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김정미의 창작놀이터

 

<11> 딸에게 쓰는 편지

 

 

엄마 뱃속에서 쿵쿵대며 존재감을 알리는 너. 가만히 손을 올려놓고 쓰다듬어 본다. 이 커다란 배 안에 네가 있다니, 생명이 있다니. 믿기지 않는다. 너는 그 곳에서 편안하니? 불편하지는 않니? 엄마 배가 아무리 커졌다고 해도, 파인애플 두 개 크기인 네가 들어 있기에는 굉장히 좁을 것 같은데. 그래서 그렇게 팔도 발도 쭉쭉 펴며 꼼지락거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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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로 이런 생각이 든다.

"참 평화로운 한때구나. 참,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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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네가 세상에 태어난단다. 그러면 지금의 평화로움은 백일몽처럼 한낱 꿈 같겠지. 주변에서 "뱃속에 있을 때가 제일 좋을 때야"라는 말을 하도 많이 해서 각오는 하고 있단다. 그리고 어쩌면 당연한 거겠지. 갓 세상에 던져진 작은 생명체가 살아가는 법을 익히려면 얼마나 많은 일들이 벌어질지. 또, 아무것도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어린 생명체를 거두는 데는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할지. 당연히 순조롭지도, 쉽지도 않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 왜 뱃속에 있을 때가 편하다고 하는지 알 것 같단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만나게 되어 있지. 그날을 위해 엄마는 벌써부터 각오를 해두려 한단다. 하지만 전혀 상상이 되지 않는구나.

 

너를 만나기 위해서는 출산의 시간을 통과해야하겠지. 엄마는 겁이 없고 용감한 편인데, '출산의 고통'은 전혀 헤아릴수가 없어. 아이를 둔 세상 엄마들이 '출산'의 과정을 거쳤기에, 엄마는 그 과정이 그저 자연스럽다고만 생각했단다. 누구도 자신의 고통을 시시콜콜 말하지 않았기에 고통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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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아팠는데 아기 얼굴 보니까 고통을 잊어버렸어. 그래서 둘도 낳고, 셋도 낳고, 넷도 낳았지."

이건 네 외할머니가 엄마에게 한 말이야. 정말 고통을 정말 잊어버린 건지, 아니면 어린 딸에게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된다고 여겨서 그랬는지 외할머니는 엄마에게 어떻게 아팠는지 세세히 말해주지 않았단다. 주변에 아가를 낳은 분들도 고통보다는 행복에 찬 얼굴이었어. 아, 물론, 육아로 힘들어하긴 했지만 고통스러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단다. 어쩌면 엄마라면 누구나 다 거치는 과정을 혼자 유별나게 말하고 싶지 않았던... 아니, 못했던 것일지도 몰라. 그래서 그 트라우마를 개인의 경험으로 가둬둔 게 아닐까. 분명 '트라우마'겠지. 고통의 순간을 온몸으로 통과하는데 정신적 외상을 입지 않는다니 말이 되지 않지. 그런데 아가 얼굴을 보면 바로 치유가 된다더라. 정말 그러할까? 엄마도 경험해보면 알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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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이 다가오다보니 출산의 고통이 어땠는지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듣게 돼. 비교적 '숨풍' 낳은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엄마들이 엄청난 고통을 겪고 아이를 낳았더라. 엄마의 친구는 "배 위로 트럭이 지나가고, 수박이 나온다고 생각하면 돼."라는 경험담으로 엄마를 무섭게 했어. 이 정도면 다행이게. 48시간을 꼬박 진통한 사람도 있었고, 배가 아닌 허리가 뒤틀려서 고생한 사람도 있었단다. 또... 에휴, 말을 말자.

 

하지만 어차피 겪어야할 일, 용감하게 덤벼보려고 한단다. 엄마는 '경험주의자'니까 말이야. 그동안 엄마는 삶을 경험으로 통과해 왔단다. 그래서 굳이 겪지 않아도 될 일, 무모한 일을 많이 겪은 편이야. 엄마는 작가가 꿈이었기에 경험을 무척 중요하게 여겼단다. 몸으로 체험한 것은 잊히지 않는 법이고, 또 철저히 자신 게 되니까. 하지만 말이야, 그 생각에만 너무 치우쳐 있었던 것 같아. 돌이켜보면 치기 어린 모험심과 호기심 때문에 위험한 일들도 많이 겪었거든. 만약 우리 딸이 엄마처럼 하고싶어 한다면, 엄마는 말리고 싶구나. 세상에는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될 일이 있거든. 부모가 되면 왜 보수적으로 변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물론, 너는 너의 길을 알아서 걸어가겠지만 말이야.

