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김정미의 창작놀이터

 

<메인드 인 경상도>

 김수박/ 창비 출판

 

"왜 경상도인가?"에 대한 답

 

 

 

 

10월 30일 출간된 따끈따끈한 신작 만화 <메이드 인 경상도>를 읽었다. (얼마 전에 김중혁 작가의 '메이드 인 공장'을 읽었는데, 요즘 신간 제목으로 '메이드 인-'이 대세인가? 중얼중얼.)

 

이 작품은『아날로그맨』 『빨간 풍선』 『사람 냄새』 등의 페이소스 진한 작품들로 마니아층의 꾸준한 지지를 받아온 만화가 김수박의 신간으로, ‘지역 감정’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2013년 11월부터 2014년 8월까지 창비 문학블로그 ‘창문’에 화제를 모으며 연재된 것을 책으로 엮었다.

 

나에게 지역감정이란?

 

'지.역.감.정'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숱하게 시달려온, 들어온, 가져온 단어일 것이다.

제주도에서 자란 나는 섬을 벗어나기 전까지 '지역 감정'이라는 걸 잘 몰랐다. 지리 과목에 약해서 우리나라 지도를 머리에 그리지 못하는 것과 비슷하달까.

 

그런데 이 책을 읽다보니 아예 그런 경험이 없었던 건 아니라는 게 떠올랐다. 대학교 시절, 광주에 있는 남자와 장거리연애를 했는데 그때 엄마(경남 밀양이 고향이다)가 이렇게 말했다. "전라도 남자는 믿을 수 없어"라고. 나는 이것이 엄마의 개인 연애사에 얽힌 감정인 줄 알았다.  그런데 돌이켜보니 아니었다.(엄마는 큰 사위가 순천 출신이라는 것도 처음엔 탐탁치 않게 여겼다.)

 

그러다 서울에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직접적으로 느끼게 된다. 회사에는 다양한 지역 사람들이 있기 마련인데, 그 사이에 늘 '지역감정'이라는 게 존재했다. 그래도 그때는 큰 갈등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생각해 보면 20대 초반, 내가 만난 사람들은 '열려 있는' 사람들이었던 것 같다.

 

스물 일곱 살에 한 회사로 이직을 했다. '협회'라 불리우는 곳이었고, 나는 그곳에서 기자로 일하며 회원들이 읽는 신문을 만들었다. 준공무원 집단인 그 곳에서 3년 간 일하며 다양한 인간군상을 경험했다. 사람들이 얼마나 좁게, 그리고 아등바등 사는지 알 수 있었다. 이간질, 험담, 시기와 질투 등이 그곳에 늘 존재했다. 그 곳은 대한민국에서 엘리트라 자부하는, 그렇지만 자존감이 떨어지는 한 전문직 집단들의 이익을 도모하는 협회였다. 그곳에서 나는 철저한 이방인이었다. 소위 '지잡대' 출신이었으며, 그들처럼 전문직이지도 않았다. 그냥 글쓰는 일을 가장 잘했고, 운 좋게도 편집장의 눈에 띄었기에 기자로 일할 수 있었던 것이다.

 

우리 부서의 편집장은 서울대 출신이었다. 그래서 엘리트 의식이 정말 '쩔었다'. 내가 다니던 협회는 4년에 한번씩 회장이 바뀌었는데 회장이 어느 대학 출신이냐에 따라 줄도, 직원들의 운명도 달라졌다. 보통 수도권에 있는 학벌 좋다는 대학 출신끼리 다툼을 벌였는데 거기에서도 나는 늘 열외였다. 실제로 나보다 경력이 높았던 한 살 위 선배는 E대 출신이었는데, 서울대 출신인 상사에게 정말 미움을 많이 받았다. 출신 대학 때문에!

 

말이 빗나갔는데, 하여간 상사의 주된 레퍼토리 중 하나가 '지역'이었다. 나와 함께 일하던 친구들 중, 누구는 충청도라서 느리고 누구는 전라도라서 얍삽하고 뭐 그런 주의였다. 다행히 지역감정의 틀에서 나는 자유로웠다. 저기 멀리 떨어져 있는 섬, '제주' 출신이었기 때문이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나는 스스로를 꽤나 공정하고 편견 없는 사람이라 여겼다. 그런데 아니었다. 단지, 내 고향의 특수성 때문이었다.(어디에서든 열외 될 수밖에 없는 논의에도 들지 않는 제주도! 평화의 섬이라 그런가? 헤헤) 나는 곧, 나의 생각들이 얼마나 위험하고 자만에 넘치는 것이었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이제는 내가 얼마나 편협한 인간인지 스스로 말하고 다닌다.

