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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리뷰] 시대가 지나도 사랑받는 '스테디셀러'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진부하고도 새삼스런 이러한 사실을 영화 <마지막 황제>를 보며 다시금 깨달았다.

  영화 <마지막 황제>는 제60회 아카데미 작품상을 포함해 9개 부문을 모두 휩쓸며 전세계적인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다. 청나라 12대 황제로 즉위한 '푸이'가 역사의 회오리 속에 휘말려 식물원의 정원사로 전락하는 자전적 영화다.

엑스트라 1만 9천여명, 유럽인의 눈에 비친 중국은?
  감독은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영화사상 처음으로 서유럽인이 중국인의 드라마를 그렸다는 점에서 이슈가 됐다. 엑스트라만 1만 9000여명. 중국 베이징과 자금성에서 촬영됐다.

  이 영화가 사람들에게 울림을 주는 이유는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점에 있을 것이다. 한 나라를 휘어잡은 당대의 최고 황제가 식물원의 정원사로 전락하다니. 이보다 더 소설같고 영화같은 스토리가 어딨겠는가. 

  영화는 주인공의 삶을, 과거-현재를 오가며 중첩적으로 보여준다. 가장 첫번째 장면은 황제의 '오늘'에 대한 모습이다. 한 남자가 화장실에 들어가 동맥을 끊고 자살을 기도하지만 곧 미수에 그치고 만다. 그의 이름은 푸이. 바로 중국의 마지막 황제다.

  여기에서 영화는 푸이의 어린시절, '과거'로 넘어간다. 1908년 3살의 푸이는 최고의 권력자인 서태후의 지명으로 광서제의 후계자가 되어 자금성에 들어간다. 푸이가 황제가 된 후,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여인 서태후는 숨을 거둔다. 청나라의 황제가 된 푸이는 6세까지 내시와 궁녀들 사이에서 성장한다. 1912년 '신해혁명'이 일어나고 황제의 존호와 궁전 및 사유재산만 인정받은 채 푸이는 퇴위하게 된다. 그리하여 황제는 자금성 밖을 외출할 수 없게되었는데, 이 즈음 자금성 밖에서는 청나라가 몰락하고 중화민국이 탄생한다. 그리고 푸이는 궁밖에 나섰다가 변화한 시대의 흐름을 보고 놀라게 된다. 그동안 '우물 안 개구리' 아니, '우물 안 황제'였던 것이다.
 


중국의 마지막 황제가 정원사가 되기까지
   꼬마 황제 푸이가 14세 되던 해, 영국인 가정교사 레지널드 존스턴이 자금성 안으로 들어온다. 신하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전거를 들여와 황제에게 주고 안경을 쓰게 하는 등 신식물건을 접할 수 있게끔 도와 준다. 아주 능숙한 영어로 가정교사에게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푸이를 보고 있노라면, 그가 마음 속에 품은 신식문화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게 한다.

  오랜 관습에 반발하면서도 그는 17세의 완용공주를 황후로, 12세의 문연공주를 후실로 맞아들인다. 그의 부인들은 마치 친자매처럼 친하게 지낸다.
  1924년 군사혁명이 일어나고 푸이는 추방되는 동시에 반역죄로 감시받는 신세가 된다. 푸이는 두 아내와 함께 톈진으로 도피하고 후실은 문연공주는 푸이의 곁을 떠난다. 


  푸이는 다시 권력을 잡고 싶어 한다. 황제가 되는 꿈을 포기할 수 없다. 그리하여 일본에게 기대기 시작한다. 완용공주는 그런 황제에게 실망하고 경계할 것을 요구하지만, 이미 공주 역시 아편에 입을 대면서 점점 망가져만 간다.  일본의 획책에 넘어간 푸이는 신생 만주국의 황제가 되지만, 결국 만주국은 멸망하고 푸이는 소련의 전범 수용소로 송치된다. 
  1950년 소련에서 중국으로 후송된 푸이는 공산정권에 의해 10년간 재교육을 받는다. 그리고 식물원의 정원사가 되어 자유의 몸이 된다. 

영화를 좀 더 이해하고 싶다면?
<먼나라 이웃나라-중국편> 추천
 

영화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중국사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 물론, 배경지식이 없더라도 영화에 집중하다보면 곧 스토리를 이해할 수는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중국사에 무지한 사람이라, 영화를 보는 내내 궁금증이 많이 일었다. 그래서 영화를 보자 마자 영화속 배경이 된 사건들과 그 시기의 중국의 상황을 찾아보기에 이르렀다.

