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김정미의 창작놀이터

 

<9> 딸에게 쓰는 편지(171106)

 

오늘은 월요일. 돌봄교실 수업 가기 전에 학교 근처 단골 카페에 들렀어. 잠깐 마음도 가다듬을겸, 창작구상도 할겸 왔지.

엄마는 이상하게 월요일이 되면 조금 우울하다. 회사 다니는 것도 아니라서 월요병이 있을리 없는데 왜 그럴까? 남들은 다 바쁘게 움직이는데 엄마 혼자 방에 뒹굴고 있어서, 자책감 같은 게 드는 것 같기도 하고... 잘 모르겠어. 분명한 건 펑펑 논다고 기쁘고, 몸이 편하지만은 않다는 거야.

 

그래도 엄마 주말동안 정말 엄청나게 푹 쉬었어. 토요일에는 방과후수업을 다녀와서 아빠랑 순두부정식을 먹고, 스타벅스에서 커피랑 조각 케이트도 먹고, 집에 와서 푹~자다가 저녁에는 탕수욕을 먹었단다. 간식도 듬뿍 먹었지. 어제도 저녁으로 호박전을 해먹었어. 잠도 푹 잤고. 그랬더니 몸무게가 일주일 사이에 1킬로가 쪘어. 이래도 되나 몰라.

 

엄마 지금 몸무게는 00kg란다(쉿, 비밀! 일기장을 보렴 ㅎㅎ). 내 키에 이런 몸무게가 가능할지 상상도 못했어. 임신하고는 총 6킬로가 쪘어. 결혼 후에 워낙 살이 찐 상태라서 그런가 임신했다고 살이 팍팍 불진 않더라고. 그리고 토덧도 먹덧도 아닌 상태라서 평상시처럼 먹었고, 오히려 평소 즐겨 먹던 초콜릿과 과자, 빵 같은 게 안 당겨서 덜 먹었지. 그랬더니 1kg가 빠졌고, 그 상태로 쭉 가다가 추석 이후 22주가 되었을 때부터 조금씩 살이 붙더라. 그리고 한 3주 사이에 1~2kg가 찐 것 같아. 임산부 치고는 많이 찐 게 아니라네. 그래서 참 다행이야. 다행히 임산부 당뇨 검사도 통과했고, 모든 수치가 정상이래.

 

우리 축복이는 엄마 배속에서 또래 친구들보다 2주 정도씩 빠르게 크게 있대. 잘 자라고 있어서 정말 기특하고 이쁘다. 오늘은 네가 엄마 배에 자리잡은 지 30주 5일 되는 날이야. 앞으로 총 10주가 남았는데 그 사이 살이 많이 안쪘으면 좋겠다. 그런데 먹는만큼 정직하게 몸무게가 붙는 것 같아. 우리 축복이 생각해서 몸에 좋은 걸 먹어야하는데, 최근에는 초코크루아상 빵에 꽂혔어. 동네에 맛있는 빵집을 발견했거든. 그래서 1일 1빵을 먹게 되는 것 같아. 자제해야하는데... 아무튼 막달까지 총 10kg만 찌면 좋겠구나. 그리고 울 축복이 낳고는 쏙 빠지면 좋겠다. 엄마가 참 철없지? 몸무게 생각이나 하고 말이야. 하지만 적정 체중을 유지하는 건 중요하니까.

 

어제는 2주만에 교회에 갔어. 엄마는 왜 이렇게 신앙심이 얕나 몰라. 엄마는 원래 교회를 무척 싫어하는 사람이었단다. 좋아하지 않는 게 아니라 정말 싫어했단다. '편견'이 가득했지. 뒤늦게 크리스천이 되고 나서, 그게 세상에서 교회를 바라보는 눈이라는 걸 알게 됐어. 교인이라고 모두들 정직하고 옳은 것은 아닌데, 엄마는 그들에게 그런 잣대를 들이댔던 거야. 성경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죄인인데 말이야. 교회에 다닌다고 모든 죄를 용서 받는 건 아니란다. 절대 그런 말은 어디에도 없어. 말씀을 행동으로 옮기고, 실천해야 하는 거지.

