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김정미의 창작놀이터

 

 

지난 화요일(11월 20일), 예스24에서 주최한 <문화 축제>에 다녀왔다. 이날 다양한 분야에서 많은 게스트가 출연했는데, 나는 유독 뮤지션 양방언에게서 눈을 뗄 수 없었다. 깊이 매료됐기 때문이다.

양방언은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다. 제주도 출신 아버지와 신의주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랐다. 어린시절부터 이방인으로서의 외로움을 겪었던 그는 뮤지션이 되어 한국에 왔고, 1999년에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다섯 살때부터 피아노를 배우며 음악에 푹 빠졌지만 아버지의 권유에 의사가 됐다. 그러나 결국은 뮤지션의 길을 택해, 달란트를 맘껏 뽐내고 있다.

 

양방언은 2002아시안게임 공식 주제곡 '프런티어', 다큐멘터리 '차마고도'의 배경음악, 영화 '천년학' OST 등을 작곡하는 등 다방면에서 재능을 뽐내왔다.


그에 대해 자세히는 몰랐지만, 하도 유명한 분이라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나 얼굴을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이었다. 이날, 양방언은 대담에 앞서 피아노 한 곡을 연주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그 시간 동안, 나는 황홀경에 빠졌다. 그의 옆 얼굴이 브라운관에 가득 담겼는데, 그 모습에 그만 매료되고 말았던 것이다.

양방언은 피아노를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피아노와 함께 놀고 있었다. 그 공간에 홀로 있는 듯, 여유롭게 피아노를 연주했다. 건반을 두드릴 때마다 마치 춤사위를 하듯 사뿐사뿐 팔과 고개를 움직였다. 나는 넋을 잃고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리고 그의 옆 얼굴이 베토벤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올해 쉰 두살이다. 중년의 남자를 보면서 멋있다는 생각을 이토록 했던 적이 있었나! 그가 연주하는 것을 넋을 잃고 바라보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늙어가는 남자의 옆 모습은 참으로 멋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 나는 한 예술가로부터 강한 영감을 받았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그의 모습은 평화로웠으며 아름다웠다. 반주에 맞춰 고개를 까닥일 때마다 에너지가 사방으로 퍼지는 것 같았다. 그만이 내뿜는 기운. 어떤 색으로 표현해야 좋을지 모를 그 느낌. 그의 연주를 들으며 짧은 순간 일종의 교감을 했다.

 

피아노와 놀고 있는 그의 옆 얼굴, 그 이미지는 음악보다 더욱 강렬했다. 앞으로도 한동안, 아니 어쩌면 평생 '양방언'이라는 뮤지션을 떠올릴 때마다 그 옆 얼굴이 떠오를 것이다.

그의 콘서트에 꼭 가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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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에 최민석 작가의 에세이집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를 만난 건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 나는 섣부른 측면이 있어, 이 책의 1/10도 읽지 않아 "최민석 작가의 팬이 되었노라" 선언했다. 그리고 "최민석 작가님 짱"이라며 마음 속으로 애정 고백을 했다.

 

하여간, 책을 읽다가 마음이 편안해진 것은 오랜만의 일이다. 지금으로부터 3개월 전, 동화 수업도 재미 없고 글도 잘 써지지 않아 우울했던 적이 있다. 또 회사때문에 심신이 고달파 마음 속에서 파괴 본능이 솟아나던 즈음이었다. 그래서 주변 언니들에게 책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신춘문예를 통해 소설가로 등단을 한 후 동화작가를 준비 중인 한 언니는 나에게 <내려 놓음>이라는 책을 권했다. 그러나 왠지 손길이 가지 않았다. 그때 무슨 책인가를 샀는데, 뭐였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 걸 보면 그 책이 나를 '힐링' 해주진 못했나보다.

 

그때 이 책을 만났으면 어땠을까. 음, 그러고보니 그땐 출간되지 않았을 수도 있겠군. 어떻게든 지금에라도 이 책을 알게 된 건 참 기쁜 일이다.

 

토요일, 변산으로 1박 여행을 떠나기 위해 서울역에 갔는데 너무 일찍 도착한 나머지 서점에서 시간을 떼웠다. 요즘 책을 사느라 가랑이 찢어질 정도로 지출을 한 입장이라 '책 구매'는 자제하려 했다. 그러나 나는 초콜릿에 절로 손이 가고야마는 '초콜릿 중독자'의 마음처럼 나도 모르게 서점으로 향했고, 신간들 속에서 운명처럼 이 책을 손에 거머쥐고 말았다. 좀 오버스럽지만 하여간 그렇다.