  도움이 되었던 책이 바로 이원복 교수가 쓰고 그린 <먼나라 이웃나라-중국편>이다. 검색하면 중앙일보에 게재했던 만화를 원본으로 볼 수 있다. 근대편을 읽고 현대편을 읽으면 중국사에 대한 이해가 정립되리라 생각한다. 나 역시 책을 읽고 나서야 비로서 당시 중국의 상황이 이해되면서 중국사에 대한 흥미가 더욱 증폭됐다. 

중국의 마지막 황제를 보며 고종을 떠올리다
  내가 처음에 이 영화를 봤을 때, 중국사에 대한 배경지식이 없었던 것처럼 다른 관객들도 그럴 수 있다고 판단하고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더 해볼까 한다.

  중국의 마지막 황제 푸이를 보는 내내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바로 '고종'이다. 누군가는 영친왕을 떠올릴 수도 있겠지만 그는 대한제국의 마지막 황태자 아니던가. 그러나 사실 영친왕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많지 않고 실제로 왕이 되지는 못했기에 조선의 마지막 왕인 '고종'과 빗대고 싶다.

  유럽 열강과의 문호 개방 압력에 시달리던 고종은 갑오개혁을 단행한 후 일본의 힘을 빌려 내정개혁을 하고자 했으나 결국 일본에 의해 제거(?) 당한다. 푸이 역시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일본의 도움을 얻어 황제가 되지만 결국 꼭두각시처럼 이용만 당하고 만다. 

시대의 흐름에 동조하지 못하고 열강의 힘을 빌려야만 했던 나약했던 왕. 결국 이용당하고 버려졌던, 백성들에게 까지 미움을 받아야만 했던 왕. 이런 슬픈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고종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푸이는 만주를 떠나 톈진에서 신식문물에 무섭게 파고든다. 그동안 참았던 호기심과 욕망, 욕구들이 분출하고만 것이다. 신식 양복을 차려입고, 음악에 맞춰 서양인들과 댄스를 추고, 술이 빠지지 않는 사교의 장으로 흠뻑 빠져든다. 오로지 자신만의 욕망에 충실했던 것이다. 그 시각, 백성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시대의 흐름은 무엇을 요구하는지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다시 왕위에 오르고 싶었던 푸이는 일본의 도움을 얻어 왕권을 되찾는다. 그러다 꼭두각시 노릇만 하다 결국 공산정권에 의해 왕권을 빼앗기도 만다. 

왕에서 평민으로. 어쩌면 후련하지 않았을까?
  정신교육을 받는 동안의 푸이의 모습은 정말 안쓰럽다. 이 나약한 사내를 누가 황제라고 믿겠는가! 어릴 적부터 최고의 권력을누리고 있던 그는 혼자서 할 줄 아는 게 많지 않다. 먹는 것, 입는 것, 이동하는 것까지 신하들의 시중이 있었다. 그런 그가 하루아침에 평민이 되기는 힘들 터. 그는 감옥에 있으면서도 한때 신하였던 이의 시중을 받고 생활한다.

 그것을 지켜봤던 교도관이 푸이를 단체방으로 쫒아버리고 그 속에서 푸이는 그동안 경험하지 못했던 혼자만의 삶을 살아간다. 다함께 어울려야 하고 혼자 옷을 입어야 하고 혼자 선택해야 하는 것이다. 굴욕도 설움도 다 참아야만 한다. 명령 하나로 움직이고 복종했던 사람들이 더이상 아니기에. 

  "나는 이제 당신의 신하가 아니야!"라고 말하던 남자의 목소리가 잊혀지질 않는다. 그제서야 푸이는 비로소 깨달았을 것이다. 자신이 더이상 황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비로소 굴욕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10년의 시간이 지나 사상교육을 받고 평범한 정원사가 되어 퇴소한 푸이. 아무도 그가 '황제'였단 사실을 알지 못한다. 하루하루 참회하는 마음으로 정원을 가꾸던 그 사이에도 중국은 여러번의 변화를 맞이한다. 모택동이 중국이 정권을 잡고, 마지막 황제도  만주국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이렇게 기구한 삶이 있을까. 선택 받아 황제가 되어, 황제로 살다, 정원사가 된 사내 푸이. 영화를 보는 내내, 평범한 삶은 어째서 소중한 것인지 깨닫게 됐다. 어린 소년에겐 엄마가 필요했고, 또래 친구들과 마음껏 뛰어 노는 게 중요했고, 넓은 세상이 궁금했다. 그러나 황제라는 이유로 견디고 참고 현명해야 했다.
  그 모든 폭력들을 견디지 못해 푸이는 결국 '자폭'하게 된 것이 아닐까. 그리고 어쩌면 푸이의 마지막은 생은 황제가 아닌 평범한 사람이어서 더욱 행복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자신의 삶을 반추하고, 식물을 돌보며 작은 것들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곤 했을 터이니 말이다. 비록 역사의 한페이지에 '훌륭한 황제'로
장대하게 기록되지 않을지라도.


