럼 뭉쳐서 던지고 난리다. 가방 안에 하나씩 넣고 다니다가 눈치 보며 꺼내서 조물락거린다. 최근 뉴스에서 액체괴물 소재가 몸에 좋지 않다고 나왔나 보다. 사실 좀 당연하다. 생긴 것만 딱 봐도 본드가 연상되고, 콧물이 떠오른다. 하지만 아이들에게는 가장 친근한 장난감이다.

 

생각해보면 요즘 아이들은 손을 가만히 두지 못하는 듯 하다. 올해 핫했던 아이템 중 하나가 '스피너'였다.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사랑받았던 장난감. 스피너의 용도는 딱 하나. 손을 놀리는 게 목표다. 가만히 있으면 뭔가 초조하고, 핸드폰이라도 마구 터치해야 할 것 같으니까. 그런 조바심이 만들어낸 장난감이 아닐까.

 

어쩔 때는 내 동화가 액괴보다 못한 것 같다. 액괴야, 부럽다. 아이들의 마음을 훔친 비결이 뭐니? 내 영혼을 팔게, 나에게 알려주렴, 네 매력을!

 

 

 

 

 

 

 

'꿀잼라이프 > 재잘재잘' 카테고리의 다른 글

25살, 27살에 남긴 메모  (4) 2017.12.12
[171207] 현대판 보부상  (1) 2017.12.07
오랜만에 소식 전하기  (0) 2017.08.11
커피, 그리고 책 세권  (0) 2016.11.17
2000원의 행복, 국수 한그릇  (0) 2016.11.16

<5> 딸에게 쓰는 편지

 

축복아, 여기는 부산추리문학관이야. 해운대 달맞이공원에 위치했단다. 김성종 작가님께서 꾸린 공간인데, 추리 관련 책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아. 건물은 총 3층이고, 1층은 카페야.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면 입장권을 사지 않아도 2, 3층을 둘러볼 수 있단다.

 

엄마, 아빠는 오늘 이 곳만 둘러보고 집으로 갈 예정이야. 부산은 외갓댁이 있는 곳이고, 대학생 시절부터 '부산국제영화제'며 뭐며 자주 왔던 곳이라 많은 곳을 가봤어. 그래서 매우 익숙한 도시란다. 네 아빠와 여행도 서 너 번 왔지. 그래서 딱 이곳만 보고 집에 가기로 했어.

 

축복아, 어제 뱃속에서 엄마 강연 잘 들었니? 강연 시작 전, 얼마나 떨렸는지 몰라. 강연 장소는 '해운대 그랜드호텔'. 지자체 공무원들 250여명이 대상이라는데, 그동안 엄마가 섰던 무대 중 제일 큰 자리야. 그래서 대본을 직접 적었을 정도로 준비를 철저히 했단다. 엄마를 불러주신 분께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똑부러지게 마무리하는 게 중요하다 여겼거든.

 

일부러 강의 한 시간 전에 해운대에 도착해서 카페에서 숨을 고르며 시간이 되길 기다렸지. 막상 호텔에 가보니 조명이 어두컴컴하고, 무대 위에 올라서야 하는 게 아니라서 편안하게 강의 했단다. 주제는 <스토리텔링으로 소통하라!>야. 그동안 엄마가 해왔던 강연 주제와 잘 맞아서 기존 자료를 보완해 준비했단다. 강연은 성공적으로 잘 마쳤어. 100점 만점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마이너스는 아니었지.

 

이번 강연은 엄마가 다녔던 회사 L 팀장님이 주신 기회란다. 정말 올곧고, 따뜻한 분이셔. 엄마가 그곳에서 일하게 된 것도 팀장님이 엄마를 뽑아주셨기 때문이지. 사실, 면접을 본 후 엄마는 그 자리를 거절했단다. 내 인생에 처음 있던 일이었지. 엄마는 "뽑아주시면 감사히 일하겠습니다" 모두의 '열정' 빼면 시체인 사람인데, 이때는 상황이 좀 남달랐어. 좀 힘든 때였거든. 대구에 내려가서 직장을 두 번이나 바꾸고, 사람들에게 실망도 많이 하고, 이리저리 치이던 때였지. 그래서 다음 직장만큼은 신중해야겠다고 여긴 거야. 그래서 거절했는데, 서류를 넣었던 직장에서 계속 미끄러지자 좀 후회가 되더라고. 통장 잔고는 줄고, 직장을 다니긴 다녀야겠고. 막막했는데 이 곳에서 다시 전화가 온 거야. 당연히 "무조건 열심히 해보겠습니닷!" 마음 먹고 바로 출근했지.

