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화작가 김정미의 창작놀이터

 

2017년 여름부터 겨울까지 칠곡군 북삼읍 숭오1리 '마을 스토리텔링'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태평 마을'이라 불리는 이곳은 금오산 자락에 위치한 평화롭고 조용한 마을입니다. 옛부터 물이 좋아 벼농사도 잘 되고, 인심 또한 넉넉해서 여러모로 풍요로운 마을이었다고 하네요. '태평 마을'이라는 이름에 딱 알맞은 곳이었습니다.

 

 

요즘 많은 지자체에서 마을을 다시 살리고 관광객들을 유입시키기 위한 '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스토리텔링'을 도입하는 추세인데요. 태평 마을 역시 관련된 사업을 진행하고 있었습니다. 최종 목적은 마을의 오래된 곡식 창고를 카페로 만들어서 공연 등의 문화행사도 열고, 타지 사람들에게도 알리는 것이라고 합니다. 곡식 창고를 리모델링한 '마을 카페'는 내년 완성될 예정인데요, 그에 앞서 마을의 자원을 찾아 스토리텔링하는 작업에 저도 동참하게 되었습니다.

 

마을창고에 이런 낙서가... *.* 귀여워서 찍었지요.

 

제가 담당한 작업은 '빨래터 합창단'의 공연 대본을 쓰는 것과 마을 홍보 등의 자료로 쓰일 '마을의 스토리'를 발굴해서 스토리텔링 하는 것입니다.  마을의 스토리를 발굴하기 위해서는 마을에 어떠한 자원들이 존재하는지 알아야 합니다. 사전조사를 위해 마을을 방문했습니다.

벚꽃 나무가 쭉 늘어서 있는 길을 따라가다보면 '마을회관'이 나옵니다. 그곳에는 대부분 70~80대 어르신들이 시간을 보내고 계세요. 우리나라 농촌은 점점 노령화되는 추세입니다. 태평 마을 역시 경제활동이 가능한 40~50대 층은 출근을 하거나 일을 하는 까닭에 마을회관은 연세 지긋한 어르신들이 지키고 계셨지요. 학교 수업을 마친 귀여운 초등학생 손주, 손녀들도 보였고요. 아마 다른 농촌 마을의 풍경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합니다.

 

 

브레인스토밍 등의 작업을 통해 마을의 자원을 조사했습니다. 태평 마을의 대표 자원을 뽑아내니 대략 4가지 정도로 나눌 수 있었습니다. 바로 한글교실 할머니들로 구성된 '빨래터 합창단',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마을 빨래터', 마찬가지로 120여년의 역사를 지닌 '숭오 교회', 곡식 삼천 가마니 이상이 보관되었다는 '마을창고' 이지요.

 

모든 자원들이 역사적으로 매우 의미 있었습니다. 작은 마을이었지만 문화와 역사만큼은 매우 탄탄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원 조사와 더불어 각 자원의 의의와 가치에 대해서도 조사해 정리했습니다.

 

 

그 중, '빨래터 합창단'은 이미 지역의 유명인사였습니다. 평균 연령 70세로 된 할머니들로 구성되어 있었는데요. 실제로 할머님들이 아낙이었던 시절, 동네 빨래터에서 빨래를 하며 불렀던 이른바 '노동요'를 합창으로 부르고 계셨습니다.

그냥 노래만 부르는 게 아닌, 스토리를 입혀 '연극' 형식으로 공연도 하고 계셨답니다. 총 지휘자이자 연출자는 한글교실 선생님! 우연히 할머님 한 분이 부르는 노래를 선생님이 귀담아 들었다가, 공부가 힘들거나 지겨울 때마다 합창하는 시간을 가졌고, 그렇게 합창단이 꾸려지게 되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악보만 있을 뿐, 공연 대본은 전무한 상태여서 스토리텔링의 일환으로 제가 직접 '대본'을 작성하게 됐습니다.

 

 

 

동네에 실제로 이렇게 빨래터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마음 빨래터'라는 팻말 아래 '삶이 힘들고 지칠 때 마음을 씻고 가세요'라는 글귀가 적혀 있네요. 본격적인 마을스토리텔링 사업을 하기도 훨씬 전부터 이미 '스토리'가 무엇인지 알고 있는 마을이었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엄지 척!

 

예전에는 흙바닥에 돌덩이가 의자처럼 드문드문 놓여 있었는데, 새마을사업을 통해 지금처럼 시멘트가 발린 모습으로 변했다고 하네요. 예전 정취를 느낄 수 없어 아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마을의 '숭오 교회'는 칠곡 지역 최초의 교회라고 합니다. 작은 마을에서 한 교회가 100년 넘는 전통을 이어가기란 쉽지 않은데, 이곳에는 대다수의 주민이 교인일 정도로 기독교의 가치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독립운동의 기지이자 아이들을 위한 교육의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6,25 전쟁 속에서도 교인들은 기도를 멈추지 않았고, 일제 치하 속에서도 믿음의 등불은 꺼지지 않았다고 하네요. 이런 내용 역시 스토리텔링의 큰 줄기가 될 수 있겠지요. 현재 교회는 새롭게 증축한 건물로, 앞편에 옛날 교회 건물도 남아 있었습니다. 황구 녀석이 교회를 지키고 있네요. 아마 아까 마을회관 낙서에 나온 그 녀석인가 봅니다.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한창 푸르른 여름에 사전 조사를 마쳤습니다. 이후, 수집한 '마을 자원'을 토대로 마을 스토리를 발굴했고, 그 내용을 원고로 작성했습니다. 초등학생에서부터 어르신들까지 읽을 수 있도록 재밌는 이야기와 쉬운 문장으로 구성하는 게 목표였습니다. 그렇다보니 자연스럽게 '동화'의 형식을 따르게 됐습니다. 원고는 11월 말에 완성하여 현재 책으로 제작 중입니다.

 

그동안 '스토리텔링' 관련하여 다양한 강연과 작업을 진행했지만, 직접 마을 스토리를 발굴해 동화로 쓰고, 책으로 엮는 작업은 처음 참여했습니다. 사전 조사는 물론이고, 기획회의를 거쳐 구성을 잡고 스토리를 만드는 모든 과정이 보람있었고 즐거웠습니다. 어르신들을 만나 어르신들이 살아온 이야기를 엿들었을 때는 깊은 감동을 느꼈습니다. 모든 과정이 즐겁고 행복했습니다.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이었기에 더더욱 그러했지요.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던 원고가 완성됐을 때는 기뻐서 춤이라도 추고 싶은 마음이었답니다.

 

완성한 스토리는 책으로 발간되어 내년 '마을 카페'에 비치되고, 마을을 홍보하는 귀한 자료로 쓰일 예정입니다. 완성된 이야기가 궁금하시다고요? 책으로 완성되는 즉시, 제 블로그에도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

 

마을에 미팅을 갔을 때, 할머니 한 분이 챙겨주신 '복조리'. 직접 만드신 거랍니다. 받고 나서 어찌나 기쁘고 행복하던지요. 복조리는 우리 집 안방에 잘 걸어두었답니다. 복이 절로 들어오는 것 같아요 ^^