 

나 역시 '지역 감정'에서 자유롭지 못한 사람이란 걸 깨달은 건, 대구에 살고 있는 남자친구를 만난 후부터다. 때는 바야흐로, 대선을 앞둔 시기. 박근혜만은 안 된다며 소리 높였던 나는, 당시 TV에서 떠들던 '경상도는 왜 그런가?'의 논리에 압도되어 있었다. 한반도 지도 양 옆으로 노란색과 빨간색의 향연. 대구를 비롯한 경상도는 빨간색 천지였다(과거 '빨간색'이 의미하던 것과 달리 지금은 새누리당의 색이 되었다).

 

"도대체 경상도는 왜 그래?"

김수박 만화가, 유년기의 경험 통해 경상도를 끌어안다

 

박근혜가 당선되던 날, 울분에 못 이겨 지금 남자친구와 대화를 하다 공격하고 말았다. 남자친구네 집에서 죄다 새누리당을 찍었다는 거였다. 나보다 한 살 어린 아직 20대인 남동생도 한나라당 젊은 당원이었다. '세상에, 대박!'(이때, 나의 반응.)

"도대체 경상도는 왜 그래?"

그때 남자친구와 처음으로 다퉜고(사실은 일방적으로 내가 공격한 거지만), 그 후에 내가 얼마나 편협한 사고를 갖고 있는지를 깨닫게 됐다. 남자친구는 대구를 옹호하지 않았다. 자기네 집안도 옹호하지 않았다. 다만, 나보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그런데 얼마나 얕은 인간인지, 나는 똑부러지게 답할 수 없었다. 책과 신문에서 주워들은대로 몇몇 정보를 진실인냥, 교양인냥, 내 생각인냥 말했고 그때마다 남친은 내 말문을 막히게 했다.(그래 네 팔뚝 굵다!) 그래도 한 가지 깨달은 건, 내가  하나의 잣대와 기준으로 무리짓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정말 싫어하고 경계했던, 당하면 기분 나빠했던 '무리 짓기'. 그 틀에서 나도 자유롭지 못했던 거다. 

 

박학다식하고, 자기 주장 뚜렷한 남자친구에게 반해서 나는 결국 대구에 내려오게 된다. 그리고 대구에 내려와서 알게 된다. 매스컴이 떠들어댔던 것처럼 대구(경상도)는 그렇게 꽉 막히고, 보수적이고, 답답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그렇지만 늘 궁금했다. 지역감정을 도대체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라고.

그리고 마침내 김수박 만화가의 신작만화 <메이드 인 경상도>에서 그 답(?)을 찾았다.

 

김수박 작가는 자신이 매우 어렸을 적부터 대학에 입학할 때까지의 시기 동안의 기억과 경험을 그리며 자신이 느낀 '지역감정'의 실체에 대해 이야기 한다. 작가의 본명은 김효갑. 작가는 대구에서 대학을 나와 서울에 올라가 직장생활을 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이 "경상도는 왜 그래?" "대구는 왜 그래?" 였다는 거다.(이 내용을 읽는 순간, 사실 굉장히 뜨끔했다. 나 역시 남자친구에게 그랬으니까. 이데올로기나 지역적인 편견을 내세워 상처를 주는 일을 굉장히 폭력적이라 생각했는데, 내가 바로 그랬던 거다.)

 

그런 질문들을 듣는 순간, 작가에게 고향땅은 순식간에 낯선 대상이 되었을 거다. 책에 나온 것처럼 경상도를 일컫는 '보수적이고 배타적이고 텃세가 세다. 가부장적이고 남성우월주의가 강하다'는 경상도의 특성은, 그 옛날 지역성과 크게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 우리 옛 어른들은 으레 그러했으니까.(제주도도 별반 다르지 않다. 다른 점이 있다면 남성우월주의 보다는 여성성이 강한 곳이라는 점이랄까?)

 

그런데도 작가는 그 물음들과 싸움을 벌인다. 그 끝에 이 이야기가 탄생한 게 아닐까 싶다.

