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김정미의 창작놀이터

 

<11> 딸에게 쓰는 편지

 

 

엄마 뱃속에서 쿵쿵대며 존재감을 알리는 너. 가만히 손을 올려놓고 쓰다듬어 본다. 이 커다란 배 안에 네가 있다니, 생명이 있다니. 믿기지 않는다. 너는 그 곳에서 편안하니? 불편하지는 않니? 엄마 배가 아무리 커졌다고 해도, 파인애플 두 개 크기인 네가 들어 있기에는 굉장히 좁을 것 같은데. 그래서 그렇게 팔도 발도 쭉쭉 펴며 꼼지락거리는 건지도 모르겠다.

-

절로 이런 생각이 든다.

"참 평화로운 한때구나. 참,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롭다."

-

이제 곧, 네가 세상에 태어난단다. 그러면 지금의 평화로움은 백일몽처럼 한낱 꿈 같겠지. 주변에서 "뱃속에 있을 때가 제일 좋을 때야"라는 말을 하도 많이 해서 각오는 하고 있단다. 그리고 어쩌면 당연한 거겠지. 갓 세상에 던져진 작은 생명체가 살아가는 법을 익히려면 얼마나 많은 일들이 벌어질지. 또, 아무것도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어린 생명체를 거두는 데는 얼마나 큰 노력이 필요할지. 당연히 순조롭지도, 쉽지도 않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 왜 뱃속에 있을 때가 편하다고 하는지 알 것 같단다. 하지만, 우리는 결국 만나게 되어 있지. 그날을 위해 엄마는 벌써부터 각오를 해두려 한단다. 하지만 전혀 상상이 되지 않는구나.

 

너를 만나기 위해서는 출산의 시간을 통과해야하겠지. 엄마는 겁이 없고 용감한 편인데, '출산의 고통'은 전혀 헤아릴수가 없어. 아이를 둔 세상 엄마들이 '출산'의 과정을 거쳤기에, 엄마는 그 과정이 그저 자연스럽다고만 생각했단다. 누구도 자신의 고통을 시시콜콜 말하지 않았기에 고통의 크기를 가늠할 수 없었지.

-

"엄청 아팠는데 아기 얼굴 보니까 고통을 잊어버렸어. 그래서 둘도 낳고, 셋도 낳고, 넷도 낳았지."

이건 네 외할머니가 엄마에게 한 말이야. 정말 고통을 정말 잊어버린 건지, 아니면 어린 딸에게 굳이 말해주지 않아도 된다고 여겨서 그랬는지 외할머니는 엄마에게 어떻게 아팠는지 세세히 말해주지 않았단다. 주변에 아가를 낳은 분들도 고통보다는 행복에 찬 얼굴이었어. 아, 물론, 육아로 힘들어하긴 했지만 고통스러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단다. 어쩌면 엄마라면 누구나 다 거치는 과정을 혼자 유별나게 말하고 싶지 않았던... 아니, 못했던 것일지도 몰라. 그래서 그 트라우마를 개인의 경험으로 가둬둔 게 아닐까. 분명 '트라우마'겠지. 고통의 순간을 온몸으로 통과하는데 정신적 외상을 입지 않는다니 말이 되지 않지. 그런데 아가 얼굴을 보면 바로 치유가 된다더라. 정말 그러할까? 엄마도 경험해보면 알게 되겠지.

 

-

출산이 다가오다보니 출산의 고통이 어땠는지 구체적인 이야기들을 듣게 돼. 비교적 '숨풍' 낳은 분들도 있지만, 대부분의 엄마들이 엄청난 고통을 겪고 아이를 낳았더라. 엄마의 친구는 "배 위로 트럭이 지나가고, 수박이 나온다고 생각하면 돼."라는 경험담으로 엄마를 무섭게 했어. 이 정도면 다행이게. 48시간을 꼬박 진통한 사람도 있었고, 배가 아닌 허리가 뒤틀려서 고생한 사람도 있었단다. 또... 에휴, 말을 말자.