 

네 아빠를 만나고 교회에 다녔으니 올해로 3년이 되었나보다. 아빠는 원래 크리스천이었지만 교회에 매주 나가는 사람은 아니었단다. 모태신앙도 아니었고. 그러던 중에, 이모님의 권유로 한 번 교회에 찾아갔는데 그날 큰 위안을 얻었단다. 찬송가를 듣는데 눈물이 막 나왔어. 아무튼 다시는 없을 신기한 경험이었지.

 

엄마는 그동안 '무교'라고 주장했지만 실은 불교에 가까운 사람이었어. 휴가 때마다 절에 가서 하룻밤 묵고, 온 동네 절을 다 찾아다니고(절 특유의 고즈넉함을 좋아하거든) 108배도 즐겨했지. 법륜 스님의 말씀을 즐겨 듣고 말이야. 그러면서도 누가 "종교가 뭐야?"라고 물으면 "다 믿는다"라고 답했던 것 같아. 그런 엄마가 이렇게 변할 줄 누가 알았겠니. 엄마도 지금의 이 모습이 참 신기하단다.

 

네 아빠도 엄마 덕분에 교회를 열심히 나가게 되었어. 큰 교회가 아니어서 그런가 우리를 눈여겨 본 분들이 이것저것 권해주셔서 유년부 교사를 시작하게 되었단다. 올해부터는 찬양대 활동도 하고 있어. 그런데 부지런하지 못하고 꼭 중간중간에 농땡이를 피우는 거야. 교회를 다니고 나서야 성실히 교회를 다니는 사람들이 얼마나 대단한 분들인지 깨닫게 되었단다. 쉬고 싶은 마음, 각자의 욕망을 두고 교회에 나오는 것이니까 말이야. 그걸 자발적으로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거든. 아무튼, 엄마는 늘 인간으로서의 한계를 깨닫고 죄에 직면하지.

 

교회에 빠지고 나면 정말 큰 자괴감이 든단다. 우울하고 울적한 기분에 사로잡히지. 주님을 믿는다 기도하며 지내지만 주님이 원하는 삶을 살지 못하는 것 같아서 늘 반성하고 괴롭지. 어제도 엄마는 우리 축복이에게 부족한 엄마라고 고백하며 주님의 사랑을 너에게 듬뿍 달라고 기도했단다. 기도로서 우리 축복이를 키우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했구나. 그 점이 엄마는 정말 미안하단다.

 

아무래도 엄마는 너를 사랑하는 마음만큼 미안한 마음을 안고 살아갈 것 같아. 안 그러려고 하는데 잘 안 돼. 어른이 된다는 것 이상으로 엄마가 된다는 건 엄청난 책임감이 따르는 일이라는 걸 깨달아. 축복이가 이 세상에 태어나는 그 기적을 내가 느낄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내가 얼마나 좋은 엄마가 될 수 있을지 생각하면 두렵고 걱정되는구나. 노력하며 살게. 우리 축복이, 엄마의 단짝이 되어줘.

 

시간이 어느덧 12시 20분이네. 이제 슬슬 정리하고 언니 오빠들 만나러 가야겠다. 우울한 월요일, 예쁜 아이들 덕에 엄마는 엄청난 기운을 얻는단다. 존재만으로도 빛나는 아이들, 우리 축복이도 그런 아이란다. 사랑해.

 

30주 5일된 너에게

엄마가

 

 

<8> 딸에게 쓰는 편지

 

 

축복아, 엄마는 지금 봉리단길이야. 대봉교역 부근 웨딩거리에 있는 <브라운 슈가>라는 커피숍에 있단다. 서울에 갔을 적에 효창공원역에서 더티커피를 먹었는데 그 맛에 뿅 가서 혹시 대구에도 더티커피 맛있는 카페가 있는지 찾아봤어. 그러다 여기를 발견했지. 맛있는 커피 찾아 삼만리! 임산부가 이래도 되는 건지 몰라.

