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김정미의 창작놀이터

찜질방? 온탕? '대프리카'에서 산다는 것

19년 만에 최고기온... 그래, 내가 건방졌다

 

김정미 기자

 

덥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8월 9일. 우리 집 온도는 34도. 에어컨, 심지어 선풍기까지 틀었는데도 시원치 않다. 벌써 2~3주째 에어컨을 켜고 잠자리에 들고 있다. 냉방병이나 전기세 걱정은 두 번째. 일단, 더위부터 식히고 볼 일이다. 에라, 모르겠다. 켜자, 에어컨!

대구에 온 지 1년 하고도 5개월째 접어들었다. 잘 다니던 직장을 관두고, 퇴직금으로 한 달간 유럽 배낭여행을 다녀오고 나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통장 잔고는 줄고, 서른은 넘었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런 고민을 하다 대구에 가기로 결심했다.

고향 제주를 떠나 서울에서 생활한 지 6년. 내겐 제주가 아니면 어디든 '객지'였다. 생선 이름인줄만 알았던 대구에 내려가 살기로 결심한 것은 남자친구 때문이었다. 한창 장거리 연애 중이던 남자친구가 살고 있는 곳이었으므로 다른 곳보다 친근했다. 마침 대구 주변에 친오빠를 비롯한 친척들이 살고 있었다. 여러모로 잘 됐다 싶었다.

하지만 주변의 반응은 싸늘했다. 대구로 내려가겠다고 선언했을 때 열 명 중 아홉 명이 말렸다. 그들은 '대프리카'와 '고담시'라는 생소한 단어 두 개를 꺼내며 나를 겁줬다. 처음엔 웃어 넘겼는데 뜻을 알고 덜컥 겁이 났다.

'대프리카'는 '대구'와 '아프리카'를 합친 말로, 대구의 여름이 아프리카만큼이나 덥다는 뜻이다. 아프리카에 가본 적도, 살아본 적도 없는 나로서는 실감할 수 없는 말이었지만 상상 그 이상의 더위라는 건 확실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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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워! 대프리카의 여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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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담시'는 영화 <배트맨> 시리즈에 나오는 도시로, 대구에 유독 사건·사고가 많아 붙여진 이름이다. 이에 관련해선 별로 할 말이 없다. 살아본 결과 서울이든 제주든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은 똑같다고 깨달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서울보다 더 살기 좋다고 느낀다. 이유들 중 한 가지를 꼽자면 출퇴근길에 '지옥철'을 안 타도 된다는 점이다.

'고담시'에 대해서는 이러쿵저러쿵 할 말 없는 나지만 '대프리카'에 대해선 다르다. 솔직히 작년 여름은 견딜만 했다.

"쳇! 대프리카 별거 아니네!"

이런 생각까지 했을 정도니 말이다. 한 여름에 긴 팔, 긴 바지 차림의 까만 정장을 입고 다녀도 괜찮았다. 오히려 8월, 제주에 갔다가 몸에 힘이 쭉 빠지는 무더위를 경험했다. 다시 대구에 왔을 때 "와, 살겠다"라고 생각했으니까.

19년 만에 최고기온... 내가 건방졌다

하지만 올해 여름은 다르다. 작년 이맘때를 생각하면 나 정말 건방졌구나 싶다. 자신만만했던 내가 올해 대구의 여름 앞에서 무릎을 꿇고 말았다. 더워도 너무 덥다. 대구 토박이들도 하나 같이 "살다 살다 이런 더위는 처음"이라고 이야기할 정도다.

34도는 애교. 35, 36, 37……. 한낮 기온이 멈출 줄 모르고 쭉쭉 올라갔다. 급기야 지난 8월 6일, 대구의 낮 최고기온은 38.3도. 1996년 이후 19년 만에 38도 이상을 기록했다. 대구의 여름은 한 마디로 푹푹 찌고 습한 '찜질방' 같다. 그늘이나 나무 아래 숨어도 덥다. 진득진득한 더위가 턱밑까지 차올라 곧 숨통을 막아버릴 것만 같다.

아무리 부채질을 해도, 양산을 써 봐도 소용없다. 땀을 닦을 겨를도 없다. 집 밖을 나서는 순간, 더위가 맹렬히 내 몸에 들러붙는다. 꼭 복날 찜통에 들어간 닭 한 마리가 된 기분이다. 어찌하랴? 말없이 걷는 수밖에. 대프리카의 여름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에어컨 바람을 쐬는 것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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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더위가 빈틈 없이 내 몸을 둘러쌌다. ‘더위막’에 둘러싸여 살아가는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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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는 나무 그늘 아래 있으면 바람이라도 불었다. 서울에서는 아무리 더워도 이렇게 습하지는 않았다(서울도 올해는 낮 최고기온이 36도까지 올라가긴 했다). 서울살이 내내 에어컨 없이 작은 선풍기 하나로 여름을 났다. 마지막 보금자리였던 미아동의 자취집은 반 지층이었는데, 앞뒤로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지만 창문을 열어두면 바람이 솔솔 들어왔다. 하지만 여기에선 어림없다.

아마 뉴스의 일기예보를 유심히 본 사람이라면 기억할 것이다. 대구보다 더운 지역이 있다는 것을. 바로 경북 경산시다. 지명에서 알 수 있듯, 경산은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대구 동쪽에 위치했으며, 대구와 붙어 있다.