[몇 가지 더]
1. 이 영화의 바탕이 된 책이 푸이가 직접 쓴 자서전 <나의 전반생>이라는 책이다. 한국어로  번역돼 국내에 출판 되었다고는 하는데, 지금은 구할 수가 없단다. 대신 <마지막 황제>라는 책이 출판되었다고 하니 구입해서 읽고 싶다.

2. 영화 <마지막 황제>의 ost는 굉장히 유명하다. 대표적인 음악이 바로 <레인(Rain)>인데, 실제로 영화에서는 한 장면에서 밖에 사용되지 않는다. 후실인 문연공주가 신식문물에 도취돼 왕을 떠나는 장면이 유일하다. 웅장하면서도 가슴 아린 선율이 계단을 뛰어 내려가는 문연공주의 모습 위로 울려 퍼진다. 비가 오는데도 아랑곳 않고 마당으로 뛰쳔간 문연공주. 그녀의 모습은 아슬아슬하면서도 행복해 보였다.

3. 배우들은 전부 영어로 대사를 읊는다. 중국에서 만든 영화가 아닌 유럽인의 눈으로 그려지고 제작된 영화여서 그런 것이라 생각된다. 당시에 황제를 비롯한 관료들이 모두 영어를 이렇게 잘했을리는 없다. 단지 영화 배급의 용이성과 관객들의 다양성을 고려해 공용어(?)인 영어를 사용한 것 같다. 배우들 모두 영어를 엄청 잘하던데, 배운 것일까 아니면 원래 잘하는 이들을 배우로 고용한 것일까. 그게 가장 궁금하다.

4. 푸이에 대해 궁금한가.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사진 한 장을 찾았다. 그에 대한 짤막한 연보도 함께. 이렇게 짤막하게 설명하기엔 그의 삶이 얼마나 기구한다. 가슴을 파고드는 청년의 삶. 영화에서 확인하라.

 

푸이 [溥儀, 1906.2.7~1967.10.17]

 
중국 청(淸)의 마지막 황제인 선통제(宣統帝). 1908년 3살의 나이로 청(淸)의 12대 황제가 되었지만 1912년 신해혁명으로 퇴위하였다. 1934년 일본에 의해 만주국의 황제가 되었으나 일본의 패전으로 소련에 체포되었다가 중국으로 송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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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책녀 에너지쩡

by 에너지쩡


[아이퐁으로 그려요] 카메라와 나

# "카메라가 싫어요"

어릴 적부터 나는 사진 찍기를 싫어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찍히는 걸' 싫어했다. 특히나 한창 사춘기인 초등학생 시절에는 절정에 달했다. 그때 찍은 사진을 보면 절반 이상이 죄다 인상 쓴 얼굴이다. "찍지마!!! 찍지 말라고!!!"하는 무언의 으름장이 아니었을까.

부모님은 어딘가에 놀라갔다하면 동생과 나를 나란히 세워 사진을 찍었다. 다섯살이나 많은 나는 동생 옆에서 마치 거인 같았다. 초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제일 뒷자리에 설 정도로 키가 컸던 나는, 중학교에 입학하자마자 그만 멈춰(?) 버렸다.

그 덕(?)에, 지금은 체구가 아담해 살이 왠만큼 찌지 않으면 그리 뚱뚱하게 보이지 않는 터라 덜하지만 어릴적엔 살에 대한 스트레스가 엄청 심했었다. 한창 외모에 불만이 많을 사춘기 시절이 아닌가. 그래서 더더욱 사진 찍히기가 싫었다.

물론, 카메라 기능이 장착된 핸드폰이 상용화 되었을 때라면 사정은 좀 달랐을 것이다. 각도를 살짝 비틀어 '예쁘게 나오는 법'을 득달했을 것이고, (현실이야 어떻든) 사진 속의 나는 나날이 예뻐갔을 테니까.그러나 내가 코 흘리던 그 시절엔 핸드폰은 커녕 삐삐호출기도 없었다. (있었다고 한들 상용화 되기 전이라 내겐 현존하지 않는 물건이나 다름 없었다.)

