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김정미의 창작놀이터

 

진실을 향한 기록, <다이빙 벨>

'우리도 어쩌면, 언젠가는'

 

 

다큐멘터리/ 감독: 안해룡, 이상호

 

<다이빙 벨>을 봤다. 2014년 11월 12일, 오후 4시 10분 영화를 봤다.

 

외근을 나갔다가 일찍 끝나서 바로 동성아트홀로 갔다. 대구에 온 지 7개월. 위안이 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극장이다. 저예산 독립영화를 상영하는 곳, 아마 대구에서는 거의(?) 유일한 곳이 아닐까. 지역에 이렇게 독립영화관이 하나라도 남아 있다는 건 무척이나 중요한 일이다.

 

한 달 전에 이 곳에서 연상호 감독의<사이비>와 애니메이션 메밀꽃, 운수좋은 날, 그리고 봄봄>을 연달아 두 편 봤다. 이때도 평일이었는데, 사람이 아예 없진 않았다. 많은 편은 아니지만 상당히 고무적이었다고나 할까.

 

말이 길었다. <다이빙 벨>을 보는 동안 몹시 불편했다. 어이가 없어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영화를 보기 전 부채감이 나를 짓눌렀다. 많은 사람들이 세월호를 이제는 잊자, 하였건만 사실 잊기 위해서는 넋을 떠나보내는 과정이 필요하다. 우리도 잘 알지 않는가. 집안에 누군가 돌아가시면 시신을 잘 닦아 염을 하고, 장례를 치르고 기도를 하며 보내준다는 것을. 그게 원칙이다. 그래야만 산 자도, 망자도 잘 살 수 있는 것이다.

 

올해 4월, 나는 기적을 바랐었다. 여객선인 세월호에 이상이 생겨 기울기 시작했다고 했을 때, 회사에서 일을 하다 <전원 구조>라던 언론의 보도를 믿었다. 그리고 곧바로 배신. 실은 단 한명도 구조되지 않았다 했다. 이어 몇 명이 구조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더 이상의 구조는 없었다. 시신만 건져 올릴 뿐. 찾지 못해 실종된 시신도 여럿이다. 이게 말이 되는가.

 

뭔가 이상하고 찝찝했다. 그러나 그 기분이 왜 그런지 설명할 수 없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라곤 '언론' 밖에 없었으니까. 수십가지 언론사가 입을 맞춰 "정부 차원에서 구조 작업이 한창"이라고 말했다. 수색 과정에서 잠수사들이 여럿 목숨을 잃었고, 해류가 너무 세서 구조를 중단해야 함에도 열심히 바다에 뛰어들고 있다 했다. 그리고 그걸 믿었다. 국민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거다. 믿는 수밖에 없지 않나.

 

 

 

 

밤낮으로 언론보도에 귀 기울였다. 일을 하면서도 인터넷 속보 창을 띄어놓고 십 분에 한 번씩 '새로고침' 했다. 기적을 바랐다. 희망이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왠일인지 구조작업은 더뎠다. 언론에서 그게 참 힘든 일이라고 하길래 '그렇구나' 했다. 그럼에도 이상했다. 아니 도대체 어째서 한 명도 구해내지 못하는 걸까? 배 안에는 왜 들어가지 못하는 걸까? 그게 그리 힘든 걸까? 그렇구나, 그런 거구나.

 

세월호 수색 작업이 더딘 틈에, 갖가지 '카더라' 통신이 흘러 나왔다. 홍가혜라는 여자가 언론에 인터뷰를 하면서 "자기는 민간잠수부인데, 정부에서 잠수부를 투입하지 않고 있다. 민간잠수부의 협조도 무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영상이 SNS를 타고 떠돌았다. 하지만 곧, 그 여자의 '정체'가 밝혀졌다. 허연증이 심한 '이상한' 여자라는 것. 나도 개인 SNS에 이 여자의 주장을 실었다가 삭제했다. 그 아래 댓글이 달렸기 때문이다. '이 여자 또라이래' '이 여자 정신 나갔대.'

 

그러다 또 동영상 하나를 보게 됐다. 아이를 잃은 엄마가 나와 울부짖는 영상이었다. 나라에서 수색을 대충 한다고, 여기 현장에서 제대로 이뤄지는 게 없다고, 언론이 거짓말을 한다고. 그 영상을 보고 정말 뭔가 일이 벌어지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이렇게 피 쏟는 절규를 쏟아내는 동영상을 가짜로 만들기는 쉽지 않으니까. 하지만 의심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누군가는 만들어낸 영상일 수도 있다고 아니면 가족을 매수했다고 하지 않겠나? 억측이 아니다. 그렇게 국민들은 진위를 모른 싸움에 휘말려 세월호가 침몰하는 걸 가만히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정말 답답한 노릇이었다.

 

그 사이 많은 일들이 있었다. 유민 아빠가 단식투쟁을 하고, 북한의 지령을 받은 행동이라는 괴담이 떠돌고, 유병언이 자살했다는 뉴스가 보도 되고, 그런 보도들 속에 희생자들에 대한 예의는 없었다. 모든 게 정치적으로 얽히고 섥힐 뿐. 진물나게 싫었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돌리고 실망한 것은. 많이 피로했을 것이다. 국민들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았다. 희망, 단 한 줄기 희망이라도 보였다면 국민들은 이 세상이 아직 살만한 곳이라는 걸 깨닫고 힘을 냈을 것이다. 하지만 세월호는 우리에게 희망의 반대를 보여줬다. 이 세상이 얼마나 무시무시한 곳인지, 결국은 혼자 살아내야 하는 곳이라는 것을 역설적으로 깨닫게 한 사건이었다.