 

하지만 어차피 겪어야할 일, 용감하게 덤벼보려고 한단다. 엄마는 '경험주의자'니까 말이야. 그동안 엄마는 삶을 경험으로 통과해 왔단다. 그래서 굳이 겪지 않아도 될 일, 무모한 일을 많이 겪은 편이야. 엄마는 작가가 꿈이었기에 경험을 무척 중요하게 여겼단다. 몸으로 체험한 것은 잊히지 않는 법이고, 또 철저히 자신 게 되니까. 하지만 말이야, 그 생각에만 너무 치우쳐 있었던 것 같아. 돌이켜보면 치기 어린 모험심과 호기심 때문에 위험한 일들도 많이 겪었거든. 만약 우리 딸이 엄마처럼 하고싶어 한다면, 엄마는 말리고 싶구나. 세상에는 굳이 경험하지 않아도 될 일이 있거든. 부모가 되면 왜 보수적으로 변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물론, 너는 너의 길을 알아서 걸어가겠지만 말이야.

 

엄마가 출산의 고통을 겪는만큼 아기도 세상에 나오려고 안간 힘을 쓴다고 해. 참 신기하지. 본능적으로 세상에 나올 때를 알고, 엄마 몸에서 나오려고 애를 쓴다니, 조물주는 인간을 어쩌면 이렇게 만들었을까. 세상에는 신기한 일 투성이야. 분명, 말도 못할만큼 고통스럽겠지만 잘 해낼게. 우리 축복이도 힘든 그 순간, 엄마를 의지하며 더욱 힘내서 세상에 나와줘. 우리 잘해보자.

 

기대 반, 두려움 반, 떨림 반, 신기함 반... 여러가지 감정을 복합적으로 느끼며 이 순간, 뱃속에 있는 너를 그려본다. 디데이 24일. 몇 주만 지나면 너를 만나겠구나. 지금의 평화로움과 정 반대되는 신세계가 펼쳐지겠지만, 기꺼이 즐겁게, 씩씩하게 잘해볼게. 나에게 딸이 생긴다니, 이 기적만으로도 엄마는 이 세상이, 삶이 새롭게 느껴진단다. 곧, 만나자 내 딸아.

 

36주 4일된 너에게

엄마가

 

 

 

 

 

 

<8> 딸에게 쓰는 편지

 

 

축복아, 엄마는 지금 봉리단길이야. 대봉교역 부근 웨딩거리에 있는 <브라운 슈가>라는 커피숍에 있단다. 서울에 갔을 적에 효창공원역에서 더티커피를 먹었는데 그 맛에 뿅 가서 혹시 대구에도 더티커피 맛있는 카페가 있는지 찾아봤어. 그러다 여기를 발견했지. 맛있는 커피 찾아 삼만리! 임산부가 이래도 되는 건지 몰라.

 

돈도 아껴야하고 해야할 일도 많은데 엄마는 이런 여유를 더 즐기고 싶다. 너무 좋구나. 커피 한잔 마시고 엄마는 작업실에 갈 예정이야. 내일부터 동화창작수업을 진행하기로 했는데 자료도 준비해야하고, 다음주에 예정된 공개수업도 준비해야 하거든. 화요일에는 다음 분기 수업 지도안도 내야하는데 엄마 속도가 너무 더디다. 뭔가 우선순위가 바뀐 것 같네. 엄마가 네 핑계를 좀 대도 될까? ㅎㅎ 우리 딸이랑 더 놀고 싶어 이렇다고 말이야. 물론, 내년에 네가 태어나면 그땐 꼭 붙어 있겠지만.

 

 

 

축복아, 올해가 이제 딱 두 달 남았어. 우리 축복이는 30주에 접어들었고, 엄마 배는 더욱 커지고, 시간은 잘만 흐른단다. 올해 계획 중 이룬 게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많지 않더라. 그런데 인생이란 고평해서 이루지 못한 것 대신 다른 것들을 얻고 겪었더라고. 그 중 하나가 바로 우리 축복이를 만난 일이지. 이렇게 멋진 일이 어딨을까? 이런 생각을 해본단다.