 

엄마가 출산의 고통을 겪는만큼 아기도 세상에 나오려고 안간 힘을 쓴다고 해. 참 신기하지. 본능적으로 세상에 나올 때를 알고, 엄마 몸에서 나오려고 애를 쓴다니, 조물주는 인간을 어쩌면 이렇게 만들었을까. 세상에는 신기한 일 투성이야. 분명, 말도 못할만큼 고통스럽겠지만 잘 해낼게. 우리 축복이도 힘든 그 순간, 엄마를 의지하며 더욱 힘내서 세상에 나와줘. 우리 잘해보자.

 

기대 반, 두려움 반, 떨림 반, 신기함 반... 여러가지 감정을 복합적으로 느끼며 이 순간, 뱃속에 있는 너를 그려본다. 디데이 24일. 몇 주만 지나면 너를 만나겠구나. 지금의 평화로움과 정 반대되는 신세계가 펼쳐지겠지만, 기꺼이 즐겁게, 씩씩하게 잘해볼게. 나에게 딸이 생긴다니, 이 기적만으로도 엄마는 이 세상이, 삶이 새롭게 느껴진단다. 곧, 만나자 내 딸아.

 

36주 4일된 너에게

엄마가

 

 

 

 

 

<5> 딸에게 쓰는 편지

 

축복아, 여기는 부산추리문학관이야. 해운대 달맞이공원에 위치했단다. 김성종 작가님께서 꾸린 공간인데, 추리 관련 책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아. 건물은 총 3층이고, 1층은 카페야.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면 입장권을 사지 않아도 2, 3층을 둘러볼 수 있단다.

 

엄마, 아빠는 오늘 이 곳만 둘러보고 집으로 갈 예정이야. 부산은 외갓댁이 있는 곳이고, 대학생 시절부터 '부산국제영화제'며 뭐며 자주 왔던 곳이라 많은 곳을 가봤어. 그래서 매우 익숙한 도시란다. 네 아빠와 여행도 서 너 번 왔지. 그래서 딱 이곳만 보고 집에 가기로 했어.

 

축복아, 어제 뱃속에서 엄마 강연 잘 들었니? 강연 시작 전, 얼마나 떨렸는지 몰라. 강연 장소는 '해운대 그랜드호텔'. 지자체 공무원들 250여명이 대상이라는데, 그동안 엄마가 섰던 무대 중 제일 큰 자리야. 그래서 대본을 직접 적었을 정도로 준비를 철저히 했단다. 엄마를 불러주신 분께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똑부러지게 마무리하는 게 중요하다 여겼거든.

 

일부러 강의 한 시간 전에 해운대에 도착해서 카페에서 숨을 고르며 시간이 되길 기다렸지. 막상 호텔에 가보니 조명이 어두컴컴하고, 무대 위에 올라서야 하는 게 아니라서 편안하게 강의 했단다. 주제는 <스토리텔링으로 소통하라!>야. 그동안 엄마가 해왔던 강연 주제와 잘 맞아서 기존 자료를 보완해 준비했단다. 강연은 성공적으로 잘 마쳤어. 100점 만점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마이너스는 아니었지.

 

이번 강연은 엄마가 다녔던 회사 L 팀장님이 주신 기회란다. 정말 올곧고, 따뜻한 분이셔. 엄마가 그곳에서 일하게 된 것도 팀장님이 엄마를 뽑아주셨기 때문이지. 사실, 면접을 본 후 엄마는 그 자리를 거절했단다. 내 인생에 처음 있던 일이었지. 엄마는 "뽑아주시면 감사히 일하겠습니다" 모두의 '열정' 빼면 시체인 사람인데, 이때는 상황이 좀 남달랐어. 좀 힘든 때였거든. 대구에 내려가서 직장을 두 번이나 바꾸고, 사람들에게 실망도 많이 하고, 이리저리 치이던 때였지. 그래서 다음 직장만큼은 신중해야겠다고 여긴 거야. 그래서 거절했는데, 서류를 넣었던 직장에서 계속 미끄러지자 좀 후회가 되더라고. 통장 잔고는 줄고, 직장을 다니긴 다녀야겠고. 막막했는데 이 곳에서 다시 전화가 온 거야. 당연히 "무조건 열심히 해보겠습니닷!" 마음 먹고 바로 출근했지.

