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김정미의 창작놀이터

 

<2> 딸에게 쓰는 편지

2017년 5월 19

 

축복아, 엄마는 아직 입덧도 없고, 몸도 아프지 않고 편안한 덕에 하루하루 평소처럼 지내고 있단다.

 

엄마가 인터넷을 검색해 봤더니, 지금 네 크기는 0.5cm 정도로 매우 작다고 해. 헉! 글자 하나 크기 정도네. 정말 신기하고 경이롭다.

다음 주 토요일에는 병원에서 네 심장소리를 듣게 된단다. 건강히 엄마 뱃속에서 잘 있다가 만나는 거야. 알았지?

 

어젠 엄마가 아빠랑 이모야들이랑 밥 먹다가 감정적으로 욱해서 다투고 말았어. 정치 이야기를 하다가 의견이 엇갈렸는데 서로 감정이 상한 거야. 오늘 아침에 일어나서 "왜 그런 걸로 싸웠을까?" 우습게 느껴지고 창피했지. 이렇게 엄마는 서른 네살 어른인데도 아직 너무 어리단다.

 

축복아, 이 세상 어른들이 전부 답을 말하는 건 아니란다. 얼굴과 몸은 어른인데 알고보면 철없고, 감정도 다스리지 못하고, 솔직하지 못한 경우가 많아. 스스로 그걸 깨닫지 못하는 어른들도 많고.

 

그렇다고 모든 어른들이 그렇다는 건 아니야. 끊임없이 깨어 있고,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반성하고 회개하는 어른들도 많단다. 어른들의 지혜를 받아들이되 옳지 않은 편견과 아집에 가득찬 말은 담지 말고 반면교사로 삼는다면 좋겠구나.

 

하늘처럼 느껴질 엄마와 아빠도 실은 매우 약하고 부족한 사람이란 걸 알았으면 좋겠다. 실망하라는 게 아니라 '인간대 인간'으로 보라는 거야. 그러면 실수투성이 엄마, 아빠의 말과 행동에 너를 지킬 수 있을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약속할 수 있는 건 엄마 아빠는 너를 위해, 너에게 좋은 것을 주기 위해, 너의 진짜 행복을 위해 고민하고 실천하려 노력할 것이라는 점이야. 왜냐하면 너를 무척 사랑하니까. 엄마, 아빠가 사랑해서 품은 생명이고,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귀한 선물이자 축복이니까. 그 사실을 절대 잊지 마렴.

 

엄마 성격은 좀 다혈질이야. 냉정하고 차분하게 말하고 여유 있게 남을 설득할 수 있는 그런 언변을 갖고 싶지. 하지만 엄마는 감정이 소용돌이치면 숨길 수가 없고, 온몸이 부르르 떨리면서 어수선한 말들이 나오고 공격적인 태도가 나온단다. 아마 네 아빠는 엄마의 변신 신호를 잘 알 거야.

 

엄마는 화를 내면 어김없이 후회한단다. 남에게 싫은 소리, 아픈 소리를 하기 보단 참는 쪽을 택해. 그렇다보니 상처도 잘 받지. 그런데 가족들에겐 한없이 단도직입적이란다. 아무튼 직설적이고, 화도 잘 내지만 사과도 잘하고, 뒷끝도 없는 게 엄마야.

 

엄마는 걱정이야. 너를 키우다가 엄마의 이런 성격 탓에 혹시 네가 상처 받지는 않을지. 아빠랑 엄마는 서로 활활 타오르는 성격이 아니라 서로 알맞게 보완이 된단다. 또, 서로 엄청 사랑해서 더욱 이해해주는 것일지도 몰라. 엄마가 버럭버럭 화낼 때도 있겠지만 분명한 건, 엄마는 뒤돌아서서 분명 후회할 것이라는 거야. 엄마가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꼭 받아줘야해.

 

복덩이 축복아, 엄마가 입덧이 아직 없는 것도 복덩이 네 덕이야. 배가 불고 몸이 무거우면, 그리고 널 낳게 되면 당분간 글을 못쓸테니까 지금 열심히 써두려고 하는데 자꾸 무슨 일이 생기네.

 

그래도 엄마 열심히 쓸게! 어젠 5월 단편동화 <곰삼촌>을 썼단다. 7월 말에는 청소년 단편들을 모아 '대산창작기금'이라는 곳에 신청하려고 하는데 수정하지도 모르고 자꾸 시간이 흐르네. 다음 주에는 P 출판사에서 받은 책 윤문 작업을 마감해야 한단다. 그렇게 하면 5월이 다 지나가.

 

요즘 엄마는 별다른 태교는 하지 않고 책 읽고,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단다. 창작에 몰두해 있을 때 축복이에게도 좋은 기운을 주리라 믿으며. 그리고 네 아빠가 태교음악을 형석 삼촌에게 받아와서 열심히 듣고 있어.

