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김정미의 창작놀이터

 

<11> 딸에게 쓰는 편지

 

 

엄마 뱃속에서 쿵쿵대며 존재감을 알리는 너. 가만히 손을 올려놓고 쓰다듬어 본다. 이 커다란 배 안에 네가 있다니, 생명이 있다니. 믿기지 않는다. 너는 그 곳에서 편안하니? 불편하지는 않니? 엄마 배가 아무리 커졌다고 해도, 파인애플 두 개 크기인 네가 들어 있기에는 굉장히 좁을 것 같은데. 그래서 그렇게 팔도 발도 쭉쭉 펴며 꼼지락거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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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로 이런 생각이 든다.

"참 평화로운 한때구나. 참,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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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네가 세상에 태어난단다. 그러면 지금의 평화로움은 백일몽처럼 한낱 꿈 같겠지. 주변에서 "뱃속에 있을 때가 제일 좋을 때야"라는 말을 하도 많이 해서 각오는 하고 있단다. 그리고 어쩌면 당연한 거겠지. 갓 세상에 던져진 작은 생명체가 살아가는 법을 익히려면 얼마나 많은 일들이 벌어질지. 또, 아무것도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어린 생명체를 거두는 데는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할지. 당연히 순조롭지도, 쉽지도 않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 왜 뱃속에 있을 때가 편하다고 하는지 알 것 같단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만나게 되어 있지. 그날을 위해 엄마는 벌써부터 각오를 해두려 한단다. 하지만 전혀 상상이 되지 않는구나.

 

너를 만나기 위해서는 출산의 시간을 통과해야하겠지. 엄마는 겁이 없고 용감한 편인데, '출산의 고통'은 전혀 헤아릴수가 없어. 아이를 둔 세상 엄마들이 '출산'의 과정을 거쳤기에, 엄마는 그 과정이 그저 자연스럽다고만 생각했단다. 누구도 자신의 고통을 시시콜콜 말하지 않았기에 고통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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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 아팠는데 아기 얼굴 보니까 고통을 잊어버렸어. 그래서 둘도 낳고, 셋도 낳고, 넷도 낳았지."

이건 네 외할머니가 엄마에게 한 말이야. 정말 고통을 정말 잊어버린 건지, 아니면 어린 딸에게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된다고 여겨서 그랬는지 외할머니는 엄마에게 어떻게 아팠는지 세세히 말해주지 않았단다. 주변에 아가를 낳은 분들도 고통보다는 행복에 찬 얼굴이었어. 아, 물론, 육아로 힘들어하긴 했지만 고통스러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단다. 어쩌면 엄마라면 누구나 다 거치는 과정을 혼자 유별나게 말하고 싶지 않았던... 아니, 못했던 것일지도 몰라. 그래서 그 트라우마를 개인의 경험으로 가둬둔 게 아닐까. 분명 '트라우마'겠지. 고통의 순간을 온몸으로 통과하는데 정신적 외상을 입지 않는다니 말이 되지 않지. 그런데 아가 얼굴을 보면 바로 치유가 된다더라. 정말 그러할까? 엄마도 경험해보면 알게 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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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이 다가오다보니 출산의 고통이 어땠는지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듣게 돼. 비교적 '숨풍' 낳은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엄마들이 엄청난 고통을 겪고 아이를 낳았더라. 엄마의 친구는 "배 위로 트럭이 지나가고, 수박이 나온다고 생각하면 돼."라는 경험담으로 엄마를 무섭게 했어. 이 정도면 다행이게. 48시간을 꼬박 진통한 사람도 있었고, 배가 아닌 허리가 뒤틀려서 고생한 사람도 있었단다. 또... 에휴, 말을 말자.

 

하지만 어차피 겪어야할 일, 용감하게 덤벼보려고 한단다. 엄마는 '경험주의자'니까 말이야. 그동안 엄마는 삶을 경험으로 통과해 왔단다. 그래서 굳이 겪지 않아도 될 일, 무모한 일을 많이 겪은 편이야. 엄마는 작가가 꿈이었기에 경험을 무척 중요하게 여겼단다. 몸으로 체험한 것은 잊히지 않는 법이고, 또 철저히 자신 게 되니까. 하지만 말이야, 그 생각에만 너무 치우쳐 있었던 것 같아. 돌이켜보면 치기 어린 모험심과 호기심 때문에 위험한 일들도 많이 겪었거든. 만약 우리 딸이 엄마처럼 하고싶어 한다면, 엄마는 말리고 싶구나. 세상에는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될 일이 있거든. 부모가 되면 왜 보수적으로 변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물론, 너는 너의 길을 알아서 걸어가겠지만 말이야.