 

그 후,  무슨 일이 벌어졌게? 엄마는 2년 동안 신바람 나게 일했단다. 엄마가 다녔던 회사 중, 가장 깔끔하고 가장 체계적인 곳이었어. 직원들도 어찌나 신사다운지, 그 중의 최고는 팀장님이셨지. 일개 계약직인 나를 굉장히 인간적으로 따스하게 대해주셨단다. 엄마에게 보여준 순수한 호의와 애정 덕분에 엄마는 2년 동안 즐겁게 일했고, 자존감도 많이 회복했어. 팀장님께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일을 더욱 잘하고 싶었고, 최선을 다해 일한만큼 성과도 있었고, 존중 받았고.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멋진 시간이었어.

 

엄마는 살면서 신기한 경험을 많이 했단다. 자칫, 한 발자국만 더 내딛으면 허방 딛을 수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가까스로 벗어나는 경험. 위험한 순간, 누군가가 기적처럼 손 내밀어준 경험. 엄마가 망쳐놓았던 일이 깔끔하게 매듭되는 경험. 이런 순간의 기적들이 지금의 엄마를 만든 거야. 엄마는 그 기적의 힘이 네 외할아버지가 도와주신 게 아닐까 생각했단다. 그 마음을 담아 첫 장편동화 <유령과 함께한 일주일>을 썼지. 종교가 생긴 후에는 하느님이 도와주신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많이 해. 신의 섭리라고 밖에는 달리 설명할 겨를이 없거든.

 

엄마가 2년간 일한 직장, 그곳에서 만난 L팀장님 역시 엄마는 신이 보내준 선물이라고 여긴단다. 엄마는 분명 그때 정체 모를 두려움이 압도 당해 거절로서 그 자리를 놓쳤지. 그런데 기적처럼 다시 연락이 왔잖아. 물론, 더 좋은 기회가 기다렸을 수도 있지만 그건 '가지 않은 길'에 대한 기대감일뿐, 엄마가 겪은 바로는 최고의 결과였다고 여겨. 늘 좋은 곳으로 인도해주시는 신께 엄마는 참 감사하단다. 우리 부부가 필요한 순간, 너를 보내준 것도 신의 선물이지.

 

엄마는 이 세상이 각박하다고만 여겼어. 사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면서 사람에 대한 기대를 점점 줄이게 됐지. 엄마는 유독 상사 복이 없는 편이었거든. 다들 인간적으로 까칠한 사람들이었지. 하지만 모두들 일 하나는 잘했어. 그 덕분에 엄마는 일을 제대로 배웠단다. 돌이켜보면 모두 고마운 분들이야. 사람은 좋은데, 일 못하는 상사 밑에서 배웠다면? 글쎄, 이 경우는 행복은 짧고 고통을 오래 지속됐겠지. 다행히 엄마는 전자라서 고통을 짧고, 행복은 긴 케이스야. 일머리는 생겼으니까 말이야.

 

엄마는 사람에게 상처받아도 사람에게 치유받을 수 있다고 믿는단다. 우리는 혼자 살 수 없으니까. 엄마는 사람들과 용감히 부대끼고, 기꺼이 상처받는 편인데, 그 과정에서 괜히 벌이지 않아도 될 일을 저질러놓고 사서 고생하기도 해.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치유 받고 감동 받는단다. 엄마는 사람을 믿어. 사람과 사람이 나누는 정, 연대, 공감의 힘을 믿어. 우리 축복이도 상처 받고 좌절하더라도 다시 일어서는 치유력을 지닌 사람으로 살아가길 바라.

 

세상은 각박하지만, 그 반대편에서는 세상에 선한 영향력을 끼치려는 사람들이 존재한단다. 엄마는 사람이 희망이고 삶의 이유라고 생각해. 엄마가 받은 호의와 애정을 엄마 역시 남에게 베풀며 살고 싶어. 사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면, 가장 불편하고 아픈 사람은 바로 자신이란다. 엄마는 그래서 대부분 참는 쪽을 택하지만 그럼에도 본의 아니게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곤 하지. 그건 인간관계에 있어서 어쩔 수 없는 일인 것 같아. 중요한 건 미움의 마음을 갖지 않는 거야. 쉽지 않겠지만, 남을 쉽게 미워하지는 마. 마음이 힘들 때는 '기도'를 해보렴. 그러면 마음이 편안해질 거야.