 

오늘도 꼰대 때문에 열이 받아 있는 상황이었다. 집에 오자마자 문을 열고 욕을 마구 뱉었다. "이런 십장생, 말미잘, 띠기리, 삐리리-" 숙녀의 입에서 무슨 욕이냐고 묻는다면, 굉장히 다양하고 아름다운 욕이 나온다고 말해주고 싶다. 하여간 무궁무진한 욕을 내뱉고 났는데도 화가 안 풀려 와인을 찾았다. 생각해보니 어젯밤, 와인병 바닥에 고여있던 와인을 목 안에 털어 넣었던 게 기억났다. 그래서 택한 것이 책 읽기였다. 그러고 나니까 신기하게 힐링이 되었다. 요즘은 '힐링'이 대세라던데, 최민석 작가님을 '힐링전도사'로 추앙하고 싶은 심정이다.

 

이런 말을 하려고 일기를 쓰는 건 아닌데, 책을 읽다보니 무슨 말이든 내뱉고 싶어졌다. 그런 날이 있다. 마구 말을 쏟아붓고 싶은데 누구랑도 말하기 싫은 날. 그래서 나는 글로 말을 하기로 했다. 아무도 상관하지 않을 나만의 공간에서 내 식대로 말이다.

 

책을 읽으며 최민석 작가는 <진지하면서도 유쾌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 '진지'와 '유쾌'의 단어를 맞바꿔 보려한다. <유쾌하면서도 진지한 사람>으로 정정. 왠지 '진지'보다는 '유쾌'가 선행되는 사람이니까. 이런 삶은 내가 지향하는 삶이다.

 

그러나 실제로 나는 어떤가. 동화를 써도 (비록 습작이라 하지만) 신파적인 아름다운 동화만 쓰지 않는가.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내 정서가 그렇게 형성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글은 개성 있고 재밌는 글이다. 이쯤되니 내가 뭐라는지 나도 모르겠다.

 

그렇게 밤이 깊어간다. 어쩐지 힘이 나는 10시 40분이다.

사실 나는 이 책에서 발견한 사소한 것들과 느낌들을 차근차근 적고 싶었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

 

"커피볶는 곰다방이 문을 닫은 게 경영 때문이었다고요? 이럴 수가. 나 거기 단골이었거든요."

"<봄날은 간다> 참 좋죠. 취향이 나와 같으시네요."

"취향을 나눈다는 것은 은밀하고도 내밀한 고백이라는 말에 동의합니다." 따위의 것들.

 

으엥? 이건 뭐 작가한테 보내는 팬레터도 아니고. 하여간 혼자서 책을 읽다보니 누구한테라도 말을 걸고 싶었던 것이다. 작가가 말할 사람이 없어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한 것처럼(제가 넘겨 짚었다면 죄송합니다).

 

아참, 이 말을 빼먹었다.

 

나는 이 책을 176페이지까지 읽다가 덮었다. 왜냐하면 손으로 넘겨야할 페이지가 줄어드는 게 슬펐기 때문이다. 그만큼 재밌었다는 뜻이다. 오늘처럼 꼰대한테 치여서 열 받을 때 읽어야겠다. 이 책을 이번주의 '힐링북'으로 임명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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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다. 그런데 왜 당신은 책을 읽지 않는가. 아마 그것은 '좋은(좋아하는) 작가'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이다(라고 나는 당신을 한껏 이해해주고 싶다).

사람들마다 취향이 있기 마련이다. 취향이라는 게 좋아하는 음식, 옷, 이성에만 국한된 건 아니다. 글에도 취향이란 게 존재한다. 어떤 이는 문장이 긴 글을 읽으면 책을 덮고, 어떤 이는 쉽게 술술 읽히는 글을 읽으면 책을 덮는다. 후자의 경우, 어렵게 쓰인 글을 읽어야 책 좀 읽었구나 하고 생각하기 때문이라 추측한다. 하여간 독서의 계절 가을인데도 책을 읽는 걸 멀리하는 사람은 좋아하는 작가를 만나지 못해서 그렇다.(그렇죠?)