작가는 대구 산동네에서 화장지 가게를 경영하며 험남한 시대를 헤쳐나가던 아버지 밑에서 자란다. 80년대, 시골 마을 곳곳에 남아 있던 향수와 새마을의 바람을 만화를 통해 만날 수 있다. 그리움을 느낄 수 있는 소소하고 재밌는 풍경이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개인사로만 치부할 수 없는 아픔들이 곳곳에 드러난다.

 

일례로,1980년 5월에 일어난 5.18 광주 사태를 뒤늦게 접한 작가는 훗날이 되어서야 아버지에게 물어본다. 왜 광주를 모른척 했냐고 말이다. 그러자 아버지가 답한다. "묵고사느라 그랬다"고. 주인공은 미안한 마음을 직시해야하고, 경상도 사람이 먼저 입을 떼어야 한다고 말한다. 작가의 말은 오랫동안 가슴을 묵직하게 한다. 그리고 한 줄기의 부끄러움을 남긴다.

 

아직까지도 지역감정은 정치권의 오래된 단골이다. 정치권 뿐만 아니라, 사회 곳곳에 뿌리내려 있다. 지역감정의 담론은 실체를 압도해버리기도 한다. 지역감정이 무엇인지 실체를 설명하기도 전에 언론과 정치인들은 지역을 정치적인 도구로 이용되어 버렸고, 그 아픔과 갈등을 감당해 내는 것은 오롯 지역민들의 몫이 되어버린 거다.

 

대구에 내려온지 7개월, 뭐가 그리 무서웠을까?

<메이드 인 경상도>를 통해 안개가 걷힌 느낌

 

아직도 그 실체는 모르겠지만, 나는 <메이드 인 경상도>를 통해 안개가 걷힌 내막을 보는 기분이었다. 내가 대구에 내려올 적에 두려운 감정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그리고 그게 얼마나 터무니없는 편견이었는지를 깨달았을 때와 비슷한 감정이랄까.

 

내가 대구에 와서 산다고 했을 때, 수많은 사람들이 말렸다. 경상도 사람도 말렸고, 전라도 사람도 말렸다. 말리며 하는 이유가 대구 사람들은 갑갑하고 못됐고, 보수적이고 무뚝뚝하며 텃새가 심하댔다. 그래서 정말 겁을 많이 먹었다.

 

대구에 오기 전, 대구에 있는 작은 광고회사 면접을 봤다. 대표가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일은 힘들지 않을 거예요. 다만, 대구 사람들 보통이 아니예요. 상처 받을 일이 많을 겁니다. 각오하셔야 할 거예요."라고. 그런데 웬걸, 내가 상처 받은 건 '대구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썩을 회사 시스템 때문이었다. 이제야 알게 됐다. 지역감정은 누군가에게 도구로 이용된다는 것을.

 

대구에 산 지 7개월. 아직 대구에 대해 잘 모르지만 느낀 게 하나 있다. 대구 사람들도 똑같이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것. 그들도 누군가는 친절하고, 누군가는 까칠하고, 누군가는 보수적이며, 누군가는 진보적이라는 것. 인간 개개인 저마다 다르다는 것.

 

김수박은 이런 말을 했다. "지역의 특성이 문제가 아니라 서로를 어떻겠거니 짐작하고 먼저 규정하는 것이 문제였다"고. 백분 공감한다.

 

나이와 직업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 만화책을 읽어봤으면 좋겠다. 만화답게 쑥쑥 읽을 수 있는게 장점이다. 그러나 주제와 내용들이 그리 가볍지만은 않다.(이러한 내용으로 딘행본 책으로 읽었다면 완전 두껍고 머리 꽤나 아팠을다) 자신의 이야기를 그림으로 들려줄 수 있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달란트를 가진 이들 같다. 무겁지 않게, 그러나 가볍지도 않게, 하지만 재밌게. 이 모든 요소가 다 들어있는 만화란 생각이다. 김수박 작가님, 정말 감사합니다. (구미에 사신다는데 언젠가 만날 기회가 왔으면 좋겠다!) <끝>

 

 

* 책은 <창비 책읽는당 5기>에 선정돼 선물 받았습니다.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몇 권 사서 친구들 선물해주려고요.

 

 

 

 

함박스테이크집에서 찰칵! 인증샷

 

 

"우리는 기억하는대로 기억한다"는 작가의 말이 인상 깊었다

 

 

'지잡대 자부심'을 나도 갖고 있다. 이 대목에서 그만 웃고 말았다. 나랑 너무 비슷해서.

 

'진실을 찾을수록 진실에서 멀어질 수도 있다'니. 정말 심오하다. 그래서 찰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