 

엄마 역시 강연을 앞두고 마음 속으로 열심히 기도했단다. 그 결과 무사히 강연을 마쳤어. 우리 축복이, 엄마가 오래 서 있는데도 힘들어하지 않고 씩씩하게 있어줘서 고마워. 이쁜 내딸, 엄마 뱃속에서 편안하게 있으렴. 그것 말고는 바라는 게 없단다.

 

어제 강연을 마치고, 주최측에서 내어주신 숙소에서 1박을 했어. 네 아빠도 회사를 마치고 넘어왔단다. 강연 기회 덕분에 오랜만에 아빠와 데이트를 했어. 해운대 바닷가도 거닐고, 맛있는 아이스크림도 먹고 말이야.

 

또, 오늘 기적처럼 기쁜 전화를 받았단다. W 출판사에서 괴담 동화집을 기획 중인데 제주도 아이의 이야기를 써달라는 거야. 사실 엄마가 최근 W 출판사에서 주최하는 공모전에 장편동화를 응모했는데, 떨어졌거든. 헤헤. 그래서 실망하던 차였는데, 신기하게도 전화를 받았지 뭐야. 엄마 고향이 제주라서 가능한 기회였지. 하지만 그렇다고 제주도 출신 작가가 엄마 혼자만 있는 게 아닌데 정말 신기한 일 아니니? 엄마는 유명한 작가도 아닌 걸. 그렇기에 더더욱 말로 표현하거나 설명할 수 없는 일이야. 이것 역시 신의 섭리가 아닐까 싶어. 엄마는 요즘 부쩍 이런 생각을 한단다. 주님이 엄마에게 능력 밖의 일을 주시며 단련시켜 주신다고 말이야. (불과 3년 전, 무교였을 때만 해도 엄마는 이런 종교인들의 태도를 이해할 수 없었단다. 그런데 엄마가 겪어보니 이것 말로는 달리 설명할 수가 없어.)

 

축복아, 네가 참 복덩이야. 많은 여성들이 임신, 출산, 육아로 경력단절을 겪는단다. 그래서 임신에 대한 공포가 만연하지. 엄마도 많이 두려웠어. 하지만 주님이 주신 축복의 씨앗, 너를 잉태하고 정말 말할 수 없이 기쁘고 행복했어. 마음 속으로 출산 시까지 많은 작품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는데 쉽지 않더구나. 그래서 우울하기도 했지만, 또 반면에 새로운 기회와 도전이 많아 신나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중이야.

 

엄마는 축복이 너와 함께 좋은 글을 많이 많이 써나갈 거야. 엄마의 개인적인 게으름, 혹은 고난과 어려움을 네 탓이라 여기지 않을게. 넌 나에게 축복이니까. 엄마, 아빠에게 와줘서 고마워. 그 많은 부모들 중, 우리를 택해줘서 고맙단다. 축복이 네가 태어날 때까지 엄마 열심히 끌 쓰고, 맡은 일들 즐겁게 해나갈게. 아무 걱정 말고 재밌고 편안하게 지내렴. 무럭무럭 자라라.

 

23주 2일

엄마가

 

[사진 이모저모]

전경이 끝내줬던 숙소.

셀카가 빠지면 섭하지.

호텔 로비에서 아빠.

 

팀장님 추천으로 방문한 <백미당>

아이스크림 라떼 맛에 푹 빠져버렸지.

 

부산에 온 김에 중고사이트를 통해 봐뒀던 노트북을 저렴하게 구매했단다.

 

추리문학관에서 노트북을 테스트하다가 찰칵. 둘이 닮았지?

 

이런 걸 '설정샷'이라고 한단다.

 

책이 정말 많았어. 꼭, 초등학교 시절 '여름독서교실'로 방문했던 고향 동네 작은 도서관이 생각나더구나.

문도 엣지있게 셜록.

축복이의 존재감 뿜뿜.