 

엄마가 출산의 고통을 겪는만큼 아기도 세상에 나오려고 안간 힘을 쓴다고 해. 참 신기하지. 본능적으로 세상에 나올 때를 알고, 엄마 몸에서 나오려고 애를 쓴다니, 조물주는 인간을 어쩌면 이렇게 만들었을까. 세상에는 신기한 일 투성이야. 분명, 말도 못할만큼 고통스럽겠지만 잘 해낼게. 우리 축복이도 힘든 그 순간, 엄마를 의지하며 더욱 힘내서 세상에 나와줘. 우리 잘해보자.

 

기대 반, 두려움 반, 떨림 반, 신기함 반... 여러가지 감정을 복합적으로 느끼며 이 순간, 뱃속에 있는 너를 그려본다. 디데이 24일. 몇 주만 지나면 너를 만나겠구나. 지금의 평화로움과 정 반대되는 신세계가 펼쳐지겠지만, 기꺼이 즐겁게, 씩씩하게 잘해볼게. 나에게 딸이 생긴다니, 이 기적만으로도 엄마는 이 세상이, 삶이 새롭게 느껴진단다. 곧, 만나자 내 딸아.

 

36주 4일된 너에게

엄마가

 

 

 

 

 

 

<10> 딸에게 쓰는 편지(171210)

 

축복아, 잘 지내고 있지? 그 사이 또 한 달이 흘렀어. 어제는 병원에서 우리 축복이를 만났단다. 이제부터는 2주에 한 번씩 정기검진이 있거든. 그래서 비교적 빨리 만났어. 참 시간이 쏜살같이 흐르는구나. 이제 한 달 뒤면 추복이 너를 만나는 날이니 말이야. 예정일이 딱 되어 나오는 경우는 드믈다지만 약속한 날이기도 하니 그 날이 다가올수록 엄마는 긴장이 된단다.

 

아빠는 지금 이사갈 집 리모델링 작업을 거들러 갔어. 연말이라 회사 일이 무척 바쁜데, 어제는 짬이 있어서 리모델링 작업하는 할아버지 보러 갔다가 함께 일을 했단다. 엄마는 옆에서 구경하다 화장실에도 가고 싶고 몸도 힘들어서 할머니 가게에 가서 따뜻한 히터 옆에서 몸을 녹였어. 아침에 수업하고, 이후에 병원에 들린 것 밖에 없는데도 자꾸만 노곤노곤 졸려 오더라. 그래서 아빠가 얼른 왔으면 했는데, 빨리 오지 않아서 계속 기다렸지.

 

저녁에야 네 아빠가 돌아왔고, 함께 저녁을 먹고 집으로 왔단다. 오자마자 또 뭐를 막 먹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속이 더부룩해 혼났단다. 밥을 먹어야 속이 제일 편한데... 요즘 부쩍 소화가 되지 않고 신물이 올라오는구나. 네가 커지면서 엄마의 위와 장기를 압박해서 그렇대. 이런 변화들을 겪으며 엄마가 되어가는구나.

 

엄마는 지금 막 밥솥에 밥을 앉혔어. 오늘 저녁에는 밥을 먹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밥 먹고 7시부터는 일을 좀 해야할 것 같아. 미리 시작해야 했는데 늘 미뤄뒀다가 뒤늦게 시작하네. 이런 버릇 좀 고쳐야 할텐데 말이야. 헤헷.

 

우리가 이사갈 집은 네 아빠가 8살까지 살던 집이란다. 그리고 딱 30년 후, 그 집에 들어가 살게 되었어. 우리 축복이랑 함께 말이야. 그런 이야기를 아빠에게 했더니 기분이 새로운가봐. 어릴 적에 살던 집에 30년 뒤 다시 들어가 살게 되는 건 어떤 기분일까? 엄마도 제주도에 가면 종종 예전에 살던 동네를 찾아가 본단다. 할머니, 언니, 오빠랑 함께 살던 방 두칸짜리 집은 지금 사라졌어. 하지만 마당과 안채 집은 그대로지. 그 집은 작은아빠가 소유하고 있거든. 지금은 세를 내어주고 제주시에 사신단다.