설상가상으로 올해 초, 나는 대구에서 경산으로 거취를 옮겼다. 월세에서 벗어나 저렴한 전셋집을 찾은 거다. 마침 회사가 대구 동구에 있어 경산에서 출퇴근하기 훨씬 수월했다. 원하는 대로 척척 자리를 잡아가나 싶었는데 생각도 못했던 복병이 등장했다. 바로 무더위!

대구가 19년 만에 낮 최고기온을 갈아치운 6일(38.3도), 경산의 낮 기온은 이보다 높은 39.3도까지 치솟았다. 반올림하면 40도에 육박하는 온도다. 머릿속에 동네 목욕탕이 떠올랐다. 요즘 자주 가는 동네 목욕탕에는 두 가지 종류의 온탕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40도다.

'내가 지금 온탕 안에서 살아가고 있구나.'

이 생각을 하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최고로 더워. 서른다섯 번의 여름 동안 올해가 가장 더워."

남자친구가 손부채질을 하며 말했다.

"이놈의 더위는 해마다 적응이 안 돼요."

대구에서 사귄 후배가 말했다. 위로가 됐다. 대구의 여름은 모두에게 끔찍하게 더운 거다. 대구 사람이라고 더위를 잘 견디는 센서를 지닌 것은 아니다. 대구 사람들도 해마다 무더위가 버겁다. 일 년 내내 여름이 아닌 이상 가을, 겨울, 봄을 지나면 대프리카의 무더위를 까무룩 잊어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다 깨닫는다.

"맞아! 이게 대프리카였지!"

나도 앞으로 해마다 이 더위를 마주해야 한다. 어쩌면, 무더위의 기록이 계속 경신될지도 모른다. 엄마야, 나 이제 어떡해!

이제 대한민국에서 '대프리카'라는 말은 하나의 고유 명사가 된 것 같다. 차 안에 뒀던 날계란이 삶은 계란로 변했다거나, 아스팔트 위에 노릇노릇 익어 있는 계란프라이를 찍은 사진은 인터넷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불바다가 된 대구시, 온 몸에 불을 달고 다니는 대구 시민들 등 대프리카를 희화한 이미지도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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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대구시민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큰 인기를 끌었다. 자동차 안에 날계란을 뒀더니 3시간 만에 삶은 계란으로 변해있더라는 이야기다.
ⓒ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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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며칠 지인들이 메시지를 보내왔다. 대구에서 어떻게 살고 있냐, 무더위를 어찌 견디고  있냐, 더위 먹지 않게 조심해라 등등의 안부 문자다. 나는 그들에게 "여름이면 다 덥지 뭐. 별 거 있남?"하고 느긋하게 답장했다. 아침 일찍 출근해 회사에 내내 숨어 있다 보니 무더위가 실감나지 않는 거다. 그러다 퇴근 후, 회사를 나서고서야 더위와 마주한다. 온 몸에 끈적끈적 달라붙는 더위의 무게를 느끼고 있노라면 친구들에게 이렇게 외치고 싶어진다. "더워 미치겠어!"라고.

대구에서 무더위를 이기는 방법

대프리카가 궁금한 사람이라면 대구에 한 번 와보길 바란다. 대프리카의 실체는 겪어본 사람만 알 수 있다. 걱정 말라.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다. 금방 대프리카에 적응될 것이다. '이열치열'이라는 말도 있듯, 여름의 맛은 뭐니뭐니해도 더위 아니겠는가(하하). 진짜배기 더위의 실체를 마주하고 나면, 조금 더 용감한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살아가면서 겪게 될 소소한 문제와 고민 따위는 거뜬히 이겨낼 수 있을 것 같다고나 할까.

그리고 극한의 더위와 마주하고 나면 자연의 변화에 좀 더 예민한 사람이 된다. 다르게 말하면 자연의 소중함을 깨닫게 되는 거다. 기온이 내려가거나 바람이라도 불면 바로 창문을 열고, 무더위를 시키러 강변에 나간다. 강변에 돗자리 펴고 앉아 캔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면 온 몸이 시원해진다.

그런데 뭔가 허전하다. 맥주엔 치킨이 진리! 치킨을 시켜 맥주와 함께 먹는다. 허한 몸이 건강해지는 기분이다. 봉긋 솟아오른 배를 두드리다보면 "이 곳이 천국이구나" 감탄하게 된다. 그래서일까? 대구 사람들의 치킨 사랑은 유별나다. 땅땅치킨, 교촌치킨, 호식이 두 마리 치킨 등등. 이름만 들으면 누구나 알 법한 치킨 브랜드를 낳은 곳이 대구다. 또, 매년 '치맥 페스티벌'이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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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람이 부는 것 같으면 돗자리 들고 강변으로 나간다. 치맥 먹으며 앉아 있으면 천국이 따로 없다.
ⓒ 김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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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남자친구에게 대구의 무더위를 이기는 방법을 알려 달라 했더니 이렇게 말했다.

"강변에 나가 치맥을 먹는다. 끝!"

그렇구나. 올 여름, 퇴근 후 강변에 나가 치맥을 열심히 먹었던 건 대프리카에서 생존하기 위한 방법을 터득했기 때문이었구나.

8월 8일 '입추'가 지났는데도 무더위는 꺾일 생각을 않는다. 하지만 온 몸이 느끼고 있다. 곧, 무더위가 한 풀 수그러들 거라는 걸. 저 멀리서 한줄기 바람이 불어오는 것 같다. 단 한줄기어도 좋다! 지금보다 온도가 1도라도 내려간다면!

대프리카의 여름 속에서도 먹고, 자고, 연애하고, 결혼하고, 축구하고, 자전거 타고, 춤추고, 아무튼 삶은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