 

 

 

 

 

<4> 딸에게 쓰는 편지

2017년 8월 28

 

축복아, 너에게 편지를 쓰는 일이 점점 줄어드네.

할 말도 많고 많은 일들도 있지만,

엄마가 게을러서 너에게 많은 이야기를 못 들려주는 것 같아 미안해.

 

축복아!

너는 지금 21주차란다.

정확히는 20주 4일째야.

 

 

 

4주 전에 병원에서 네 성별을 알게 됐어.

딸이래!!!!

엄마는 네가 딸이었으면 했단다.

물론, 아들이어도 좋아.

내 예쁜 아가인데 성별이 뭐가 중요하겠니?

 

그래도 딸이면 함께 할 수 있는 것들이 더 많을 것 같아서

내심 딸이길 바랐단다.

네 아빠도 그렇고 말이야.

 

그런데 간혹 성별이 바뀌기도 한대.

정학한 건 이번주 토요일에 병원에 가야 알 수 있을 것 같아.

 

축복아, 지금 엄마는 카페야.

'카페라떼' 한잔 마셨다. ^^;

 

엄마 말이지.

네가 생긴 것 알게 된 후로 커피를 끊었어.

그런데 중기 넘으면 임산부도 커피를 하루에 1잔 정도는 먹어도 괜찮다고 하더라.

그래도 이상하게 커피 생각이 나지 않아 안 먹었지.

임신 전에 하루에 커피 2~3잔을 기본으로 먹었던 엄마인데

참 의아하고 신기했단다.

 

그런데 말이야,

지난주에 아빠랑 제주에 여행 갔다가

'커피 본능'이 깨어나고 말았어.

 

지난 주 수요일에 엄마 고향인 제주도 대정에 갔다가

<와토 커피>라는 곳에 갔거든?

거기에서 커피를 한 잔 마셨는데 어찌나 맛있던지!

'와토 알프스'였나 뭐였나,

커피 위에 휘핑크림이 잔뜩 올라가 있는데

정말 끝내주는 맛이었어.

 

그날 커피 본능이 깨어난 탓에,

다음 날에는 편의점 인스턴트 커피를 마셨고,

제주를 떠나는 마지막 날에는

와토 커피와 비슷한 커피 맛을 찾아 다니다가

(가게가 이날 하필 휴업이었거든)

한경의 <홀스 커피>라는 곳에 갔는데

와토 커피만하지 않더라구.

 

커피 먹는 게 버릇이 되어서 오늘도 집에서 나와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했어.

그런데 이상하게 가슴이 쿵쾅거리네. 맛도 없고.

엄마 이제 당분간은 커피 끊어야겠다.

이왕 먹을 거면 정말 맛있는 커피를 먹을 거야!

축복아, 엄마가 마신 커피 때문에 몸이 힘들면 신호 줘.

엄마가 잘 참을게.

 

아참! 엄마 그동안 임산부 소양증 때문에 힘들었단다.

아마 14주 경부터였을 거야.

온몸이 간지러워서 어찌나 고생했는지 몰라.

여기저기 계속 긁으면 빨갛게 달아오르고,

참을 수 없을만큼 간지러웠어.

 

간지러워 새벽에 깨고, 긁고 후회하고.. 연속이었단다.

얼마나 괴롭던지 병원에서 약도 처방받았어.

약은 그날 하루 먹고 이후로 먹지 않았단다.

불안해서 그랬어.

병원에서는 엄마가 스트레스 받는 것보다는

약을 먹는 게 낫다고 했지만

여간 걱정이 되어야지 말이야.

 

그렇게 고생을 하다가

19주가 넘어서니까 거짓말처럼 소양증이 가라앉았어.

우리 축복이가 정말 정말 효녀구나 싶었지.

우리 효녀, 정말 보고 싶다.

 

네가 태어나고 나면... 너는 이 세상에 내던져져서

낯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끊임없이 울고 보채겠지.

엄마 아빠도 힘들겠지만,

그래도 엄마 너를 위해 최선을 다할 거야.

 

나에겐 잠깐의 고생이지만

축복이 네겐 다시 오지 않을 어린시절이잖아.

그러니까 엄마 믿고, 잘 따라줘. 알았지?

 

나중에 엄마는 말이야.

축복이 너랑 같이 여행을 많이 다닐 거야.

강연하러 갈 때마다 축복이 데리고 다니면서

전국을 여행하는 거지.