지난 주말, 나는 내 스타일의 작가 한명을 만났다. 할렐루야! 그는 바로, '최민석' 소설가다. 최민석 작가로 말할 거 같으면! 음... 쉼표(,) 하나를 찍는 데도 심사숙고하는 분이다. 2010년에 단편 <시티투어버스를 탈취하라>로 '창비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데뷔(?)했고, 장편소설 <능력자>로 '2012년 오늘의 작가상'을 받았다. 거기에다 에세이집까지 벌써 출간했으니 능력자긴 능력자다.


그리고 내가 읽은 작품은 바로 에세이집 <청춘, 방황, 좌절 그리고 눈물의 대서사시>다. 소설가의 작품 중, 구태여 소설은 읽지 않고 에세이를 읽은 주제에 "팬이올시다"라고 말하는 건 어쩐지 좀 성급하다. 하지만 어차피 작가가 내 블로그를 볼 리는 없기 때문에 나는 당당히 에세이를 읽고 팬이 되었다 밝히려 한다.(만약에 최민석 작가님이 내 블로그를 본다면... 음, 작가님 이제 곧 소설들을 읽을 것입니다. 그러니 제가 팬은 팬입니다, 잊지 마십시오.)

최민석 작가가 동의할지 모르지만, 나는 그가 성석제와 이기호를 잇는 입담꾼이라 말하고 싶다. 나는 한바탕 수다를 떠는 것처럼 유쾌하게 써내려가는 글을 좋아한다.

 

성석제 작가의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를 읽고 팬이 된 것도 특유의 유쾌한 문체 때문이다. 이기호 작가의 경우는 어떠한가. <최순덕 성령충만기>같은 책을 보면 알 수 있듯,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방법이 참 기발하고 재미난 작가다. 문장이 통통 튀고 살아 있는 탓에, 마치 작가가 옆에서 말을 걸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을 하게 된다(어쩌면 나의 바람일 수도). 하여간 최민석 작가도 그렇다. 그의 글을 읽으며 KTX 안에서 미친 듯 웃었다.

 

최민석 작가는 스스로를 'B급 작가'라 칭한다. 그렇게 B급 같지도 않은데 왜 스스로를 B급이라 칭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기성 작가들과 달리 그가 풍기는 분위기는 제법 신선하고, 남다르긴 하다. 그런 분위기를 'B급'이라고 한다면, 나 역시 철저히 B급 독자가 될 것이다.

 

하여간 나는 주말에 최민석 작가의 에세이집을 읽고, 혼자 가슴에 손을 얹고 그의 팬이 되겠다 선언했다. 여행지에서 스마트폰으로 '최민석' 이름 석자를 검색했으며, 인터넷서점에 접속해 그의 소설책을 장바구니에 담았으며(아직 주문하지는 않았노라), 그의 팬카페에 79번째 식구로 가입하였고, 그의 블로그에 찾아가 댓글을 남겼다(그리고 댓글이 달렸다. 아싸라비야).

그리고 틈틈히 최민석 작가의 기사를 검색해보았다. 이 정도면 가히 '스토커' 수준 아닌가(라고 말하지 마라. 나 바쁜 사람이다). 하여간 기사를 검색해 보았더니 서울신문 기사가 상단에 떴는데, 기자는 이리 말하고 있다.

< 좋은 대학을 나와 높은 연봉을 챙기는 ‘엄친아’나 ‘엄친딸’이라면, 다소 불편할 만한 작가의 화법은 시종일관 책 속에서 싱싱한 활어회처럼 펄떡인다.>

하하하. 그렇구나. 나는 그의 문장이 불편하지 않으니까, 음, 그러니까 나는 엄친딸이 아닌 그냥 평범한 '우리엄마 딸'이었던 거야. 그래 그런 거야, 뭐 새삼스레. 음 맞어 맞어.

아- 앞으로 최민석 작가님 팬카페에서 정모 진행하면 따라가야겠다. 그리고 최민석 작가님 소설책을 당장 사서 완독해야겠다. 좋아하는 작가의 신작을 기다리는 기쁨을 성석제, 이기호, 김애란 작가에 이어 맛볼 수 있다니. 얏호! -라고 말하는 나는, 언제쯤 동화를 쓰나? 언제나 끝은 자기반성이다. 나는 엄친딸이 아닌 '우리 엄마 딸'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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