 

돈도 아껴야하고 해야할 일도 많은데 엄마는 이런 여유를 더 즐기고 싶다. 너무 좋구나. 커피 한잔 마시고 엄마는 작업실에 갈 예정이야. 내일부터 동화창작수업을 진행하기로 했는데 자료도 준비해야하고, 다음주에 예정된 공개수업도 준비해야 하거든. 화요일에는 다음 분기 수업 지도안도 내야하는데 엄마 속도가 너무 더디다. 뭔가 우선순위가 바뀐 것 같네. 엄마가 네 핑계를 좀 대도 될까? ㅎㅎ 우리 딸이랑 더 놀고 싶어 이렇다고 말이야. 물론, 내년에 네가 태어나면 그땐 꼭 붙어 있겠지만.

 

 

 

축복아, 올해가 이제 딱 두 달 남았어. 우리 축복이는 30주에 접어들었고, 엄마 배는 더욱 커지고, 시간은 잘만 흐른단다. 올해 계획 중 이룬 게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많지 않더라. 그런데 인생이란 고평해서 이루지 못한 것 대신 다른 것들을 얻고 겪었더라고. 그 중 하나가 바로 우리 축복이를 만난 일이지. 이렇게 멋진 일이 어딨을까? 이런 생각을 해본단다.

 

그래도 창작에 소홀히 한 건 좀 아쉽고 후회되는구나. 11월에는 마을스토리텔링 원고를 마무리 해야해. 그러고나면 12월에는 시간이 좀 생길듯 해. 그때는 쓰다 만 청소년장편소설을 마무리하면 좋겠는데, 그게 가능할지... 왜 자꾸 스스로 의심이 드나 모르겠다. 최근에 새로 시작한 장편동화는 쓰다 말았단다. '기승전결'에 '기'도 쓰지 않았는데 벌써 200매 가까이 분량이 치달아서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호흡을 가다듬기로 했어. 실은 완성하면 장편공모전에 내려고 했거든. 그런데 욕심이었던 거지. 엄마는 왜 이렇게 늘 오버하는지 모르겠어. 어쩔 수 없이 많은 것들을 내년으로 미뤄야겠어. 축복이 너의 탄생과 함께 엄마는 100배 더 부지런해져야 할텐데, 가능할까?

 

갈수록 작품을 쓰는 마음가짐이 무겁네. 하긴, 내가 무슨 대작을 쓰겠다고 말이야. 다만, 즐겁게 쓰는 게 중요하겠지.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서 즐겁게 시작해보려 해. 그래, 그게 좋겠다. 엄마는 엄마의 페이스가 있으니까, 거기에 맞추면 되겠지. 그리고 엄마가 얼마나 욕심쟁이인데, 아동문학에만 국한되지 않고 폭을 넓혀가고 싶어. 이를 위해서라면 지금부터 내공을 쌓아야 할 것 같아. 아마 육아에 매진하는 동안, 설령 글은 못 쓰더라도 내공을 키우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헛된 시간이란 없을테니까 말이야.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축복이 자라는 거 보는 게 기쁨이겠지.)

 

축복아, 요즘 들어 네 움직임이 더욱 활발해졌어. 평소 태담을 하는 편이 아니거든. 엄마는 내가 수다쟁이인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혼잣말도 되게 잘하는데, 그 사이 혼잣말 하는 버릇이 없어졌나봐. 가만 보니, 거의 하루종일 비교적 조용히 보내고 있더라구. 대신 머리를 쉼없이 굴리지. 작품도 쓰고, 일도 하고.