 

어릴 적엔 엄마가 살던 동네가 매우 커보였어. 돌담도 높고, 거리도 크고, 동산도 높고 모든 게 다 컸지. 그런데 어른이 되어 가보니 모든 게 올망졸망 작더라. 그만큼 엄마가 자란 거겠지? 지금 엄마랑 아빠는 전세집에 살고 있단다. 방, 거실겸 부엌, 화장실로 된 작은 집이야. 그런데 이렇게 작은 집도 엄마 혼자 있으면 휑하고 너무 커 보여. 네 아빠도 엄마가 없으면 그렇대. 엄마랑 아빠는 서로에게 가장 절친이자 단짝이란다. 이제 축복이가 태어나면 적막한 집에 시끌벅적 활기가 돌겠구나.

 

엄마랑 아빠는 결혼할 때 모아둔 돈이 거의 없었단다. 요즘은 결혼을 미루는 젊은이들이 많은데, 그게 다 돈 때문이야. 결혼식장 대여며, 신혼여행 경비며, 이것저것 들어갈 돈이 많거든. 그 중 최고는 '집'이란다. 집 값이 비싸서 전세 아파트만 구하려고 해도 억 단위의 돈이 드는 게 기본이거든. 이런 현실 속에서 집을 구하려면 빚을 내야하고, 아기까지 태어나면 더 많은 돈이 드니까 다들 결혼과 출산을 미루는 추세야. (물론, 운 좋게 집을 갖고 있거나 부모님이 마련해주신다면 좋은 일이지만 말이야.)

 

엄마 역시 결혼을 생각하면 막막했단다. 외할머니는 엄마더러 "시덥잖은 놈 만나려면 혼자 살아라"라는 말을 했지. 즉, 엄마는 결혼에 대한 압박감이 없었어. 엄마는 귀여운 할머니로 늙는 게 꿈이었단다. 늙어서도 연애를 하고 싶다는 로망을 가졌는데, 이게 가능하려면 전제가 있어야 하더라. 바로, 배우자가 없어야겠지? 미혼이든, 다른 이유든. 나중에 이런 생각까지 하고 나니 어찌나 우습던지.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던 게지. 네 엄마가 무대뽀 같은 기질이 있어.

 

아무튼 '결혼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라는 지론을 갖고 있던 엄마가 네 아빠를 만나 생각이 180도 바뀌었단다. 이 남자를 놓치면 후회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자꾸만 보고 싶고, 평생 함께하고 싶었지. 아빠 역시 마찬가지였어. 그렇게 우리는 척척 결혼을 준비해 나갔단다. 다행히 둘 다 가치관이 잘 맞고 소박해서 어렵지 않게 준비했어. 결혼식은 동네 예식장에서 평범하게, 웨딩은 셀프 촬영으로, 청첩장은 직접 만들었지. 단 하나, 욕심을 낸 게 있는데 그건 '신혼여행'이었단다. 열흘 간 프랑스로 다녀왔지. 물론, 엄마의 강력한 주장으로 이뤄진 거였지. 네 아빠는 엄마랑 둘이라면 어디든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에다 외국 여행에 대한 로망이 전혀 없는 사람이거든.(하물며, 네 아빠는 건축 전공인데 엄마가 '건축' 이야기까지 하며 프랑스와 스페인에 가서 건축물을 보자고 꾀어도 안 넘어오더구나.)

 

엄마와 아빠 둘 다 직장을 다니고 있었기에 결혼은 순조롭게 진행됐단다. 물론, 아주 큰 돈이 들 일도 없었어. 집은 이모님이 살던 전세집을 내어주신 덕분에 소박하게 신혼생활을 시작했단다. 처음부터 좋은 집에서 시작할 여유가 없었거든. 그리고 마침 이사갈 집이 있기도 했어. 그게 바로 지금 리모델링을 하고 있는 집이란다. 네 아빠 소유로 된 집이지. 원래면 진작 이사 가야 했는데 세입자랑 의견이 맞지 않아서 2년 자동연장 됐고, 2년 후인 올해 여름 집을 비우면서 이사 준비를 하게 됐어.

