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김정미의 창작놀이터

 



 (재)금성문화재단과 MBC문화방송이 공동으로 주최한 제22회 MBC 창작동화대상의 수상자가 선정되었습니다.

  장편, 중편, 단편 세 부문으로 나누어 공모한 제22회 MBC 창작동화대상은 지난 2014년 12월 5일 접수마감 결과 장편 71편, 중편 57편, 단편 317편으로 총 445편이 접수되었고, 예심과 본심 심사를 거쳐 최종 수상자 3명을 선정하였습니다.

  장편부문 당선작은 안수자 작가의 「우주나무 정거장」, 중편부문 당선작은 김정미 작가의 「시인 래퍼」, 단편부문 당선작은 지슬영 작가의 「사냥꾼 두실」이 수상작으로 선정되었습니다.

  당선되신 작가에게 축하를 드리며 아쉽게 수상작에 들지 못한 분께는 유감을 표하며 다음 기회를 기대합니다.

<수상자 이력>
구분
성명
작품명
약력
장편
당선작

안수자
우주나무
정거장
ㆍ1970 전남 함평 출생
ㆍ방송통신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ㆍ광주교육대학교 대학원 아동문학교육과 재학
ㆍ2011 광주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
ㆍ2013 한국안데르센문학상 수상
중편
당선작

김정미
시인 래퍼
ㆍ1984 제주 출생
ㆍ제주대학교 언론홍보학과 졸업
ㆍ2013 어린이동산 공모전 우수상
ㆍ2014 전북일보 신춘문예 동화 당선
ㆍ2014 푸른문학상 새로운 작가상 수상
ㆍ어린이 책작가 교실 22기 수료
ㆍ어린이 책을 만드는 사람들 동화창작모둠 15기
단편
당선작

지슬영
사냥꾼 두실
ㆍ1977 전남 강진 출생
ㆍ단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ㆍ동화학교 24기 수료




<장편 심사평>

장편동화이기 때문에 책 한 권 분량이 될 만한 질감이 느껴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심사에 임했는데 본선에 오른 작품이 거의 당장 책을 내도 좋을 만한 수준을 유지했다. 사실성을 기반으로 하는 일반 서사물에 비해 인간과 비인간이 교감하고 현대와 오래된 과거 사회를 넘나드는 등 자유로운 발상의 세계가 많은 재미를 주었다. 주제와 소재 면에서도 다양하고 특별했다.
몰래 길고양이를 키우게 된 한 아이의 고군분투를 그리고 있는 <고양이 고고>는 아주 경쾌하고 쉽게 읽힌다는 장점이 있다. 오디션 프로그램, 동영상 게재 해프닝 등 이 시대에 유행하는 매체 현상을 편하게 활용한 점, 우연에 기댄 스토리 전개 등이 아쉽게 느껴졌다. 친구들 사이의 오해에서 비롯된 갈등을 고조시켜 나가고 있는 <숨은 그림자 찾기>는 추리기법의 특징이 잘 활용돼 흥미진진하게 읽혔다. 반면에 등장한 학생들을 주로 ‘인터넷 생활’에만 초점을 두고 서술했다는 아쉬움이 컸다.
고대 부족사회의 삶을 매우 입체적으로 그려내면서 문화유산의 보존이라는 소재와 생태환경이라는 현대사회의 화두를 서로 연계하고 있는 <시간을 움직이는 돌>은 짜임새 있는 구조가 볼 만했다. 그런데 그동안 동화나 영화 등에서 쉽게 보아온 이야기라는 점이 아쉬웠다. 일제 강점기 고래포 사람들이 겪은 수난을 다룬 <아기귀신고래를 지켜라> 역시 생태 문제를 다루면서 이를 항일, 지역 사랑 등의 주제와 연관시져 믿음직스러웠다. 탄탄한 구성임에도 불구하고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동화나 영화에서 흔히 보는 설정이라는 점은 아쉬웠다. 인간에게 버림받은 고양이가 야생에서 자생하는 동물로 거듭나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발톱>은 그 자생 과정의 어려운 사건들을 촘촘하게 묘사해 줄곧 ‘리얼한 느낌’이 살아났다. 종반부가 급하게 마무리된 점, 전체적으로 공간적 배경이 좁게 느껴진다는 점 등이 아쉬웠다.
두 사람의 심사위원이 단번에 동의한 작품이 <우주나무 정거장>이다. 엄마의 죽음이라는 충격적인 일을 외면하고 싶어하는 아이의 심리를 ‘우주나무 정거장’이라는 특수한 세계를 설정해 드러낸 독특함이 빛났다. 동화에서는 결코 취급하기 어려운 주제를 어쩌면 가장 동화다운 상상력으로 제시하면서 색다른 재미와 존재에 대한 묵직한 질문을 동시에 제공했다. 이런 점에서 이 동화는 근래에 만나기 어려운 수작이라 할 만하다. 당선작으로 밀며 더 큰 성장을 기대한다.