 

하루하루가 엄마에겐 신기하고 기적 같다. 사실 얼떨떨하기만 해. 주변 이야기 들어보면 육아할 때 그렇게 힘들다가도 아이 때문에 굉장한 행복을 느낀다던데 엄마는 벌써부터 그게 궁금하고 설렌단다. 두려움도 있지만 네가 세상에 무사히 나오기만 한다면 무엇이 두렵겠니?

 

우주야, 엄마 뱃속이 따뜻하고 편안했으면 좋겠다. 엄마 더욱 열심히 기도할게. 사랑해. <끝>

 

 

딸에게 쓰는 편지 (1)

2017년 5월 16일(6주차)

 

우주야, 방금 엄마는 점심으로 김밥을 먹었어. 언젠가 네가 태어나면 같이 김밥을 먹게 되겠지? 믿기지 않지만 ^^

 

엄마는 아직 입덧의 '입'도 시작을 안해서 컨디션과 기분이 매우 좋단다. 네가 엄마 뱃속에 있다는 걸 확인했던 2주 전, 그땐 이상하게 몸이 쿡쿡 쑤시고 힘들었어. 뭔가를 먹으면 체한 것처럼 속이 부글거리고 위도 아프고, 두통도 심했어.

 

다음날, 아침에는 오른쪽 눈이 두꺼비처럼 퉁퉁 붓고 진물이 나와 눈꼽이 가득 꼈지. 물론, 전날 눈을 아주 열심히 비벼서 그렇단다. 그래서 눈이 부었는데 아무리 그래도 너무 심하지 뭐야. 그리고 생리기간인데 생리도 없어서 무심코 임신테스트를 해봤어. 그런데 두 줄이 나왔지 뭐야.

 

"오빠! 나 임신이야!"

화장실에서 아빠에게 이렇게 말했더니, 네 아빠가 막 뛰어와서 엄마를 꼭 안아주었단다. 네 아빠 참 다정하지?

 

엄마는 부족한 게 많은 사람이지만 네 아빠는 정말 마음이 넓고 훌륭한 사람이야. 그런 의미에서 우주 너는 복 받은 거야. ^^

 

엄마는 지금 대구출판산업지원센터 창작레지던스에 있어. 3월 말에 입주작가로 뽑혀 604호를 배정 받았지. 지금 엄마는 컴퓨터로 태교음악을 들으며 첫 일기이자 편지를 쓰고 있단다.

 

일기는 정말 오랜만에 써. 20대 때는 많이 썼는데, 그땐 엄마가 많이 힘들 때였거든. 마음이 힘들고 답답해서 일기를 썼나 봐. 나중에 엄마의 낡은 일기장을 보고 엄마를 비웃거나 엄마에게 실망하진 마. 원래 젊음이란 그렇게 어리석다가도 패기가 넘치고 대책없이 희망찬 것이니까.

 

엄마는 동화작가야. 인기가 있거나 인지도가 높지는 않아. 갓 동화책 한 권을 펴낸 신인작가지. 이제 곧 네가 자라면서 엄마 배가 산더미하게 불어올텐데, 그땐 아무래도 글쓰기가 버거워질 수도 있을 것 같아. 하지만 사람 나름이겠지. 어떤 이모는 막달 아기 낳기 전까지 원고를 썼다더라. 엄마도 최대한 그러려고 해. 네가 세상에 태어나면 그땐 한동안 육아에 전념하느라 글쓰는 것도 이것저것도 힘들테니 그 전에 열심히 부지런히 해두려고.

 

사실 엄마는 걱정이 많단다. 엄마가 그다지 야무진 편이 아니거든.(야무지게 생겼다는 말은 종종 듣지만.) 손해보는 일도 많이 하고, 사람들에게 싫은 소리도 잘 못해. 물론, 네 아빠에겐 세상에서 가장 나다운 모습을 보이느라 화도 종종 내지만 말이야.

 

작년 10월에 계약종료로 공공기관에서 2년 간 일하고 나왔어. 엄마 있지, 그곳에서 실력 인정 받으며 정말 열심히 일했다! 그런데 계약직이라 결국 그만 둘 수밖에 없었어. 일은 일대로, 동화는 동화대로 조금 더 안정된 영역을 만들고 싶었단다. 그러던 사이 자녀계획은 미뤄뒀고, 올해 2월부터 노력했는데 3개월만에 네가 생긴 거야. 너는 우리에게 축복 같은 존재야. 하나님이 보내주신 귀한 선물이지. 

 

엄마, 아빠가 초보 부모라서 많이 서툴겠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약속할게. 세상 그 누구보다도 널 사랑하고 네 편이 되어주겠다는 것. 하나님 닮은 성품으로 건강하게 세상에 나오렴. 사랑한다. <끝>

 

일기장 찰칵!