더군다나 그때 그시절, 사진찍는 이유는 죄다 따분한 것들 뿐이었다. 증명사진, 졸업사진 등등. 잇몸을 드러내고 어색하게 찍어댔던 그 사진들!!! 카메라를 소장하고 있는 친구들도 거의 없었고 소풍에 가서도 필름으로 찍을 수 있는 사진의 양은 한정돼 있었기에 나에게 가장 어울리는 포즈를 연구할 겨를도 없었다.

# 카메라 공포증을 이겨(?)내다

그러다 사진에 대한 공포를 조금 덜 수 있었던 것은 고2 무렵이었다. 친구들과 추억을 남기려는 이유에서였는지, 반에서 사진을 많이 찍고 놀았다. 옥상에서 점프하며 찍은 사진, 복도에서 나이키운동화를 뽐내며 찍은 사진, 벽에 기대어 일진처럼 포즈잡고 찍은 사진(실제로는 찐따) 등등.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진은 '파파라치' 사진이었다. 팔을 마구 흔들며 친구들에게 열띠게 설명하고 있는 나...아, 상상만 해도 흉하다.

대학에 올라가 학보사 기자로 활동하며 디지털카메라를 처음 구경했다. IT 기술이 갑자기 진보하며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던 시기였다. 그중 핸드폰, 카메라의 변화 속도는 놀라웠다.

대학생이 되어 장만한 핸드폰에는 카메라가 장착돼 있었고 예쁘게 찍히는 법을 연구하며 카메라와 친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막상 누군가에 의해 찍히는 건 여전히 늘 어렵곤 했다.

# 사진작가의 모델이 되어주다(진짜야)

마침내 지금처럼 사진기만 들어대면 편안하게 포즈를 잡고 능청까지 떨 수 있게 된 것은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의 일이다. 당시 연애했던 사람이 사진작가였다. 그 사람의 작업에 동행하며 모델이 곧잘 되어주곤 했는데, 처음엔 몹시 어색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사진을 '검열(?)'할 정도로 진일보 하게 됐다.

물론 처음부터 자연스러웠던 것은 아니다. 왜 이렇게 찍힌 사진들마저 절망적인지. "내가 이렇게 뚱뚱했어? 내가 이렇게 못생겼어?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들과 왜이리 다른거야?!"라며 공부를 해가며 사진을 배운 전문가에게 감히 맞짱을 떴떠랬다. 그럴때마다 그는 인내심 갖고 나를 찍어줬으며, 나는 내 얼굴 위주로 사진을 삭제하고 검열했다. 내겐 배경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오로지 얼굴이 갸름하게 나왔느냐, 종아리가 얇게 나왔느냐 따위였다.

그러한 경험을 통해 나는 무려 10년만에 사진공포증을 완전히 해소하게 됐다. 물론 지금도 '증명사진' 찍는 일은 두렵기만 하다. 왠지 의자에만 앉으면 긴장이 돼, 어색한 웃음으로 얼굴이 굳어있기 십상이니까. 더군다나 아저씨는 왜 이렇게 포토샵으로 내 턱을 깎아 놓는지...

지금은 어떤 사진기가 있어도 각도를 맞출 줄 아는 셀카의 귀신이 됐다. 그래서 때론 실물보다 훨 낫게 찍히는 이미지 때문에 '착각' 속에 살곤 하는데, 그닥 좋은 일은 아니지만 뭐 착각하며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시국도 어수선한데 이런 걸로 위안해야지 어쩌겠느냔 말이다. 나름의 자기위안이라고나 할까.

# 내 얼굴 보다 세상에 관심이 생기는 나이

이제 나도 곧 있으면 서른. 요샌 늙어가는 내 얼굴 보다 세상을 찍고 싶어진다. 그래서 좋은 풍경이나 감흥을 주는 물건이 있으면 핸드폰을 꺼내들고 '찰칵' 셔터를 누른다.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거나 거리를 걸어갈 때, 가끔 의식적으로 하늘을 쳐다보곤 한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풍경이란 나뭇가지가 하늘에 걸려있는 모습이다. 여름날엔 여름날대로 잎이 무성해 청명하고, 겨울날엔 헐벗었지만 앙상한 나뭇가지가 하늘에 그려놓은 절제된 선의 미(美)가 참말 마음에 든다.