 

그 후,  무슨 일이 벌어졌게? 엄마는 2년 동안 신바람 나게 일했단다. 엄마가 다녔던 회사 중, 가장 깔끔하고 가장 체계적인 곳이었어. 직원들도 어찌나 신사다운지, 그 중의 최고는 팀장님이셨지. 일개 계약직인 나를 굉장히 인간적으로 따스하게 대해주셨단다. 엄마에게 보여준 순수한 호의와 애정 덕분에 엄마는 2년 동안 즐겁게 일했고, 자존감도 많이 회복했어. 팀장님께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일을 더욱 잘하고 싶었고, 최선을 다해 일한만큼 성과도 있었고, 존중 받았고.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멋진 시간이었어.

 

엄마는 살면서 신기한 경험을 많이 했단다. 자칫, 한 발자국만 더 내딛으면 허방 딛을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가까스로 벗어나는 경험. 위험한 순간, 누군가가 기적처럼 손 내밀어준 경험. 엄마가 망쳐놓았던 일이 깔끔하게 매듭되는 경험. 이런 순간의 기적들이 지금의 엄마를 만든 거야. 엄마는 그 기적의 힘이 네 외할아버지가 도와주신 게 아닐까 생각했단다. 그 마음을 담아 첫 장편동화 <유령과 함께한 일주일>을 썼지. 종교가 생긴 후에는 하느님이 도와주신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해. 신의 섭리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겨를이 없거든.

 

엄마가 2년간 일한 직장, 그곳에서 만난 L팀장님 역시 엄마는 신이 보내준 선물이라고 여긴단다. 엄마는 분명 그때 정체 모를 두려움이 압도 당해 거절로서 그 자리를 놓쳤지. 그런데 기적처럼 다시 연락이 왔잖아. 물론, 더 좋은 기회가 기다렸을 수도 있지만 그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기대감일뿐, 엄마가 겪은 바로는 최고의 결과였다고 여겨. 늘 좋은 곳으로 인도해주시는 신께 엄마는 참 감사하단다. 우리 부부가 필요한 순간, 너를 보내준 것도 신의 선물이지.

 

엄마는 이 세상이 각박하다고만 여겼어. 사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사람에 대한 기대를 점점 줄이게 됐지. 엄마는 유독 상사 복이 없는 편이었거든. 다들 인간적으로 까칠한 사람들이었지. 하지만 모두들 일 하나는 잘했어. 그 덕분에 엄마는 일을 제대로 배웠단다. 돌이켜보면 모두 고마운 분들이야. 사람은 좋은데, 일 못하는 상사 밑에서 배웠다면? 글쎄, 이 경우는 행복은 짧고 고통을 오래 지속됐겠지. 다행히 엄마는 전자라서 고통을 짧고, 행복은 긴 케이스야. 일머리는 생겼으니까 말이야.

 

엄마는 사람에게 상처받아도 사람에게 치유받을 수 있다고 믿는단다. 우리는 혼자 살 수 없으니까. 엄마는 사람들과 용감히 부대끼고, 기꺼이 상처받는 편인데, 그 과정에서 괜히 벌이지 않아도 될 일을 저질러놓고 사서 고생하기도 해.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치유 받고 감동 받는단다. 엄마는 사람을 믿어. 사람과 사람이 나누는 정, 연대, 공감의 힘을 믿어. 우리 축복이도 상처 받고 좌절하더라도 다시 일어서는 치유력을 지닌 사람으로 살아가길 바라.

