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김정미의 창작놀이터


순산을 위한 운동이 시급하다. 평상시 잘 걸어다니고, 하체가 워낙 튼튼하긴 하지만 꾸준히 운동을 하는 건 아니라서 좀 걱정이다.

더군다가 오늘은 '임신 어플'에서 이런 알람이 뜨기에 더욱 마음이 급해졌다. 자연분만을 하려면 운동을 하라는 뜻인데... 나는 좀 운동량이 부족한 듯도 하다. 그래서 하루에 2시간씩 걷기로 마음 먹었다.


요즘 게으름은 병이 되었고, 느지막히 하루를 시작하며 밥 먹고 산책을 다녀왔다. 우선 목적지 없이 무작정 강변 따라 걷기. 어찌나 추웠던지 강변이 꽁꽁 얼었다.


이 길을 걷다보니 문득 신랑이랑 연애할 적이 떠오른다. 장거리 연애를 하던 우리, 처음으로 신랑이 살던 이 동네에 내려왔었다. 그때는 설 연휴였고, 친 오빠가 사는 진해에 들렀다가 신랑 보러 이 동네에 왔더랬다. 강변을 따라가면 롯데시네마가 나오는데 영화를 보러 걸어가며 신랑에게 이렇게 말했다.

"난 여기에서 못 살 거 같아. 너무 휑하고 이상해."
이 동네의 첫인상은 정말이지 별로였다. 쌀쌀 맞고 운치 없달까. 그랬던 나, 이제는 누구보다 이 동네를, 이 강변을 좋아한다. 사계절을 살아보니, 그때 나는 하필 가장 횡량한 겨울의 강변을 봤던 거였다. 첫인상이 딱 별로일 수 밖에.


한 시간 산책하고, 강 반대편으로 건너가 다시 돌아오며 "차한잔 하러 어디갈까?" 고민 했다. 그러다 오랜만에 스타벅스를 찾았다. 금요일인데도 사람들이 어찌나 많던지. 백수들이 많은 걸까, 아니면 여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걸까, 아니면 지나가다 들린 걸까? 아무튼, 아이스 화이트초콜릿모카 마시며 무섭다던 <영선 가루카야 기담집>을 읽았는데 별로 안 무서운 게 함정. (-.-;) 출산 전에 괴담 단편 동화 써야하는데 큰일이로세!  어쨌든 간단히 얼개를 짜고 돌아왔다. 오늘부터 괴담 동화를 써보려한다.

집으로 오는 길에 '오늘의 기분 좋음'이자 '힐링 포인트' 몇가지를 건졌다.

종합병원 앞, 늘 궁금했던 팬시샵에 들러 구경 (*.*) 그러다가 이쁜 펜 발견! 도라에몽이랑 삐약이(이름이 있을텐데 모르겠당) 볼펜 한 자루에 1500원. 득템! 그리고 수업할 때 스티커 대신 사용할 리락쿠마 도장도 샀다. 히힛!


그리고 울 동네 gs 슈퍼에 들러 포장지가 귀여운 <몬스터 초코볼>도 샀다. 이렇게 모아두니 노랑노랑 에너지가 마구 차오르는 느낌!

그러고보면, 나 '키덜트'인가. 예전엔 몰랐는데 경제적 능력이 생긴 후 가만 들여다보니 내가 팬시, 인형 이런 걸 좋아하고 있었다. 놀라운 발견!

행복이 뭐 별거인가. 이런 게 행복이지. 재래시장에 들러 만두 두개(천원어치) 먹었더니 기분이 더 좋아졌다. 오늘의 기분 좋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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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금이 작가님의 <동화창작교실>이라는 책을 요즘 틈틈이 보고 있다. 그러다 오늘 가장 뒷장에 내가 남긴 글귀를 발견했다.


바로 요것! 2010년 3월 9일 화요일. 27살의 내가 나에게 남긴 글이다.


"정미! 할 수 있어! 동화 쓸 수 있어! 혼자서라도 일단 해보는 거야. 지금부터라도 시작해 보는 거야. 내 나이 27살이니 10년만 정진해도 38살밖에 안 되잖니. 건투를 빈다. 우리 잘해보자♡"

젊을 적, 나는 꽤 진취적이었다. 늘 에너지가 넘쳐났다. 이 '에너지'가 장점이기도 했고 단점이기도 했다. 지나친 열정이 나를 성장시키기도 했고, 때로는 제풀에 지쳐 나가 떨어지게도 했다. 하지만 그 시절, 에너지마저 없었다면 나는 지금까지 올 수 없었을 것이다.

"치직치직, 이재한 경삽니다" 라는 대사가 유명했던 드라마 <씨그널>을 흉내내어 당시의 나에게 편지를 보내보련다.

"치직치직, 김정미 작가입니다. 당신은 30살에 동화작가가 되었고, 34살에 엄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38살에는 등단 8년차 작가가 됩니다. 오메, 무서운 것!"

이거 실화냐? 갑자기 땀이 송글송글. 난 아직도 부족한데, 시간은 참말 잘 흘러간다. 그래도 걱정이나 자책 보다는 스스르로를 격려해주고 싶다. 저렴한 월셋집을 전전하며 서울 일대를 누볐던 젊은 시절의 나, 비록 가난했을지언정 마음에 꿈을 품고 있어 부유했던 그 시절의 나, 네가 동화를 마음에 품은 덕분에 나는 지금 작가가 되었노라고. 고맙다.


요거는 보너스!