 

심사위원 심후섭, 박덕규


<중편 심사평>
개성 있는 수작에 예술적 분위기까지

‘시인 래퍼’를 당선작으로 합의하는 데는 그리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 작품이 갖는 미덕이, 예심에서 올라온 다른 작품들에 비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당선작은 문학성과 재미를 함께 보여주고, 동화로서의 품격도 갖추고 있다. 말을 더듬으면서 래퍼를 꿈꾸는 강미르는 이미 흥미로운 이야기와 의미를 내포하고 있어 매우 매력적인 주인공이다. 하지만 이런 주인공의 설정은 좋은 서사의 가능성이지 탄생은 아니다. 이 인물의 행동과 생각을 통해 새롭고 개성적인 스토리를 꾸며내는 작가의 솜씨가 보태져야 하는 것이다.
“왜, 왜? 모, 모, 모 못할 것 같아?”하던 미르가, “아, 아빠가 그러는데 시, 시인은 외, 외로운 사람이래요. 래, 래퍼도 외로운 사람이잖아요.”라는 청소년 래퍼 경연대회의 특별상 수상 소감을 말하기까지의 과정을, 절실한 사건과 실감나는 심리 묘사로 촘촘히 엮어서 수작으로 창조해낸 작가의 역량을 읽을 수 있었다.
줄거리의 진행이 자연스러운 가운데 끝까지 긴장감이 살아 있고, 독자의 예상을 앞지르는 흐름 속에 암시와 반전이 제대로 작동해 흥미를 높여주는 것도 돋보이는 덕목이다. 여기에다 등장인물들이 저마다 개성을 갖는 캐릭터이며 작품 속에서 그에 맞는 역할을 잘 소화하고 있으면서 그 수효가 적절한 점, 경쾌하고 정확ㆍ간결한 문장과 군더더기 없는 서술, 그리고 적절하면서도 이야기를 진척시키는 대화도 일품이었다.
랩에 대한 작가의 소양도 상당한 수준인 듯 작품 속에 잘 스며들게 해 놓아, 예술 동화의 분위기까지 풍기고 있다.
이런 여러 장점이 작가의 역량과 가능성까지 믿게 하는 증거들이며, 이들을 조화롭게 어울려 놓은 그 솜씨 역시 이런 믿음을 두터이 해 주었다. 좋은 작가의 등장을 축하한다.
당선에 들지 못한 ‘위풍당당 요술 가면’은 강적을 만나, 다음 기회를 기다리게 됐다. 주인공 나(동준)는 울렁증을 가졌으면서 댄스 가수를 꿈꾼다는 설정은 당선작과 비슷하다. 상당한 이야기를 꾸몄고, 중학생에게 축구공을 빼앗기지 않으려 빗속에서 나와 현우가 축구공을 두 팔고 감싼 채 발길질을 당하면서 끝까지 버티는 인상적인 장면도 그려내고 있다. 하지만 가장 핵심인 환상 부 분을, 가장 손쉽고 흔한 ‘요술 가면’으로 처리한 게 아쉬웠다.
이 밖에 ‘그 날 밤 창경원에서’는 주제가 선명하지 못하고 사실감이 떨어지는 결함이 있었으며, ‘아주 특별한 친구들!’은 등장인물들의 캐릭터 몰개성과 주제의 모호함과 이야기의 색깔 없음이 흠으로 지적됐다.
전반적으로 예년에 비해 작품 수준이 높았다는 게 예심 위원과 본심 위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좋은 작품을 보내준 모든 응모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더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심사위원 김병규, 박두순


