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김정미의 창작놀이터

 

딸에게 쓰는 편지 (1)

2017년 5월 16일(6주차)

 

우주야, 방금 엄마는 점심으로 김밥을 먹었어. 언젠가 네가 태어나면 같이 김밥을 먹게 되겠지? 믿기지 않지만 ^^

 

엄마는 아직 입덧의 '입'도 시작을 안해서 컨디션과 기분이 매우 좋단다. 네가 엄마 뱃속에 있다는 걸 확인했던 2주 전, 그땐 이상하게 몸이 쿡쿡 쑤시고 힘들었어. 뭔가를 먹으면 체한 것처럼 속이 부글거리고 위도 아프고, 두통도 심했어.

 

다음날, 아침에는 오른쪽 눈이 두꺼비처럼 퉁퉁 붓고 진물이 나와 눈꼽이 가득 꼈지. 물론, 전날 눈을 아주 열심히 비벼서 그렇단다. 그래서 눈이 부었는데 아무리 그래도 너무 심하지 뭐야. 그리고 생리기간인데 생리도 없어서 무심코 임신테스트를 해봤어. 그런데 두 줄이 나왔지 뭐야.

 

"오빠! 나 임신이야!"

화장실에서 아빠에게 이렇게 말했더니, 네 아빠가 막 뛰어와서 엄마를 꼭 안아주었단다. 네 아빠 참 다정하지?

 

엄마는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이지만 네 아빠는 정말 마음이 넓고 훌륭한 사람이야. 그런 의미에서 우주 너는 복 받은 거야. ^^

 

엄마는 지금 대구출판산업지원센터 창작레지던스에 있어. 3월 말에 입주작가로 뽑혀 604호를 배정 받았지. 지금 엄마는 컴퓨터로 태교음악을 들으며 첫 일기이자 편지를 쓰고 있단다.

 

일기는 정말 오랜만에 써. 20대 때는 많이 썼는데, 그땐 엄마가 많이 힘들 때였거든. 마음이 힘들고 답답해서 일기를 썼나 봐. 나중에 엄마의 낡은 일기장을 보고 엄마를 비웃거나 엄마에게 실망하진 마. 원래 젊음이란 그렇게 어리석다가도 패기가 넘치고 대책없이 희망찬 것이니까.

 

엄마는 동화작가야. 인기가 있거나 인지도가 높지는 않아. 갓 동화책 한 권을 펴낸 신인작가지. 이제 곧 네가 자라면서 엄마 배가 산더미하게 불어올텐데, 그땐 아무래도 글쓰기가 버거워질 수도 있을 것 같아. 하지만 사람 나름이겠지. 어떤 이모는 막달 아기 낳기 전까지 원고를 썼다더라. 엄마도 최대한 그러려고 해. 네가 세상에 태어나면 그땐 한동안 육아에 전념하느라 글쓰는 것도 이것저것도 힘들테니 그 전에 열심히 부지런히 해두려고.

 

사실 엄마는 걱정이 많단다. 엄마가 그다지 야무진 편이 아니거든.(야무지게 생겼다는 말은 종종 듣지만.) 손해보는 일도 많이 하고, 사람들에게 싫은 소리도 잘 못해. 물론, 네 아빠에겐 세상에서 가장 나다운 모습을 보이느라 화도 종종 내지만 말이야.

 

작년 10월에 계약종료로 공공기관에서 2년 간 일하고 나왔어. 엄마 있지, 그곳에서 실력 인정 받으며 정말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계약직이라 결국 그만 둘 수밖에 없었어. 일은 일대로, 동화는 동화대로 조금 더 안정된 영역을 만들고 싶었단다. 그러던 사이 자녀계획은 미뤄뒀고, 올해 2월부터 노력했는데 3개월만에 네가 생긴 거야. 너는 우리에게 축복 같은 존재야. 하나님이 보내주신 귀한 선물이지. 

 

엄마, 아빠가 초보 부모라서 많이 서툴겠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약속할게. 세상 그 누구보다도 널 사랑하고 네 편이 되어주겠다는 것. 하나님 닮은 성품으로 건강하게 세상에 나오렴. 사랑한다. <끝>

 

일기장 찰칵!

일기장 찰칵!

 

병원에 가서 확인한 우리 딸, 최초의 모습.

성별도 알 수 없는, 블랙홀처럼 까맣고 아득한 너.

심장소리를 듣는데, 그만 울컥 눈물이 나왔단다.

 

서울, KTX역 화장실에서 한 번 더 시도한 테스트기.

정말 네가 내 배에 있는지 실감나지 않아서 엄마는 또 확인해보고 또 확인해봤단다.

엄마 웃기지?

친구들이 임신하면 엄마는 꼭 이 책을 선물해주었단다.

난다 작가의 <내가 태어날 때까지>라는 만화야.

이 책을 내가 읽게 될 줄 누가 알았겠니? ^^

엄마도 그림을 잘 그린다면,

그림으로 너를 표현하고 싶은데...(ㅜㅜ)

오지랖 피우지 말고, 엄마는 글로 남겨볼게.

미영 이모가 준 선물이야. 감동이지?

롤케이크에 엄마가 그린 '개굴너굴 부부' 그림을 넣었어.

개구리는 엄마, 너구리는 아빠란다.

왜 그런지 태어나서 엄마 아빠를 보면 알 수 있을 거야.

산모수첩을 받았단다.

진짜 엄마가 되었다는 뜻이지.

언제 시간이 흐를까 싶었는데,

포스팅을 하는 지금-

벌써 29주가 되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