 

나 역시도 잊은 듯 했다. 생각나면 마음이 아프고, 괜히 손가락질 받는 것 같은 그런 부채감에 시달렸다. 당장 급한 일들을 하고 살아가면서 세월호 사건에는 귀를 닫았다. 그러던 중, <다이빙 벨>을 보게 됐고, 복잡다단한 감정을 느꼈다. 피해자들에게 미안한 마음, 이제라도 봐서 다행이라는 안도감, 그리고 언론과 정부에 대한 분노.. 등등.

 

누군가는 말할 것이다. <다이빙 벨>은 철저히 누군가를 위해 편집된 영상이라고. 영상은 애초 촬영 때부터 편집될 운명을 갖고 있다. 그렇기에 나 역시 영화를 보는 내내, 객관적인 시선을 유지하려 애썼다. 그리고 분명한 것 하나는 변치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정부가 세월호를 수색하는데 안일했고 게을렀고, 심지어 왠일인지 하지 않았고 '다이빙벨' 투입을 방해했다는 것. 그것만로도 정부는 국민을 속인 것이다. 그리고 팩트를 취재하지도 않고 소설쓰듯, 창작해 기사를 작성한 언론들. 과연 이들이 저널리스트인지 의문이다. 비난받아 마땅하다.

 

'다이빙 벨'이 최선이고, 세월호를 짜잔! 하고 들어올릴 슈퍼맨 망토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이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분명, 잠수사들의 피로를 줄이고 작업시간을 늘릴 수 있는 '좋은 도구' 임에는 틀림 없다고. 그리고 다큐멘터리는 기록한다. 세 명의 잠수사가 다이빙 벨과 함께 작업했을 때의 시간과 컨디션을. 투입해서 잠수사들의 능률을 올렸다면, 적어도 세월호 선체 안에 진입은 가능하지 않았겠는가.

 

이 다큐멘터리가 우리에게 또 하나 시사하는 바가 있다. 한 개인을 국가가 왕따시키면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이 벌어지는가를. 알파잠수사 대표 이종인 씨와 이상호 기자가 바로 그러하다. 다큐멘터리에는 아주 약간 기록되긴 했지만 나는 이 사람들이 생명의 위협, 같은 것을 여러번 느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 작품을 보며 이기호 작가의 <차남들의 세계사>라는 책도 생각났고, 그 옛날 무고한 사람들을 잡아다 빨갱이라 감옥에 쳐넣었던 살아있는 일화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태백산맥>을 집필하는 동안 무수한 협박을 당했던 조정래 작가도 생각났다.

 

개인의 호의와 정의가 어떻게 둔갑 되는가. 거기에 있어 언론은 얼마나 힘이 세고, 그래서 얼마나 폭력적인가. 이러한 것들을 생각했다면 오버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나도, 너도, 우리도 언젠가는 아주 사소한 사건으로 정의를 향한 목소리만으로 '반정부주의자'가 될 수 있는 거다. 정말 무시무시한 세상이다.

 

언론은 국민들에게 알 권리를 대신 전해주는 역할을 해야 하는 집단인데 정부의 들러리 역할을 한 지 오래고, 정부는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대의를 져버린다. 알쏭달쏭한 세상이다. 이런 세상에서 국민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세월호 사건은 비단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타인의 고통이 아니다. 남의 일이 아니다. 남의 집 불난 구경하듯, 바라봤다가 큰 코 다치게 될 지 모른다. 형태는 다르지만 비슷한 폭력들이 무한반복되고 있는 세상이니까. 그렇기 때문에 일단, 알아야 한다. 그리고 마음이 불편하다면 목소리를 내야 한다. 잘못되었다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 <다이빙 벨>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이거라고 생각한다.

 

 

* 다이빙벨(diving bell) 이란? (백과사전 펌)


잠수부를 바닷속으로 이동시키고, 물속에서 오래 머물며 수중작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장비. 종모양으로 생겼다 하여 '잠수종'이라고도 한다. 개방식 또는 습식(wet bell)과 폐쇄식(closed bell)으로 나뉘는데, 개방식 또는 습식은 윗부분에만 반구형의 둥근 지붕이 있고 하부는 개방된 형태로, 잠수부의 하반신은 물에 잠긴다. 폐쇄식은 밀폐되어 외부와 차단된다. 어느 것이나 수면 위의 바지선에서 기중기에 매달아 일종의 수중 엘리베이터처럼 바닷속으로 내렸다 올렸다 하는 방식으로 운용되며, 바지선과 연결된 관을 통하여 공기압축기로 다이빙벨 내부에 산소를 공급한다. 이 장비를 사용하면 잠수부들이 직접 수면에서 수중의 목적 지점을 잠수하여 오가면서 소모될 체력과 산소를 비축할 수 있으며, 이곳을 일종의 베이스캠프로 활용하여 잠수부들이 휴식을 취하고 감압(減壓) 장비를 거치는 시간을 줄일 수 있다. 또한 수면 위의 바지선에서 잠수부에 부착된 CCTV를 통하여 수중 활동을 모니터링할 수 있고 잠수부와 통신할 수도 있어 해저 작업에 효율성이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