 

우리가 이사갈 집은 이 동네 최초의 '주상복합 아파트'래. ㅎㅎ 이렇게 말해놓고도 웃긴다. 예전에는 어땠을지 몰라도 지금은 겉에서 보면 엄청 허름하고 칙칙하단다. 비오는 날 가면 '르와르 영화' 한 편이 나올 것 같지. 주변에 르와르 영화 찍을 촬영지를 찾아다니는 사람이 있다면 이 집을 추천해주고 싶을 정도라니까. 다행히 흉흉한 외관과 달리 집 안은 넓고 튼튼하더라. 그래서 깨끗하게 정돈하고 살기로 결심했어. 사실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다 내어주고 나니, 수중에 돈도 없을 뿐더러 빚을 내서 좋은 집에 갈 형편도 되지 않거든. 마침 이사 갈 집이 재개발이 될 곳이라서 언젠가 재개발하게 되면 그땐 다시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야 해. 엄마는 최대한 재개발이 천천히 진행됐으면 좋겠단다. 누군가는 재개발이 되면 보상금을 넉넉히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지만, 엄마는 그런 눈먼 돈은 그려지지가 않아. 또, 자꾸 이사를 가느니 한 곳에 정착하고 싶은 마음도 든단다. 또, 완벽해서 빈틈 없는 아파트보다는 뭔가 어설퍼도 재밌게 생긴 집에서 사는 것이 더욱 설레니 이게 무슨 일이니?

 

리모델링을 전두지휘 하시는 분이 바로 할아버지셔. 엄청 꼼꼼하시고 보는 눈도 높으셔서 하나 하나 일일이 체크하느라 시간이 걸리고 있단다. 원래는 지금쯤이면 벌써 이사를 마쳐야 해. 출산 전에 이사하는 게 목표였거든. 지금은 점점 늦어지니 마음을 비웠단다. 이사를 생각하면 머리가 좀 아프긴 하지만, 조바심 내봐야 될 일이 아니지. 어쨌든, 공사는 진행 중이니 기다리면 되지 않겠니.

 

축복아, 네가 태어나서 살게 될 집은 할아버지의 사랑이 담긴 집이야. 건물은 많이 낡았지만 속은 튼튼하니 이만큼 실속 있는 게 없지. 거기에다 리모델링까지 마치면 깨끗하게 태어날테니, 엄마는 이곳에서 시작할 삶이 기대된단다. 집 앞에는 작은 텃밭도 생길 예정이라서 그곳에 채소를 키워볼 생각이야. 축복이 네가 아장아장 걸어다닐 즈음에는 엄마와 함께 텃밭에 물을 주자. 조금 더 크면 함께 상추를 뜯는 거야. 어때? 이런 생각을 하면 엄마는 가슴이 막 두근거린다.

 

엄마는 늘 겉모습보다 속이 알찬 사람이 되고 싶었어. 그런 사람들을 동경하고 좋아했단다. 그렇게 살려고 노력했고 말이야. 그래서일까 엄마가 택하거나 노력하지 않아도 그렇게 살아가도록 삶이 펼쳐진다는 느낌을 받아. 내가 살아가려는 삶의 방향성이 나의 삶을 이끄는 거겠지?

 

아무튼, 넓고 쾌적한 집에서 새로 시작하게 된다고 생각하니 엄마는 좋기만 하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모든 게 다 포화상태거든. 엄마가 짐이 정말 많아. 집에 있는 집의 팔할, 아니 구할은 다 엄마 짐이야. 일단, 책과 옷이 어마어마해. 신발, 학용품, 가방... 그 다음 많은 건 아마 축복이 네 짐일 거야. 주변에서 어찌나 우리 축복이를 사랑해주는지 옷이며, 장난감이며 육아에 필요한 많은 아이템들을 선물로 받았단다. 무척 감사한 일이지.

 

이사 갈 집은 지금 집보다 훨씬 넓어서 여기저기 수납공간을 만들어 깔끔히 정리하려고 해. 그렇게만 해도 엄마 마음 속 짐들이 싹 사라질 것 같아. 요즘 엄마는 집을 둘러보면 한숨부터 푹 나오거든. 이사를 빨리 할 수 있으면, 짐부터 정리하고 축복이 너를 맞이할텐데 지금은 모든 게 동시에 진행될 것 같구나. 모쪼록 모든 게 잘 마무리되면 좋겠다.