<단편 심사평>

제22회 단편부문 응모작 중에서 예심을 거쳐 본심에 오른 작품은 <토끼 백작의 신부 찾기>, <헌 가족 줄게 새 가족 다오>, <넝쿨들의 전쟁>, <엄마의 날개옷을 찾아라>, <작은 갈색 깃털>, <지하실 삼남매>, <달밤에 틘 구슬>, <마네 누나의 인사>, <사냥꾼 두실이> 등 모두 아홉 편이다. 예심 하신 분들이, 전에 비해 흥미 있는 작품들이 많다는 소감을 피력해서 내심 큰 기대를 갖고 작품을 읽었다.
두 심사위원이 미리 작성해 온 심사평가표를 내놓고 대조하면서 상위 그룹으로 의견 일치를 본 작품이 <헌 가족 줄게 새 가족 다오>, <엄마의 날개옷을 찾아라>, <사냥꾼 두실> 세 편이었다.
소설이나 동화는 픽션(虛構) 문학이다. 말하자면 작가가 상상으로 만든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 픽션이 사람의 살아가는 모습을 가장 잘 나타내는 도구로 사용되어야지 단순하게 만든 이야기에 그쳐서는 안 된다. 안데르센의 동화 <미운 오리새끼>나 <임금님의 새 옷>이 어떻게 사람의 살아가는 모습을 조명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면 알 수 있는 일이다.
본선에 올라온 작품 중에는 작가의 특별한 상상이 흥미를 끌었으나 그것으로 무얼 말하고자 하는가라는 질문에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해서 아쉬운 작품이 있었다.
<헌 가족 줄게 새 가족 다오>는 전래동요 “두껍아, 두껍아 헌 집 줄게 새 집 다오.”를 활용하여 판타지적인 분위기를 잘 조성 했으며 두꺼비를 연상하게 하는 고물상 할머니가 소원을 들어주는 형식이 좋았다. 그러나 새 가족과 헌 가족이라는 구분이 명확하지 않아 이야기 내용이 명확하게 전달되지 못했으며, 결정적인 흠으로 맞춤법이 6개, 앞뒤 호응이 어색한 문장 5개가 있어 일단 열외로 하기로 했다.
<사냥꾼 두실이>는 수렵생활을 하는 옛날 시대를 배경으로 아들이 아버지의 깊은 사랑을 깨닫게 되는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다. 두실이가 훌륭한 사냥꾼이 되기를 바라는 아버지와 사냥보다는 뭔가 만들기를 좋아하는 두실이의 갈등을 ‘아버지의 깊은 사랑’으로 해결하는 이야기의 흐름이 무난하다. 그러나 두실이를 도와주는 흰달이의 행동에 독자들이 수긍할만한 이유가 없다는 것이 흠이었다.
<엄마의 날개옷을 찾아라>는 다문화 가족을 다룬 이야기가 흔해서 소재 자체로는 큰 흥미를 끌지 못하지만 이야기 구성이 재치 있고 스토리를 통한 재미를 주어 이를 극복하고 있다. 엄마가 자기를 버리고 가지 못하도록 엄마의 날개옷인 여권을 감추는 이야기나, 엄마가 도망가려는 것으로 오해하고 원망하는 내용, 맹장수술을 한 엄마에게 날개옷을 주는 장면, 그리고 분명 날갯짓을 하며 우리에게 돌아올 것이라는 마무리가 반전을 거듭하면서 이야기를 읽는 즐거움을 준다.
두 작품의 장단점을 평가한 결과 소재 찾기에서 조금은 다른 색깔을 들고 나온 <사냥꾼 두실이>를 당선작으로 밀기로 했다. 동화 창작, 특히 공모전에 응모하는 작품일수록 신선한 소재 찾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는 의미이기도 하다. 당선을 축하하며, 이를 계기로 MBC 창작 동화를 빛내는 작가로 정진하기를 바란다.