카메라는 어떻게 발명 되었을까. 전공적으로나 이론적으로 접근하고 싶지 않다. 그저 아름다운 것을 보면 남겨두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기계의 발명과 탄생을 만든 것이 아닐는지. 그리하여 오늘도 난 아름다운 세상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기 바쁘다.

"찰칵찰칵" 세상과 만나는 경쾌한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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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책녀 에너지쩡



인디애니박스 <셀마의 단백질 커피>

최근 <돼지의 왕>이라는 애니메이션이 독립영화계에 바람을 일으키며 사람들에게 신선한 잔혹함(?)을 안겨주고 있다. 연상호 감독은 이 영화를 만들기 전, 단편 애니메이션을 하나 만들었는데 그게 바로 <사랑은 단백질>이다.

하나만 달랑 개봉할 순 없으니 다른 단편 애니메이션 두편과 함께 짝을 맞춰 장편분량으로 러닝타임을 맞췄고 <셀마의 단백질 커피>라는 제목으로 개봉을 했다. 개봉 소식을 들었을 때부터 무척이나 보고 싶었다. 연상호 감독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기에 나의 관심은 오로지 최규석 만화가에게서 비롯됐다. 그가 그린 만화라면 항상 신뢰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최규석 만화가를 알고 있나요?









최규석. 1977년 경상남도 진주에서 출생했으며, 상명대 만화컨텐츠학부를 졸업했다. 그가 펴낸 첫 단행본은 <아기공룡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로 한국 만화 계에 당돌하면서도 신선한 충격을 불러 일으켰다. 히치스러우면서도 정감 있는 그의 그림 속에는 이 사회의 소수자들이, 약자들이 담겨 있었다.

 

이후 경향신문과 한겨레 신문에 <습지생태보고서>, <대한민국원주민>와 같은 작품을 연재하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탄탄히 만들어 간다. 5.18 광주항쟁 이야기를 담은 <100도씨>를 펴냈고, 작년엔 <울기엔 좀 애매한>이라는 청춘들의 이야기를 담은 만화를 펴냈다.

난해하거나 어렵지 않으면서도 참신한 시각으로 그려내는 최규석의 만화가 나는 참 좋았다. 그가 펴낸 작품들은 다 읽을 정도로 그의 팬이 되었다.

<돼지의 왕> 연상호 감독과 최규석의 합작품 <사랑은 단백질>

단편 애니메이션 <사랑은 단백질>은 최규석 만화가의 작품이 원작이다. 많은 사람들이 애니메이션이 아이들을 위한 장르라 말한다. 그렇지만 <은하철도 999>나 <스머프>, 혹은 일본 지브리스튜디오에서 만든 만화영화에서 알 수 있듯, 애니메이션은 때로 기존 영화보다 더욱 현실적이고 명확하다.

적어도 이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만화영화가 아름답고, 희망적이고, 깨끗한 이야기만 담아야 한다는 편견은 버리는 게 좋을 듯 싶다. (버리기 싫다면 헐리우드식 애니메이션을 보세요. '인어공주' '미녀와 야수' 등등)


귀엽고 앙증맞은 그림, 상상력을 발휘한 등장인물에만 집중한다면 정작 중요한 메시지는 놓칠 수 있다. 가끔씩 살을 파고드는 무서우리만큼 섬뜩한 설정들. 이토록 재밌고 영리하고 섬뜩한 애니가 과연 있을까.


<원티드> 태풍이 휩쓸고간 자리, 무능력한 위정자


이 영화, 실은 제목이 너무 난해하다. <셀마의 단백질 커피>!!!! 잉, 이게 뭐지-라고 생각했는데 곰곰 생각해보니 단편 3개의 내용을 요약한 제목이었다.

<원티드>는 평화롭고 나른한 마을에 어떤 무서운 노파가 몰고온 태풍으로 고난에 빠지는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데, 노파는 태풍 '셀마'를 의미한다. 지명수배자로 일컬어지는 '셀마'를 통해 한국의 정치상황을 빗댔다.

이를테면 이렇다. 태풍으로 마을이 물에 잠기고 사람들은 뗏목에 의지해 바다인지, 마을인지 모를 망망대해를 떠돌아 다닌다. 그때, 경찰청장(혹은 동장) 비스므리한 권력을 쥔 사람이 큰 배를 타고 나타난다. 사람들은 자신들을 구하러 온 것이라 생각하며 환호하지만, 그는 시간이 없다며 구호물품만을 던지고 가버린다. 박스 안에 든 것이 음식이라 생각했던 사람들은 곧 절망한다. 박스 안에는 인형들만 가득차 있기 때문이다.