 

이제 엄마와 아빠는 축복이 네 얼굴이 매우 익숙하단다. 어제 병원에서 초음파 검사를 하며 네 얼굴을 봤는데 이목구비가 뚜렷하더라. 코는 동글동글하고 입술은 도톰한 게 아무래도 엄마를 닮은 것 같아. 엄마 외모 중에 이쁜 것만 닮아서 세상에 나와줘 알았지? 의사 선생님이 네 몸무게가 2.8kg 이라고, 다음 검진 때는 3kg가 넘을 거라며 이후엔 언제 나와도 이상한 일이 아니라고 하셨단다. 오히려 아가가 커지면 더 힘들다고 말이야. 그런데 엄마는 네가 약속한 1월에 나와주었으면 좋겠어. 왜냐하면 38주까지 일을 해야하고, 또 이사도 해야 하고, 그동안 쉬지 못해서 푹 쉬고 싶은 마음도 있거든. 작품도 써야하고 말이야.

 

요즘 엄마는 배가 많이 나왔고, 몸도 점점 내 몸같지 않아. 의지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단다. 초중기 보다 오히려 잠도 많아졌어. 또, 피가 쑥쑥 빠지듯 갑자기 온몸에 기운이 없을 때가 많단다. 몸무게도 훅훅 찌는 구나. 임신 전과 비교하면 7~8kg가 쪘는데 남은 시간동안 계속 늘 것 같아 걱정이야.

 

지난 주에는 외주 일이 하나 들어왔는데 도무지 못하겠는 거야. 그래서 외주 일을 시작한 처음으로 거절했단다. 처음에는 자괴감이 들었어. 프리랜서로 먹고 살기 위해서는 책임감이 중요하거든. 그리고 꾸준히 일을 받는 게 필요해. 또, 네 엄마는 일을 하면 기운이 난단다. 그런데 난생 처음으로 일을 하겠다고 맡아놓고 세 시간 후에 거절 전화를 한 거야. 어찌나 괴롭던지. 하지만 곧 현명한 선택이었다는 걸 깨달았어. 왜냐하면 그날 무척 피곤했고, 다음 날도 동화수업을 다녀와서 내내 쓰러져 있었거든. 외주를 욕심내서 끌어 안고 있었다면 아마 새벽까지 일해야 했을텐데, 그럼 무척 무리가 되었을 거야. 축복이 너도 힘들었을테고. 이번에는 정말 현명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어.

 

방금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어. 밝은 목소리로 이제 막 일 마쳤다고 식당에 들러 할머니께 반찬 얻어온다고 저녁 같이 먹자네. 마침 방금 밥솥에서 "맛있는 밥이 완성되었습니다"라는 소리가 나왔어. 카레를 끓이려고 했는데 냉장고에 보니 카레 가루가 반밖에 없지 뭐야. 그런데 아빠가 반찬을 가져온다니 딱이다. 어쨌든 우리끼리 밥 먹는 것보다 네 아빠랑 같이 식사하는 게 더 맛있겠지? 배고파도 조금만 더 기다려!

 

축복아, 엄마는 부족한 게 참 많은 사람이란다. 이렇게 부족한 것 많은 내가 한 생명을 잘 돌볼 수 있을까? 혹여나 너에게 상처를 주고 결핍을 주면 어쩌지 걱정이 돼. 물론, 부모 자녀 사이에 갈등과 상처, 결핍이 생기는 건 당연할 거야. 모든 인간관계가 그러하듯, 부모와 자녀 사이도 결국에는 인간 간의 관계맺음이잖아. 하지만 엄마와 아빠는 적어도 네 마음에 공허함이 생기지 않도록, 내면이 탄탄한 사람이 되도록 사랑을 듬뿍 줄 거란다. 우리 잘해보자.

 

네가 태어나면 육아일기를 쓰려고 이것보다 큰 노트를 샀어. 그런데 이 노트가 아직 반이나 남았네. 임신 9개월 동안 편지를 딱 10통 썼으니 말 다했지 뭐. 사람은 왜 이렇게 어리석을까. 지나고 나니 후회 돼. 임신 주수의 변화에 맞춰 그때 그때 편지를 쓸 걸, 후회가 되네. 네가 태어나면 그때는 매일매일 짧게라도 기록을 남기고 싶어, 적어도 백일까지는. 가능할까? 또 오버려나? ㅎㅎ 엄마는 늘 실천보다 계획이 앞서서 큰일이야. 하지만 꼭! 네가 태어나면 놓치지 않고 기록해두고 싶구나. 거창하게 쓰려고 하지 말고, 짧더라도 꼭 기록해 둬야지.