심사위원 박성배, 소중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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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부문 당선 수상자에게는 상금 2,000만 원, 중편부문 당선 수상자에게는 1,000만 원, 단편부문 당선 수상자에게는 500만 원의 상금이 수여되며 시상식은 오는 5월 12일(화) 오후 4시에 상암MBC 1층 골든마우스홀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찜질방? 온탕? '대프리카'에서 산다는 것

19년 만에 최고기온... 그래, 내가 건방졌다

 

김정미 기자

 

덥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8월 9일. 우리 집 온도는 34도. 에어컨, 심지어 선풍기까지 틀었는데도 시원치 않다. 벌써 2~3주째 에어컨을 켜고 잠자리에 들고 있다. 냉방병이나 전기세 걱정은 두 번째. 일단, 더위부터 식히고 볼 일이다. 에라, 모르겠다. 켜자, 에어컨!

대구에 온 지 1년 하고도 5개월째 접어들었다. 잘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퇴직금으로 한 달간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오고 나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통장 잔고는 줄고, 서른은 넘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런 고민을 하다 대구에 가기로 결심했다.

고향 제주를 떠나 서울에서 생활한 지 6년. 내겐 제주가 아니면 어디든 '객지'였다. 생선 이름인줄만 알았던 대구에 내려가 살기로 결심한 것은 남자친구 때문이었다. 한창 장거리 연애 중이던 남자친구가 살고 있는 곳이었으므로 다른 곳보다 친근했다. 마침 대구 주변에 친오빠를 비롯한 친척들이 살고 있었다. 여러모로 잘 됐다 싶었다.

하지만 주변의 반응은 싸늘했다. 대구로 내려가겠다고 선언했을 때 열 명 중 아홉 명이 말렸다. 그들은 '대프리카'와 '고담시'라는 생소한 단어 두 개를 꺼내며 나를 겁줬다. 처음엔 웃어 넘겼는데 뜻을 알고 덜컥 겁이 났다.

'대프리카'는 '대구'와 '아프리카'를 합친 말로, 대구의 여름이 아프리카만큼이나 덥다는 뜻이다. 아프리카에 가본 적도, 살아본 적도 없는 나로서는 실감할 수 없는 말이었지만 상상 그 이상의 더위라는 건 확실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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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워! 대프리카의 여름
ⓒ 김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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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담시'는 영화 <배트맨> 시리즈에 나오는 도시로, 대구에 유독 사건·사고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이에 관련해선 별로 할 말이 없다. 살아본 결과 서울이든 제주든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은 똑같다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서울보다 더 살기 좋다고 느낀다. 이유들 중 한 가지를 꼽자면 출퇴근길에 '지옥철'을 안 타도 된다는 점이다.

'고담시'에 대해서는 이러쿵저러쿵 할 말 없는 나지만 '대프리카'에 대해선 다르다. 솔직히 작년 여름은 견딜만 했다.

"쳇! 대프리카 별거 아니네!"

이런 생각까지 했을 정도니 말이다. 한 여름에 긴 팔, 긴 바지 차림의 까만 정장을 입고 다녀도 괜찮았다. 오히려 8월, 제주에 갔다가 몸에 힘이 쭉 빠지는 무더위를 경험했다. 다시 대구에 왔을 때 "와, 살겠다"라고 생각했으니까.

