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김정미의 창작놀이터

 


<완득이> 이땅의 모든 완득이들에게 건네는 응원가 

그들을 불행하다 말하는 건 제3자들의 시선일뿐


감독: 이 한/ 주연: 유아인, 김윤석 등





영화 <완득이>가 4주 연속 주말 박스오피스 정상에 올랐다. 3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흥행몰이를 하고 있는 것이다. 영화 개봉 2주 전, 시사회를 통해 영화를 본 나는 내심 이 영화가 잘 되길 바랐다. 보는 내내 눈물을 쏙 뺐다가 거침없이 웃겼다가 사람을 쉴새 없이 주물렀다 놓는 요 근래 보기 힘든 '참 귀여운 영화'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김려령 작가의 소설 <완득이>가 원작

영화 <완득이>는 김려령 작가의 소설 <완득이>를 원작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다. <연애소설> <청춘만화> <내사랑> 등을 만들어온 이 한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주인공은 열여덟살 완득이. 키가 작아 ‘난쟁이’라 불리는 아버지 밑에서 어머니 없이 홀로 자란 소년이다. 가난하고 불우한 환경, 꿈도 없고 공부에도 흥미없는 완득이의 옆집에는 담임 선생 ‘동주’가 살고 있다. 사사건건 시비를 걸고 밤낮없이 “완득아”라고 불러대는 담임 ‘똥주’가 완득이는 심히 귀찮다. 매일 교회를 찾아 “제발 똥주 좀 죽여주세요”라고 기도하지만, 기도는 쉬 이뤄지지 않는다(왜 이루어지지 않는지 그 이유는 영화에서 짐작할 수 있을만큼 설명된다).


‘스승과 제자’라는 틀 안에 가두기에는 충분치 않은 완득이와 동주. 그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는 재밌지만 가슴 찡하고 때론 아프다. 너무 잘나지도 그렇다고 특별히 못나지도, 너무 비관적이지도 그렇다고 유별나게 긍정적이지도 않은 열여덟살 완득이는 씩씩하게 자신만의 삶을 ‘살아 나간다’. 거기에서 이 영화의 감동은 시작된다.


무겁지 않게, 그러나 가볍지도 않게


소설이 매우 쉬운 문장으로 진행되는 것만큼이나(김려령 작가의 힘은 바로 이러한 문장력에 있다고 생각한다) 영화 역시 무겁지 않게 전개된다. 영화가 시종일관 밝고 유쾌하게 진행되는 것과는 달리, 영화 속 소재들은 결코 가볍지 않다. 다문화 가정, 이주노동자, 노사문제, 한부모 가정 등등의 문제를 다루고 있으니 말이다.


소설을 읽는 내내 생각했다. 사회적 문제를 괜히 심각하고 어둡게 펼쳐내지 않더라도 독자들에게 충분히 전달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현실에서 1인칭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3인칭 사람들이 바라볼 때처럼 그리 불행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사실을. 충분히 행복해하며 살아가고 있을 수도 있겠구나, 라는 깨달음. 그들을 사각지대에 내몰고 피해자로 어둡게 포장한 것은 어쩌면 당사자들이 아닌 제3자들의 짓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를 보면서도 마찬가지였다.


원작과 같게, 또 다르게 - 호정 캐릭터 김려령 작가에게 얻어

영화는 원작을 비교적 잘 따라가면서도 미묘한 차이로 맛을 배가 시켰다. 영화를 보기 전 소설을 먼저 읽었다면 실망했을까?(보통, 소설을 먼저 읽고나서 본 영화는 대부분 큰 실망을 주곤 했었다. <퇴마록>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향수> 등등이 그러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뒤늦게 김려령 작가의 소설을 읽었고 영화와 비교해볼 수 있었다.


우선, 소설 속의 캐릭터들이 살아 숨 쉰다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그만큼 연출이 잘 되었다는 것일 테고, 배우들도 성실히 연기했다는 뜻일 게다. 연령대가 차이 나는 남자 둘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영화임에도 호흡이 전혀 엉성하지 않았다는 점 역시 높게 평가하고 싶다(굳이 비교하자면 백윤식과 봉태규를 주연으로 한 ‘애정결핍이 두 남자에게 미치는 영향’과 같은 영화와 비교하고 싶다).


조연들도 제법 생생히 살아 숨쉰다. 극중, 옥탑방에 살고 있는 똥주는 아침이고 밤이고 쉴새 없이 완득이의 이름을 부른다. 그것도 온 동네 사람들이 다 들을 정도로 크-게. 시끄럽다고 "씨불씨불" 거리며 창 밖으로 욕설을 내뱉는 옆집 아저씨 역의 김상호는 영화의 재미를 끌어올리기 충분하다. 조연들의 역할이 작았던 소설과는 달리, 영화는 각 조연들에게 좀 더 사연을 줘 살아 숨쉬게 했고 그것이 영화의 재미를 이끌었다. 


그리고 원작에는 등장하지 않는 조연을 지켜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옆집 아저씨’의 여동생으로 등장해 똥주와 러브라인을 형성해 나가는 ‘무협지 작가 지망생’ 호정(박효주 분)이다. 시크한 표정과 부스스한 머리, 진지하게 무술에 임하는 모습 등. 미스테리한 그녀는 그래서 더욱 동주의 마음을 끄는데, 감독은 김려령 작가에게서 호정의 캐릭터를 착안했다고 한다. 실제로 영화 시사회가 끝난 후, 김려령 작가와 관객과의 대화 시간을 통해 말투며 엉뚱한 대답이며 미스테리한 매력이 넘치는 작가의 모습을 보며 영화 속 호정과 많은 부분 일치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우리 주변의 ‘진짜 이야기’, 힘내라, 도완득

이 영화가 가장 좋았던 점은 우리 주변의 ‘진짜 이야기’를 다뤘다는 점이다. 물론 소설을 바탕으로 만든 논픽션이기에 캐릭터의 묘사 등등이 과장된 측면은 있다. 그렇지만 영화가 품은 주제에 귀 기울이고 있자면 창조되어진 이야기만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실제로 필리핀 등 동남아에서 시집 온 외국인 신부가 늘어나면서 ‘다문화 가정’은 우리사회의 익숙한 풍경이 됐다. 내 친구, 아니 어쩌면 나 역시 혼혈아일 수도 있다는 사실. 이주노동자들의 문제는 또 어떠한가. 그들을 핍박하고 무시하는 이는 ‘어느 공장장’ 뿐만이 아닌 우리 아빠 혹은 오빠, 아니면 나일 수도 있다는 사실. 이것을 영화는 러닝타임 내내 상기시키고 있다.  




영화의 엔딩 역시 마음에 든다. 복싱을 통해 아버지를 이해하고 삶에 임하는 자세를 배우는 완득이의 모습은 그 자체로 그가 제법 훌륭히 성장하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영화는 호들갑 떨며 “완득이가 훌륭한 복서가 됐다”라는 식의 엔딩으로 매듭짓지 않았는데 실은 그래서 매우 다행이었다. 복싱을 한다고 복서가 된다니, 상상력이 없어도 너무 없지 않나.


우리의 완득이는 어쩌면 똥주같은 선생님이 되었을 수도 있고, 이주노동자들을 위한 일을 하고 있을 수도 있고, 식당을 차렸을 수도 있다. 무한대의 가능성을 갖고 무궁무진한 삶을 살아갈 이 땅의 완득이들에게 응원의 말을 건넨다. “힘내라, 도완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