 

축복아, 엄마 뱃속이 점점 좁아질텐데 그래도 편안하고 신나게 놀다가 나오렴. 네가 태어나면 너는 엄마의 둘도 없는 단짝이 될 거야. 앞으로 잘 부탁해. 사랑한다.

 

35주 4일된 너에게

엄마가

 

정기검진을 한 어제는 네 아빠 생일이었단다. 케이크 한 판을 사려다가 골고루 맛보고 싶어서 조각케이트 4조각을 샀어. 탁월한 선택이었지.

지영 이모가 아빠에게 선물을 해줬는데, 양말은 우리 축복이 것이란다. ㅎㅎ

초음파 사진을 앨범에 차곡차곡 넣어두고 있어. 물론, 이것도 이번에 미뤄서 했단다. 엄마가 넘 게으르구나.

울 축복이 얼굴 ㅎㅎ 엄마, 아빠 이쁜 데만 닮아라!

 

이사할 집 'Before'. 저기 안쪽에 방 두 개가 있고, 왼편에 방 두개, 중간에는 거실. 오른편이는 부엌과 화장실이 있단다.

 

이건 오른편 방 중 하나인데, 오픈해서 서재로 쓸 예정이란다. 왼편엔 아빠, 오른편엔 할아버지. 할아버지가 집 수리하느라 고생했다는 거 잊지마.

 

 

 

<9> 딸에게 쓰는 편지(171106)

 

오늘은 월요일. 돌봄교실 수업 가기 전에 학교 근처 단골 카페에 들렀어. 잠깐 마음도 가다듬을겸, 창작구상도 할겸 왔지.

엄마는 이상하게 월요일이 되면 조금 우울하다. 회사 다니는 것도 아니라서 월요병이 있을리 없는데 왜 그럴까? 남들은 다 바쁘게 움직이는데 엄마 혼자 방에 뒹굴고 있어서, 자책감 같은 게 드는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어. 분명한 건 펑펑 논다고 기쁘고, 몸이 편하지만은 않다는 거야.

 

그래도 엄마 주말동안 정말 엄청나게 푹 쉬었어. 토요일에는 방과후수업을 다녀와서 아빠랑 순두부정식을 먹고, 스타벅스에서 커피랑 조각 케이트도 먹고, 집에 와서 푹~자다가 저녁에는 탕수욕을 먹었단다. 간식도 듬뿍 먹었지. 어제도 저녁으로 호박전을 해먹었어. 잠도 푹 잤고. 그랬더니 몸무게가 일주일 사이에 1킬로가 쪘어. 이래도 되나 몰라.

 

엄마 지금 몸무게는 00kg란다(쉿, 비밀! 일기장을 보렴 ㅎㅎ). 내 키에 이런 몸무게가 가능할지 상상도 못했어. 임신하고는 총 6킬로가 쪘어. 결혼 후에 워낙 살이 찐 상태라서 그런가 임신했다고 살이 팍팍 불진 않더라고. 그리고 토덧도 먹덧도 아닌 상태라서 평상시처럼 먹었고, 오히려 평소 즐겨 먹던 초콜릿과 과자, 빵 같은 게 안 당겨서 덜 먹었지. 그랬더니 1kg가 빠졌고, 그 상태로 쭉 가다가 추석 이후 22주가 되었을 때부터 조금씩 살이 붙더라. 그리고 한 3주 사이에 1~2kg가 찐 것 같아. 임산부 치고는 많이 찐 게 아니라네. 그래서 참 다행이야. 다행히 임산부 당뇨 검사도 통과했고, 모든 수치가 정상이래.

 

우리 축복이는 엄마 배속에서 또래 친구들보다 2주 정도씩 빠르게 크게 있대. 잘 자라고 있어서 정말 기특하고 이쁘다. 오늘은 네가 엄마 배에 자리잡은 지 30주 5일 되는 날이야. 앞으로 총 10주가 남았는데 그 사이 살이 많이 안쪘으면 좋겠다. 그런데 먹는만큼 정직하게 몸무게가 붙는 것 같아. 우리 축복이 생각해서 몸에 좋은 걸 먹어야하는데, 최근에는 초코크루아상 빵에 꽂혔어. 동네에 맛있는 빵집을 발견했거든. 그래서 1일 1빵을 먹게 되는 것 같아. 자제해야하는데... 아무튼 막달까지 총 10kg만 찌면 좋겠구나. 그리고 울 축복이 낳고는 쏙 빠지면 좋겠다. 엄마가 참 철없지? 몸무게 생각이나 하고 말이야. 하지만 적정 체중을 유지하는 건 중요하니까.