19년 만에 최고기온... 내가 건방졌다

하지만 올해 여름은 다르다. 작년 이맘때를 생각하면 나 정말 건방졌구나 싶다. 자신만만했던 내가 올해 대구의 여름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더워도 너무 덥다. 대구 토박이들도 하나 같이 "살다 살다 이런 더위는 처음"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다.

34도는 애교. 35, 36, 37……. 한낮 기온이 멈출 줄 모르고 쭉쭉 올라갔다. 급기야 지난 8월 6일, 대구의 낮 최고기온은 38.3도. 1996년 이후 19년 만에 38도 이상을 기록했다. 대구의 여름은 한 마디로 푹푹 찌고 습한 '찜질방' 같다. 그늘이나 나무 아래 숨어도 덥다. 진득진득한 더위가 턱밑까지 차올라 곧 숨통을 막아버릴 것만 같다.

아무리 부채질을 해도, 양산을 써 봐도 소용없다. 땀을 닦을 겨를도 없다. 집 밖을 나서는 순간, 더위가 맹렬히 내 몸에 들러붙는다. 꼭 복날 찜통에 들어간 닭 한 마리가 된 기분이다. 어찌하랴? 말없이 걷는 수밖에. 대프리카의 여름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에어컨 바람을 쐬는 것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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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위가 빈틈 없이 내 몸을 둘러쌌다. ‘더위막’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기분이다.
ⓒ 김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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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는 나무 그늘 아래 있으면 바람이라도 불었다. 서울에서는 아무리 더워도 이렇게 습하지는 않았다(서울도 올해는 낮 최고기온이 36도까지 올라가긴 했다). 서울살이 내내 에어컨 없이 작은 선풍기 하나로 여름을 났다. 마지막 보금자리였던 미아동의 자취집은 반 지층이었는데, 앞뒤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지만 창문을 열어두면 바람이 솔솔 들어왔다. 하지만 여기에선 어림없다.

아마 뉴스의 일기예보를 유심히 본 사람이라면 기억할 것이다. 대구보다 더운 지역이 있다는 것을. 바로 경북 경산시다. 지명에서 알 수 있듯, 경산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대구 동쪽에 위치했으며, 대구와 붙어 있다.

설상가상으로 올해 초, 나는 대구에서 경산으로 거취를 옮겼다. 월세에서 벗어나 저렴한 전셋집을 찾은 거다. 마침 회사가 대구 동구에 있어 경산에서 출퇴근하기 훨씬 수월했다. 원하는 대로 척척 자리를 잡아가나 싶었는데 생각도 못했던 복병이 등장했다. 바로 무더위!

대구가 19년 만에 낮 최고기온을 갈아치운 6일(38.3도), 경산의 낮 기온은 이보다 높은 39.3도까지 치솟았다. 반올림하면 40도에 육박하는 온도다. 머릿속에 동네 목욕탕이 떠올랐다. 요즘 자주 가는 동네 목욕탕에는 두 가지 종류의 온탕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40도다.

'내가 지금 온탕 안에서 살아가고 있구나.'

이 생각을 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최고로 더워. 서른다섯 번의 여름 동안 올해가 가장 더워."

남자친구가 손부채질을 하며 말했다.

"이놈의 더위는 해마다 적응이 안 돼요."

대구에서 사귄 후배가 말했다. 위로가 됐다. 대구의 여름은 모두에게 끔찍하게 더운 거다. 대구 사람이라고 더위를 잘 견디는 센서를 지닌 것은 아니다. 대구 사람들도 해마다 무더위가 버겁다. 일 년 내내 여름이 아닌 이상 가을, 겨울, 봄을 지나면 대프리카의 무더위를 까무룩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다 깨닫는다.