 

태교에 손을 쓰는 게 좋다는데 엄마가 바느질, 색칠공부 이런 건 못해도 대신 열심히 글 쓰고 지내니까 우리 축복이한테 덜 미안해해도 되지? 하긴 엄마의 엄마, 외할머니는 그 당시에 특별한 태교는 못하셨대. 아, 그런데 태담은 엄청 하셨나 보더라. 그래서 아이들 다 똘똘하게 낳았다고. 우리 축복이도 똘똘했음 좋겠다. 이쁜 내 딸아, 오늘도 엄마 뱃속에서 재밌게 놀고 무럭무럭 자라렴. 사랑한다.

 

30주 1일 된 너에게

엄마가


순산을 위한 운동이 시급하다. 평상시 잘 걸어다니고, 하체가 워낙 튼튼하긴 하지만 꾸준히 운동을 하는 건 아니라서 좀 걱정이다.

더군다가 오늘은 '임신 어플'에서 이런 알람이 뜨기에 더욱 마음이 급해졌다. 자연분만을 하려면 운동을 하라는 뜻인데... 나는 좀 운동량이 부족한 듯도 하다. 그래서 하루에 2시간씩 걷기로 마음 먹었다.


요즘 게으름은 병이 되었고, 느지막히 하루를 시작하며 밥 먹고 산책을 다녀왔다. 우선 목적지 없이 무작정 강변 따라 걷기. 어찌나 추웠던지 강변이 꽁꽁 얼었다.


이 길을 걷다보니 문득 신랑이랑 연애할 적이 떠오른다. 장거리 연애를 하던 우리, 처음으로 신랑이 살던 이 동네에 내려왔었다. 그때는 설 연휴였고, 친 오빠가 사는 진해에 들렀다가 신랑 보러 이 동네에 왔더랬다. 강변을 따라가면 롯데시네마가 나오는데 영화를 보러 걸어가며 신랑에게 이렇게 말했다.

"난 여기에서 못 살 거 같아. 너무 휑하고 이상해."
이 동네의 첫인상은 정말이지 별로였다. 쌀쌀 맞고 운치 없달까. 그랬던 나, 이제는 누구보다 이 동네를, 이 강변을 좋아한다. 사계절을 살아보니, 그때 나는 하필 가장 횡량한 겨울의 강변을 봤던 거였다. 첫인상이 딱 별로일 수 밖에.


한 시간 산책하고, 강 반대편으로 건너가 다시 돌아오며 "차한잔 하러 어디갈까?" 고민 했다. 그러다 오랜만에 스타벅스를 찾았다. 금요일인데도 사람들이 어찌나 많던지. 백수들이 많은 걸까, 아니면 여유 있는 사람들이 많은 걸까, 아니면 지나가다 들린 걸까? 아무튼, 아이스 화이트초콜릿모카 마시며 무섭다던 <영선 가루카야 기담집>을 읽았는데 별로 안 무서운 게 함정. (-.-;) 출산 전에 괴담 단편 동화 써야하는데 큰일이로세!  어쨌든 간단히 얼개를 짜고 돌아왔다. 오늘부터 괴담 동화를 써보려한다.

집으로 오는 길에 '오늘의 기분 좋음'이자 '힐링 포인트' 몇가지를 건졌다.

종합병원 앞, 늘 궁금했던 팬시샵에 들러 구경 (*.*) 그러다가 이쁜 펜 발견! 도라에몽이랑 삐약이(이름이 있을텐데 모르겠당) 볼펜 한 자루에 1500원. 득템! 그리고 수업할 때 스티커 대신 사용할 리락쿠마 도장도 샀다. 히힛!


그리고 울 동네 gs 슈퍼에 들러 포장지가 귀여운 <몬스터 초코볼>도 샀다. 이렇게 모아두니 노랑노랑 에너지가 마구 차오르는 느낌!

그러고보면, 나 '키덜트'인가. 예전엔 몰랐는데 경제적 능력이 생긴 후 가만 들여다보니 내가 팬시, 인형 이런 걸 좋아하고 있었다. 놀라운 발견!

행복이 뭐 별거인가. 이런 게 행복이지. 재래시장에 들러 만두 두개(천원어치) 먹었더니 기분이 더 좋아졌다. 오늘의 기분 좋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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