실리는 따지지 않고 보여지는 것만, 절차만 중시하는 정치인들. 그로 인해 피해를 받는 주민들과 그들의 불신이<원티드>에 아주 잘 담겨 있다.

<사랑은 단백질> 치킨들의 사연에 귀 기울여라

<사랑의 단백질>은 세상의 모든 치킨들이 지니고 있는 사연에 귀 기울이게(?) 만든다. 영화를 보고 나면 당분간 닭은 입에도 대기 싫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먹은 닭들은 누군가의 사랑하는 가족일 수 있기 때문이다. 무슨 뚱딴지 같은 얘기냐고?

그러니까, 영화는 자취생 청년 셋(재호, 경순, 홍찬)이 돼지 저금통을 탈탈 털어 치킨을 배달시키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잠시 후, 족발집의 돼지가 대신 닭을 들고 배달을 오고, 돼지를 뒤늦게 따라온 닭사장은 배달된 치킨이 바로 자신의 아들 '닭돌이'라며 대성통공을 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청년들의 입장은 각기 다르다. 한 청년은 식욕을 잃어버리고 닭 사장의 마음에 동화돼 그저 눈물만 흘린다. 그러던가 말던가 다른 청년은 닭돌이의 다리를 쫙 찢어 입에 넣고 우적우적 먹는다. 나머지 청년 하나는 미적미적 눈치를 보더니 슬금슬금 닭을 먹는다. 그리곤 눈치 없이 굴던 친구를 타박한다.

지금도 기억에 남는 대사 하나. 시종일관 눈치 없이 입맛만 다시고 침 흘리던 친구 재호에게 누군가가 "너는 눈치가 없어서 참 좋겠다"라고 말한다. 남이 아프던 말던, 누가 죽던 말던 오로지 자기 배 채우는데 관심이 있는 녀석. 본성이 나쁘다, 착하다의 문제가 아닌 '눈치'와 '타인에 대한 상상력'이 결여된 잉여인간. 과연 우리는 재호를 비난하고만 있을 수 있을까. .

비록 애니메이션이긴 하지만 이런 상황이 눈 앞에 펼쳐지면 나는 과연 어떤 청년처럼 행동하게 될까. 그것을 생각하며 애니를 본다면 재미는 두배가 될 것이다.

<무림일검의 사생활> 커피자판기, 사랑에 빠지다

<무림일검의 사생활>은 만화적 상상력이 깊이 가미된 영화다. 무림제일검이라 불리던 검객 진영영은 강적과의 대결 끝에 죽고, 소원대로 강철로 환생한다. 그런데!!! 하필 커피자판기다. 가슴에서 따뜻한 커피를 만들어내고, 술을 먹으면 동정심이 많아지는 여자 혜미와 사랑에 빠진다.

자판기와 사람의 사랑이라. 정말 재밌고도 깜찍한 상상력이다. 커피자판기는 저녁만 되면 사람으로 변한다. 커피자판기와 인간의 사랑. 애니메이션이 아니라면 다룰 수 없는 이야기다.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펼쳐지는 이들의 러브스토리를 보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졌다.

자판기를 타고 혜미가 그 위에 앉아 하늘을 나는 장면, 참 예쁘다. 이 장면을 보며 나는 지브리스튜디오에서 만든 일본 애니메이션 <마녀배달부 키키>의 한장면이 생각났다. 

주인공이 둘다 단발머리라는 점, 스커트를 입었다는 점, 발랄하다는 점이 같다. 다른 점은 혜미는 자판기를 타고 날아다니고 키키는 마녀답게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닌다는 것.

지금도 나는 <부산국제영화제>를 가면 꼭 단편 애니메이션을 보곤 한다. 때론 난해하고 때론 대책없이 귀여운 다양한 작품을 만나며 그때마다 성장하는 것을 느낀다. 꿈과 희망 대신, 현실에 대한 직시와 잠시 쉬어갈 여유 같은 것을 안겨주기 때문이다.

"현실은 아름답다, 그러니 아름답게 살아라"가 아닌 "현실은 시궁창이다. 새삼스러워 말고 시궁창 같은 곳에서 인간답게 살아봐라"라는 제법 아프고 능청스럽게 삶에 대한 교훈과 철학을 주는 애니메이션. 이 작품을 꼭 봐야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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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영책녀 에너지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