"맞아! 이게 대프리카였지!"

나도 앞으로 해마다 이 더위를 마주해야 한다. 어쩌면, 무더위의 기록이 계속 경신될지도 모른다. 엄마야, 나 이제 어떡해!

이제 대한민국에서 '대프리카'라는 말은 하나의 고유 명사가 된 것 같다. 차 안에 뒀던 날계란이 삶은 계란로 변했다거나, 아스팔트 위에 노릇노릇 익어 있는 계란프라이를 찍은 사진은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불바다가 된 대구시, 온 몸에 불을 달고 다니는 대구 시민들 등 대프리카를 희화한 이미지도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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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대구시민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큰 인기를 끌었다. 자동차 안에 날계란을 뒀더니 3시간 만에 삶은 계란으로 변해있더라는 이야기다.
ⓒ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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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지인들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대구에서 어떻게 살고 있냐, 무더위를 어찌 견디고  있냐, 더위 먹지 않게 조심해라 등등의 안부 문자다. 나는 그들에게 "여름이면 다 덥지 뭐. 별 거 있남?"하고 느긋하게 답장했다. 아침 일찍 출근해 회사에 내내 숨어 있다 보니 무더위가 실감나지 않는 거다. 그러다 퇴근 후, 회사를 나서고서야 더위와 마주한다. 온 몸에 끈적끈적 달라붙는 더위의 무게를 느끼고 있노라면 친구들에게 이렇게 외치고 싶어진다. "더워 미치겠어!"라고.

대구에서 무더위를 이기는 방법

대프리카가 궁금한 사람이라면 대구에 한 번 와보길 바란다. 대프리카의 실체는 겪어본 사람만 알 수 있다. 걱정 말라.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금방 대프리카에 적응될 것이다. '이열치열'이라는 말도 있듯, 여름의 맛은 뭐니뭐니해도 더위 아니겠는가(하하). 진짜배기 더위의 실체를 마주하고 나면, 조금 더 용감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살아가면서 겪게 될 소소한 문제와 고민 따위는 거뜬히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고나 할까.

그리고 극한의 더위와 마주하고 나면 자연의 변화에 좀 더 예민한 사람이 된다. 다르게 말하면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거다. 기온이 내려가거나 바람이라도 불면 바로 창문을 열고, 무더위를 시키러 강변에 나간다. 강변에 돗자리 펴고 앉아 캔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면 온 몸이 시원해진다.

그런데 뭔가 허전하다. 맥주엔 치킨이 진리! 치킨을 시켜 맥주와 함께 먹는다. 허한 몸이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봉긋 솟아오른 배를 두드리다보면 "이 곳이 천국이구나" 감탄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대구 사람들의 치킨 사랑은 유별나다. 땅땅치킨, 교촌치킨, 호식이 두 마리 치킨 등등.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 법한 치킨 브랜드를 낳은 곳이 대구다. 또, 매년 '치맥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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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이 부는 것 같으면 돗자리 들고 강변으로 나간다. 치맥 먹으며 앉아 있으면 천국이 따로 없다.
ⓒ 김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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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남자친구에게 대구의 무더위를 이기는 방법을 알려 달라 했더니 이렇게 말했다.

"강변에 나가 치맥을 먹는다. 끝!"

그렇구나. 올 여름, 퇴근 후 강변에 나가 치맥을 열심히 먹었던 건 대프리카에서 생존하기 위한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이었구나.

8월 8일 '입추'가 지났는데도 무더위는 꺾일 생각을 않는다. 하지만 온 몸이 느끼고 있다. 곧, 무더위가 한 풀 수그러들 거라는 걸. 저 멀리서 한줄기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다. 단 한줄기어도 좋다! 지금보다 온도가 1도라도 내려간다면!

대프리카의 여름 속에서도 먹고, 자고, 연애하고, 결혼하고, 축구하고, 자전거 타고, 춤추고, 아무튼 삶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