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김정미의 창작놀이터

 

‘맛’은 사라지고 ‘쇼’만 남았다.

TV 맛집의 허위를 고발한 다큐멘터리 ‘트루맛쇼’


 곧, 말복이다. 무더운 여름을 제대로 이겨내려면 몸보신 할 수 있는 음식을 먹어야만 할 것 같다. 무엇을 먹을까? 그래, 삼계탕이 좋겠다.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맛있기로 소문난 집을 찾아가서 먹어야겠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검색창에 ‘삼계탕 맛있는 집’이라는 글자를 입력한 후, ‘검색’ 버튼을 누른다. 수십만 개의 상호명이 화면 위로 쏟아져 내린다. 파워블로거들이 포스팅한 글을 읽어보지만 믿음이 가지 않는다. 그때 마침, 우연히 켠 TV에서 복날 특집 프로그램이 방영되고 있다. 뭣이라고? 한국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삼계탕 집? 사람들 모두 땀을 뻘뻘 흘리며 먹음직스럽게 먹고 있다. 다들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맛있다고들 난리다. 방송국 게시판에 맛집 정보를 메모한 후, 시간을 내어 찾아간다. 그.런.데!!! 맛이 없다. 속았다.

 누구나 한 번쯤은 겪어봤을 법한 일이다. ‘TV에 출연한 집’이라는 플래카드를 보고 찾아갔는데 기대 이하의 맛 때문에 실망하고 돌아온 경험, 의외로 많이들 겪는다. 대체 무엇이 문제일까? 내 입맛이 대중적이지 못한 것일까? 의문을 갖는 이들에게 다큐멘터리 <트루맛쇼> 제작진은 “TV 속 모든 맛집은 허구”라며 “그동안 당신들은 바보처럼 속은 것”이라고 일갈한다.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TV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맛집은 훌륭한 요리사와 레시피 대신, 돈과 데코레이션으로 포장된 ‘가짜 맛집’이다.


  “나는 TV 속에 나오는 맛집이 왜 맛이 없는지 알고 있다”

  <트루맛쇼>의 오프닝 멘트다. 맛집이 맛이 없다니? 언뜻 말장난처럼 보이는 이 멘트는 다큐멘터리를 이끌어 가는 주제이자, TV 맛집 프로그램의 실상이다.

  제작진은 TV 속 맛집의 비밀을 알아내기 위해 <맛>이라는 상호명의 가게를 오픈한다. 경험이 전무한 주방장과 초짜 사장을 데려다 놓고 이렇다 내세울 메뉴도 없이 ‘TV에 출연한 맛집’이 되기 위해 한바탕 쇼를 기획한다.

  쇼를 달성하기 위해 제작진은 TV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다. 유명한 메뉴? 레시피? 전혀 중요하지 않다. 그저, 돈만 있으면 된다. KBS, MBC, SBS 등 지상파 방송 3사의 맛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위해서는 방송협찬대행사나 브로커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대행비는 500만원에서 많게는 3천여만원에 달했다. 이마저도 ‘스타의 맛집’과 같은 대중스타를 동반하는 프로그램은 가격이 배로 뛴다.

  돈을 지불하고 나면 그제서야 식당 최고 메뉴가 개발된다. 이슈와 영상이 될 법한 ‘방송용 메뉴’가 개발되고, 작가는 방송용 대본을 준비한다. 촬영 당일, 식당을 메울 손님들은 인터넷 친목사이트 회원들이다. 카메라를 들이대면 가짜손님들은 “와∼맛이 끝내줘요” “잊을 수 없는 맛이에요” “올 여름, 이 음식 때문에 거뜬히 이겨낼 수 있을 것 같아요” 등의 진부한 말들을 천연덕스럽게 내뱉는다.

  맛없는 호박 요리를 내놓으며 PD는 “호박이 전혀 달지 않을 거예요. 그래도 달다고 해주셔야 해요”라며 손님에게 요구하고, 일일 아르바이트생은 손님으로서의 본부에 충실하며 완벽하게 연기를 해낸다. 영상은 “달고 단 호박 요리”라는 이름으로 편집이 되어 가정마다 전송이 되고, 음식점은 ‘호박 전문 음식점’으로 포장돼 이른바 맛집의 전당에 오르게 된다.



  우리나라 방송에 ‘맛집’으로 소개되는 음식점은 일년에 약 9229개 정도. 일주일에 177개가 방영되는 셈이다. 맛집 프로그램이 유행처럼 번지고 난 후, PD와 작가들은 시청률을 올리기 위해 세상에 없는 메뉴를 임시로 만들어 내 방송에 내보낸다. 급조한 메뉴이기 때문에 시청자들이 찾아갔을 때, 메뉴는 사라지는 경우가 허다하다. 맛집 브로커를 비롯한 관계자들은 당당히 말한다. 맛집에서 중요한 것은 맛이 아니라 ‘그림’이자 ‘연기’라고. 우매한 시청자들은 ‘방송에 출연한 집’이라는 타이틀만 믿고 우르르 달려올 것이고, 우리의 몫은 앉아서 돈을 버는 일 뿐이라고.


  다큐멘터리는 방송사들의 기만과 조작, 횡포만큼이나 시청자들의 태도도 잘못 되었음을 지적한다. 한 음식 평론가는 “TV 속에 제대로 된 맛집은 단 한 곳도 없다”면서 “이것은 한국에 진정한 미식가들이 없다는 증거이며, 시청자들의 조악한 질을 대변 한다”고 말한다. TV 속 맛집에 대해 누구 하나 의문을 갖지 않는 현실과 맛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 미식가들의 교양과 행동에도 문제를 제기한 것이다.



  다큐멘터리는 “우리에게 트루맛쇼를 강요하는 빅브라더는 누구인가?”라는 멘트를 끝으로 막을 내린다. 이 질문에 대답을 할 대상은 누구일까? 공중의 전파를 통해 비즈니스를 펼쳐는 포악한 방송사 관계자의 몫일까, 아니면 돈을 벌기 위해 자존심마저 팔아버린 음식점 사장님들의 몫일까? 아마 영상을 끝까지 시청한 이들이라면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시청자 우리들의 몫이라는 것을.
 

  말복 더위를 이겨내기 위해서라는 핑계로 이제 더는 인터넷과 TV를 켜지 말아야겠다. 삼계탕을 먹고 싶다면, 차라리 택시 기사 아저씨나 주인집 아저씨께 물어보려 한다. 그리곤 ‘TV에 출연한 집’이라는 타이틀이 없는 집을 찾아 푹 고운 삼계탕을 맛 봐야겠다. ‘트루(true)’의 맛을 보기 위해서 말이다.

*제주환경운동연합 소식지 <오름과 바당> 2011년 여름에 기고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