너에게 친구 같은, 네가 자랑스러워할만한

그런 엄마이고 싶단다. 노력할게.

 

우리 축복이, 네가 생긴 후로 엄만 날마다 행복해.

사람들이 엄마더러 얼굴이 펴고 좋아졌대.

또, 신나고 즐거운 일도 자꾸만 생겨.

 

지금 출간 준비중인 장편동화 <보름달이 뜨면 체인지>를

유준재 작가님이 그려주기로 했단다.

엄마가 추천한 작가야.

그림책도 어려 권 낸 실력 있는 분이시란다.

좋은 작가와 작업할 수 있다는 건 행운이지.

 

또, 엄마는 일 년에 책 한 권씩 펴내는 게 목표야.

그런데 올해는 영 틀렸구나 싶었지.

어영부영하던 사이에 시간이 훌쩍 흐르고 말았거든.

엄마가 많이 게을렀어.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출판사에서 의욕을 가져주신 덕분에

올해 책이 나올 수 있게 되었단다.

정말 감사한 일이지?

엄마는 정말 설레고 두근거린단다.

 

그리고 9월 14일에는 부산시 공무원 200여명을 대상으로

강연도 하게 됐어.

주제는 '소통으로 텔링-어른을 위한 동화읽기'란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대상으로 강연하는 건 처음이라

몹시 떨리고 긴장돼.

또 얼마나 행복하고 기쁜지 몰라.

 

엄마는 강연자로서의 삶을 꿈꿨단다.

신인작가에다 얼굴이 알려진 작가가 아니라서

작은 강연부터 시작했지.

그러면서 마음 속에는 늘

"언젠가 꼭 큰 강연을 맡고 맡겠다" 다짐하곤 했단다.

지금은 미약하더라도 언젠가는

여기저기에서 초창받는 작가가 되고 싶다-꿈을 품었지.

 

물론, 시간이 걸린다는 것을 알기에

매순간 작은 강연부터 최선을 다했어.

삶은 공평해서 하나를 넘어서야만 그 다음 것도 넘을 수 있거든.

 

그런데 생각보다 큰 무대에서의 강연 기회가 빨리 왔어.

물론, 지인 찬스야.

****께서 강사로 엄마를 추천했단다.

정말 고마운 분이시지?

 

그동안 엄마의 삶을 되돌아보면,

정말 과분할만큼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난 것 같아.

엄마는 늘 다짐한단다.

나에게 호의를 가져준 분들에게 꼭 보답하고 베풀며 살겠다고 말이지.

 

또, 제주에서 솔&앤유 부부를 만났어.

엄마, 아빠가 무척 좋아하는 부부란다.

이 분들과도 앞으로 재밌는 작업을 많이 벌이게 될 것 같아.

아마 어린이동산에서 상을 받은

<나는야 하모리 바리스타>를 전자책으로 펴낼 것 같아.

산솔님이 이 분야 전문가거든.

(결국 저작권 문제로 펴낼 수 없게 되었단다. 저작권이 5년 묶여 있거든.)

 

하모리는 엄마가 자란 동네 이름이야.

정작 스토리는 제주도 관련된 이야기가 아니지만

이번 기회에 제주 관련된 스토리로 바꿔보려고 해.

이런 제안을 해주셨을 때, 엄마는 무조건 '오케이' 했단다.

애정과 노력을 내가 아닌 다른 일에 쏟는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잖아.

이 분들의 호의에 감사한 마음이 들어서

정말 더 열심히, 좋은 작품 많이 써야겠다고 다짐했어.

 

엄마는 살아가면서 재밌는 많은 일들을 벌이고 싶어.

한계 없이 도전하고, 맘껏 시도해보고 싶어.

그러려면 다가오는 기회들을 놓치지 말아야겠지.

두려워도 일단 해보는 거야.

실패에서도 배울 수 있는 건 많으니까 말이야.

 

축복아,

엄마는 살아가면서 하루하루 매순간 최선을 다하려고 해.

그 길에 우리 축복이도 함께해줘.

고맙고 사랑한다.

 

엄마가

 

 

[특집] 제주에서 찍은 사진

하모리에 생긴 동네 책방 <이듬해 봄>에서 그림책을 한 권 샀단다. <균형> 이 작품이 바로 유준재 작가님의 작품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