20대 시절, 일기만큼이나 다이어리를 무척 많이 썼는데 어느날 다이어리를 들춰보다 발견한 쪽지다.

25살의 내가 품은 소망이란 이랬다. 내 이웃들의 아픔을 잊지 않으며 살겠다. 사람의 가치를 최선으로 하겠다. 사람을 위한, 사람을 향한, 그들을 위한 글을 쓰겠다. 기자가 되겠다, 인간적인 기자. 40대에 출판하겠다(이땅의 노인들을 찾아서).

참 기특했고, 믿음직스러웠구나. 그때 마음에 품었던 마음들이 나를 여기로 데려와주었구나. 새삼 '마크툽'의 힘을 깨닫는다.

P.s 한때, 전국의 작은 마을들을 돌면서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만나 그들의 삶을 글로 엮고 싶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게 바로 스토리텔링이었구나 싶다. 이 꿈은 아직도 유효하다. 동화에만 머물러 있기 보다는 다른 글들도 많이 써나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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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작가로서 가장 기쁜 순간은 언제일까요? 바로 어린이 독자들에게 편지를 받을 때입니다.

저는 등단 4년차에 접어들었지만 아직 갈 길이 멀고 배울 것도 많은 '새내기 작가' 입니다.  "4년이나 되어 놓고, 네가 무슨 새내기냐?"라고 묻는 분들도 계실 거예요. 하지만 아직도 글을 쓰며 좌충우돌하는 중이기에 쑥스럽지만 아직도 신인이라 스스로를 부르고 싶습니다. 이 시간을 잘 갈고 닦는다면 저도 어엿한 작가 반열에 드는 날이 오지 않겠어요? 제발, 그날이여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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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길었습니다. 첫 장편동화 <유령과 함께한 일주일>을 펴낸 이후, 신기하게도 독자들을 만날 기회가 많이 생겼습니다. 지인 찬스를 통해 여기저기에서 강연 제의가 왔고, 기꺼이 독자들을 만나러 출동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어린이 독자들을 만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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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작가라는 직업은 고독합니다. 특히, 동화작가는 더더욱 그런 듯 합니다. 작품의 독자는 어린이들인데, 어린이들이 항상 옆에 있지 않으니 자칫 잘못했다가는 어린이와 동떨어진 작품을 쓰기 쉽지요.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소재도 찾아보고, 어른들끼리 머리를 맞대 작품을 평가하기도 하지만 '내가 잘하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들기 마련입니다.

그럼 뭐를 어쩌냐고요? 방법은 하나, 열심히 묵묵히 쓰는 수밖에 없습니다. 모든 작가가 그러하듯 말이에요. 저 역시 어린이 독자들을 만날 날을 손꼽으며 묵묵히 글을 써내려가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만나고 싶던 독자들을 첫 단행본을 펴낸 후 만나게 되었습니다. 아이들의 솔직한 소감과 피드백은 덤이지요.

 

또, 말이 길어졌습니다. 2016년 여름에 광주역시의 한 초등학교에 강연을 다녀왔는데, 그곳에서 동화작가가 꿈이라던 4학년 인아를 만났습니다. 저는 강연을 갈 때마다 제 책을 몇 권 가져가서 선물로 나눠주곤 하는데, 하필 공교롭게도 이 친구는 책을 선물받지 못했어요. 굉장히 갖고 싶어하는 표정이었는데 말이에요. 저도 두고두고 마음에 남았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에게 팬레터가 도착했습니다. 바로, 인아에게서 온 편지입니다. 저에게는 첫 팬레터였지요. 알고보니 저를 초청했던 사서 선생님께 제 주소를 받아 팬레터를 보냈다고 해요. 어찌나 기쁘고 행복하던지, 정말 제자리를 방방 뛰고 싶었다니까요. 사실 마음속으로는 몇 번이고 곡예를 부리고 있었습니다.  

 

 

택배를 열자마자 눈이 휘둥그레! 정성껏 포장한 황금색 포장지를 뜯은 저는 감동하고 말았습니다. 편지와 함께 스티커, 펜, 샤프, 각종 간식거리가 가득 담겨 있었거든요! 어쩜~. 정말 그 예쁜 마음에 눈물이 핑 돌았습니다. 무한 감동!!!! 절로 이런 말이 튀어나왔습니다. "동화작가가 되길 잘했다!" 난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요. 아마 이 편지는 앞으로도 영영 잊을 수 없을 것 같아요. 인아의 이름도 말이지요. 츤데레한 저는 감동 받은 나머지 인아에게 손편지와 선물을 보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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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아는 아직도 동화작가가 꿈일까요? 어릴 때는 꿈이 몇 번이고 바뀌는 법이니까, 저는 인아가 어떤 꿈을 꾸든 응원해주고 싶습니다. 가끔 인아를 떠올리면 광주에 놀러가고 싶어집니다. 다시 또 강연 기회가 온다면 슝! 날아가려 합니다. 앞으로 더더욱 좋은 작품 많이 쓰겠습니다. 전국의 어린이들과 친구가 되는 그 날을 위해!

 

이렇게나 맛있는 간식도 잔뜩! 고백하자면 안 먹고 고이 모셔두었습니다. 그러다 한 1년 지난 후 먹은 듯 해요. 저는 촌데레한 작가니까욧!ㅎㅎ

 

'정성, 진실을 가득 담아서'라니... 마치 어린시절로 돌아간 기분이었답니다. 편지 내용은 비밀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