 

어제는 2주만에 교회에 갔어. 엄마는 왜 이렇게 신앙심이 얕나 몰라. 엄마는 원래 교회를 무척 싫어하는 사람이었단다.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라 정말 싫어했단다. '편견'이 가득했지. 뒤늦게 크리스천이 되고 나서, 그게 세상에서 교회를 바라보는 눈이라는 걸 알게 됐어. 교인이라고 모두들 정직하고 옳은 것은 아닌데, 엄마는 그들에게 그런 잣대를 들이댔던 거야. 성경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죄인인데 말이야. 교회에 다닌다고 모든 죄를 용서 받는 건 아니란다. 절대 그런 말은 어디에도 없어. 말씀을 행동으로 옮기고, 실천해야 하는 거지.

 

네 아빠를 만나고 교회에 다녔으니 올해로 3년이 되었나보다. 아빠는 원래 크리스천이었지만 교회에 매주 나가는 사람은 아니었단다. 모태신앙도 아니었고. 그러던 중에, 이모님의 권유로 한 번 교회에 찾아갔는데 그날 큰 위안을 얻었단다. 찬송가를 듣는데 눈물이 막 나왔어. 아무튼 다시는 없을 신기한 경험이었지.

 

엄마는 그동안 '무교'라고 주장했지만 실은 불교에 가까운 사람이었어. 휴가 때마다 절에 가서 하룻밤 묵고, 온 동네 절을 다 찾아다니고(절 특유의 고즈넉함을 좋아하거든) 108배도 즐겨했지. 법륜 스님의 말씀을 즐겨 듣고 말이야. 그러면서도 누가 "종교가 뭐야?"라고 물으면 "다 믿는다"라고 답했던 것 같아. 그런 엄마가 이렇게 변할 줄 누가 알았겠니. 엄마도 지금의 이 모습이 참 신기하단다.

 

네 아빠도 엄마 덕분에 교회를 열심히 나가게 되었어. 큰 교회가 아니어서 그런가 우리를 눈여겨 본 분들이 이것저것 권해주셔서 유년부 교사를 시작하게 되었단다. 올해부터는 찬양대 활동도 하고 있어. 그런데 부지런하지 못하고 꼭 중간중간에 농땡이를 피우는 거야. 교회를 다니고 나서야 성실히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얼마나 대단한 분들인지 깨닫게 되었단다. 쉬고 싶은 마음, 각자의 욕망을 두고 교회에 나오는 것이니까 말이야. 그걸 자발적으로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거든. 아무튼, 엄마는 늘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깨닫고 죄에 직면하지.

 

교회에 빠지고 나면 정말 큰 자괴감이 든단다. 우울하고 울적한 기분에 사로잡히지. 주님을 믿는다 기도하며 지내지만 주님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것 같아서 늘 반성하고 괴롭지. 어제도 엄마는 우리 축복이에게 부족한 엄마라고 고백하며 주님의 사랑을 너에게 듬뿍 달라고 기도했단다. 기도로서 우리 축복이를 키우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했구나. 그 점이 엄마는 정말 미안하단다.

 

아무래도 엄마는 너를 사랑하는 마음만큼 미안한 마음을 안고 살아갈 것 같아. 안 그러려고 하는데 잘 안 돼. 어른이 된다는 것 이상으로 엄마가 된다는 건 엄청난 책임감이 따르는 일이라는 걸 깨달아. 축복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는 그 기적을 내가 느낄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얼마나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지 생각하면 두렵고 걱정되는구나. 노력하며 살게. 우리 축복이, 엄마의 단짝이 되어줘.

 

시간이 어느덧 12시 20분이네. 이제 슬슬 정리하고 언니 오빠들 만나러 가야겠다. 우울한 월요일, 예쁜 아이들 덕에 엄마는 엄청난 기운을 얻는단다. 존재만으로도 빛나는 아이들, 우리 축복이도 그런 아이란다. 사랑해.

 

30주 5일된 너에게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