 

그래도 창작에 소홀히 한 건 좀 아쉽고 후회되는구나. 11월에는 마을스토리텔링 원고를 마무리 해야해. 그러고나면 12월에는 시간이 좀 생길듯 해. 그때는 쓰다 만 청소년장편소설을 마무리하면 좋겠는데, 그게 가능할지... 왜 자꾸 스스로 의심이 드나 모르겠다. 최근에 새로 시작한 장편동화는 쓰다 말았단다. '기승전결'에 '기'도 쓰지 않았는데 벌써 200매 가까이 분량이 치달아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호흡을 가다듬기로 했어. 실은 완성하면 장편공모전에 내려고 했거든. 그런데 욕심이었던 거지. 엄마는 왜 이렇게 늘 오버하는지 모르겠어. 어쩔 수 없이 많은 것들을 내년으로 미뤄야겠어. 축복이 너의 탄생과 함께 엄마는 100배 더 부지런해져야 할텐데, 가능할까?

 

갈수록 작품을 쓰는 마음가짐이 무겁네. 하긴, 내가 무슨 대작을 쓰겠다고 말이야. 다만, 즐겁게 쓰는 게 중요하겠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서 즐겁게 시작해보려 해. 그래, 그게 좋겠다. 엄마는 엄마의 페이스가 있으니까, 거기에 맞추면 되겠지. 그리고 엄마가 얼마나 욕심쟁이인데, 아동문학에만 국한되지 않고 폭을 넓혀가고 싶어. 이를 위해서라면 지금부터 내공을 쌓아야 할 것 같아. 아마 육아에 매진하는 동안, 설령 글은 못 쓰더라도 내공을 키우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헛된 시간이란 없을테니까 말이야.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축복이 자라는 거 보는 게 기쁨이겠지.)

 

축복아, 요즘 들어 네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졌어. 평소 태담을 하는 편이 아니거든. 엄마는 내가 수다쟁이인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혼잣말도 되게 잘하는데, 그 사이 혼잣말 하는 버릇이 없어졌나봐. 가만 보니, 거의 하루종일 비교적 조용히 보내고 있더라구. 대신 머리를 쉼없이 굴리지. 작품도 쓰고, 일도 하고.

 

태교에 손을 쓰는 게 좋다는데 엄마가 바느질, 색칠공부 이런 건 못해도 대신 열심히 글 쓰고 지내니까 우리 축복이한테 덜 미안해해도 되지? 하긴 엄마의 엄마, 외할머니는 그 당시에 특별한 태교는 못하셨대. 아, 그런데 태담은 엄청 하셨나 보더라. 그래서 아이들 다 똘똘하게 낳았다고. 우리 축복이도 똘똘했음 좋겠다. 이쁜 내 딸아, 오늘도 엄마 뱃속에서 재밌게 놀고 무럭무럭 자라렴. 사랑한다.

 

30주 1일 된 너에게

엄마가

 

<7> 딸에게 쓰는 편지

 

오늘은 축복이 네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알려주고 싶어서 편지를 써.

 

오늘 엄마는 돌봄교실 수업에 가서 1, 2학년 언니 오빠들을 만났단다. 우리 축복이도 소리 들었지? 마구 재잘거리고 떠드는 소리들을 말이야. 특히, 오빠들은 엄청 개구쟁이여서 소리를 지르며 쿵쾅쿵쾅 뛰어다니곤 해. 그럴 때마다 엄마는 무척 큰 목소리로 "쉿! 조용히 해!"라고 말한단다.

 

사실, 엄마는 말이야. 마음 같아서는 아이들이 그냥 뛰어놀게 하고 싶어. 우당탕탕 뛰어 노는 게 씩씩하고 귀여워 보이거든. 한참 뛰어놀고 싶은 나이인데, 얼마나 몸이 근질근질 하겠어. 엄마도 어릴 때, 골목을 아주 누비며 다녔으니까. 하지만 교실에서 위험할 수도 있고 다른 친구들에게 방해가 되면 안 되니까 그때마다 조용하라고 하는데 그때 뿐이란다. 엄마는 그게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생각해. 놀이에 집중하다보면 주변을 잊게 되니까 말이야.

 

오늘 1, 2학년 언니들이 와서는 "선생님, 배가 많이 불렀어요."하면서 관심을 보였어. "아기가 쿵쿵 차요?" 라고 묻고, 자기가 축복이처럼 엄마 뱃속에 있었을 때의 이야기-엄마에게 들은-를 하며 방긋방긋 웃더라. 얼마나 예쁘던지.