일기장 찰칵!

 

병원에 가서 확인한 우리 딸, 최초의 모습.

성별도 알 수 없는, 블랙홀처럼 까맣고 아득한 너.

심장소리를 듣는데, 그만 울컥 눈물이 나왔단다.

 

서울, KTX역 화장실에서 한 번 더 시도한 테스트기.

정말 네가 내 배에 있는지 실감나지 않아서 엄마는 또 확인해보고 또 확인해봤단다.

엄마 웃기지?

친구들이 임신하면 엄마는 꼭 이 책을 선물해주었단다.

난다 작가의 <내가 태어날 때까지>라는 만화야.

이 책을 내가 읽게 될 줄 누가 알았겠니? ^^

엄마도 그림을 잘 그린다면,

그림으로 너를 표현하고 싶은데...(ㅜㅜ)

오지랖 피우지 말고, 엄마는 글로 남겨볼게.

미영 이모가 준 선물이야. 감동이지?

롤케이크에 엄마가 그린 '개굴너굴 부부' 그림을 넣었어.

개구리는 엄마, 너구리는 아빠란다.

왜 그런지 태어나서 엄마 아빠를 보면 알 수 있을 거야.

산모수첩을 받았단다.

진짜 엄마가 되었다는 뜻이지.

언제 시간이 흐를까 싶었는데,

포스팅을 하는 지금-

벌써 29주가 되었단다.

 

 

 

우리 부부에게 '아기 천사'가 찾아왔다는 것을 알게 되자,

제가 먼저 준비한 것은 작은 노트였습니다.

여기에다 편지를 적어둘 생각이었지요.

 

제목은 <우주에게 보내는 편지> 입니다.

'우주'는 제 아이에게 붙이고 싶은 이름이에요.

20대부터 언젠가 아이를 낳으면 '우주'라는 이름을 주고 말겠노라 다짐했지요.

 

왜 하필 우주냐고요?

제가 '과학지식이 풍부해서'는.. 물론, 아닙니다.

우주 세계에 대해 막연한 동경이 있기도 했고,

끝없이 펼쳐진 우주가 주는 막연함, 경이로움이 좋았습니다.

어감도 좋았고요.

 

고백하자면, 남자친구가 생길 적마다

그의 성에 '우주'라는 이름을 붙여보곤 했습니다.

"내 아이 이름은 무조건 우주야!" 이렇게 큰소리 치기도 했습니다.

(결혼하자는 말도 없었는데요.)

 

그러다 결혼하고 싶은 남자를 만나, 결혼을 했지요.

남편은 '하'씨 입니다.

고로, 우주는 '하우주'가 되겠지요.

저는 이 이름이 좋은데, 주변의 반응은 반반입니다.

사실, 별로라는 의견이 조금 더 많습니다.

 

'눈에 흙이 들어가도 우주야!'라고 고수했던 저는

점점 마음이 약해집니다.

좋은 이름이 있다면 붙여주고 싶습니다.

머릿속에 많은 이름들이 떠올랐다가 사라지지만

결국에는 '하우주'가 제일 나은 듯 합니다.

수없이 반복되는 뫼비우스의 띠 속에서

아무튼, 편지를 써내려 갑니다.

 

-

열심히 적으려고 노트를 펼쳤지만

'편지 쓰기'는 게으름 탓에 드믄드믄 이어지다

결국 '한 달의 한 번' 이벤트로 바뀌어버렸습니다.

그 사이 SNS를 많이 이용했지만,

SNS는 간편한 대신, 가볍고 휘발되어 버리는 느낌이 있습니다.

 

반면, 노트는 믿음직스럽고 듬직합니다.

또, 저도 모르게 이런저런 이야기들이 술술 나옵니다.

단점이 있다면, 휴대가 쉽지 않고(자주 까먹어요)

글씨 쓰는 게 무진장 귀찮다는 것이지요.

예전에는 손편지의 여왕이었는데

이제는 글을 썼다하면 손이 아프더라고요.

 

노트와 SNS 사이에서 항상 고민하며

미련하게 두 가지를 다 이어갑니다.

아가가 태어난 후 '육아일기'는 어떤 방식으로 쓸지

지금도 고민 중입니다.

(인생의 대부분은 쓸 데 없는 고민을 한다지요.)

-

어쨌거나, 이 공간에는

노트에 쓴 편지를 블로그에다 옮겨 적으려고 합니다.

'누가 내 글을 보기는 볼까?'하는 생각이 들지만

일단 기록해보렵니다.

노트에 세밀하고 은밀한 이야기도 많아서

그런 부분까지 옮길지 어떠할지는 잘 모르겠어요.

 

그냥 마음가는대로 일단 시작해봅니다.

-

내 딸에게 쓰는 편지, 시작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