 

세상은 각박하지만, 그 반대편에서는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려는 사람들이 존재한단다. 엄마는 사람이 희망이고 삶의 이유라고 생각해. 엄마가 받은 호의와 애정을 엄마 역시 남에게 베풀며 살고 싶어. 사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면, 가장 불편하고 아픈 사람은 바로 자신이란다. 엄마는 그래서 대부분 참는 쪽을 택하지만 그럼에도 본의 아니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곤 하지. 그건 인간관계에 있어서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아. 중요한 건 미움의 마음을 갖지 않는 거야. 쉽지 않겠지만, 남을 쉽게 미워하지는 마. 마음이 힘들 때는 '기도'를 해보렴. 그러면 마음이 편안해질 거야.

 

엄마 역시 강연을 앞두고 마음 속으로 열심히 기도했단다. 그 결과 무사히 강연을 마쳤어. 우리 축복이, 엄마가 오래 서 있는데도 힘들어하지 않고 씩씩하게 있어줘서 고마워. 이쁜 내딸, 엄마 뱃속에서 편안하게 있으렴. 그것 말고는 바라는 게 없단다.

 

어제 강연을 마치고, 주최측에서 내어주신 숙소에서 1박을 했어. 네 아빠도 회사를 마치고 넘어왔단다. 강연 기회 덕분에 오랜만에 아빠와 데이트를 했어. 해운대 바닷가도 거닐고, 맛있는 아이스크림도 먹고 말이야.

 

또, 오늘 기적처럼 기쁜 전화를 받았단다. W 출판사에서 괴담 동화집을 기획 중인데 제주도 아이의 이야기를 써달라는 거야. 사실 엄마가 최근 W 출판사에서 주최하는 공모전에 장편동화를 응모했는데, 떨어졌거든. 헤헤. 그래서 실망하던 차였는데, 신기하게도 전화를 받았지 뭐야. 엄마 고향이 제주라서 가능한 기회였지. 하지만 그렇다고 제주도 출신 작가가 엄마 혼자만 있는 게 아닌데 정말 신기한 일 아니니? 엄마는 유명한 작가도 아닌 걸. 그렇기에 더더욱 말로 표현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일이야. 이것 역시 신의 섭리가 아닐까 싶어. 엄마는 요즘 부쩍 이런 생각을 한단다. 주님이 엄마에게 능력 밖의 일을 주시며 단련시켜 주신다고 말이야. (불과 3년 전, 무교였을 때만 해도 엄마는 이런 종교인들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단다. 그런데 엄마가 겪어보니 이것 말로는 달리 설명할 수가 없어.)

 

축복아, 네가 참 복덩이야. 많은 여성들이 임신, 출산, 육아로 경력단절을 겪는단다. 그래서 임신에 대한 공포가 만연하지. 엄마도 많이 두려웠어. 하지만 주님이 주신 축복의 씨앗, 너를 잉태하고 정말 말할 수 없이 기쁘고 행복했어. 마음 속으로 출산 시까지 많은 작품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는데 쉽지 않더구나. 그래서 우울하기도 했지만, 또 반면에 새로운 기회와 도전이 많아 신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중이야.

 

엄마는 축복이 너와 함께 좋은 글을 많이 많이 써나갈 거야. 엄마의 개인적인 게으름, 혹은 고난과 어려움을 네 탓이라 여기지 않을게. 넌 나에게 축복이니까. 엄마, 아빠에게 와줘서 고마워. 그 많은 부모들 중, 우리를 택해줘서 고맙단다. 축복이 네가 태어날 때까지 엄마 열심히 끌 쓰고, 맡은 일들 즐겁게 해나갈게. 아무 걱정 말고 재밌고 편안하게 지내렴. 무럭무럭 자라라.

 

23주 2일

엄마가

 

[사진 이모저모]

전경이 끝내줬던 숙소.

셀카가 빠지면 섭하지.

호텔 로비에서 아빠.

 

팀장님 추천으로 방문한 <백미당>

아이스크림 라떼 맛에 푹 빠져버렸지.

 

부산에 온 김에 중고사이트를 통해 봐뒀던 노트북을 저렴하게 구매했단다.

 

추리문학관에서 노트북을 테스트하다가 찰칵. 둘이 닮았지?

 

이런 걸 '설정샷'이라고 한단다.

 

책이 정말 많았어. 꼭, 초등학교 시절 '여름독서교실'로 방문했던 고향 동네 작은 도서관이 생각나더구나.

문도 엣지있게 셜록.

축복이의 존재감 뿜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