 

언니들이 엄마 배에 손을 대고 우리 축복이가 발로 쿵쿵 차는 것을 느끼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몰라. 쑥스러워 하는 친구도 있었고, 너에게 "축복아"라며 말을 거는 친구들도 있었어. 그런 언니들이 얼마나 예뻤는지 몰라. 몇몇 친구는 축복이가 발로 쾅 차는 걸 느꼈어. 엄마 오른쪽 배에서 느껴졌지. 유독 언니 중 한 명은 태동을 못 느껴 속상해 했단다. "왜 나만 못 느끼는 거야~"라면서 말이야.

 

뒤늦게 온 민경이 언니는 "선생님 아기 낳고 왔어요?"라고 물었단다. 하하. 지난주 월요일, 피가 비치는 바람에 돌봄교실 갔다가 잠깐 조퇴해서 병원에 다녀왔거든. 그걸 보고 몇몇 아이들은 내가 아기 낳으러 다녀온 줄 알았나봐. 어찌나 귀엽던지 ㅎㅎ 배가 볼록 나와 있는데도 병원에 다녀왔다고 하면 아이를 낳고 온 줄 안단다. 정말 정말 귀여운 언니, 오빠들이야. 축복이 너도 태어나면 그렇겠지.

 

집에 왔더니 제주에서 언니가 보내준 축복이 옷이 도착해 있네. 제주에 사는 이모 선물이야. 엄마에게 하나밖에 없는 언니란다. 선물을 받고 왜 이렇게 마음이 찡한지 몰라. 용진, 용환 오빠 키우느라 힘들텐데도 이렇게 선물을 사서 보내다니. 요며칠 SNS에 엄마가 받은 축복이 선물들을 정리해서 올렸단다. 그걸 보고 언니가 부담을 느낀 건 아닐까 싶어서 엄마는 마음이 좋지 않아. 축복이가 받은 사랑을 기억하고 싶어서 차근차근 기록해둔 건데 누군가에겐 '나도 선물해야 하는 건 아닐까?'라는 부담으로  느껴질 수도 있잖아. 설마, 그런 건 아니길 바라지만 말이야. 이모가 임신을 했을 땐, 엄마가 아직 미혼에다 결혼이 뭔지, 임신이 뭔지 하나도 모르는 천둥벌거숭이 같을 때라서 조카들한테 선물을 못 했어. 그런데 이렇게 축복이는 선물을 받는구나.

 

 

엄마는 요즘 주변에서 엄청난 호의와 배려를 받는단다. 축복이를 잉태하고 겪는 변화에 그저 어리둥절하기만 한데, 주변의 사랑에 "아! 내가 임산부였구나", "위대한 일을 하고 있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거야. 생각지도 못했던 호의와 사랑에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주변 사람들을 챙기며 선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돼. 꼭 물질적인 것을 받아서만은 아니야. 지하철에서 길거리에서 호의를 보여준 이름 모를 사람들이 참 많단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있었지만.

 

이게 다 우리 축복이 덕분이야. 축복이 널 갖지 못했다면 이런 경험은 또 할 수 없었을테니까. 갈수록 축복이 너의 존재감이 커진다. 태동이 쿵쿵 심해지는 걸 느껴. 엄마는 요즘 배가 커지면서 땡땡하게 뭉칠 때가 있어. 순간 순간 걱정되기도 하고, 어떤 상황인지 어리둥절하기도 하단다. 일단 통증은 없어서 괜찮겠지 하며 넘기곤 해. 그리고 정말 아무 일도 없으니, 별 일 아닌 게지. 하지만 매순간 늘 걱정되고 두렵단다. 한 생명을 품는 게 이토록 조심스러운 일인지 몰랐어.  축복아, 무조건 건강히만 지내다 나오렴. 엄마는 늘 이 자리에서 널 기다리고 있단다.

 

앞으로 겪게 될 변화가 두려우면서도 기대가 돼. 얼마나 힘들지 모르지만 내가 품은 생명이 세상에 나와 성장하는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엄마는 이 생을 살아갈 또 하나의 가치와 희망을 얻게 될듯 해. 우리 딸, 정말 정말 보고 싶구나. 그렇다고 빨리 나오라는 건 아니니까 충분히 놀다가 약속한 날에 만나자. 사랑한다, 우리 딸.

 

29주 5일된 너에게

엄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